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다] 움직이지 않는 그림자
1화.
움직이지 않는 그림자
어차피 끝날 목숨이었다.
서화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꽤 긴 여정이 될 터였다. 혼자 길을 헤매는 것은 원치 않았다. 문득, 먼저 떠난 가족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조금 걱정되었다. 혹여나 저를 버려두고 갈지도 모른단 생각에 입술을 몇 번 깨물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귀를 때리던 굉음이 조금씩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곧 끝날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편안해질 테지.
기세 좋게 타오르는 불길은 해 질 녘 하늘까지 닿아, 지는 해를 달게 삼키고 있었다.
* * *
촤악-.
얼굴 위로 물세례가 쏟아졌다. 죽은 듯 누워 있던 서화는 조금씩 의식을 찾아 갔다. 정으로 쪼는 듯한 두통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머리에서 시작된 통증은 금세 발끝까지 번졌다. 육신은 날카로운 고통을 증거 삼아 여전히 살아 있다고 외쳐 댔다.
입가가 뻐근했다.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을 간신히 올려 입가를 조심스레 훔쳤다. 이미 검게 변해 버린 굳은 핏덩이가 후두두 떨어졌다.
호랑이의 목숨도 단숨에 끊을 수 있는 극약이라더니. 죽고 싶을 만큼 아프기만 했지, 목숨은 이리도 멀쩡히 붙어 있었다.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네. 서화는 실성한 듯 웃음을 흘렸다.
“숨이…… 된 것 아닌가.”
“자네가…… 보고드리게.”
“……그러지.”
윙윙대는 이명 속에 몇 마디 대화가 끼어들었다. 둔한 머리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굳어 있던 후각이 점차 돌아오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봐선 딱히 좋은 상황 같지는 않았다.
간신히 바닥을 짚고 상체를 일으키니 예상보다 더 좋지 않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다른 것을 치우고서라도 장소가 문제였다.
아무리 봐도 이곳은 옥이었다. 제 옆을 촘촘히 채우고 있는 철창은 분명 죄인을 가두는 그것이었다. 그뿐일까. 철창 안에는 죽어 가는 북방인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채였다.
이럴 줄 알고 그 고생을 해서 약을 구했건만. 여태껏 살아오며 떠올릴 만한 것이라곤 병상에 누워 아팠던 기억뿐이었다. 마지막이라도 편히 가고 싶어 꼼수를 부렸는데.
‘……계획이 실패한 모양이네.’
더 험한 꼴을 보기 전에 손목이라도 몰래 그어야 하나? 멍으로 얼룩덜룩한 손목을 가만히 바라보던 서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서화 님, 괜찮으십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옆을 확인하니 제 스승과 친구 같던 몸종이 서화를 간절한 낯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다들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스승의 눈동자에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였다. 서화의 손을 꼭 잡은 그는 급히 입을 열었다.
“서화 님, 저자들이 무슨 소리를 하든 전혀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산주니 뭐니 말도 안 되는…….”
말소리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끼익-.
낡은 쇠붙이들이 기이한 소음을 만들어 냈다. 옥 안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었다. 문 틈새로 점점 넓이를 늘려 가는 한 줄기 빛이 어두운 실내를 가로질렀다. 한데 고여 있던 먼지가 둥둥 떠올랐다.
희뿌연 먼지 뒤, 한눈에 봐도 지위가 높아 보이는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경멸을 잔뜩 실은 눈길로 좌우를 살핀 그는 비단 수건으로 코를 막았다.
남자의 뒤에 서 있던 두어 명의 병사들이 재빠르게 옥 안으로 들어왔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저자다.”
비단 수건을 더욱 끌어 올린 그가 서화를 가리켰다. 바닥을 짚은 서화의 손가락 끝이 희게 변했다. 정신이 들자마자 혀를 깨물었어야 했는데. 후회는 항상 늦었고, 때를 놓친 기회는 비참함만 가중할 뿐이었다.
급히 다가온 병사들이 서화의 양팔을 뒤로 움켜쥐었다. 그러고선 더러운 수건 하나를 입 깊숙하게 물렸다. 제대로 된 반항을 해 보기도 전에 몸이 들렸다. 병사들의 발걸음이 옥 밖으로 향했다.
