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검과 화약 (2)
“사실 너 같은 약골 새끼한텐 총을 쥐여주는 게 가장 간단하고 편한 방법이긴 해. 그냥 잡고 손가락만 까딱거리는 게 싸우는 법의 전부니까.”
맥레인의 무시무시한 엄포 직후 곧바로 지옥 같은 훈련이 시작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는 진지한 모습과 함께 내게 이론 비슷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렇게 간단하기에 실제론 손가락을 움직이기는커녕 총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웬만하면 상대방을 무력화시킬 수 있지.”
그런데 어째서?
그는 왜 나에게 검을 던져준 것일까.
의문을 집어먹은 내 표정에 맥레인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근데 그 총이라는 게 우리 같은 놈들은 쓸 수가 없어.”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우면서.
“화약이 존나게 비싸거든.”
“화약이 비싸다고요?”
처음 듣는 말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맥레인의 설명은 내게 큰 깨달음을 선사해주었다.
“용의 시대가 끝나면서 많은 것들이 사라져갔지. 화약 역시 사라진 것 중에 하나야. 덕분에 세상에 남은 화약들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그래,
생각해보면 세공소에서 내가 배워왔던 모든 것들은 그저.
날 사줄 사람들의 귓속을 만족시켜줄 수단에 불과해.
한 사람의 입맛에 맞춰 편협한 지식만을 받아들인 나는,
세상에 만연해 있는, 가장 기본적인 거라 할 수 있는 이야기조차 모르는….
어쩌면 가장 멍청한 사람일 수도.
순간적으로 허탈함이 느껴졌지만, 반대로 그런 내가 하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었던 촙과 안드레의 얼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금방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화약의 가치가 어느 정도나 되는 거죠?”
내 질문에 맥레인은 자신의 울퉁불퉁한 검지 손톱을 보이며 말했다.
“총알 하나를 쏘기 위한 화약의 양이 대략 내 손톱만큼이다. 그리고 이 손톱만큼의 화약을 중립 지역에서 사고자 한다면 금화 열 개는 줘야 하지.”
금화….
열 개?!
내 멍한 표정이 볼만했는지, 맥레인은 식은 웃음을 던졌다.
“그리고 이건 시작에 불과해, ‘발렉손의 숨결’이나 ‘아드빌다의 진분’같은 특수한 화약은 그보다 더 적은 양이 금화 백 개를 우습게 넘어.”
“허….”
“동쪽과 서쪽 도시에 기생하는, 자금줄이 충만한 기업형 범죄조직조차 화약을 소비하는 걸 극도로 꺼리는데 고작 중립 지역의 무법자 조직이 총을 쏜다?”
“불가능에 가까운 얘기군요.”
“그래, 우리가 완전 개 쌍놈 새끼들처럼 거쳐 가는 마을을 족족 약탈해도 가능할까 말까를 논해야 할 수준의 이야기야.”
맥레인은 이어서 허리에 손을 얹고 짝다리를 짚으며 특유의 껄렁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았다.
“용의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시대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난 지금. 총이라는 무기는 완전히 사장됐다 단언할 수 있어. 뭐 귀족 놈들이나 기업가 놈들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총알을 빵빵 쏴대겠지만. 근데 말했다시피 여긴 중립 지역이다. 그런 놈들이 이런 거친 곳에 올 리가 없지.”
그의 말에 난 말 없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왜.”
“궁금한 게 하나 더 생겼습니다.”
“뭔데.”
“아무리 그래도 화약이 총알에만 쓰인 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에 대한 대체재가 있긴 한 겁니까?”
“야.”
그의 표정이 순간 굳어진다.
“난 네 역사 선생님이 아니야, 얼간이 새끼야.”
그 모습에 나는 얼른 눈을 내리깔고 마른 침을 삼켜야만 했다.
맥레인은 그런 내게 낮은 한숨을 픽 내쉬더니,
“그래서 연금술사라는 것들이 용의 시대 이후에 나타난 거야. 그놈들이 만들려는 그 ‘금’의 의미는 금의 ‘가치’에 필적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고. 가장 쉽게 이해하려면 용의 시대 이후 사라진 것들을 만들려고 하는, 사이비 종교 집단 같은 또라이 새끼들이라고 생각해라.”
마지못해 내게 찬찬히 설명해주었다.
