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이야기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강해질 수 있는 거야?”
한 아이가 내게 물었다.
눈썹과 머리카락이 모두 밀린 채 애써 해맑게 웃는 그 아이의 물음에,
나는 진심으로 대답해 주었다.
“살아야 하니까.”
그 대답에 아이는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날.
더는 그 아이를 볼 수 없었다.
그저 얼핏 들은 이야기로만 알 수 있었을 뿐.
‘또 깨졌어.’
‘이번에 들어온 놈들은 하나같이 시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군.’
무미건조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건초 같은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아이의 죽음을 통보받은 나는 여지없이 악몽을 꾸었다.
늦은 밤,
느닷없이 여기저기 피어난 환한 불꽃.
사람들의 비명.
그리고,
창에 등이 꿰이는 와중에도 내게 도망쳐라, 살아라 울부짖던 누이의 모습.
그 생생한 기억은 평생토록 따라다니며 내 목을 조르겠지.
차라리 나도 깨졌으면,
그 아이와 같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살라 울부짖던 누이의 외침을 외면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살았다.
깨지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들이 말하는 ‘유리의 시험’도 꾸역꾸역 다 받아냈다.
냄새만 맡아도 장기를 코로 쏟아낼 만큼 고약한 시약을 온몸으로 감내했다.
그렇게 미칠듯한 고통 속에서 나는 어느새,
세공소에서 다섯 번의 시험을 통과한 유일한 보석이 되어 있었다.
피부는 창백한 유리처럼 투명해 붉은 꽃잎에 대면 루비처럼 반짝였고, 햇살에 대면 옥처럼 번뜩였다.
아침 하늘을 바라보면 두 눈은 자수정이 되었고,
밤하늘을 바라보면 흑요석이 되었다.
일반적인 음식을 받아들일 수 없어 유리를 씹었고, 그마저도 구역질이 나서 거부하면,
그들은 끓인 유리를 코로 흡입시켰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유리로 된 바늘이 몸속을 진창으로 만들어버리는 듯한 느낌은 떠올리기만 해도 혀를 깨물어 죽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버텼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세공소 사람들은 갑자기 내게 부쩍 친절을 베풀기 시작했다.
날 사줄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 사람은 날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보석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밤하늘을 관통하는 한 폭의 우주를 내게 담아달라고 했지.
그래서 그 직후부터 난 새벽 내내 깨어있어야만 했다.
두 눈으로 밤하늘만을 바라봐야만 했고, 깨 벗은 몸으로 따듯한 담요 대신 밤하늘을 품었다.
유리 같은 내 몸에 그것이 각인될 때까지.
이따금 졸음에 지쳐 눈을 감으면, 세공소 사람들은 눈을 감지 못하게 내게 구속구를 채웠다.
이때 내게 허락된 빛이란,
별빛 한 스푼,
달빛 한 주먹뿐.
그렇게,
아침 햇살의 감촉이 어땠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을 때쯤.
내 두 눈 안엔 만연한 우주가 담겨 있었다.
날 사겠다는 사람의 요청에 따라 내 두 눈엔 특정한 별자리까지 담아져 있었다.
그 별자리의 이름은 ‘아르마강의 비상’
날개를 잃은 영웅이 다시 땅을 박차고 비상한다는, 역전을 상징하는 별자리란다.
이걸 어떻게 아느냐면, 세공소의 사람들이 내게 주입식 교육을 시켰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나도 역전된 삶을 살고 있다.
별자리가 이야기하는 것과 정반대의 이야기지만….
그 아이러니에 언제는 한번 혼자서 미친 듯이 크게 웃은 적도 있었다.
시간이 더 흘러,
이제 난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완벽한 사치품이 되었다.
그 돈 많은 자의 물음에 재치를 부리며 대답할 수 있을 만큼 교양도 쌓았고, 스스로 빛을 내는 법도 깨우쳤으며, 인간이 아닌 보석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강요까지 이해했다.
어쨌든 살아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지옥 같은 세공소에서 빠져나와 한 사람의 사치품으로 살아가기 직전.
날 사겠단 사람이 돌연 말을 바꿨다.
사내보단 여인의 모습을 한 보석이 더 좋겠다면서.
그러면서 나와 똑같은, 여성인 보석을 만들어 달라고.
물론 세공소 사람들은 그에게서 원래 날 팔기로 했던 값을 톡톡히 받아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진정한 지옥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벌어들인 돈으로 주변 일대의 여성들을 모조리 사들였다.
전쟁고아, 포로, 몰락한 귀녀를 막론하고!
고통에 울부짖는 여인들의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는 심정이 들 정도였다.
