123화
르네거가 자일에게 달려들고 있을 때, 히론 역시도 카오스의 팔을 물어뜯은 이후였다.
“허억, 헉…….”
카오스는 잘려 나간 한쪽 어깨를 부여잡으며 가파른 숨을 몰아쉬었다.
제 예상이 틀렸다. 전쟁의 여신의 봉인으로 히론의 힘이 약해졌을 줄 알았는데, 과거와 비등한 정도의 힘을 뿜고 있는 그였다. 그렇기에 한쪽 팔을 내어 준 것이리라.
하지만.
[쿨럭!]
카오스 역시 강해졌다.
히론은 만신창이가 된 몸을 간신히 추스르며 고개를 겨누었다.
“곧…….”
카오스는 띄엄띄엄 입을 열었다.
“죽겠군.”
그의 입가에 번듯한 비소가 걸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카오스의 힘에는 죽음의 힘이 담겨 있었으니까.
히론의 몸에 있는 상처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 연기가 몸 전체를 장악한다면 그는 분명 죽을 터.
카오스는 그때만을 노리고 있었다.
[카오스.]
히론은 눈을 번뜩 들어 올렸다.
[내가 죽는 것을 바라느냐?]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은 모두 죽일 수밖에 없다.”
[너와 같은, 고대 마물인 나를 죽이려는 생각이냔 말이다.]
쐐액.
히론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너는 우리의 복수를 하기 위해 이 일을 벌인 것이라 하였지. 하지만 너는 네가 되살린 마물 모두를 죽이지 않았느냐.]
카오스의 허리가 빳빳하게 굳었다.
[이게 정녕 복수라 생각하느냐?]
카오스는 손을 바르쥐었다.
안다. 히론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
친우들을 되살리고 다시 죽여 힘을 흡수한 것이, 정녕 그들을 위한 복수냐는 뜻이겠지.
이러한 모순을 카오스는 진즉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하지 않고서야 주신을 죽일 수 없을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변명할 수밖에 없었다.
변명하여 합리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야 그릇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므로.
[그렇다면.]
히론은 낮게 노후했다.
[카리나를 어찌할 생각이냐?]
카오스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카리나 역시도 마물의 아이인 터. 카오스가 할 일은 명료했다.
“아이의 힘을 넘겨받을 것이다.”
힘을 넘겨받는다. 그 말이 뜻하는 건 단 하나.
[죽인다는 말이로군.]
히론의 서늘한 음성이 바람을 타고 멀리 퍼졌다. 카오스는 으쓱 어깨를 들며 비죽였다.
“죽는 것이 아니지. 자일의 몸에서 영생을 살게 되는 것이지. 그편이 카리나에게는 더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히론의 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의 튀어나온 이에서 독이 흘러나왔다. 번뜩이는 송곳니가 돋보인다.
[너의 딸이다.]
히론은 으드득 이를 갈며 말했다.
[너를 아비로 생각하는 딸이란 말이다!]
쾅!
대지가 갈라졌다. 날 선 바람이 그들 사이를 거칠게 쓸고 지나갔다. 히론은 아가리를 벌리며 포효했다.
그러나 카오스는 묵묵히 서 있을 뿐이다.
“히론.”
그는 죽음의 것과 마찬가지인 무심한 시선으로 히론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니 카리나는 아비인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히론은 뜨거워진 숨을 느끼며 목을 꼿꼿하게 세웠다.
레피오스의 말이 떠오른다.
-그가 죽을 때에…….
-누군가가 함께 죽게 돼.
그 말을 들을 때부터, 히론은 결심했다.
그 누군가가 내가 되겠노라고.
히론의 몸이 점, 점, 부풀어 올랐다. 모든 힘을 끌고 와 방출한 것.
본래의 모습인 바실리스크로 변한 히론은 독니를 날카롭게 빛내며 카오스에게 달려들었다.
“크흑!”
카오스는 물어뜯긴 목덜미를 감싸며 몸을 뒤로 굴렀다.
쓰러진 그에게로 히론이 달려들었지만,
콰광!
카오스는 간신히 힘을 방출해 그의 몸을 튕겨 냈다.
“허억, 헉. 젠장…….”
[카오스!]
히론은 다시금 달려들었다. 카오스의 남은 손을 물어뜯으려 했으나 아쉽게도 그의 다리만을 붙잡았다.
으드득.
카오스의 다리가 뜯겼다.
“아악!”
카오스는 발광하며 몸을 뒤틀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 갔다간 히론에게 잡아먹힐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는…….’
방도를 찾던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저 멀리 있는 카리나였다.
카오스는 곧장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지체 않고 카리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히론은 알아챘다. 히론은 떨리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카오스!]
히론은 고래고래 소리쳤다.
[카리나는 네 딸이다!]
비록 뱀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나, 그의 얼굴에 묻어 있는 절박함은 결이 짙었다. 카오스는 비식 조소했다.
