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문제
봄 하면 떠오르는 따스함을 도료로 만들어 온몸에 끼얹으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은.
그런 눈부신 모습을 한 사람이 양팔로 자신의 몸을 감싼 채 누워 있다.
지그시 감은 눈꺼풀 사이에선 푸른 기운이 너울대고 있었고 검은 머리카락은 이제 갓 털갈이를 마친, 어린 새들이나 걸칠 법한 깃털처럼 탐스럽기 그지없는.
그 놀라운 광경에 모두가 넋을 놓고 얼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나둘 정신을 차린 이들은 지금 눈앞에 맞닥트린 상황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저게 대체 뭐야? 사람이야? 살아있는 거야?!”
당황한 엔제이의 목소리.
“뭔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공포에 떨고 있는 안드레.
“내 살면서 이런 건 처음 보는군.”
그리고 황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조이까지.
맥레인은 말조차 내뱉을 수 없을 정도로 넋이 나가 있었다.
“설마 사람을 보석으로 만든 거야?”
엔제이의 말에,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이야기에요?”
안드레가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물었지만,
누구도 그 답을 쉬이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맥레인은 습관처럼 품에서 연초를 꺼내 들고는,
“매튜가 말하길 만스타인 세공소는 햇살마저 보석으로 만드는 곳이라 했어, 사람이라고 불가능한 이야긴 아니지.”
금세 침착해진 표정으로 감색 연기를 내뱉었다.
“이건 우리가 예상했던 거랑 너무 다르잖아!”
이런 상황이 맘에 들지 않은 지 엔제이가 눈썹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이자,
“조용히 해, 엔제이.”
지금까지 침묵을 지켜왔던 시몬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엔제이는 그런 시몬의 말에 비 맞은 강아지처럼 입을 앙다물었고, 그제야 상자의 내용물을 지켜보고 있던 시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드레, 바깥을 잘 살펴라. 곧 여길 뜰 거니까. 조이 네가 안드레랑 같이 움직여.”
“네, 보스!”
“그러지, 보스.”
시몬의 말에 안드레와 조이는 즉시 아래층으로 향했고,
그들이 움직인 것을 확인한 시몬은 자신이 걸치고 있던 검은색 외투를 벗어 상자 안에 있는 그것을 손수 덮어주었다.
“보스, 뭐 하는 거야?”
엔제이의 말에,
맥레인은 이제 막 다 태운 연초를 바닥에 던지며 대신 답했다.
“뭐 하긴, 챙겨야지.”
“사람이잖아?!”
“보석이기도 하고.”
둘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가운데, 묵묵히 상자 속 그것을 껴안아 든 시몬이 담담한 어조로 그 둘에게 쏘아붙이듯 입을 열었다.
“사람이기도, 보석이기도 하지만 전쟁이 만들어 낸 광기의 피해자이기도 하지.”
그 말에,
실랑이를 벌이던 둘은 정말 꾸지람을 듣는 아이처럼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보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려는 찰나,
이번엔 밑으로 내려간 조이의 긴박한 목소리가 그 정돈되어가던 상황을 와르르 무너트렸다.
“맥레인, 엔제이! 얼른 내려가 봐! 뒤따라 갈 테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래층으로 향한 맥레인과 엔제이는 저 멀리 있는 저택 입구 쪽을 잔뜩 경계하는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안드레! 무슨 일이야!”
맥레인의 물음에 이제 막 손목에 찬 쇠뇌를 펼치던 안드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밖에!”
그에 맞장구치듯, 조이가 허리춤에 달려 있던 검 손잡이에 손을 얹으며 읊조렸다.
“안야의 귀쟁이놈들이야.”
맥레인은 손으로 얼굴을 힘껏 쓸어내린 뒤, 저택 밖에 진을 치고 있는 무리를 보며 푸념했다.
“미치겠네.”
약속이라도 한 듯, 걱정했던 단 하나의 위험 요소가 아주 알맞은 순간에 나타났으니 맥레인으로선 기가 찰 수밖에.
이윽고 시몬이 그것을 끌어안은 채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모든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시몬?”
맥레인이 고개를 까닥이며 저택 밖 무리를 짚자,
“기다려 봐.”
시몬은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안고 있던 것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더니 성큼성큼 저택 밖으로 걸어나갔다.
“보스?! 어디 가는 거야?!”
그 모습을 본 엔제이가 발광하듯 튀어 올랐지만 맥레인이 그의 어깨를 붙잡고 진정시켰다.
“진정해, 시몬이 알아서 잘할 거야.”
“그러다 보스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무슨 일을 대비해서 우리가 있는 거잖아.”
“이런 씨발…. 씨발!”
