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어둠이 자욱했다.
밤처럼. 아니, 밤보다도 더 깊은 어둠이 르네거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 까마득한 어둠 속, 오직 빛나는 건 르네거 자신밖에 없었다. 그는 마치 죽어 가는 별처럼 뜨거운 빛을 끊임없이 내뿜고 있었다.
온몸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그의 몸을 잠식했다.
그럼에도 그는 발을 내디뎠다.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래야만 하기 때문, 에 그는 끊임없이 발을 내디뎠다.
통증은 끊이지 않았다. 사지가 절단되는 듯한 거대한 고통이 그를 지배했다.
발이 잘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려다보니 발목 아래가 허전했다.
다리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허리 아래가 허전했다.
손이, 팔이, 몸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천천히 어둠에 동화돼 희미해져 갔다.
그의 몸을 차지하고 있던 빛이 사라져 간다. 빈자리에 어둠이 들어앉았다. 빛을 몰아내고 들어찬 어둠이 그의 팔을, 손을, 다리를, 발을 만들어 냈다.
빠르게 소멸돼 가는 빛은 점멸하며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마치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의미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어떤 말을 전달하려는…….
“윽!”
르네거는 번뜩 눈을 올려 떴다.
가득했던 어둠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는 익숙한 천장을 바라보며 가파른 숨을 몰아쉬었다.
손을 들어 본다. 일전과 변함이 없다.
몸을 내려다본다. 역시 일전과 변함이 없다.
그러나 몸 안에 느껴지는 힘은 과거와 달랐다.
성자였을 때의 그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인간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그는 강인했다.
하지만 아포칼리타의 힘을 받아들이게 되니,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졌다.
‘이게 바로…….’
그는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제 손바닥 안을 내려다보았다. 조절되지 않는 힘이 몸속에 가득했다.
이런 상태라면, 자일을 이길 수 있으리라.
그의 눈이 번뜩이는 찰나였다.
“일어났구나.”
카리나의 음성.
르네거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틀이나 누워 있었단다. 알고 있니?”
“……그렇게나 오래 걸렸습니까?”
“그래. 그래서.”
카리나는 르네거의 손등에 손을 올렸다.
“난 네가 죽는 줄 알았어.”
바짝 긴장해 있는 손가락이 느껴졌다. 미약한 떨림도 함께 느껴졌다.
“너도, 죽어 버리는 줄 알았어.”
르네거는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차가운 체온이 흘러들어 왔지만, 그는 손을 놓지 않았다. 더 세게 붙들며 자신의 온도를 나누어 준다.
“너는…….”
카리나는 그런 르네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알고 있었지?”
“…….”
“계획하고 있었던 거지?”
르네거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카리나는 침묵의 뜻을 알고 있었다. 레피오스에게 이미 히론이 계획한 일이라는 것을 전해 들은 상태였으니까.
카리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고개를 떨어뜨리며 입술을 자근 깨문다.
“왜 내게 말하지 않았어?”
르네거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카리나의 빠져나가려는 손을 다시 붙잡으며 그녀에게로 몸을 기울인다.
“말했다면, 허락해 주셨을 겁니까?”
카리나는 다시 시선을 들어 올렸다. 르네거의 두 눈을 바라본다.
새파란 눈동자. 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어둠이 존재한다.
“너는, 불멸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니?”
“…….”
“끊지도 못하고 억지로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해 얼마나 고찰해 봤니?”
카리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눈매를 더듬으며 가느다란 숨을 토해 낸다.
“너는…….”
그녀는 우뚝 멈춘 손을 가만히 두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혼자 남을 자신이 있니?”
르네거는 느리게 눈을 뇌까렸다.
혼자 남을 자신. 이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리나는,
레피오스의 말을 떠올린다.
-홀로 모든 것을 책임질 생각이란다.
절대로.
-혼자 쓸쓸히 죽어 가겠지.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르네거는 두 눈을 부릅 올려 떴다.
“카리나.”
그는 제 얼굴에 닿아 있는 카리나의 손을 움켜쥐었다.
“저는 살아 있습니다.”
두근, 두근.
떨리는 맥박이 그대로 느껴졌다.
“증거로, 당신과의 맹약은 그대로이고요.”
그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검은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이 오롯이 보였다.
하아.
카리나는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고개를 툭, 떨어뜨리곤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다. 희미하지만 또렷한 숨이 느껴졌다.
“네게 치료도 못 받게 됐어.”
“이젠 당신이 다칠 일이 없을 겁니다.”
“네가 다치면.”
“저도 강해졌으니, 다치지 않을 테지요.”
르네거는 그런 카리나의 등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네가 운명을 바꾸겠다고?
“다 괜찮습니다.”
-그럴 일은,
“잘될 겁니다.”
-결코 없을 것이다.
르네거는 마치 스스로에게 암시를 하듯 거듭 읊조렸다.
* * *
쿠웅.
거대한 핏빛 날개가 메마른 대지를 거세게 할퀴었다.