“그래.”
카오스의 머리 위로 비구름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오스는 히론을 직시했다.
아주 오래전, 그와 함께 지냈던 나날들을 떠올린다.
바다의 신이 그의 딸을 취하지 않고, 전쟁의 여신이 그의 딸을 죽이지 않았을 때.
하여 그녀의 몸을 이용해 카리나를 탄생시켰을 때, 히론을 봉인에서 깨웠을 때, 그는 기뻐할 줄로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히론은 분개했고, 자신을 원망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지 모른다.
지금의 일은, 그때부터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카오스는 눈을 찌푸렸다. 웃는지 우는지 명확하지 않은 표정이 그의 얼굴을 뒤덮었다.
“히론, 너의 딸이기도 하지.”
[조심……!]
번쩍!
번개가 쳤다.
그리고 히론은 사라졌다.
저 멀리, 카리나의 몸을 감싸고 있을 뿐.
“……미련한 자식.”
카오스는 더 이상 그에게 닿지 않을 말을 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 * *
“히론!”
히론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안 돼. 안 돼. 이러지 마.”
카리나는 엉금엉금 기어 히론에게로 다가갔다. 새까맣게 타 버린 그의 몸을 끌어안는다.
“히론. 제발. 눈을 떠 봐. 응?”
그녀는 히론의 얼굴을 더듬으며 눈을 질끈 감아 내렸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숨이 턱턱 막혔다.
“이러면 안 돼. 안 된다고 했잖아. 눈을 떠 봐. 할 수 있지? 응?”
카리나는 자꾸만 쓰러지려는 히론의 몸을 지탱하며 그의 목을 그러안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이럴 수는 없다고.
[쿨럭!]
“히론!”
다행히도 히론의 숨이 흘러나왔다. 카리나는 그를 끌어안으며 얼굴을 살폈다.
“왜, 왜 그랬어. 내가 막을 수도 있었는데. 왜. 아니야, 가만히 있어. 내가 치료를 해 줄 테니까.”
[아이야.]
히론의 가물가물하게 떠진 눈이 카리나를 향했다.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말하지 마. 상처가 벌어지잖아.”
히론은 고개를 저었다.
[네게는 이 세계를 구할 의무가 없단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나중에 일어나서 말해. 지금 할 필요 없잖아. 응?”
[그러니 너는.]
“히론. 제발. 말하지 마. 부탁이야…….”
[네 삶을 살아라.]
히론은 간신히 꼬리를 들어 그녀의 몸을 안아 주었다. 비늘뿐인 몸은 체온을 전달하지 못한다. 이 사실이 못내 안타까웠다.
내가 마물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네가 마물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더 행복했을까.
이제 와 생각하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히론은 카리나를 더 세게 그러안았다.
[나는 정말, 너를 사랑했단다.]
나의 딸, 메두사의 몸을 가르고 나온 너를. 세상의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꼈다고.
너는 나의 두 번째 딸이었다고.
[내 딸아이야.]
이토록 안타까운 아이, 지켜 주어야 하는 아이.
홀로 두고 갈 수 없는데, 이 세상을 홀로 살게 두고 갈 수 없는데,
[끝까지 함께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빌어먹을 운명은 그를 끝끝내 떨어지게 만들었다.
눈이 감겼다. 다가온 죽음의 기운이 그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항상, 나는, 너를 사랑…….]
툭.
그의 고개가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아, 아…….”
카리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안 돼, 안 돼. 말도 안 돼.
“아악! 히론!”
그녀는 쓰러진 그의 몸을 일으키며 악 소리쳤다.
“옆에 있어 준다고 했잖아. 계속 내 옆에 있을 거라 했잖아. 왜 그래. 눈을 떠 봐, 제발.”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니, 울 수 없다. 어차피 히론은 다시 살아날 테니까. 살아나서 날 안아 줄 테니까. 우는 얼굴을 보여 줄 수 없었다.
“아니야. 죽은 거 아니야. 죽지 않았어. 너는 죽지 않아.”
그의 몸은 자꾸만 쓰러졌다. 이리 저리 움직였다. 정말 죽은 것처럼, 죽어 버린 것처럼.
“나 진짜 화낸다. 그러니까 제발 일어나.”
하지만 그의 몸은 미동도 없었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아악!”
카리나는 그의 몸을 때리고 또 때리며 몸을 들썩였다.
“제발, 일어나. 내 옆에 있어야지. 왜 그래, 진짜. 빨리 일어나.”
카리나는 그의 얼굴을 제 품 안으로 꽉 끌어안았다.
“히론, 제발…….”
뱀의 피부는 너무나도 차가웠다. 그래서 마치 죽은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 죽은 것처럼.
“제발…….”
카리나의 뺨을 따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동시에 히론의 몸이 천천히 무너졌다.
“날 두고 가지 마…….”
가루가 되어 사라져 가는 그의 몸은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