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관찰
“촙, 보스는 혼자서 어딜 가신 거야?”
“근방에 재키가 있어서 그와 합류해서 온대.”
“재키 놈, 거점으로 안 돌아온 지 한 달 정도 됐나? 아예 안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나도 동감이야, 그 새끼랑 그 새끼 동료들은 너무 거칠어.”
“다른 게 아니라 그 씨발놈이 호시탐탐 케니를 노골적으로 노리고 있어서 맘에 안 들어.”
“그뿐이냐, 아엘라가 연락책으로 빠진 이유도 그 새끼가 하도 껄떡대서 그런 거잖아.”
시끌벅적한 주점 한구석.
지린내와 코 아픈 향수 냄새가 진동하는, 오감이 어지럽기 짝이 없는 그곳에서 촙과 안드레는 가볍게 술 한잔을 걸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 건덕지가 없었으므로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에 껴들지 않아도 될 만큼, 주위 풍경이 내겐 너무나 새로운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물론 그만큼 걱정되는 부분도 없잖아 있다.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한 번 내게 눈길을 준 사람들은 몇 번이고 계속해서 날 힐끗힐끗 쳐다본다는 것.
개중에 몇몇 향수를 몸에 끼얹은 듯한 여인들은 내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기도 했다.
문제는 눈빛의 의도가 하나가 아니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아까부터 주점 입구에서 날 빤히 쳐다보는 남자는 딱 봐도 굉장히 위험해 보이는 행색을 하고 있었다.
위층 난간에 걸터앉아 날 내려다보고 있는, 흉터가 가득한 사내도.
그들의 따끔한 시선을 나만 느끼는 건지,
촙과 안드레는 대화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수한 눈빛에 혼자 잔뜩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촙이 유쾌한 표정으로 내 등을 한 대 후려쳤다.
“뭘 그렇게 쫄아있어?”
“예…?”
“뭔 존대야? 그냥 촙이라 불러.”
“아…….”
“저 새끼들은 너의 그 어수룩한 부분을 잡아 뜯으려 하는 짐승일 뿐이야. 네가 그런 틈을 주지만 않으면 절대 달려들지 않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술잔을 비운 촙은 썩은 이를 드러내며 쾌활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게다가 이미 나와 안드레가 널 잡고 한탕 해 먹고 있는 것처럼 보일걸? 저놈들 눈엔.”
그 말에 안드레가 약간 심기가 불편한 듯, 역시 잔을 비우고 대꾸했다.
“뭔 개소리야?”
“딱 봐봐, 디안은 존나 귀공자잖아? 엔제이 아저씨 말대로 달이랑 별들이랑 뭐 떡쳐서 나온 사생아? 같이 생겼잖아.”
설명을 해도 저딴….
“내가 뭐 어때서?”
안드레가 눈썹에 잔뜩 힘을 주고 토를 달자 촙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넌 벼락 맞은 망아지 후장같이 생겼어.”
“지랄!”
“풉!”
어쩔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안드레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분명 그는 날 째려보고 있었을 거다.
“솔직히 케니가 정으로라도 너랑 자주진 않을걸.”
“너 말 다 했냐?!”
“아직 할 말 존나 많은데.”
둘은,
자유분방하다.
거침없이 풀어진 바람결처럼.
반대로 난,
긴 세월 동안 상품으로서 살아왔던 난 확실히 그들과 달랐다.
이 순간에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만큼,
나도 슬슬 욕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들과 같이 되고 싶다고, 나도 거침없이 풀어진 바람결처럼 나부끼고 싶다고.
바람결에 떨어지길 기다리는 과일 말고.
그 과일을 떨어트릴 바람이 되고 싶다고.
“그나저나, 디안. 네 얘기를 좀 해보자. 너 상자 속에 들어있었다면서? 도대체 몇 년 동안 그렇게 된 거야?”
촙이 아예 내 쪽으로 의자를 돌려 물었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뿐.
“존대하지 말라니까.”
“잘 모르겠어.”
“이름을 불러주면 더 좋고.”
“잘 모르겠어, 촙.”
“그래, 시몬 바스티유는 가족이니까 그렇게 정답게 이름을 불러주라고.”
“…그래 촙.”
“그래도 너, ‘용의 시대’ 이후 사람인 건 맞지?”
드디어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나왔다.
“그야 물론이지.”
기뻐 대답하는 내 모습에, 촙은 안쓰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하기야, 그건 수백 년도 더 된 시대잖아.”
그런 촙의 중얼거림에,
술을 홀짝이던 안드레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그게 뭔데?”
“장난이지?”
“들어는 봤지.”
“이런 빡통새끼.”
“그래, 너 잘났다 새꺄. 그거 모르는 게 죄냐?”
“아무리 그래도 임마, 용의 시대를 몰라? 수백 년 전엔 산만한 용들이 살았었어.”
“네가 실제로 본 것도 아니잖아.”
안드레의 말에 촙은 기가 찼는지, 날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알았어, 계속 설명해 봐.”
“그러니까 용이 한순간에 다 뒤져서 멸종된 거야, 그때 용의 시대가 끝난 거고, 그 이후부터 쭉 ‘용의 시대 이후’라고 불리는 거지.”