어두침침한 안과 달리 바깥은 밝기만 했다. 시리도록 강한 햇빛에 서화는 눈을 찡그렸다.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자 자꾸만 발이 뒤엉켰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내들은 서화를 끌고선 막사로 향했다.
커다란 막사 앞, 의미 없는 실랑이가 이어졌다. 서화의 몸뚱이가 병사들을 이겨 낼 리 없었다. 결국, 막사 안으로 끌려 들어가 무릎이 꿇려졌다. 비단 수건을 쥔 사내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봤다. 고풍스러운 의자 위로 털썩 몸을 내린 그가 발끝을 까딱였다.
“네 어미를 똑 닮았구나. 얼굴을 보니 잘못 잡아 온 것은 아닌가 보군.”
신경을 긁을 목적이 다분한 말이었다. 서화의 움직임이 격해졌다. 병사들이 서화의 등을 힘껏 밟아 눌렀다. 무릎을 꿇린 채로 앞으로 엎어졌다. 고개조차 들지 못한 서화는 분을 참지 못해 손을 움켜쥐었다.
“저런, 이리 패기가 있는 자였다니. 내 너와 전장에서 칼을 맞대어야 했는데 참으로 아쉽구나.”
비웃음 섞인 목소리에 서화의 몸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치욕적인 상황쯤이야 눈을 뜬 시점부터 예상했던 일이다. 그렇다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쉬이 참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북방 성주의 피가 흐르는 이 중, 살아남은 건 너 하나뿐이다. 네 목숨을 헛되이 쓰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말거라.”
사흘 남았다. 그 전까지 명이 끊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도록 해. 확인하였으니 이제 치우도록 하고. 마저 덧붙인 사내가 부채를 펴 얼굴 쪽으로 흔들었다.
사내의 말이 끝나자 순식간에 몸이 일으켜 세워졌다. 억센 손길이 다시 양팔을 뒤로 움켜쥐었다. 잠시 비틀거리던 서화는 떠밀리듯 앞으로 걸었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다리에 힘이 풀렸다. 몸뚱어리는 자꾸만 앞으로 고꾸라졌다. 팔을 연신 잡아당기던 커다란 손이 갑작스레 머리채를 휘감았다.
“그리 굼뜨게 움직이니 난들 별수 있나.”
머리채를 잡은 자가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서화는 이를 악물며 간신히 발걸음을 옮겼다.
극약으로만 목숨을 끊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른 방법도 있을 테다. 더 험한 꼴을 당하기 전에 어서 끝내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 이후로 사흘간, 서화는 자결 방법을 찾아 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황은 서화의 편이 아니었다. 손목을 긋기엔 자그마한 쇠붙이 하나 구할 수 없었고, 혀를 깨물지 못하게 식사 시간 외에는 입 안 가득 천 쪼가리가 채워졌다. 손과 발이 묶여 있으니 이동할 수도 없을뿐더러, 머리를 바닥에 내려치지 못하게 항시 보초병이 감시했다.
마음이 조급해져 왔다. 사내가 말한 사흘 중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도무지 파악되지 않았다. 보초병이 가끔 멀건 죽을 내올 때마다 시간이 지나가고 있음을 어림잡을 뿐이었다.
굳게 닫혀 있던 철창 문이 다시 열렸다. 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손길이 서화의 팔을 잡아 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 서화는 별 저항 없이 옥 밖으로 향했다.
모처럼 본 햇빛은 꽤 강렬했다.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 정도로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건조한 바람이 몰고 온 흙먼지가 온 천지에 가득했다. 작게 기침을 한 서화가 천천히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다 말라비틀어져 나뒹구는 풀뿌리들과 거칠게 쩍쩍 갈라진 땅이 눈에 들어왔다. 그 어떤 생명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았다. 족히 수십 년은 버려져 있던 황무지임이 틀림없었다.
허름한 천막 안으로 휘청 몸이 밀렸다. 가까스로 고꾸라지지 않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서화의 뒤로 걸걸한 목소리가 울렸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앞에 있는 옷으로 갈아입거라.”
