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준비
“시몬은 대체 왜 저놈을 내게 붙여준 건지…. 차라리 엔제이가 백배는 낫겠어.”
이제 막 다 핀 연초를 바닥에 내던진 맥레인이 투덜거리며 안장을 매만졌다.
난 그런 그의 뒤편에 가만히 서서 눈치를 살피기 급급했다.
“설마 네가 나와 같이 다니고 싶다고 시몬에게 말한 건 아니겠지?”
설마가 사람 잡겠네.
“그럴 리가 없지, 그렇지?”
난 대답 대신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나만큼이나 너도 날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
그렇게 말한 맥레인은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더니, 이내 입술 흉터를 실룩거리며 멋쩍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어쨌든, 매튜에게 이야기는 들었어. 네가 한 건 해냈다지? 그것도 꽤 훌륭하게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제법 잘했다는 거야.”
“감사합니다, 맥레인 씨.”
디글렛을 잡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소녀가 내게 알려준 장소는 그 마을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큰 나무 세 그루, 그사이 춤추는 물줄기는 작은 폭포를 말하는 것이었고 그 폭포 안쪽에 파여 있는 작은 구덩이엔 정말 거짓말처럼.
동전 더미가 난잡한 모습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동전 더미는 정확히 여러 종류의 날인이 찍힌 금 동전만 마흔 개, 은화는 무려 삼백 개가 넘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삼백 개의 은화보다 금화가 두어 개라도 더 있었다면 그보다 가치 있었을 것이다.
그 외에 어수룩한 방식으로 세공된 잡보석 두어 개와 제법 값나가 보이는 목걸이 하나가 디글렛을 잡은 대가의 전부였다.
매튜 아저씨는 생각보다 적은 양이라며 아쉬워했지만 금세 생각이 바뀌었는지 되려 다행이라 했다.
보통 디글렛이 훔쳐낸 재물의 규모가 클수록, 그 재물 안에 무언가를 누군가가 추적하고 있었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라면서.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헐값에 넘겨야 하는 장물들에 쓸데없는 위험부담까지 떠안아야 하기에 귀찮아진다는 것이 그 이유란다.
이후에 잡보석들은 케니가 처분하기로 했고, 값나가 보이는 목걸이는 매튜 아저씨가 최대한 비싸게 팔기 위해 근래까지도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는 듯 보인다.
나머지 동전 대부분은 시몬 바스티유에 기여되었지만,
매튜 아저씨는 그중 금화 두 개를 내 몫으로 챙겨주었다.
난생처음이다.
그러니까 내가 무언가를 소유하게 된 적이.
“언제까지 그렇게 멀뚱거리며 서 있을 생각이야?”
맥레인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얼른 그의 고갯짓에 따라 움직였다.
“명심해,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네가 사야 할 건 말이랑 바람기름이야. 알겠어?”
“네, 맥레인 씨.”
나는 지금 시몬 바스티유의 일원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키기 위해 마을로 향한다.
그 기본적인 거라는 건 타고 다닐 말과 그 말이 타고 다닐 바람기름을 사는 것.
자신의 물건은 자신의 몫으로.
시몬 바스티유의 중요한 규칙 중 한 가지란다.
덕분에 내 맘은 온통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반대로 몸은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보스는 대뜸 맥레인에게 나와 동행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한 주 동안 난 조직 내 많은 사람과 안면을 트고 제법 인사까지 나누는 사이로 발전했다.
제법 목 넘김이 수월해져 미음 정도는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게 된 지금까지 곁을 지켜준 안나 아주머니는 내겐 이미 너무나 익숙한 사람.
케니는 이따금 내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행동했지만 그래도 제법 죽이 잘 맞았다. 성격이 시원스럽기도 하고.
안드레는 내가 디글렛을 잡은 직후부터 묘한 질투를 부렸지만 그걸 제외하곤 언제나 밤늦게까지 나와 함께 모닥불에서 노닥거리는 걸 즐겼다.
촙은 듬직한 맏형 같은 사람이어서 내겐 안나 아주머니만큼이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 외 사람들과도 인사까지는 모두 나눠봤는데.
하필이면 그 평범한 인사조차 쉬이 건네 보지 못할 유일한 사람과 동행하게 되다니.
“뭐해? 안타고.”
말에 올라탄 맥레인이 고갯짓으로 뒤편을 가리켰다.
뭐에 홀린 듯, 난 그저 고개를 끄덕인 채 그의 말 뒤편에 올랐다.
확실히,
촙이나 엔제이와는 다르다.
