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13화 (13/365)

13화. 무법자는

“흐으윽… 흐으윽….”

단숨에 벌어진 일.

순식간에 중심을 잃고 쓰러진 남자는 자신의 부러진 다리를 부여잡고 부르르 떨어야만 했다.

그런 그의 앞에 쭈그려 앉아 시선을 맞춘 한 남자.

맥레인은 한껏 빨아드린 연초 한 모금을 맞은편 사내의 얼굴에 질펀하게 내뱉었다.

“다시 한번 들어보자, 상담비가 금화 한 개라고?”

“넌 이제 뒤졌어!”

“그러니까 상담비가 금화 한 개라는 게 사실이냐고.”

“개새끼,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 빌 비트의 상인 조합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거야!”

“마지막으로 묻는다, 상담비가 얼마?”

“이, 개새끼…! 개새….”

뻑-

엄청난 소리,

맥레인은 무심한 표정으로 사내에게 뺨을 갈겼다.

혹여나 목이 그대로 돌아가진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 반동으로 고개가 획 돌아간 사내는 한동안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 헉….”

한참 후에나 작은 신음을 내뱉은 남자는 퉁퉁 부어오른 뺨 속에서 이빨 두 개를 뱉어내야 했다.

“상담비가 얼마냐고.”

“그… 굼화 환개….”

뺨 한번 맞았을 뿐인데, 한껏 어눌해진 말로 사내는 맥레인에게 즉답했다.

“내가 들으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너한테 되묻는 거야. 진짜 상담비로 금화 하나를 받으려고 했어?”

맥레인의 말에 사내는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뻑-

맥레인은 사정없이 남자의 뺨을 한 차례 더 후려갈겼다.

“으… 흑….”

즉시 사내의 입에서 길게 늘어져 나오는 피.

이미 상체는 축 늘어져 가누지도 못하는 상태다.

“네 마구간에 있는 쓰레기 같은 말들을 다 합쳐도 금화 다섯 개가 안 넘어갈 것 같은데.”

“어… 흐….”

뻑-

이번엔 주먹이었다.

사정없이 사내의 얼굴을 후려친 맥레인의 뺨에 핏방울이 튀었다.

그 모습이 섬뜩하기까지 해 나도 모르게 온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맥레인의 주먹에 그대로 상체가 꺾인 남자는 이제,

“꺽… 꺽….”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다.

금방 숨이 멎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 모습에, 나는 표정을 있는 그대로 일그러트렸다.

하지만 맥레인은 멈출 생각이 없는지, 그대로 그의 멱살을 붙잡고 다시 주먹을 들어 올리려 했다.

“그… 그만!”

그런 그에게,

난 반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뭘 그만해.”

“지금 하려는 짓이요.”

“이 새끼가 널 건드렸어.”

“전 괜찮아요.”

“난 안 괜찮아.”

“제발!”

필사적으로 말리려는 내 모습에,

맥레인은 언짢은 표정으로 올렸던 주먹을 군말 없이 내렸다.

“너, 금화 몇 개 가지고 있어.”

“두… 두 개요.”

“놈한테 하나 줘, 그리고 네가 가지고 싶은 말을 가져가.”

“하… 하지만.”

망설이는 내 대답에,

순간.

나는 숨조차 쉬지 못할 정도로 표독한 살기를 느껴야만 했다.

맥레인,

그가 날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했어, 금화 하나 놓고 네가 가지고 싶은 걸 가져가. 금화 한 개면 이 새끼 분질러진 다리 대신 은으로 된 의족을 사고도 남으니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대체 뭐죠?”

내 말에 맥레인은 기가 찬 듯 한숨을 픽 쉬더니,

굉장한 기세로 성큼성큼 다가와 다짜고짜 내 멱살을 붙잡았다.

마구간 주인과는 차원이 다른,

기가 막힌 힘에 그대로 날아오르듯 그에게 들린 나는 그럼에도 침착한 표정으로 맥레인을 내려다보았다.

“잘 들어, 이 좆만한 애송이 새끼야.”

그러나 날 꿰뚫는 듯한 맥레인의 눈빛에, 나는 얼른 눈을 내리깔아야만 했다.

도저히 저 기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매튜와 한 번 일 해 보니까 무법자가 별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지나? 네가 생각한 무법자가 뭔데? 포근한 자유를 덮고, 따듯한 연대를 쬐며 살아가는 거? 꿈 깨, 병신아.”

매섭게 쏘아붙인 맥레인은 뒤편에 펼쳐진 상황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게 바로 무법자가 하는 일이야, 알겠어? 그리고 넌 그런 무법자가 될 준비조차 할 생각이 없는 애송이 새끼고.”

이내 맥레인은 잡고 있던 멱살을 살짝 내려 나와 시선을 맞췄다.