낡아 빠진 탁상이 천막 중간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위에 물기가 조금 묻어 있는 수건이 몇 장 놓여 있었다. 여태 제대로 세수 한 번 하지 못했다. 서화는 천천히 수건을 펴 얼굴에 올렸다.
작게 숨을 들이켜자 따가울 정도로 건조했던 공기에 조금이나마 수분이 느껴졌다. 찝찝했던 얼굴을 꼼꼼히 닦아 냈다. 뒤이어 찢어지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든 옷을 벗고 몸을 닦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난 상처 위로 수건이 스칠 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통증도 통증이었지만 조금이나마 찝찝함을 덜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이름 모를 온갖 더러운 것들과 피로 수건의 색이 검붉게 변해 갔다.
다 쓴 수건을 내려놓고선 옷을 집어 들었다. 손끝에 감기는 천의 촉감이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엄지와 검지로 옷을 잠시 만지작대다 옷을 껴입었다. 그러고선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거울에 시선을 던졌다.
경첩 거울 아래엔 빗과 머리 끈이 놓여 있었다. 적당한 모양새를 알아서 갖추라는 뜻인 듯했다. 이리저리 엉켜 엉망인 머리카락을 하나로 모아 머리 끈으로 다시 동여맸다.
“다 끝났으면 나오지 않고 무엇 해.”
밖에서 들려온 짜증 가득 담긴 목소리가 서화를 재촉했다. 천막 입구에 놓인 새 신으로 갈아 신고 밖으로 나섰다.
제국에선 사람의 목을 자르기 전에 보기 좋은 행색을 갖추는 것일까. 그렇단 말은 여태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어찌 되었건 누더기를 입고 죽는 것보다는 나을 테지. 서화는 지레짐작했다.
그 뒤로 일어난 일들은 서화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간 것들이었다. 당연히 처형장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병사들은 서화를 영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여러 천막 가운데 가장 호화롭고 큰 천막 앞에 도착했다. 천막 입구가 천천히 열렸다. 다소 당황한 서화는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서화를 기다리고 있던 이는 며칠 전 만난 사내였다. 그는 비릿한 미소를 띠고선 서화를 빤히 바라봤다.
“본론부터 말하지. 네가 산주(山主)를 설득해야겠다.”
찻잔을 든 남자가 밑도 끝도 없는 말을 꺼냈다. 영문을 알 길 없는 서화가 남자를 응시하자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믿기 힘들겠지만, 지금은 황무지일지언정 수백 년 전엔 이 땅이 참으로 비옥한 토지였다는데 말이야.”
“……그것이 저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입니까.”
잔뜩 갈라진 서화의 목소리가 날 선 말을 담았다. 남자의 시선이 매서워졌다.
“망거산(蟒居山)에 사는 산주가 비를 주지 않아 이곳이 황무지가 되었다 하더구나. 확실히 미친 소리지.”
얼마 전, 예언이 하나 있었다. 북방 성주의 피를 이은 자를 망거산의 제물로 바쳐 산주님의 마음이 풀리면, 3년 안에 이 넓은 땅이 전부 옥토가 된다고 말이다. 그리만 되면 폐하께서 무병장수하신다지 않느냐. 천천히 차를 들이켠 남자가 덧붙였다.
“그 점괘 때문에 군사 수십만을 끌고 북방을 짓밟았단 소리를 하는 것…….”
“폐하께선 이 땅이 다시 살아나기를 원하신다.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남자는 단호하게 서화의 말허리를 잘라 냈다.
“나는 너를 곱게 단장시켜 망거산에 보낼 계획이다. 참, 산에서 빠져나올 궁리는 하지 말거라. 네 주검이 망거산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발견되면 폐하의 상심이 크지 않겠느냐.”
말 하나하나 전부 기가 찼다. 서화의 낯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무어라고 항변을 시도하려는 서화에 앞서 그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너와 함께 잡혀 온 이들을 전부 여기에 정착시킬 계획이다. 정녕 산주님이 있다 하면 비 좀 내려 달라고 잘 설득해 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