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자네 제정신인가! 내려가지 않고 무엇을 한 게야! 얼어 죽으려면 어쩌려고!”
이른 새벽, 밖으로 나온 노인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미친 듯 몸을 떨던 서화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매서운 추위에 절로 이가 딱딱 부딪치는 데다 긴 머리카락 끝엔 흰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몰골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성치 않은 몸이 얼음장 아닌가! 빨리 일어나게! 어서!”
노인이 서화의 양어깨를 잡고 서둘러 일으켜 세웠다. 그제야 노인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된 서화는 해사하게 웃었다. 몸을 일으키려 해도 추위에 잔뜩 굳은 관절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온 힘을 끌어모아 간신히 구부정하게 섰다. 한숨을 내쉬는 노인의 입에서 흰 김이 잔뜩 뿜어져 나왔다.
“여기가 산 아래와 같은 줄 아는가? 아무리 산 아래가 따스하다 해도 여긴 항시 한두 계절 앞서거늘. 자네 어제 정말 얼어 죽을 뻔한 것을 알긴 아는지 모르겠구먼.”
노인이 재빨리 겉옷을 벗어 서화의 몸을 감쌌다. 온기가 한가득 남아 있는 옷을 걸치자 얼음장 같던 몸이 조금씩 녹아 갔다.
“감사…… 합니다…….”
제대로 된 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달달 떨리는 입술 탓에 말조차 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재차 입을 떼려고 하자 노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혀를 끌끌 차며 옷을 깊이 여며 줄 뿐이었다. 두 눈엔 안타까움이 한가득 들어차 있었다.
“내가 나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누. 산주님께서 구해 주신 목숨을 이렇게 가벼이 여기면 되겠는가. 일단 몸을 좀 녹여야 할 터이니 따라오게나.”
허둥지둥 앞장선 노인이 가장 가까운 방으로 서화를 데려갔다.
“화로에 불을 지필 땔감을 가져올 테니 차라도 마시며 몸을 녹이게.”
“어르…… 신, 받아만 주시면…….”
대답을 주는 대신 노인은 투박한 찻잔을 서화의 손에 쥐여 주었다. 찻잔 안에선 씁쓸한 향과 함께 희뿌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손을 녹이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노곤해지는 것 같았다. 서화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좀 쉬게나.”
심란한 표정을 짓는 노인 옆으로 흰 털 뭉치가 쏙 튀어나왔다. 매서운 추위에 잠시간 잊고 있었던 아이였다. 언제 방 안으로 들어온 건지 모를 설이는 서화의 다리에 급히 얼굴을 비벼 댔다.
굳은 손을 내려 작은 짐승의 몸을 쓰다듬었다. 손에는 아직 적잖은 냉기가 묻은 채였다. 설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서화는 찻잔을 내려놓고 설이를 품에 안았다.
어린 짐승이 울부짖는 구슬픈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쉬이, 착하지. 설이의 목 아래를 검지와 중지로 천천히 어루만졌다. 연이은 부드러운 손길에 울음소리는 조금이나마 잦아들었다.
“아직 불씨가 살아 있으니 금방 훈훈해질 걸세.”
어느새 방 안으로 들어온 노인은 장작을 잔뜩 안은 채였다. 장작을 하나둘 화로에 넣곤 불씨를 조심스레 살려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안에 훈기가 퍼졌다. 잔뜩 경직되어 있던 몸과 얼어붙었던 머릿속도 조금씩 녹아내렸다.
“……산주님께 말씀은 드려 보겠네. 하나, 큰 기대는 하지 말게나.”
서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산주님께서 명하시는 대로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일세.”
* * *
두 번째로 앞에 선 장지문은 더욱 크게만 느껴졌다. 서화를 힐끔거리다 흠흠 목을 가다듬은 노인이 안을 향해 고했다.
“산주님, 지난번 그 아이가 올릴 말이 있다 청하온데…….”
영 자신이 없는지 노인은 슬며시 말꼬리를 흐렸다. 점점 작아지는 말에 뒤이은 그 어떤 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초조해진 서화는 애꿎은 손톱만 만지작거렸다.
도무지 열릴 기색 없던 화려한 장지문이 바람에 살짝 들썩였다. 발아래를 향하고 있던 서화의 시선이 천천히 들렸다.
“죽어 가는 것이 딱하여 명을 이어 주었더니 다시 끊기고 싶나 보군.”
도대체 언제 밖으로 나온 것일까. 사내는 서화의 앞에 서 있었다.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이 서화에게 내리꽂혔다.
“산주님, 이곳에 머물게 해 주시길 간청드립니다. 받아만 주신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제발…… 제발…….
서화는 재빠르게 사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신에게 빌듯 두 손을 간절히 모아 청을 올렸다. 사내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무엇이든, 이라…….”
서화를 꿰뚫을 듯 바라보던 사내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그의 입술이 느릿하게 열렸다.
“그대는 말의 무게를 조금도 몰라.”
사내는 천천히 말을 끝맺었다.
서화는 깊게 고개를 숙인 채, 간절히 빌었다. 그저 간절한 제 마음이 닿기만을 바라고 또 바랄 뿐이었다.