그의 등은 굉장히 거대하고 단단했다.
그저 등만 보았을 뿐인데도 그가 얼마나 거친 사람인지 알 것만 같은 느낌.
이윽고 맥레인이 고삐를 잡아 이끌고 말을 움직였다.
그렇게,
조직의 은신처를 벗어나, 큰길을 발견하기까지.
맥레인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
그러다, 맥레인의 거대한 등 너머로부터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기완 다르게 꽤 제법인데.”
“예?”
“디글렛 말이야, 그 구역질나는 놈을 따돌린 걸 보면.”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죠.”
내 대답에 등 너머로 식은 웃음이 들려온다.
그런 그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번엔,
“지금 어디로 가시는 거죠?”
제법 용기를 내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남쪽, 빌 비트.”
그는 무심한 말투로 내게 대답해 주었다.
그 뒤로,
또 한참 동안 둘 사이에선 침묵만이 감돌았다.
침묵에 슬슬 길들여 질쯤엔, 자연스레 주위에 만연해 있는 풍경에 시선이 갔다.
끝이 바랜 나뭇잎들이 바람에 맞춰 제법 그럴싸한 군무를 추고, 큰 나무들 너머 펼쳐진 거대한 산들은 이따금 구름 속에서 신기루처럼 일렁거린다.
햇빛에 파랗게 질린 하늘엔 보랏빛별과 자줏빛 별이 그 푸르름을 꿰뚫고 이따금 반짝인다.
그렇게 한없이 풍경에 취해 넋이 나가 있다가,
이윽고 거대한 교차로에 다다르자 맥레인이 고삐를 살살 잡아당겨 말의 걸음을 늦췄다.
“이걸 써.”
이어서 맥레인은 대뜸 안장 가방에서 남루한 잿빛 두건을 꺼내 내게 던져주었다.
그 목소리가 제법 무겁고 진중해서, 난 덜컥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은 채 서둘러 그 두건을 써야만 했다.
“고개는 들지 마라, 내 등에 기대 잠든 척을 해.”
이어지는 그의 말에,
난 곧장 그의 단단한 등에 이마를 맞댔다.
그렇게 교차로에 진입하기 무섭게, 전방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칼리다르에선 소식 없었나?”
“지랄 마, 거긴 소식이 들려올 만큼 한가로운 곳이 아니야.”
“기회가 된다면 그곳에 다시 가고 싶군, 그쪽 농가에 쓸만한 게 꽤 있었는데.”
“이미 티바르 새끼들이 잔뜩 침을 발라놨을 거다.”
“침만 발랐겠냐, 이미 놈들이 입에 머금고 존나게 구슬려서 다 녹아 없어졌을걸?”
“캬하하!”
그 목소리들은 점점 더 가까워져, 이내 코앞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무사히 지나갈 것 같았는데,
“잠깐.”
그들 중 하나가 갑자기 우릴 부른다.
그에 맞추어 맥레인은 조용히 고삐를 당겨 말을 멈춰 세웠다.
“못 보던 얼굴인데.”
“북쪽 산골짜기에서 내려오는 길이오.”
“뭣 때문에?”
“먹을 게 다 떨어져 버려서.”
“뒤에 있는 놈은, 아니 년인가?”
“남자아이요, 내 조카지.”
“그래?”
“잠든 지 얼마 안 됐소, 굶주림을 겨우 이기고 취한 잠인데 한 번 봐주시오.”
담담한 맥레인의 말에,
“지나가도 좋아.”
그와 대화를 주고받던 남자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동시에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말.
그 반동에 맞추어 슬쩍, 두건 사이로 난 틈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니 노란색 견장을 단, 비교적 가벼운 사슬 갑옷을 입은 한 병사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모습을 눈에 담은 즉시, 나는 다시 맥레인의 등에 이마를 맞대고 괜히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한참을 갔을까.
“진짜 잠들었냐?”
대뜸 들려온 맥레인의 말에 나는 즉시 고개를 쳐들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누구였죠?”
“남쪽의 주둔군. 라이튼 쪽 놈들이지.”
아는 단어다.
보석으로 한창 세공되고 있었을 때 듣고 배웠던 것들.
티바르, 라이튼, 그리고 전쟁.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방금 본 새끼들은 그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더러운 놈들이야, 주둔지에 소속된 마을을 그저 작은 사창가로 생각하는 저급한 놈들이지.”