“왜 죽었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너도 그럼 모르는 거네, 빡통새꺄!”
그들의 실랑이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바람에 안 그래도 쏠리는 이목이 더욱 집중되려 하자 결국 내가 나서야 했다.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유력한 설은 몇 가지 있어. 대표적으로 용들이 껍질을 벗었다는 설, 다른 하나는 시대의 종말 실존설.”
내 설명에,
그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벙찐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 강대했던 용들이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존재로서 거듭났다는 가설이 첫 번째 껍질 설이고. 다른 하나는 시대는 필연적으로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운명론에 근거한 설.”
이어지는 내 설명에도,
그들은 그저 눈만 껌뻑일 뿐.
그런 그들에게 난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미친 듯이 배워야 했거든, 말하는 보석이라면 그 가치에 걸맞은 걸 입 밖으로 내놔야 했으니까.”
내 말에 둘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개자식들이었구만? 널 만들어 팔려고 했던 놈들.”
“마찬가지로 널 살려고 했던 놈들까지도.”
이윽고 안드레는 눈을 번뜩이며 내게 고개를 내밀었다.
“그래서, 계속 설명해 봐. 이거 재밌네.”
방금 내가 저 둘을 보며 느꼈던 기분을, 이번엔 반대로 그가 날 보며 느끼는 것일까.
아니, 안드레뿐만 아니라 촙도 반짝이는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되레 내가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거지.
“어쨌든, 용들의 죽음으로 시대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어. 그게 바로 촙이 말한 용의 시대 이후지. 가장 큰 변화는 기후야.”
“기후?”
안드레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용의 멸종과 동시에 우리가 알던 기후 역시 멸종했어. 비바람과 태풍이 멎었고, 해일과 홍수가 가라앉았지.”
이런 내 말에 이번엔 촙이 달려들었다.
“뭔 소리야, 지금도 비바람에 태풍에 아주 온갖 지랄을 다 하는구만.”
“그 기후는 ‘만들어진 기후’야. 기후의 멸종 이후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마법사들이 각자의 탑으로 돌아가 날씨를 조율하기 시작한 거지.”
안드레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키야, 마법사가 날씨도 만들어?”
“응, 내가 배웠을 당시엔 마법사들끼리 알력 다툼이 잦을 때면 그만큼 기후로 인한 재해도 증가했다고 했어.”
“미스테리한 쌍놈새끼들이란 소리네.”
그래 안드레,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촙은 이제 날 대견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디안, 이 똑똑이 자식. 앞으로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내가 구해줄 테니까.”
안드레도 제법 날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았다.
뭘까, 이 뿌듯함은.
그 둘에게서 아주 조금이나마 인정받았다는 기분.
안드레는 술 한잔을 더 가져와 내게 내밀었다.
“너도 마셔.”
“내가 마실 수 있을까? 안나 아줌마가 해준 스프도 게워냈는데.”
“이거 성분으로만 따지면 거의 유리에 가까운 밀주야, 개싸구려지만 반대로 그래서 장난 아닌 술이지.”
안드레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꾹, 마음먹고 받은 잔을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제법,
깔끔하게 목 뒤로 넘어가는 게 느껴지기 무섭게,
몸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후… 억!”
그 열기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한숨이 픽 나오자.
“키킥!”
“어때, 죽이지?”
그 둘이 나보다 더 열띤 반응을 하며 좋아한다.
슬슬 그들과 빠르게 친해지려고 할 때쯤.
“이 새끼들, 여기서 술이나 퍼먹고 있고.”
술집 입구에서부터 얇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안드레와 촙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보고 난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재키라는 걸.
“조직을 위한 일을 하란 말이야, 이렇게 술 퍼먹을 시간이 있으면.”
“네가 상관할 바 아니지, 재키.”
“어쭈? 안드레 이 새끼 술 들어가니까 눈에 뵈는 게 없지?”
슬쩍,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보니.
그곳엔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죽일 듯이 안드레를 노려보고 있었다.
턱 끝까지 내려온 콧수염, 뒤로 짧게 묶은 백발의 사나이.
양쪽 눈 밑으로 그려 넣은 듯한 검은 점과 목덜미 전체를 아우르는 커다란 흉터.
거칠고 야성적인 게 맥레인과 똑같았지만, 그 느낌은 정 반대에 있는 듯한,
그런 사람이구나.
“어라, 이 새끼는 뭐야?”
이어서 내게로 시선을 옮긴 재키는 두서없이 내게 다가오더니,
“아, 이게 맥레인 그 새끼가 물어온 건수구나?”
대뜸 내 턱을 부여잡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가공할만한 힘.
그 힘에 나도 모르게 까치발을 들면서까지 끌려가야 했다.
“웬일로 제대로 물어왔네? 이 새끼 팔면 이 마을 전체도 살 수 있겠어.”
이리저리, 턱을 붙잡은 손을 돌려보며 구석구석 나를 관찰하던 그는 여러 차례 입맛을 다셨다.
안드레는 그런 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이미 보스가 디안을 우리 일원으로 인정했어, 재키. 아쉽지만 그렇게는 못 해.”
