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그런데, 원래 사막에 나가지 않을 때도 저런 복장을 해? 남부 지방의 전통 의상이야?”
실내인데도 숨이 막힐 정도로 꽁꽁 싸맨 모습이 영 의아해서 묻자 테오도르가 또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어, 어? 그, 위쪽 지방에서는 입을 일이 없, 없기는 하지. 뜨거운 햇빛 때문에 생긴 옷이니까. 그런데 저 사람은…….”
그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얼굴하고 온몸이 흉터투성이라 그걸 감추려고 항상 저 차림이라나 봐.”
“저런.”
장갑은 이미 내 피부나 마찬가지인데도 가끔씩 귀찮게 느껴지는데, 온몸을 저렇게 가리고 다니니 얼마나 불편할까.
나는 안쓰러움을 담아 길잡이에게 말을 걸었다.
“잘 부탁하네. 이름이 뭐지?”
“…….”
하지만 길잡이는 나를 가만히 바라만 볼 뿐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아까보다 훨씬 더 당황한 테오도르가 끼어들었다.
“어, 그게, 참! 내가 깜빡했네. 이, 이 사람이 말을 못 해.”
“아… 그래?”
“으응.”
흠. 아무리 내가 눈치가 없어도 뭔가 좀 이상했다.
떨리는 동공. 이마에 맺힌 땀. 더듬는 말투.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지나가듯 물었다.
“테오, 더워?”
“뭐?!”
“왜 그렇게 땀을 흘려.”
테오도르의 체온은 정상이고, 실내는 서늘했다. 저렇게 식은땀을 흘릴 이유가 없는데.
“아……. 그게.”
눈을 굴리던 그가 옆에 있던 의자로 비척비척 걸어가 털썩 앉았다.
“요즘 입맛이 없어서… 식사를 너무 걸렀더니.”
“뭐라고?! 식사를 걸러?!”
자고로 더울 때는 더 잘 먹어야 하거늘.
왜 복날에 치킨을 뜯는 전통이 생겼겠는가 이 말이다. 땀을 흘리면 그만큼 원기 보충을 해줘야 하는데!
“어이구! 어이구, 이 화상아! 사령관이 밥을 굶어! 너희 어머니께서 아시면 얼마나 속상하시겠어!”
철썩! 철썩!
한마디 할 때마다 차지게 등짝을 때렸더니 테오도르는 거대한 덩치를 죄다 비틀며 괴로워했다.
“자, 잘못했습니다! 잘 먹을게요!”
“그래. 그래서 길잡이는 이름이 뭐라고?”
“어…….”
눈알을 한 바퀴 굴리는 그의 눈앞에 다시 손을 들어 보이자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이 이름이 튀어나왔다.
“에, 엔, 엔디야!”
“에엔엔디야?”
“아니… 엔디. 엔디라고.”
이름 한번 듣기 더럽게 힘드네.
투덜거리며 돌아서자 어쩐지 테오도르를 째려보는 듯하던 엔디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단정한 동작으로 내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분명히 처음 본 사이일 텐데 그 모습에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뭔가 조금 찜찜했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음… 해가 질 시각에 맞춰서 출발할 테니 조금 뒤에 보세나.”
대충 자리를 마무리하고 돌아서는 내 뒤로 엔디의 시선이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흠…….”
“왜 그래?”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령관실에서 빠져나오는 내게 라망드가 물었다.
“아니, 그냥 좀.”
“트레고스난 경이 조금 불안해 보였지?”
“응, 그것도 그렇고…….”
기분이 이상하기는 한데 이유를 딱 집어서 설명할 수가 없어서 말끝을 흐리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라망드, 엔디 씨한테 한번 가볼래?”
“내가?”
“응. 흉터를 없애주면 고마워서라도 치트룸에 우리를 팔아먹는 짓은 않겠지.”
“뭐, 그래.”
흔쾌히 엔디를 찾아갔던 라망드는 잠시 후 조금 질린 기색으로 돌아와 고개를 저었다.
“안 하겠대.”
라망드가 치료를 포기하고 돌아오다니.
아무리 사제라도 본인이 거부하는데 억지로 치료할 수 없기는 하지만, 거부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흉터를 간직하고 싶어서?’