맥레인은 곧 고개를 돌려 두건 사이로 드러난 내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네 모습을 놈들이 봤으면, 설령 네가 사내놈이라고 해도 덮치려 들었을걸. 네가 웬만한 귀족 여인보다 더 반반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쓸데없이 얼굴이 반짝거리기도 하고.”
그 말에 난 그저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엔제이였으면 병신같이 그놈들 목을 다 따버렸겠지만, 그저 물건 몇 개 사러 가는 길에 그런 귀찮은 일은 감수할 수 없잖아?”
“…그렇군요.”
“왜, 내 말을 들어보니 화사하게만 느껴졌던 세상이 제법 개같이 느껴지냐?”
“세공소에 비하면 그런 부분조차 아름답기 그지없죠.”
내 대답에,
맥레인이 대뜸 크게 웃었다.
“그럼 다행이고.”
그렇게 큰길을 따라 삼십 분 정도를 더 달리고 나서야 제법 큰 마을에 당도할 수 있었다.
입구에 거대한 첨탑이 세워져 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그 마을은 디글렛을 잡으러 갔었던 마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규모가 컸다.
“마구간은 마을 중앙 길을 따라 쭉 가면 나올 거야, 거기서 네가 직접 말을 골라 사 오도록 해.”
“맥레인 씨는요?”
“난 술집에서 한잔 걸치고 있을 테니까.”
“그러다 제가 앞서 봤던 군인들과 마주치면요?”
“입구에 첨탑이 보여? 저 첨탑이 세워졌다는 뜻은 이 마을이 자주적인 독립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뜻이야. 중립 지역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이 마을엔 라이튼 놈들이 얼씬도 못 해.”
그는 이어 내 떨떠름한 표정이 볼만했는지 사족을 붙였다.
“그리고 라이튼 놈들이 아니더라도 이 마을에 널 보자마자 덮치려 들 놈들이 한가득일걸.”
“자세히 알려줘서 고맙네요.”
“그럼 서둘러 다녀오라고.”
이런 빌어먹을.
그가 밉다.
괜히 쓰고 있던 두건을 더욱 깊이 눌러쓴 나는 서둘러 중앙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주위를 살피며 산만하게 걸으면 오히려 시선이 집중될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움직인다고 움직였지만.
슬쩍 두건 밖으로 얼굴이 드러날 때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모이는 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렇게 식은땀으로 등이 다 젖어서야 마구간에 도착한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성큼성큼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엔 제법 나이가 어려 보이는 사내가 말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저기, 말을 좀 보려고 왔는데요.”
그런 그에게 슬쩍 말을 붙이자,
사내는 날 보며 금세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반겨주었다.
“어서 오세요, 말을 보러 오셨습니까?”
“네.”
“염두에 둔 종은 있으신지?”
“그쪽 방면은 제법 서툴러서요.”
세공소에서 짧게나마 배운 말과 관련된 지식은 적어도 이곳엔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배운 것들은 하나같이 날 사려는 사람의 수준에 맞춰져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말에 대한 지식이라고 해봤자 품질 좋은 종 몇 개를 아는 것뿐이었다.
“그럼 제가 추천해 드리죠, 여기 제 앞에 보이는 놈은 마그두스 종인데 턱밑에까지 물이 차올라도 뚝심 있게 앞으로 나아갈 만큼 근성이 넘치는 놈입니다.”
그는 방금까지 먹이를 주고 있던 말을 가리키며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반지르르하고 기름진 흑색의 기골이 장대한 그 말은 딱 보기에도 굉장히 단단해 보였다.
이어서 청년은 눈빛을 반짝이며 다음 우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이건 샤에로필드 종인데….”
“토이! 뭘 하고 있는 거냐?!”
한창 사내의 설명이 이어지기 무섭게, 마구간 깊숙한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우렁찬 목소리.
그와 동시에 사내는 퍼뜩 놀라 꿀 먹은 벙어리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네 주제에 손님을 받아? 당장 꺼지지 못해!”
성큼성큼,
마구간 안에서부터 걸어 나온 엄청난 거구의 남자.
그가 두꺼운 팔을 들어 올려 사내를 위협하자, 그에 익숙한 듯 온몸으로 방어 자세를 취한 사내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곤 도망치듯 사라졌다.
직후 덩치 큰 남자는 두건 속에 가려진 내 얼굴을 뜯어보듯 유심히 지켜보더니,
괜히 입맛을 다시면서 아까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녀석은 아직 남들에게 말을 팔 만큼 경력을 쌓질 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시지요. 만약 저놈에게 말을 샀다면 크게 낭패를 봤을 겁니다. 그래서, 말에 대해 제법 서투르시다고…?”