“따라오거라.”
사내가 서화를 잠시간 응시하더니 걸음을 옮겼다. 서화는 급히 남자의 뒤를 따랐다. 방금 들어온 대문을 지나 그는 숲으로 향했다. 혹여나 그를 놓칠까, 서화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수를 50까지 세었을 정도의 시간이었다. 높은 고목으로 인해 햇빛이라곤 들어오지 않던 숲길에 점차 작은 풀들이 들어찼다. 이윽고 넓은 평야가 나타났다.
“여기가 망거산이 시작되는 곳이다.”
망거산이 시작되는 곳이라니. 서화의 낯에 참혹함이 들어찼다. 몇 날 며칠은 걸어야 간신히 도착할 거리를 이리도 일찍 도착한 것도 놀라웠으나, 서화를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 없었으니까.
“산주님,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제발.”
서화는 재빨리 사내의 발치에 엎드렸다.
“망거산에 들어올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거라.”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긴 사내는 다시 숲길로 들어섰다. 서화는 급히 사내를 따라잡으려 했지만, 너무나 당황스럽게도 사내는 눈 두어 번 깜빡할 새에 모습을 감추었다.
‘이걸 어쩜 좋지…….’
저택에 도착해서 그토록 좋아했건만. 제 발로 걸어가지 않으니 직접 산 밖으로 데려다줄 거라곤 상상치도 못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제 손에 달린 수많은 북방인이 있지 않던가.
서화는 망거산을 향해 조심스러운 첫걸음을 내디뎠다. 점차 발걸음엔 속도가 붙었다. 간간이 소름 끼치는 동물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해가 지기 전까지, 서화는 참 운이 좋았다. 별달리 위험한 상황도 없었고, 개울가에서 목도 축일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밤이었다. 이젠 짐승 소리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밖에 나와 있는 것은 죽여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리라.
‘그렇다면 갈 곳이라곤 한 곳뿐인데.’
정말 가고 싶지 않은 장소이거늘. 나 잡아 보라는 듯 밖을 돌아다니는 것보단 조금은 나으리라. 짧은 고민을 마친 서화는 사당으로 향했다.
이전에 왔을 때와 같이 퀴퀴한 냄새와 두꺼운 먼지가 가득했다. 문틀이 다 날아가 있기에 가구를 끌어 문 앞을 막았다. 그리고 나무 마루 중 가장 헐거운 것을 몇 개 뜯었다. 마루 아래엔 꽤 넓은 공간이 있었고, 서화는 그 안에 몸을 숨겼다.
‘괜찮아. 괜찮아.’
수백 수천 번을 되뇌며, 간절하게 기도했다. 제발 그 어떤 짐승도 나타나지 않기를.
그러나 안타깝게도 서화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맹수가 으르렁댔다. 맹수 소리는 점차 가까워져 왔다. 서화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양손을 맞잡았다.
‘도와주세요…….’
서화는 신에게 기도했다. 그러나 바라는 바와는 전혀 다르게 맹수는 사당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이젠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다.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서화는 눈을 꼭 감고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제발 아무런 고통이 없길 바라며.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제 앞에 나타나 입을 벌리고 있어야 할 맹수는 도무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왜 오지 않는 걸까.’
서화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서서히 눈을 떴다. 그러고선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몸을 굳혔다.
“분명 망거산에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거늘.”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화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온몸에 먼지가 잔뜩 붙었지만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사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산주님, 부탁드립니다. 저를 거두어 주세요. 제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사내였다. 그는 한숨과 같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언제는 네 뜻대로 하지 않은 적이 있었느냐.”
마치 이러한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는 어투가 아니던가. 그와의 인연이라곤 얼마 전 자신을 구해 준 것이 전부이거늘.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서화의 낯에 의문이 들어찼다. 혹여나 제가 말귀를 잘못 알아들은 것인가 싶어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사내와 눈을 맞추었다.
그의 얼굴은 슬프게 일그러진 채였다.
* * *
“거참, 여기에 머릿수가 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구먼. 산주님께선 무슨 생각이신지 원.”
적적한 산속 생활에 말동무가 생겨서일까. 적잖이 신난 노인이 기쁨을 애써 감추며 툴툴거렸다.
“여길 쓰면 될 걸세. 바로 옆이 내 거처이니 무슨 일 있으면 그곳으로 오게.”
자그마한 별채를 내준 노인은 부산스럽게 침구며 화로며 세간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텅 비어 있던 별채가 안락하게 꾸며졌다.
일손을 돕겠다고 나선 서화를 노인이 한사코 만류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던 노인은 삐걱대는 경상까지 손을 봤다. 그는 상 위에 요깃거리를 올려놓고 설이에게 먹이를 줄 시간이라며 자리를 떴다.
‘이렇게 쉽게 받아 줄 것이라 기대치 않았는데…….’
서화의 손바닥이 보료 위를 천천히 쓸었다. 사내가 한 말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마치 자신과 연이 있었다는 듯한 그의 말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물어보고 싶을 뿐이었다. 둘 사이에 제가 기억하지 못한 인연이 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