그렇게 자랑스러운 흉터라면 굳이 저렇게 온몸을 칭칭 싸매고 있을 필요도 없지 않나?
점점 더 수상쩍게 느껴졌지만, 일단은 믿어볼 수밖에 없었다. 테오도르가 노련한 길잡이라는 칭찬까지 하며 소개한 사람이니까.
* * *
그러나 의심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길을 출발해 엔디와 시간을 보낼수록 경계심은 옅어져만 갔다.
그 시작은 우리가 재수 없게도 물을 마시던 몬스터 근처에 도착해 버렸을 때였다.
‘크스슷!’
사자와 비슷하게 생긴 머리에 전갈의 몸이 달린 몬스터는 우리를 인식하기가 무섭게 달려들었다.
마법을 이용해 장거리를 이동하고 나면 기사들조차 부유감을 떨치고 균형감을 되찾는 데 수 초가 걸린다.
하지만 이쪽 사정을 봐준다면 그게 몬스터이겠는가? 불과 그 몇 초 사이에 우리 눈앞에 도달한 놈의 송곳니가 흐린 시야 사이로도 번쩍 빛났다.
‘이런……!’
어지러움을 참고 손을 앞으로 내뻗으려던 때였다.
쉬익!
초승달처럼 구부러진 검이 달빛을 반사하며 춤추듯 쏘아져 나갔다.
‘누구지?’
눈을 가늘게 뜨며 파악하려는 동안에 이미 엔디는 몬스터를 처리하고 그 위에 가볍게 내려선 후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막에서 야숙하는 일에도 능숙해서 기사들을 척척 부렸다.
‘아니, 그 정도야 베테랑 길잡이면 당연한 일이지.’
어쩐지 다 좋게만 보려는 눈을 애써 엔디에게서 떼어낸 것도 잠시뿐이었다.
그는 내 약점을 훤히 아는 사람처럼 단번에 격침시켜 버렸다.
“우와…….”
나는 눈앞에서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리는 닭가슴살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잘 구워진 고기가 자르르 윤기를 머금고 빛났다.
마법으로 보존 처리를 해서 가져온 식재료 중에 닭가슴살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을 엔디가 직접 구워서 가져다주었다.
“정말 고맙군. 잘 먹겠네.”
그러자 그는 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내밀고는 내가 받아 들자 곧바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두 번 접힌 종이를 천천히 폈다.
안에는 딱 한 마디만 쓰여 있었다.
[영광입니다.]
“으음.”
글을 아는 것도 놀라운데, 이렇게 단정한 필체라니. 획이 끊기는 방향이 거칠지 않으면서도 단호했다.
‘어디서 이런 글씨를 본 것 같기도 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파고들 기세로 작은 쪽지를 들여다보는 내게 라망드가 물었다.
“왜 그래? 음식 식겠다.”
“아니, 이 자르르한 고기가 식으면 안 되지!”
나는 당장 쪽지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의욕 넘치게 칼을 들었다.
“우와. 이게 닭고기야, 돼지고기야?”
어찌나 촉촉한지 씹을 때마다 거의 항정살 수준으로 쏟아지는 육즙에 급기야 감격의 눈물이 흐를 지경이었다.
“저 사람, 우리 집에 요리사로 초빙해야겠어!”
나는 굳게 다짐했다.
‘저 사람이 구운 소고기는 대체 어떤 풍미를 보여줄까? 양고기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언제 운을 뗄까, 스카우트 각도기를 재기 시작하자 자꾸만 엔디에게 시선이 향했다.
그런데 그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희한하게도 내 뒤통수가 간질간질해지는 것만 같았다.
“쓰읍… 처음 느끼는 기분이 아닌데, 이거.”
나는 팔짱을 끼고 이리저리 서성거리며 찬찬히 예전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 분홍색 금붕어.
“분홍색 금붕어.”
개비와 라망드가 번갈아서 놀렸지만 그 모두를 무시하고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한 결과, 마침내! 알아내고야 말았다.
“그래, 바로 그거야!”
하지만 환호도 잠시, 자려고 누웠던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난 나는 그만 혀를 찼다.