어제 보았던 여아가 다음날 깨진 파편으로 내 발밑에 나뒹굴었고, 오늘 보았던 소녀가 내일 숨 쉬지 않는 보석이 될 거란 사실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난,
그들에게 있어선 증오와 같은 존재였다.
완벽한 보석이란 반면교사를 제시한 게 나란 존재였으니까.
그들이 고통받는 이유가 바로 나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였으니까.
그건,
그건….
도저히 사람의 마음으론 감내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마음속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걸 느꼈다.
내가 살기 위해 버텨왔던 모든 시간이 하나도 빠짐없이 부정당하는 기분.
죽고 싶다.
이대로 조각조각 깨져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하지만 그마저도 스스로 해내지 못했다.
살기 위해서?
아니, 날 보고 똑같이 모든 것을 내려놓을 것 같은 그들 때문에.
역설적이지.
반대로 그들에게 있어서 난 희망과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기회를 제시한 게 나란 존재였으니까.
그들이 고통받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나라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었으니까.
악착같이 버티는 아이,
눈물을 머금고 비명 한번 내지도 않은 채 시약을 받아들이는 귀녀.
고통의 시간이 끝난 잠깐의 시간 속에서 서로를 보며 웃음 짓는 소녀들.
그 모두에게 난 희망이고 싶었다.
내가 살아 그들에게 의미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난 모순덩어리가 되기로 했다.
증오이자 희망이었고, 죽음으로 향하는 목적지이자 생존의 유일한 길.
그게 내가 되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세공소에서 다섯 번의 시험을 통과한 두 번째 보석이 탄생했다.
작고 여린 소녀가 그걸 해냈다.
아직도 기억나, 아니 죽기 직전까지도 생생히 기억할 수 있어.
그때 그녀가 날 보며 지은 그 미소를.
억겁의 거리에서도 찬란한 빛으로 밤하늘에 고개를 내민 별처럼.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름 있는 별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만 같았다.
그녀의 등장으로 난 처음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나와 같이, 나와 같은 사람이 나타났으니까.
그걸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 운명이 맞을 거다.
세공소 사람들은 밤마다 그 소녀를 내 옆에 붙여놨다.
내 몸에 묻은 밤과 우주의 흔적이 그녀에게도 묻을 수 있게.
애석하게도,
그 과정에서 낭만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야만적인 방법으로 우리에 던져진 짐승처럼 우린 헐벗은 몸으로 첫 대면을 해야만 했고,
밤하늘이 햇살에 묽어지기 시작할 때면 여지없이 서로 떨어졌으니 오히려 점점 어색해지고, 멀어지는 느낌만이 감돌았다.
하지만 어느 날 밤.
소녀는 말없이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두근두근.
애석하기 짝이 없는 심장 같으니.
두근두근.
어쩜 이렇게 크게, 빨리 뛸 수가 있는 거지.
두근두근.
아니, 이건 심장 하나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그녀의 심장 소리도 함께였구나.
그날,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정면에서 느긋하게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날 찬찬히 바라봐 주었다.
어느 날은 귀 뒤에 붉은 꽃잎 하나를 숨겨와 내게 건네주기도 했다.
밝은 계통의 보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한 아이가 자기에게 준 것이라며.
우린 그 붉은 꽃잎을 가지고 서로의 손가락에, 팔에, 어깨에 대보며 장난을 쳤고,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가 잡은 꽃잎이 내 입술에 머무르게 되었다.
내 입술은 붉은 꽃잎에 닿아 청명하게 빛났고, 그녀는 자기 입술도 똑같이 빛날지 궁금하다며,
쑥스러운 표정으로 내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얇은 꽃잎을 사이에 두고 느껴지는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 온기, 그리고 향기.
메말랐던 마음속 원초적인 갈증이 해갈되는 이 기분은 뭘까.
아주 깊고 단단한 심지 하나가 가슴 속을 관통하는 느낌.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욕구를 넘어선,
새로운 바램.
그녀와 함께 살아남고 싶다.
시간이 더 흐르고,
내게 묻은 밤과 우주의 흔적이 그녀에게도 얼추 묻어나왔을 때쯤.
그녀를 사겠단 사람이 대뜸 세공소를 찾아왔다.
그때,
난 내가 꾸고 있었던 꿈에서 처절하게 깨야만 했다.
현실을 마주한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세공소 사람에게 이끌려 자신을 사줄 사람 앞에 끌려갔다.
난 그저 감옥 같은 방 안에서 울부짖을 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밤.
그녀는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너무나 기뻐 미소가 절로 나왔지만,
그녀는 그렇지 못했다.
그녀는,
슬피 울었다.
