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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노래-1화 (1/365)

운명의 노래

1부 : 불을 삼킨 아이

1화. 큰 건

용이 사라지고 화약이 쇠퇴한 시대, 나타난 요정이 떠들고 나뭇잎이 노래 부르기 시작한 그 시대에 두 남자가 은밀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네가 물어왔다던 그 건, 제대로 말해 봐.”

덩치 큰 두 사내가 작은 테이블을 끼고 마주 앉아있다.

“만스타인의 세공소라고 들어 봤어?”

“모르는 사람 찾기가 더 어렵지 않겠어? 거의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잖아.”

“이 친구야, 지금 이 세상에 살아남은 전설이 몇이나 될 것 같나.”

“그럼, 만스타인의 세공소가 정말 실존하는 거야?”

“그래, 심지어 거기로 향하는 지도까지 손에 넣었어.”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내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들은 좀 더 은밀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맞댄 채 어설픈 눈짓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 지도를 준 사람이 누군데?”

“사람이 아니야.”

남자의 대답에 반대편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되묻는다.

“그럼?!”

“쉿! 목소리 낮춰 이 친구야!”

남자의 닦달에 반대편 남자가 더러운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제야 안심한 남자가 반대편 남자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안야의 귀쟁이들.”

“세상에, 그 학살자 놈들한테서?”

이내 입에서 손을 뗀 남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그 귀쟁이 놈들이 너한테 지도를 준 건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지금 중요한 건 말로만 떠돌아다니던 세공소가 실존한다는 거야.”

반대편 남자의 말에 직전까지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남자가 동의한 듯 금세 표정을 풀고 썩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그런데 문제가 좀 있어.”

“무슨 문제?”

“멍청이! 생각해 봐, 그런 엄청난 곳을 우리 둘이 털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에 흑색 맥주를 홀짝이던 남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못 털어?”

그의 진심 어린 대답에 반대편 남자는 이마를 짚으며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맙소사, 이런 얘길 너 같은 병신에게 하고 있었다니.”

“야, 난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 거야.”

건너편 남자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남자는 이내 맥주잔을 시원하게 비운 뒤 더러운 손으로 입술을 훔쳤다.

“만스타인 세공소보다 위험한 게 뭔지 알아?”

그리고선 이어지는 물음에 이번엔 건너편 남자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뭔데?”

“사람. 특히 이런 건수에 같이 데리고 가는 사람.”

그 말에 이번엔 반대편 남자가 목이 탔는지 자신 앞에 놓인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네 말대로 만스타인 세공소는 그 이름만으로도 굉장히 부담이 큰 작업이지. 그런데 그런 부담을 덜기 위해 또 다른 위험을 감수한다? 그건 미친 짓이야!”

“그럼 어떻게 해? 만스타인 세공소라고! 동화책 읽던 애새끼들 입에서나 오르내리던 그 세공소!”

“그러니 더더욱 우리 둘이서 털어야지. 너무 조급해할 필요 없어, 천천히 침착하게 진행만 하면 우리 둘이서 그곳을 독점할 수 있는 거야.”

반대편 남자가 이에 반문을 제시하려는 찰나, 남자는 단호한 표정으로 썩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생각해 봐, 만스타인 세공소에서 나온 보석은 길드에서도 엄청난 현상금이 걸려있어, 그 말은 훔치는 순간 헐값이 되어버리는 장물이 아니라는 소리야. 거기다 품목 또한 단가로 쳐도 매우 비싼 보석이지.”

그 말에도 불구하고 반대편 남자가 다시 반문을 제시하려 했지만,

남자는 틈을 내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거기서 좁쌀만한 보석 하나만 가지고 나와도 넌 라플라인 해안가에 거대한 저택을 짓고 평생을 떵떵거리며 살 수 있어. 뿐만인가? 리시론 출신 미녀 수십을 끼고서 말이야!”

그 말에 곧장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건너편 남자는 황홀한 표정으로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흡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게 좋겠어. 우리 둘이 하자.”

그렇게 그들은 품에서 꺼낸 흠집 난 동전 몇 개를 올려놓고 그 위에 빈 맥주잔을 엎어놓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술집이었지만,

두 사람은 술집을 나가면서까지 주위를 면밀하게 살피며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자에 가려진 구석 진 자리에서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와 홀연히 술집 밖으로 사라졌다.

* * *

“되게 웃기지, 그렇게 위험부담을 따지던 놈들이 시작부터 커다란 위험부담을 떠안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게.”

검은색, 챙이 넓은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냉소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밑으로 드러난 잘 정돈된 까칠한 수염, 그리고 입술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흉터가 움직이는 입술을 따라 씰룩였다.