“어쨌든 그놈들은 마법사들이 흘린 불의 목소리나 탑에서 흘러나온 날씨의 파편 따위를 주워다 화약과 비슷한 것을 만들지, 그리고 그게 오늘에 이르러선 화약의 대체재로 쓰이는 거고. 그래 봤자 막 싸재낀 똥에 불과하지만, 나중에 가서도 그놈들이 만든 화약을 가지고 총을 쏠 생각은 하지 마라, 그걸로 총을 쐈다간 날아가는 건 총알이 아니라 네 팔일 테니까. 자, 이제 됐냐?”
더 질문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랬다간 그대로 두들겨 맞을 것 같아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앞서 상기한 이유로 너는 내게서 검을 배우게 될 거다. 왜 하필 검인지 궁금하지 않아?”
“궁금합니다.”
“그야 내가 검을 다루니까, 멍청한 새끼야.”
아하.
“큭큭.”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조이가 나지막이 웃는다.
“조이, 이제 좀 꺼져줬으면 하는데.”
“왜, 항상 내가 떠날 때면 아쉬워했잖나.”
“지금은 전혀 아쉬울 것 같지가 않아서 말이지.”
“난 정말 괜찮아, 조금 더 있다가 가도 돼.”
“너 말고 내가 안 괜찮다고.”
조이 덕분에 더욱 심기가 불편해진 맥레인은 이내 말없이 턱짓으로 날 가리켰다.
그런 그의 뜻을 알 리가 없는 난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이에 맥레인은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검 들어.”
“네.”
그의 말에 퍼뜩 상체를 바짝 올리고 양손으로 검자루를 쥐어 보였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는 맥레인의 표정은,
바라만 봐도 떫음이 입안에 느껴지는 과일을 보는 듯하다.
“자, 이것만 기억해라. 검은 탄성이야. 손도끼도, 철퇴도, 긴 창도 쉬이 가지지 못하는 탄성을 검이란 무기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지.”
꿀꺽.
드디어 본격적인 훈련의 시작인가.
그는 과연 내게,
처음부터 어떤 것을 가르칠까!
“그러니 우선 적으로.”
맥레인이 진지한 얼굴로 날 보며 말한다.
“뛰어.”
“예?”
“뛰라고, 몸에서 검을 떼지 말고 존나 뛰어.”
“어디를?”
“그냥 막 뛰어, 뒤질 때까지.”
맥레인이 이젠 날 쓰레기 보듯 하찮게 바라보며 매섭게 몰아붙인다.
“이 십새끼… 안 뛰어?!”
“뜁니다!”
언제 봐도 적응할 수 없는 매서운 눈빛.
그 눈빛에 쫓기듯 그대로 튀어 나간 나는 도착지 없는 긴 마라톤을 시작했다.
* * *
어스름이 발에 차일 정도로 깊어진 밤.
인중에 가득 찬 차갑고 축축한 액체는 내 땀일까, 콧물일까.
거친 숨에 헐어버린 가슴팍엔 고통을 넘어선 무언가가 체증처럼 남아 내 몸을 괴롭힌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눈꺼풀은 휘청거리며 쏟아지는데,
지금은 그 쏟아진 눈꺼풀 가죽마저 들어 올릴 힘조차 없다.
하지만,
난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영문도 모른 채 쫓기듯 뛰었다.
그러다 첫 번째 한계가 찾아왔고, 그대로 달리기를 멈출까도 잠깐 고민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스스로가 너무 웃긴 놈이 되어버리는 거야.
그래서 이 악물고 뛰었다.
첫 번째 한계는 오기로 버텼다.
입 밖으론 어느새 걸쭉한 침이 한 바가지 쏟아지고 있었고, 콧물에 뒤엉켜 반쯤 막힌 콧구멍은 숨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다음 한계는 손에 들린 검으로부터 찾아왔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가벼웠던 검이 점점 물에 분 것처럼 무거워지더니, 급기야 한 손으론 도저히 들 수 없을 만큼 버거워지는 게 아닌가?
그래서 두 팔로 끌어안고 뛰었다.
상체가 꺾이고, 허리엔 끊어질 듯한 통증이 내려앉고.
두 다리는 뜨겁다 못해 금방이라도 증발할 것만 같았지만.
그래, 그래도 나는 계속 뛰었다.
그렇게 또 한참을 극복하고 뛰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온몸이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햇살을 살펴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고,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을 만큼 편했다.
땀은 다 식어 말라 갔고, 콧속에 걸쭉하게 차 있던 콧물도 비쩍 말라 숨쉬기도 수월해졌다.
마치 앞으로 영원히 쭉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이.
나는 숲속을 돌고 또 돌았다.
그리고 그 짧았던 잠깐의 순간이 지난 뒤엔,
앞에서 느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버거움이 내 온몸을 옥죄었다.
그리고 그걸 느꼈을 때가 막,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을 때쯤이었다.