“시몬이 무슨 생각으로 널 거둔 건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달라. 너에겐 아직 선택권이 있어, 무법자의 삶을 살지. 어디서 빌어먹을지언정 무법자가 아닌 삶을 살지. 너도 억울하잖아? 기껏 자유를 쟁취하고 눈을 떴더니 무법자 소굴에 들어와 있는 꼴이었으니까!”

“무법자가 아닌 삶을 선택하면요?”

“이대로 말을 타고 어디든 떠나가 버리면 돼.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은화 칠십 개와 함께. 금화 두 개와 은화 칠십 개면 몇 개월은 빌어먹을 수 있으니까. 그편이 훨씬 좋을걸? 평생을 쫓기며 사는 것 보다!”

“무법자의 삶을 선택하면?”

“내일이든 모레든, 그 언제든 오늘 내가 한 것처럼 불쾌하고 거친 일들을 해내야만 하는 날이 찾아오게 될 거다. 그리고 그걸 대수롭지 않게 겪어나가야 하지.”

그렇게 말하며 맥레인은 내게 이마를 부딪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네 손으로 누군가를 죽이게 될 거다. 그게 짐승이든 인간이든, 귀쟁이든 난쟁이든 말이야. 넌 그럴 각오가 되어있나? 네 또래의 케니도, 안드레도 모두 겪은 그 일을, 넌 겪을 각오가 되어있느냐 이 말이야.”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식은 웃음이,

그러면서 눈에 담기조차 버거운 눈물이 두 눈을 타고 흘러내렸다.

“미안하지만, 그럴 각오를 하기도 전에 난 사람을 죽였어.”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을.

당신이 그걸 알아?

모르겠지.

모르니까 그따위로 말할 수 있는 거겠지!

맥레인은 제법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 손에 닿은 내 눈물이.

내가 느낀 만큼 그도 쓰라렸기 때문일까.

그럴 리가 없겠지!

맥레인은 이내 멍한 표정으로 잡고 있던 내 멱살을 놓아주었다.

그렇게 땅을 밟은 난 욱신거리는 목을 만지작거리며,

채 흘러내린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천천히 걸어가 쓰러져 있는 남자에게 금화 하나를 꺼내 던졌다.

이어서,

아까 보았던 우리의 문을 열고, 기름지고 튼튼한 흑마의 고삐를 잡아 든 나는 그렇게 마구간을 나섰다.

이건,

내가 맥레인에게 하는 대답이자, 그에게 전하는 내 각오였다.

* * *

고삐를 잡고 성큼성큼,

매대에 물건을 진열해놓고 파는 상인에게 다가간다.

그는 대뜸 내 얼굴을 보곤 깜짝 놀라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다가, 이내 내 볼에 묻은 거름 조각을 보고는 눈썹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어떤 걸 찾으시는지?”

방금 있었던 맥레인과의 치기 어린 감정의 잔재가 남아있어서였을까.

쓸데없이 표독해진 난 두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설마 그에게 오히려 두들겨 맞는다고 한들, 어디선가 또 맥레인이 나타나서 그의 다리를 조각내버릴 테니까.

난 서둘러 그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바람기름.”

“…네?”

“바람기름 달라고.”

내 표독한 표정에 한껏 당황한 상인은 부랴부랴 매대에 놓인 작은 통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난 그런 그에게 무심한 표정으로 금화 하나를 건넸고,

이에 놀란 상인은 또 부랴부랴 매대 안에서 은화가 가득 들어가 있는 주머니 수십 개를 꺼내 들어야 했다.

수많은 돈이 오가는 상황에서,

많은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그 주머니를 모두 챙겨 안장에 채워놓고는 다시 고삐를 잡고 말을 끌었다.

그러다,

나는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방금까지 들끓던, 치기 어린 감정이 팍 식으면서 온몸에 들어가 있던 힘이 쫙 빠지니 본질적인 문제들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눈에 밤하늘이 박힐 때까지, 차분하게 하늘을 바라봐야만 했던 세공소의 나날들 탓이었을까.

나는 항상 격한 감정을 겪어도 금방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것이 대부분은 장점으로 통했지만, 지금처럼 단점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뭐 어때.

난 이미 맥레인, 그에게 내 각오를 보였다.

그래,

이제 더는 무를 수도 없어.

무를 생각도 없고.

마음을 굳힌 나는 그대로 고삐를 잡고 다시 마구간 쪽으로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이내 마구간에 거의 다 다다랐을 즘엔,

두 다리가 후들거려 걸음을 떼기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마구간에 겨우 도착했을 땐,

쓰러진 사내 옆, 우리의 울타리에 대충 기댄 채 멍하니 연초를 태우고 있는 맥레인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슬쩍 날 보고는,

뭔가 푸념이 섞인 듯한 웃음을 한숨 쉬듯이 푹 내뱉었다.