“사실 그 정도로 형편없는 술집이라면 나라도 걱정 않고 온갖 얘길 떠들어댔을 거야.”

말을 마친 남자는 모자를 더욱 깊이 눌러 쓴 다음, 걸치고 있던 얇은 코트 주머니에서 두껍게 말린 연초를 꺼내 들었다.

“그러니까 너희 둘은…. 그래 운이 없었던 거야. ‘운빨’이 지지리도 안 따라 줬던 거지.”

둘둘 말린 연초 끝을 앞니로 뜯어낸 남자는 이어 품에서 꺼낸 작은 부싯돌로 단번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곧 연초에서부터 감색 빛깔의 연기가 쏟아져 나온다.

“이런 개 같은 새끼….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거야, 아마도 높은 확률로.”

피투성이가 된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검은 모자를 쓴 사내가 그의 앞에 쭈그려 앉아 말했다.

“그 안야의 귀쟁이들만 빼면 너희들이 말하는 그 위험부담이란 게 없을 것 같거든.”

“드… 들어 봐, 이대로 날 죽여봤자 네가 얻는 건 없어!”

시커먼 이빨을 드러내며 피가 튀기도록 열변을 토하는 남자의 모습에,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초로의 남자가 입꼬리를 올렸다.

“어째서?”

“그야…. 네가 노리는 그 지도라는 게 내 머릿속에 있는 거니까!”

“그렇다면 이야기가 더 쉬워지는데?”

의외의 반응에 놀랐는지, 피투성이의 남자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째서…?”

“네가 그 지도라는 걸 머릿속에서 꺼낼 때까지 고문하면 되는 거잖아?”

“내가 쉽게 불 것 같아? 그게 내 유일한 생명줄인데?!”

“하, 하하하!!”

남자의 말에 눌러 쓴 모자를 위로 젖힌 남자가 갑자기 폭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차라리 죽고 싶어질걸. 그건 네 생명줄이 아니라 구원받을 유일한 수단일 뿐이야.”

무시무시한 살기.

이어 모자 아래로 드러난 그의 깊고 검은 눈동자가 빛을 받아 번뜩였다.

“그리고 안야의 귀쟁이들이 너 같은 빡대가리도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설명을 해줬을 리가 없잖아? 넌 그저 그들에게 뭔가를 줬고, 그 대가로 지도를 받았어. 맞지?”

그의 통찰력에 피투성이 남자는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다 내 알기로 안야의 귀쟁이들은 오직 어린 ‘사람’만을 받는다고 들었는데.”

“네가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긴, 그 귀쟁이 놈들을 몇 죽여봐서 알지.”

“그… 그들은 숲의 무법자야…! 네가 어떻게….”

“내가 너한테 한 짓을 보고도 모르겠어?”

“뭐…?!”

“난 그냥 존나 무법자야, 급이 틀린.”

“이런 씨… 발….”

이내 다 포기했는지, 피투성이 남자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그의 낡은 조끼에 손을 불쑥 집어넣은 초로의 남자는 손쉽게 그의 품에서 곱게 접힌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고통은 없을 거다, 그리고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주지.”

그 말을 끝으로, 모자를 눌러쓴 남자는 옆에 박혀 있던 검을 뽑아 들어 그의 가슴을 꿰었다.

“푸… 흐….”

이윽고 눈을 감은 피투성이 남자의 입술에서 마지막 숨이 조용히 빠져나오고,

그에 맞추어 초로의 남자는 깊숙이 박힌 검을 뽑아 들었다.

“만스타인 세공소라, 소문만 무성했던 전쟁 초기의 광기를 두 눈으로 볼 수 있겠군.”

* * *

“올리브!”

깜깜한 숲,

보초를 서고 있던 남루한 복장의 청년이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올리브!”

그러나 그런 그의 긴박한 목소리가 무색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져만 갔다.

“오… 올리브! 더 접근하면 쏜다…!”

청년은 결국 긴장한 표정으로 손목에 채워져 있던 작은 쇠뇌의 시위를 당겼다.

“오… 올리브으!!”

“나야.”

이윽고 부스럭거리는 숲속에서 무심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조준까지 끝마쳤던 청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맥레인 아저씨, 암구호 몰라요?”

“저 멀리서부터 웬 풋내가 나나 싶더니, 오늘 보초가 너였구나? 안드레.”

“그러다 제가 진짜 쏘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요?”

“쏘면 뭐해, 그게 명중을 해야지.”

“나 참 진짜!”

“아무튼, 나 왔다. 수고해라.”

짧은 금발을 한 청년, 안드레의 머리를 한바탕 휘젓고 지나간 맥레인은 이내 뭔가 생각났는지 발걸음을 멈췄다.