“엘을 데려왔을 때하고 비슷한 기분이었어.”
큼직한 짐승에게서 문득문득 스치던 익숙한 느낌.
생각해 보면 전부 다 이상했다.
내가 뭘 물을 때마다 테오도르가 그렇게 당황한 것도, 치료해 주겠다는 라망드에게 얼굴을 보이길 거부한 것도.
눈동자가 파란색인 것도.
심지어 이름마저 ‘에사디엔’의 끝 글자 두 개를 뒤집은 것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맞춰보면서도 엔디의 복면을 벗기기를 망설이는 건, 그의 속눈썹이며 머리카락이 검은색이기 때문이었다.
“염색약이야 마법상을 뒤져보면 있겠지만, 이 세계에 마스카라는 없는데.”
으아아!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에 머리를 마구 헝클이던 내 귀에 물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헉. 설마 또 몬스터가?’
사막을 횡단하는 마법 이동 스크롤의 좌표는 모두 오아시스로 잡혀 있다.
때문에 도시가 생기지 않은 작은 오아시스에서는 지난번의 우리처럼 물을 마시러 온 몬스터와 맞닥뜨리는 경우가 드물게 일어나고는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치트룸의 성문이 열리는 시각에 맞춰 해가 질 무렵 국경에서 출발해, 지금은 일행들이 마지막으로 쉬는 시간이었다.
‘굳이 소란 피울 필요 없으니까 지켜보다가 이쪽으로 오려고 하면 쫓아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가만가만 풀숲을 헤치고 물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응? 아무것도 없는데?’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몸을 물리려던 참이었다.
잠잠하던 물이 출렁거리며 검은 머리칼을 지닌 사람이 수면 위로 솟아나듯 모습을 드러냈다.
물방울들이 빗줄기처럼 흘러내렸다. 결 좋은 머리카락에서부터 은색 목걸이, 그리고 잘 빚어놓은 것 같은 몸 선을 따라서.
내가 잘 아는 목걸이의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가 잘 아는 등짝의 흉터, 내가 잘 아는 복부의 상처, 무엇보다도! 내가 잘 아는 얼굴이었다!
‘…에사디엔 로콰이트!’
빠직.
갑자기 뭐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기에 털리다 못한 어이가 이성을 부수고 가출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소리가 나자마자 에사디엔이 이쪽으로 몸을 돌렸고, 나는 곧 내가 잡고 있던 나뭇가지가 으스러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뉴엘.”
에사디엔은 놀라지도 않고 물살을 가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하도 거리낌이 없어서 정체를 숨기다가 들킨 사람이 그인지 나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하.”
짧은 한숨을 뱉어내며 장갑에 붙은 나무 파편을 털어내자 에사디엔이 웃으며 이쪽으로 손을 뻗었다.
“알아봐 주셨군요. 기쁩니다.”
하지만 나는 에사디엔의 손을 잡지 않고 부루퉁하게 물었다.
“아픈 사람이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아직 다 안 나았죠? 그런데도 이런 물에 막 들어가다니, 말이 돼요?”
깨끗해 보이기는 하지만, 혹시라도 감염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잔소리를 마구 쏟아붓자 수려한 얼굴이 흐려졌다.
“돌려보내실 겁니까?”
“…….”
“저는 스크롤도 없는데. 이대로 두고 가실 겁니까?”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여 올려다보는 얼굴이 너무 예쁜데, 딱 예쁜 만큼 얄미웠다.
“여기에 두고 가지 못할 걸 아니까 그 옷을 벗은 거죠?”
“들켰습니까?”
와.
그 무뚝뚝하던 사람이 어떻게 이런 여우로 변했지?
내가 입을 딱 벌리자 에사디엔은 내밀었던 손을 거두며 아예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한 발짝, 한 발짝씩 물가로 다가올수록 수위는 낮아졌고, 그 말은 곧…….
“스, 스톱! 거기 멈춰요! 아니, 뒤로 더 가요!”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위험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마구 손을 내저으며 숨죽여 외쳤다.
‘시종한테 장난을 친 적은 있지만 말 그대로 농담이었는걸.’
이런 상황은 상상 못 했단 말이다.
볼이 화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