허둥지둥, 몸 둘 바를 모르는 엔제이의 모습에 맥레인은 조이를 보며 고개를 슬슬 가로저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조이는 우스꽝스러운 콧수염을 실룩이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시몬이 저택 밖으로 향하는 정원 입구에 다다랐을 때.
입구 바깥에 무던한 표정으로 진을 치고 있던 이들이 그를 노려보았다.
길쭉한 귀, 칼날처럼 예리한 콧대.
뭐 개중엔 매부리에 뭉툭한 코도 있었지만, 어쨌든 어두운 숲속처럼 창백한 피부를 한 그들은 확실히 사람이라 단정 짓기 힘든 족속이었다.
이내 그들 중 하나가 천천히 시몬에게 다가왔다.
아니, 다가오려다 검게 그을린 저택 입구의 경계선에 딱 멈춰 섰다.
그리곤,
“다른데.”
구석구석 시몬을 살피던 그가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가래 끓는 목소리로 말했고,
“무엇이?”
이에 시몬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뒷짐을 진 채 툭 던지듯 그에게 답했다.
“넌 지도를 받아갔던 놈이 아니야.”
“그게 문제라도 되나?”
“딱히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
시몬의 물음에 귀 큰 사내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장정을 대동하고 온 목적이 있을 게 아닌가?”
“굳이 묻지 않아도 잘 알 텐데, 인간.”
“보기완 다르게 내가 좀 답답한 구석이 있거든, 그래서 직접 말해주지 않으면 몰라 귀쟁아.”
시몬의 괄괄하고 털털한 목소리에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귀 큰 사내는 길고 곧은 눈썹을 크게 찌푸렸다.
“세공소에서 나온 물건을 내놔, 장담하는데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지.”
귀 큰 사내의 말에 시몬 역시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전에 궁금한 게 있는데, 구하려고만 하면 반나절도 안 걸릴 만큼 쉬운 일을 왜 직접 하지 않은 거지?”
“네놈들이 밟은 그 땅이 저주받았으니까.”
그 말을 들은 시몬이 그제야 피식하고 웃었다.
“그러니까, 이곳이 저주받은 땅이어서 직접 들어갈 수 없으니 대신 보석을 가지고 나올 몸뚱이가 필요했다?”
특유의 중압감이 느껴지는, 쇳소리가 가득한 시몬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이에 살짝 압도된 귀 큰 사내가 잡고 있던 고삐를 뒤로 물렸다.
그러자 그가 타고 있던 말이 능숙한 솜씨로 두 어 걸음 뒷걸음질 쳤다.
“그럼 그 보석은? 저주받은 땅에서 나온 보석은 저주받지 않았을 거라 확신하나?”
하지만 이어지는 시몬의 말에 귀 큰 사내는 그의 말을 들어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금세 무던한 표정으로 매섭게 쏘아붙였다.
“잡설은 그만하지, 난 말 많은 인간을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
“난 말 없는 귀쟁이를 질색하는데?”
실랑이가 이어지는 가운데,
시몬,
그가 뭔가를 깨달은 표정을 지으며 눈을 반짝였다.
“그래, 이제 알겠군. 네놈들은 예전부터 이 만스타인 세공소를 털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야, 그렇지?”
의표를 찔렸다.
귀 큰 사내의 표정에서 그것이 드러났다.
이에 시몬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위압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안야의 귀쟁이들이 인신매매에 갑자기 열을 올렸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거든, 제법 고고한 척을 잘하던 너희들이 말이야.”
삽시간에 이야기의 주도권을 모조리 가져온 시몬은 더욱 여유로운 몸짓으로 그들 앞에서 뒷짐을 지었다.
“인신매매는 그저 보석의 운반책을 마련하기 위한 거였어, 그렇지? 그리고 제법 간단한 편에 속하는, 보석을 훔치는 작업에는 일부러 풋내기 같은 놈들을 고른 거고. 좀 똑똑한 애들한테 일을 맡겼다가는 뒤탈이 생기니까. 지금처럼!”
“혀가 길구나, 저 뒤에 숨어있는 네 동료에게 보여줄 본보기가 되고 싶으냐?”
이어지는 귀쟁이의 말에,
시몬의 표정이 대번에 맹수의 것으로 바뀌었다.
“해 봐, 네가 살면서 한 짓 중에 가장 후회되는 행동이 될 테니까. 만스타인 세공소에서 뭐가 나왔는지 아나? 사람만 한 보석이 나왔지, 그것도 세상엔 둘도 없을 것만 같은!”
그 말에,
귀 큰 사내의 표정이 급변했다.
보석이 우리 생각보다 크구나!