핏방울이 떨어지는 곳곳마다 땅이 썩어 들어간다. 간신히 생명을 피워 냈던 잡초들은 힘을 잃고 그대로 스러져 사라진다.
“허억, 헉…….”
자일은 몸을 웅크린 채 피가 섞인 숨을 수차례 토해 냈다.
어찌나 이를 꽉 깨물고 있었던지, 입안이 달았다. 침이 삼켜지지 않았다. 그는 거친 기침을 뱉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버지.’
으드득.
그는 땅을 할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자신을 탄생시켜 준 이, 부활시켜 준 이, 세상에 눈을 뜨게 만들어 준 이, 그가 죽었다.
첫 번째 죽음은 카리나의 짓이었고, 두 번째 죽음 역시 그녀에게서 비롯된 것.
용서할 수 없다.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나를 좋아하니?
그녀를 옥죄고 싶고, 가지고 싶고, 속박하고 싶은 이 감정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맞았다.
하지만 자일은 알고 있었다.
제 감정이 그녀가 말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는 것을.
하지만 그런다 한들 어찌할까.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목표는 오직 세계의 멸망.
그 멸망의 끝에, 카리나의 죽음이 있어야 한다면.
‘그조차 받아들이리라.’
자일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찢어졌던 날개는 어느새 돌아와 있고, 깊었던 자상 역시 씻은 듯 사라져 있다.
“……나의 부름에.”
그는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부터 새빨간 빛과 새까만 어둠이 동시에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답하라.”
쾅!
대지가 흔들렸다. 쩌저적 갈라지는 땅속에서, 익숙한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포칼리타의 부활이었다.
* * *
또 언제 정신을 잃은 것인지.
르네거는 가물가물한 시야를 느끼며 눈을 수차례 깜빡였다.
카리나와 대화를 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다시 누워 쓰러지게 됐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쓰러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예감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몸에 돌고 있는 힘이 강하게 느껴졌으니까.
“후우.”
그는 한숨을 뱉으며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한층 가벼워진 어깨를 돌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이때였다.
끼이익,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두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어났군.”
한 명은 피에톤이었고, 다른 한 명은,
“……그러게.”
페넬로피였다.
르네거의 눈이 커졌다. 들어오는 그들을 바라본다.
“또 며칠 내내 기절해 있으면 물이라도 뿌려서 깨우려 했다. 일찍 일어나서 다행이군.”
“제가 얼마나 누워 있었습니까?”
“두 시간 정도. 카리나는 방금 나갔고.”
“……그렇군요.”
르네거는 느리게 주억였다. 제게 다가오는 페넬로피를 곁눈질로 바라본다.
“오랜만이야.”
그녀는 르네거의 침대 앞으로 의자를 끌고 와 몸을 앉히며 말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게 오랜만이라는 말이야.”
“……그래. 오랜만이지.”
페넬로피는 띄엄띄엄 대답하는 르네거를 바라보며 낮게 웃었다. 흘러 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숨을 들이켠다.
“많이 달라졌네, 오라버니.”
말대로, 르네거는 많이 변해 있었다.
머리칼은 검어진 지 오래였기에 그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르네거의 두 눈을 보았다. 여전히 푸르고 새맑지만 어둠을 품고 있는 두 눈을.
“아포칼리타, 가 된 거지?”
르네거는 잠시 침음을 흘리다, 이내 턱을 들며 대답했다.
“나를 비난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알아.”
페넬로피는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비난할 생각도 없어.”
르네거의 두 눈이 커졌다. 페넬로피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리 의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먼젓번에…….”
“…….”
“미안해.”
페넬로피는 허벅지 위에 두었던 손을 움켜쥐었다.
“죽었어야 했다는 말을 너무 쉽게 했어. 그때의 나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아.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녀는 억지로 입술을 들어 올리며 사붓 미소 지었다.
“사는 게 중요하지.”
“…….”
“살아서, 해내는 게 중요하지.”
데이펜의 수장으로서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싶은 마음이 치달았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였다.
“어쩌면 신이 원하는 건…….”
페넬로피는 정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살아남는 것일지도 몰라.”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무거운 의무라고.
이를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구나. 페넬로피는 자조적인 조소를 뱉었다.
“……페넬로피.”
르네거의 벌려졌던 입이 다물어졌다. 동시에 그는 부드럽게 입술을 들어 올렸다.
페넬로피에게로 손을 뻗는다. 과거처럼, 아주 먼 과거처럼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준다.
“네가 죽지 않아 다행이야.”
여전히도 다정한 말씨에, 페넬로피는 입을 꾹 다물고 미간을 좁혔다.
자신이 이제껏 한 짓이 있는데, 이제껏 그를 사사건건 방해하며 달려들었는데.
카리나나 르네거나, 정말 하나같이 멍청하게 착해 빠졌다.
‘아포칼리타를 착하다고 생각하게 될 줄이야.’
그녀는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시 말문이 트이려던 그때였다.
“레피오스 님! 대체!”
카리나의 날이 선 외침이 방 바깥에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