그의 말에 난 제법 언짢은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 마그두스 종이 좋아 보이는데 가격이 어떻게 됩니까?”
“그보다 제가 다른 말을 보여드리지요. 이놈은 보기보다 인내심도 약하고 무릎도 연약해서 산책하는 노인들에게나 팔 물건입니다.”
“저는 저 말이 마음에 드는데요.”
“더 좋은 말을 두고 초입부터 덜컥 결정해버리는 건 그리 좋지 못한 선택입니다. 더군다나 앞으로 쭉 타고 다니실 말인데, 더욱 신중하셔야지요.”
“그래요, 그럼 보기나 합시다.”
그의 말을 따라 마지못해 마구간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그는 대뜸 구석 우리에 묶인 말을 가리켰다.
“앤더슨 디 앤도슨,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명품 종입니다. 바람기름을 바르면 그 깊다는 안야 숲을 이틀 만에 통과할 정도죠.”
자랑스럽게 우리에 묶인 말의 이마를 짚은 채 말을 이어가는 남자.
그런 그의 손짓에 따라 말을 살펴보니,
검은 반점이 섞인 백마가 눈에 들어왔다.
거친 털, 뒷다리에 살짝 묻어있는 분변.
앞서 보았던 마그두스보다 덩치가 훨씬 컸지만, 보기완 달리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기에,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까 봤던 마그두스를 보여주십시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잭리필드 종인데 이놈은 땅을 밟고 있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하지요.”
작은 노새처럼 보이는 말을 가리키는 사내에게,
난 고개를 쳐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까 봤던 마그두스를 보여주세요.”
“죄송하지만 그건 팔 수 없습니다.”
“어째서죠?”
“안 파는 물건이니까요.”
“그럼 왜 마구간 초입에 묶어두신 겁니까?”
“그거야 제 맘이지요. 꼭 사셔야겠다면 금화 30개는 줘야 팔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앤더슨 디 앤도슨은 금화 3개, 잭리필드는 2개요.”
“됐습니다, 이곳에선 안 사겠습니다.”
그렇게 뒤돌아 떠나가려는데, 그가 성큼 걸어와 내 앞을 막아섰다.
“어딜 가시려고, 상담비로 금화 한 개요.”
“상담비?”
“내게 큰 수고를 시켜놓고 대뜸 가버리는 게 어딨어?”
“어이가 없군.”
“어이가 없는 건 내 쪽이지, 대뜸 찾아와서는 팔지도 않는 물건을 사겠다고 하질 않나, 어렵게 추천해준 물건은 다 마음에 안 든다고 하질 않나.”
“그럼 애초에 팔지 않는 말을 이곳에 두지 말았어야지.”
“그거야 내 맘이라니까?”
“비키세요.”
“싫은데.”
그를 그대로 지나쳐 가려 했지만,
그는 내가 쓰고 있던 두건을 붙잡고 그대로 뒤로 내팽개쳤다.
그 우악스러운 힘에 이끌려 그대로 마구간 바닥에 처박힌 나는, 얼굴에 묻은 거름을 손등으로 닦아내야 했다.
“씨발, 상담비가 금화 한 개라니까 어딜 가.”
그는 대뜸 내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리곤 내 얼굴을 면밀하게 살펴보더니,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상담비로 금화 두 개는 받아야겠어. 당신 때문에 마구간이 엉망이 됐으니까.”
“이거 놔.”
“싫은데.”
그가 더욱 강하게 내 멱살을 잡고 끌어올리는데,
“놓으라잖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온 마구간 입구 쪽을 보니,
한쪽 벽에 껄렁하게 기댄 채, 이제 막 태운 연초로부터 감색 연기를 뱉어낸 남자.
맥레인이 한쪽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
“뭐야, 당신?”
“알 거 없고, 그 손이나 놓지 그래.”
“뭐냐고 묻잖아.”
사내의 말에 맥레인은 듣는 척도 하지 않은 채 날 보며 말을 이었다.
“애송아, 잘 보고 배워야 할 거다.”
“뭐냐고 묻잖아!”
사내의 성난 물음에도 그저,
“조금의 틈만 허락해도 바로 잡아먹으려 드는 이 중립 지역에서 무법자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 뿐.
이윽고 맥레인은 사내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그대로 사내의 왼쪽 장딴지를 바깥에서 안쪽으로 걷어찼다.
으득.
이윽고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으아아아아아악!”
그의 왼쪽 정강이뼈가 살을 뚫고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