“왜 다시 돌아왔지?”

“당신한테 살 게 있어서.”

“나는 너한테 팔 게 없는데?”

“있을걸.”

“그래, 들어나 보자.”

“싸우는 법을 알려줘. 아니, 그걸 살게.”

그래,

생각해 보면.

난 어렸을 때부터 끌려가 남들의 입맛대로 만들어진 삶을 산, 비루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살면서 저항이라곤 배워본 적 없는 그런 삶을 살았었지.

그리고 그런 삶의 대가는,

너무 아픈 것이었어.

두 번 다시 똑같은 대가를 치르고 싶진 않아.

만약 똑같은 대가를 치르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아리아.

마음속에 남아있는 네 일말의 기억조차 잃어버릴 것 같으니까.

“내게서 그걸 배우려면 꽤 비싼 값을 줘야 할 텐데.”

그의 말에,

나는 안장주머니에서 은화 하나를 꺼내 그에게 던졌다.

그는 무심코 그것을 한 손으로 받아들었고,

난 그런 그에게 무심하게 쏘아붙였다.

아니,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쪼여대는 심장에서 튀어나온 말은 누가 들어도 우스꽝스러울 만큼 떨림이 가득했다.

“난… 값을 치렀…어.”

이런 젠장.

누가 들어도 잔뜩 겁을 집어먹은 것으로밖엔 들리지 않는 목소리.

하지만 맥레인은 내 목소리를 비웃기는커녕.

담담한 표정으로 내게서 받아든 은화를 한참 동안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묵묵히 그것을 자신의 주머니 속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좋아, 팔지.”

* * *

뉘엿뉘엿.

해가 산등성이 저편으로 사라져간다.

하루를 떠나보내는 해의 인사는 늘 그렇듯.

진하고,

진득하게 하늘을 물들여놓았다.

그 눈 시린 주홍빛 아래,

나와 맥레인은 말없이 나란히 말을 타고 은신처를 향했다.

그는 거친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무법자 같은 사람이다.

슬쩍 옆을 보니,

노을에 젖은 그의 얼굴은 늘 그렇듯 어떤 감정도 읽어내기 힘든, 그런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까.

마구간에서 그가 내게 했던 말들은 하나같이.

내가 앞으로 살아갈 현실을 아프게 꼬집는 것들이었다.

그의 말이 맞아.

무법자라는 것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난 그걸 무심코 가볍게 받아들이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 무게를,

맥레인은 내게 상기시켜 준 거다.

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그에게 말을 붙여보고 싶었지만,

그와 나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기류를 감히 뚫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숲의 초입에 다다르자,

대뜸 맥레인이 내게 입을 열었다.

“바람기름은 잘 발랐나?”

“…잘 발랐지.”

“말이 짧다?”

“잘 발랐어요.”

“말을 바람 위로 인도하는 법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군.”

“안드레가 하는 걸 얼핏 봤죠.”

“어떻게 하는 건데?”

그의 물음에 나는 고삐를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일단 재촉부터….”

“아니야.”

그러나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맥레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냥 말을 달리게 하면 돼. 그럼 어느 순간 말이 바람을 밟고 올라타지. 모든 말마다, 심지어 같은 종끼리도 바람을 올라타는 순간은 다 달라. 그래서 네 말이 언제쯤 바람 위로 올라타는지를 알아야 해.”

그는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무법자라면, 자신의 말이 언제쯤 바람 위를 올라타는진 알아야 하지.”

“그것도 무법자가 갖춰야 하는 기본 소양입니까?”

내 물음에,

맥레인은 식은 웃음과 함께 답한다.

“아니.”

“그럼…?”

“로망이지.”

그 말을 끝으로, 맥레인은 금세 잡고 있던 고삐를 치달아 말을 재촉했다.

순식간에 앞으로 뛰쳐나가는 맥레인,

난 그런 그의 뒤를 따라 서툰 솜씨로 고삐를 내리쳤다.

다그닥 다그닥.

빨라지는 발굽 소리.

그에 맞춰 내 온몸에 전해져오는 말의 심장 박동.

그 박동에 맞추어 뛰기 시작하는 내 심장.

덩달아 가빠지는 호흡.

그리고 잠시 후.

말의 발굽 소리가 멎는다.

이윽고,

갑작스럽게 상승한 내 몸, 동시에 이질적인 감각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안드레의 뒤에 탔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

순전히 내 의지에 맞춰,

말이 바람을 타고 나아간다.

뜨거운 심장을 가진 하나의 생명체와 교감하는 그 순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벅찬 것이었다.

그뿐인가.

“아…!”

나는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말,

그 주위의 풍경은 으깨진 노을로,

온통 금빛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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