“아아 알지, 알지. 보스 말인데 따라야지. 그래도 이 새끼 골수 좀 빨면 괜찮겠는데, 그렇지?”
그의 말에 결국,
참고 참았던 나는 표독하게 그를 쏘아붙였다.
“그만 놓으시죠.”
“계집같이 생긴 게 당차기까지 하네.”
그는 턱을 잡은 손을 더욱 세게 당기다,
이내 뒤쪽으로 휙 밀어버렸다.
덕분에 뒤로 완전히 넘어간 나는 의자에 간신히 걸쳐져 나뒹구는 것을 면했다.
“보스가 널 일원으로 받아들인 이유를 항상 상기해라, 네 값어치에 걸맞은 일을 해야 할 거야. 그게 시몬 바스티유의 규칙이니까.”
그의 말에,
난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금방 흥미를 잃었는지, 그대로 뒤돌아 나가면서 테이블 주위에 그대로 얼어붙어 있던 우리 셋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따라 나와, 갈 곳이 있으니까.”
재키의 말에 나와 안드레, 촙은 서로를 한 번씩 눈을 마주친 뒤에야 움직일 수 있었다.
“어딜 간다는 건데?”
“안드레, 안드레. 술 먹더니 혀가 짧아진 거냐?”
“말해.”
“새끼, 보스랑 이미 얘기가 다 끝났어. 케니가 물어온 건수가 있다면서? 은행가 놈을 설계해놨다던데.”
재키의 입에 케니의 이름이 오르자 안드레의 눈썹이 크게 뒤틀렸다.
그런 안드레의 표정을 읽은 촙이 재빨리 말을 돌렸다.
“그 은행가 놈을 털러 가는 겁니까?”
“아니, 그 은행가가 고객으로 모시고 있는 난쟁이.”
“하지만 금고가 있는 쪽인 은행가를 터는 게 더….”
“금고가 목적이 아니야, 그리고 뭘 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단순히 난쟁이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 그래.”
그러면서 그는 날 힐끗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케니는 잘 지내나?”
뒤이어 그가 노골적으로 안드레를 향해 입을 열었으나,
그 직전 촙이 안드레의 어깨를 붙잡아 겨우 그를 진정시켰다.
“시시하긴.”
그렇게 말없이 재키의 뒤를 따라 마을 외곽까지 걸어갔을 때, 시몬이 기다렸다는 듯 우릴 반겼다.
“그래, 다들 왔군.”
“시몬, 얘네들 술 퍼먹고 있었어.”
“뭐 어때, 디안에게 좋은 경험이 됐겠지.”
“난쟁이는 어때, 우리에게 협조하겠데?”
재키의 말에 시몬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미 네 친구가 협조를 다 구해놨다고 하더군. 디안, 들어가자.”
“디안만 따라 들어갑니까?”
“그래, 안드레. 넌 여기서 망을 보고 있어.”
“…예 보스.”
안드레의 찜찜한 표정을 뒤로한 채,
시몬을 따라 잘 꾸며진 집 안으로 들어섰다.
“디안, 맥레인이 하는 이야길 들었는데, 네 기억이 오락가락한다면서?”
“예, 보스.”
“이건 어디까지나 네 기억을 되찾기에 도움을 주고 싶어서 그런 거야, 오해하지 않았으면 해.”
그렇게 어느 방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
“흐… 흐….”
구석에 두들겨 맞아 피투성이가 된 난쟁이가 밧줄에 묶인 채 짧게 신음하고 있었다.
그런 난쟁이 앞에는,
여자 난쟁이가 단 안경을 걸친 채 덜덜 떨고 있다.
그런 난쟁이 옆에는 한 남자가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는데,
시몬은 그런 그에게 진심으로 분노하며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 있어라, 그리고 재키한테 전해. 앞으로 일을 이렇게 과격하게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그 말에 남자는 마지못해 자리를 떴고, 시몬은 곧장 구석에 묶인 난쟁이를 풀어주었다.
“미안하게 됐군, 하필이면 인근에 이 일을 시킬 사람이 거친 놈들뿐이었어. 그놈들은 무식해서 정중한 걸 모르지. 내 치료비는 다 치러주겠어.”
이어서 다친 난쟁이를 침대에 조심스레 눕힌 시몬은 곧바로 여자 난쟁이에게 날 가까이 데려갔다.
“그래, 감정할 수 있겠나?”
“하… 할 수 있어요.”
“그럼 부탁하지.”
“그… 상의를….”
벌벌 떠는 여자 난쟁이의 말에,
나는 곧바로 상의를 벗었다.
이윽고 그녀는 덜덜 떨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이… 이건, 제가 지금까지 감정했던 보석 가운데 가장 완벽에 가까워요…. 어떻게 유리화 된 몸에서 이런 피부가 나올 수가 있는지….”
감탄을 연발했다.
그러다 손가락으로 내 가슴 정중앙을 눌러본 그녀는 커다래진 눈으로 날 보며 덜덜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아… 이 사람은….”
“왜 그런가?”
“이 사람은 ‘호박석’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