와 같은 그런 탐욕적인 표정.
그 찰나의 변화를 놓칠 리가 없는 시몬은 괄괄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지금 여기서 죽게 되면 너희들은 평생 그 보석을 상상 속에서나 봐야만 할 거야.”
하지만 귀 큰 사내는 그런 시몬의 협박을 코웃음 치며 받아넘겼다.
“어차피 너희들은 다 죽어. 보석을 넘겨주면 그 더러운 목숨만큼은 건들지 않으려 했는데, 이젠 마음이 바뀌었어.”
“뭐라는 거야, 귀쟁아? 자신 있으면 그 경계선을 넘어서 날 조지러 와 보라고!”
그러나 시몬의 도발엔 결코 코웃음 치지 못했다.
까득, 까드득.
귀 큰 사내의 이가는 소리가 시몬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울렸다.
이윽고 시몬이 그대로 뒤돌아 저택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고, 한창 이를 갈던 귀 큰 사내는 그런 시몬의 뒤통수를 향해 악에 북받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 땅은 오래전 세공소에서 일어난 화제로 모든 게 잿더미가 되어버렸지. 그때 그 불꽃의 색이 무슨 색이었는지 아나? 바로 ‘검은색’이었어, 아주 저주스러운 색이었지. 부정하기 싫겠지만 너희들은 이제 헤어나올 수 없는 저주 속에서 몸부림치다 뒈질 거다!”
숲속에서나 통할 것 같은 여러 방언이 섞인 말들이 뒤에서 쏟아지든 말든,
시몬은 그저 코웃음 치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런 저주받은 물건을 팔려는 네놈들은 어떻고, 돈독이 가장 무서운 저주란 걸 모르는 등신 새끼들 같으니.”
그런 그의 혼잣말을 들은 맥레인이 픽 웃으며,
“지금 딱 우리 모습이 그 등신 새끼들 같은데.”
시몬을 맞이하자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이젠 아니지, 우린 지금 사람 하나를 구하는 중이잖아.”
“사람이 맞으면 말이지,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시몬?”
“여긴 안야의 귀쟁이놈들이 오래전부터 작업을 치려 눈독 들인 곳이었어. 탈출할 곳을 찾아야 해.”
“조졌군.”
이어 잠자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조이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탈출한다 쳐도 이 세공소는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숲에선 귀쟁이놈들을 절대 따돌릴 수 없고.”
하지만 조이의 냉소적인 의견에도 시몬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던 안드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했다.
“내가 출발하기 전에 뭐라 했나, 즉시 작업에 투입해도 괜찮을 만한 재목으로 인원을 꾸린다고 했잖아?”
이미 결정을 내린 듯한 시몬의 표정에 조이는 난색을 표했다.
“너무 위험부담이 커, 보스.”
“그럼 굶어 뒤질 때까지 여기서 있을까?”
그러나 시몬의 말에 동감한 맥레인이 조이를 쏘아붙였고, 엔제이 역시 의견을 굳힌 듯 수십 자루의 투척검이 달린 벨트 위에 손을 얹었다.
그 모습에 조이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고,
이에 시몬은 즉시 모두에게 지시했다.
“조이, 네가 선두다. 바로 뒤에 보석과 함께 내가 따라가지. 안드레는 내 옆에 붙어 다니고 후위는 엔제이, 네가 맡아라. 맥레인…, 너는 맘대로 해.”
그렇게 지시가 끝나기 무섭게,
말에 올라탄 이들은 훈련된 병사처럼 진형을 짰고,
이윽고 시몬의,
“히야! 가자 시몬 바스티유의 문제아들아!”
호기 넘치는 외침과 함께,
그대로 저택 밖으로 향하는 정문을 향해 돌진했다.
그런 그들을 기다렸다는 듯,
입구 쪽에서 쌕쌕거리는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수십의 화살이 날아들었고,
그에 마치 척수반사처럼 미리 고삐를 잡고 선두로 나와 있던 맥레인은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빼 들어,
허공을 크게 휘둘러 쳤다.
그 순간,
팍!
하는 바람의 비명과 함께 허옇게 질린 바람막이 맥레인의 앞에서 터져 나왔고,
이에 기세 좋게 바람결을 가르며 날아오던 화살들을 닥치게 했다.
이어,
허연 바람막이 저택 입구 바깥에까지 뛰쳐나와 귀 큰 자들 몇몇을 넘어트렸고 그 바로 뒤편에선,
이제 막 바람결을 탄 다섯 말들이 엄청난 속도로 그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
곧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던 귀 큰 사내가 이마에 금방이라도 터질 듯, 굵은 핏대를 세우며 소리 질렀다.
“당장 쫓아!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