구매자는 그녀를 보며 흡족해했지만 만족하진 않았다, 그러면서 세공소 사람들에게 아주 큰 제안을 했다고 했다.
자신의 ‘가보’를 그녀의 몸속에 넣어달라고.
세공소 사람들은 그게 ‘호박석’이라고 했다.
인간 보석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종류의 보석.
유리의 시험을 두 번이나 더 감내해야지만 시도 한 번 해볼 수 있는, 그런 보석.
다음날,
그녀의 비명이 세공소 전체를 뒤흔들었다.
난 그 소리를 들으며 혀를 씹고 온몸으로 벽을 때려야만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비명 이후로,
그녀는 내게 오지 못했다.
다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녀의 비명은 계속되었을 뿐.
그들은 이제 내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난 그저 방에 방치되어 있었고, 그렇게 방치된 나는.
계속해서 벽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이 으스러져 깨지고, 그 파편이 바닥에 나뒹구는 동안에도 나는 벽을 향해 가차 없이 온몸을 내던졌다.
그렇게 여지없이 그녀의 비명이 울려 퍼지던 아침.
나는 기어코 벽을 허물어 감옥 같은 방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미친 듯이 뛰었다.
비명이 들려오는 곳을 향해서.
그렇게 도착한 곳에선,
반쯤 도려내진 것처럼 초췌해진 그녀가,
그녀가 날 발견하고,
웃어주었다.
“무사했구나.”
내가 그녀에게 건네줬어야 할 말을,
그녀가 내게 건넸다.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세공소 사람들은 피칠갑이 되어 있는 내 모습을 보곤 놀라 달아나기 바빴다.
그렇게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그녀에게 도달했을 때.
나는 절대로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차가운 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녀의 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매정한 칼날로 도려내진 그녀의 몸은,
……,
“날….”
그녀가 말했다.
“날 깨트려 줘.”
부탁했다.
“네가, 깨트려 줘.”
눈물이 흘렀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의 얼굴이 흐릿해지는 게 싫어 조각난 양팔로 얼굴을 훔쳤다.
“그리고 기억해 줘, 나를 기억해 줘.”
그녀 역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만,
그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는 것마저 겨워 보였다.
“나는…. 나는 아리아, 아리아야.”
잊지 못할,
그녀의 이름.
하지만 난 그녀에게 건네줄 이름이 없다.
그런 내게,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넌…. 밤하늘을 담은 보석이니까….”
그 뒤로,
그녀가 내 이름을 지어 불러주었다.
그 직후,
모든 것이 암전되고.
그 새카만 어둠 속에서,
“흐… 억…!”
단숨에 뛰쳐나온 나는 반사적으로 상체를 크게 일으켰다.
모든 것이 이질적인 느낌투성이.
유리같이 투명했던 몸은 완벽하진 않지만, 말끔한 사람의 피부로 뒤덮여 있어,
나도 모르게 희미하게 새어 나온 햇살에 손가락을 걸쳐보았다.
그러자 희미하지만, 햇살에 걸쳐진 손가락에서 영롱한 보석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렇게 한참을 햇살에 걸친 손가락에 시선이 빼앗겨 있는데,
“이런 씨발! 진짜로 살아있었잖아.”
대뜸 바로 옆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충 뒤로 넘긴 머리, 까끌한 수염.
깊은 눈동자.
실룩이는 입술의 흉터.
거친 남자라는 인상이 팍 느껴지는 그는 놀란 표정도 잠시,
대뜸 내게 깨끗한 손수건 하나를 건네주었다.
“왜 그렇게 눈물이 흐르나.”
그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내 두 눈에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세공소가 그렇게나 지랄 맞았던 거겠지.”
말을 마친 남자는 무뚝뚝하게 품에 있던 연초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곤 한껏 어색한 모습으로,
“젠장, 왜 하필 내가 있을 때 깬 거야.”
혼잣말을 바삐 중얼거리던 그는 슬쩍 내 눈치를 살피더니,
“이름이 뭐냐.”
툭 던지듯이 질문을 던졌고, 그러면서도 계속 내 눈치를 살피더니,
“그러니까 여긴…. 어…. 널 그렇게 만든 세공소와 같은 곳이 아니야. 그러니까…. 세공소에서 널 가져왔지. 아니, 가져온 게 아니라 널 데려왔다고.”
낮은 목소리로 부쩍 날 안심시키려는 듯 사족을 붙였다.
그런 그에게,
나는 그 고통스러운 기억 속,
가장 선명하고 뚜렷한 것을 그에게 대답했다.
“…‘디안’ 그게 제 이름입니다.”
[넌…. 밤하늘을 담은 보석이니까…. 그래. 디안, 디안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