“오늘은 별일 없었나?”

“케니가 아침에 작은 건 하나를 물어왔어요.”

“작은 건?”

“3류 은행가 놈이 케니에게 흠뻑 빠져서는 자기 고객에 대한 정보를 나불나불 떠들어댔나 봐요.”

“근데?”

“그 고객이란 놈이 난쟁이래요.”

“그놈들은 항상 꿍쳐두는 걸 좋아하지.”

“그러니까요.”

“또 다른 건?”

“없을걸요?”

안드레의 말에 남자는 대답 대신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렇게 푹 눌러쓴 모자를 벗고, 까끌까끌한 수염을 어루만지며 입술의 흉터를 실룩이던 초로의 남자가 반듯하게 펼쳐진 거대한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이런, 이게 누구야! 맥레인!”

텐트에 들어서기 무섭게 한 남자가 맥레인을 정겹게 반겨주었다.

“왜 이렇게 늦었는가?”

“자르크까지 빙 둘러보다 오느라 늦었어.”

“꽤 피곤했겠군.”

“그렇게 피곤하진 않아.”

“그래? 그럼 잠시 여기 와서 같이 이야기 좀 하세!”

짙은 눈썹, 짧게 정돈된 검은 머리.

다부지고 거대한 풍채를 가진 남자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 방금 텐트 안으로 들어온 맥레인의 어깨를 감싸 더욱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렇게 안쪽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자 모습을 드러낸 넓은 공간.

그곳엔 여러 사람이 둥근 원탁을 가운데 두고 듬성듬성 서 있었다.

“아저씨, 마침 잘 왔네.”

그 중 매력적인 금발 여성이 제일 먼저 그 둘을 보며 인사했다.

“케니, 건수를 잡았다면서?”

맥레인이 그녀에게 입술 흉터를 실룩이며 묻자,

“내게서 벗어날 남자가 있기나 하겠어?”

케니는 금발을 찰랑거리며 매력적인 미소와 함께 화답했다.

이어서 그녀 옆에 있던 백발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그 건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었는데, 맥레인 자네가 딱 알맞게 왔어.”

“매튜, 기침은 좀 어떻습니까.”

그런 그에게 맥레인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그에게 예를 갖췄다.

“단순한 꽃 알레르기야.”

맥레인의 인사에 사람 좋은 미소를 건네는 매튜, 그 미소에 그가 걸치고 있던 단 안경이 빛을 한 움큼 집어먹고 반짝였다.

“자, 그럼!”

얼추 안부 인사가 끝나자 방금 맥레인과 함께 들어온 다부진 남자가 손뼉을 치며 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케니가 낚아온 건에 대해 이야기 좀 해볼까?”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안 시몬, 그 전에 할 얘기가 있어.”

맥레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시몬은 너그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맥레인은 품에서 곱게 접힌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나도 뭔갈 건지긴 했는데, 이게 ‘큰 건’ 같아서 말이야.”

큰 건.

그 말에 모두의 눈빛이 달라졌다.

순식간에 무거워진 공기, 그 속에서 맥레인은 원탁 위에 접힌 양피지를 활짝 펼쳤다.

“만스타인 세공소라고 들어봤어?”

이어지는 맥레인의 말에 제일 먼저 매튜가 한껏 높아진 목소리로 반응했다.

“보석 중에서도 보석만을 만들어 낸다는 곳이 아닌가.”

이에 케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기가 차고 있던 목걸이를 든 채 말했다.

“다 똑같은 보석 아니에요?”

“천만에, 만스타인 세공소는 햇살마저 깎아 보석으로 만드는 곳이야.”

매튜의 대답에 케니는 멍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건 수십 년도 더 된 이야기지 않나? 소문만 무성했을 뿐이지 결국 실존하는 곳인지조차 불분명한 곳일 텐데.”

“바로 그 소문으로만 무성한 곳을 표시한 지도입니다.”

맥레인의 말에 시몬과 매튜가 심각한 표정으로 원탁 위에 놓인 지도를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어지는 시몬의 물음.

“출처는?”

“안야의 귀쟁이들.”

이에 맞장구치는 매튜.

“그 치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맥레인은 그런 매튜를 보며 말한다.

“그렇죠, 무법자일지언정 그놈들은 허풍을 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몬은 금세 눈썹을 찌푸리며 위엄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귀쟁이놈들이 보석을 마다한다?”

“그래서 ‘큰 건’이라 한 거야. 위험부담이 꽤 크거든.”

맥레인의 대답에 시몬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이윽고 손바닥으로 원탁을 크게 내려치고서 호쾌한 목소리로 외쳤다.

“좋아, 우리 ‘시몬 바스티유’는 만스타인 세공소를 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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