그 뒤론,
기억이 안 나.
그냥 지금 시도 때도 없이 내려앉는 눈꺼풀이 너무 성가실 뿐이야.
“흐으… 흐으….”
짧아진 호흡,
급격하게 무너져내리기 시작한 신체.
결국,
스르르 무너져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그 반동으로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놓쳤고.
쨍그랑.
바닥에 떨어진 검은,
마치 날 원망하듯 쨍쨍하게 울어대며 녹슨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흐으… 흐으….”
이윽고 토하다시피 숨을 고른 나는,
다시 묵묵히 떨어진 검을 주워들었다.
파르르,
검 자루를 집은 손이 떨린다.
이어 온몸이 달달 떨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다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 * *
[디안]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른다.
내 기억 속 가장 그립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디안]
천천히 그 부름에 답하듯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보인다.
날 내려다보고 있는,
소녀의 얼굴이.
아리아.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비에 젖은 세상처럼 윤기 나는 손톱과 봄녘의 구름처럼 하얀 손으로.
난 그런 그녀가 내민 손을 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팔을 뻗었다.
그리고 그 손과 맞닿으려는 순간.
* * *
“억!”
순간 발작이 일어난 것처럼,
불쑥 들린 상체.
급격하게 뛰는 심장.
동시에….
전에 한 번 느껴본 적이 있었던,
“어… 헉… 헉…!”
형용할 수 없는 가슴 속, 맹렬한 통증.
“꺽…!”
숨은커녕 입 밖으로 침이 질질 샐 정도로 끔찍한 통증에 몇 분을 몸서리쳤을까.
이내 서서히 통증이 줄어들고,
미친 듯이 뛰던 심장도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제야,
그 일말의 장면들이 모두 꿈이었음을 깨닫고 씁쓸한 허탈감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아까까지 온몸을 불태울 기세로 작렬하던 통증이 완전히 증발하듯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낡은 천막, 한구석에 놓인 안드레의 것으로 보이는 가죽 가방.
천천히 천막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니, 한창 요리에 열중하는 안나 아주머니가 보였다.
언제 캠프에 온 거지?
내 마지막 기억으론 분명….
숲에서 의식이 끊어지는 듯했는데.
그것보다,
어째서,
“어째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람처럼 가벼워진 몸.
며칠은 근육통에 시달려야 정상이었을 두 다리엔 그 어떤 거북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뿐만인가?
지친 기색조차 없어.
구태여 떠올리기조차 어색할 정도로.
내가 보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니,
세공소에서 이런 경험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다.
순간적으로,
내 몸이 너무나 이질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불쾌하지만, 한편으론 기분 좋은 위화감.
천천히 몸을 일으켜 천막 밖으로 나온 나는 이제 막 안나 아주머니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맥레인과 눈이 마주쳤다.
“어젠 아주 눈깔이 뒤집힌 채로 기절해있었다더니, 제법 정신을 빨리 차렸군?”
“맥레인 씨가 절 캠프로 데려와 준 겁니까?”
“천만에, 새벽에 정찰을 돌던 안드레가 널 데려왔어. 난 네가 그때까지도 뛰고 있을 줄 알았거든.”
무심한 맥레인의 말에 난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뜨기 전에 어제 왔던 곳으로 와라.”
“네, 맥레인 씨.”
얼빠진 내 모습이 탐탁지 않은지, 맥레인은 한동안 날 유심히 바라보다 이내 대충 안나 아주머니가 끓인 스튜를 비우고 캠프 밖을 나섰다.
“안녕, 디안.”
그 뒤로 눈을 뜬 케니가 역시나 버릇처럼 뒤에서 날 와락 안아 들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 케니.”
“음, 오늘은 뭔가 좀 다른데?”
“뭐가?”
“오늘 너에겐 밤 냄새가 나.”
“밤 냄새?”
“차갑게 식은 숲 냄새.”
그러면서 그녀는 또 내 귓가에 코를 파묻었다.
“…케니…?!”
그녀의 응석 덕분이었을까, 나는 순간 내 몸으로부터 느껴졌던 이질감을 싹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슬슬 산 너머로 해가 뜰 조짐이 보이기 직전,
어제 맥레인을 만났던 장소로 가기 무섭게,
그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맥레인이 연초를 태우며 내게 툭 던지듯 말했다.
“왔냐.”
“네.”
“그럼 뛰어, 검을 몸에서 떼지 말고.”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기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난 그가 기대하고 있던 것관 달리, 그저 고개를 끄덕인 뒤 군말 없이 숲속을 향해 달리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