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구름 위에서 (7)
점잖았던 자들은 가면을 쓰기 무섭게 돌변했다.
“뭐 하는 거야, 병신아!”
“얼른 싸워! 네 열정을 발산하란 말이야!”
더러운 욕설과 원색적인 비난.
“싸우지 않으면 다음 구름 위에 올라가는 건 네 마누라가 될 거다!”
“자식새끼들이 싸우는 것도 나쁘진 않지!”
귀에 담기 버거울 정도의 저주.
너무나 순식간에 바뀌어버린 그들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질 지경이다.
곧,
두 남자 중 하나가 그 노골적인 기류를 깨우친 듯.
“으… 으아아!!”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뻑!
이윽고 달려든 남자의 어설프게 휘두른 주먹이 상대편 광대에 꽂혔다.
그러자 사방에서 더욱 격해진 함성이 터져 나온다.
얼얼한 표정으로 나동그라진 남자는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자각했는지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일어섰다.
이내.
둘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싸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내 옆에 잠자코 있던 트와드 역시 가면 밖으로 드러난 이마에 굵직한 핏대를 세우며 열렬히 환호했다.
역하다.
두 남자로부터 느껴지는 땀과 피 냄새.
그걸 맡으며 광분하는 가면 쓴 자들의 숨결.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구나.
그런 내 심정을 알고 있다는 듯 매튜 아저씨가 말없이 슬쩍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덕분에 순간적으로 철렁 내려앉았던 마음을 추스를 순 있었지만,
두 눈에 담긴 광경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차려진 별미를 맛보는 미식가처럼.
무법의 한 가닥을 호로록 빨아먹는 저들의 모습에 어찌 적응할 수 있겠는가?
퍽, 퍽.
그 와중에 상위를 잡은 남자가 상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주먹을 퍼붓고 있었다.
“익…. 히익! 끽…!”
충격을 곧이곧대로 씹으며 튀어나오는 애처로운 신음.
“이 돼지 새끼야! 옆구리를 쳐! 갈비뼈를 부숴버리란 말이야!”
그 신음을 반주 삼아 터져 나오는 가면 쓴 자의 항의.
“아아악!”
그리고 그 항의와 동시에 터져 나오는 남자의 비명.
그건 상위를 잡은 남자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주먹을 쏟아붓던 와중, 땀과 피로 미끄러진 주먹이 옥 바닥에 꽂혔기 때문이다.
기형적으로 뒤틀린 손목, 이내 파르르 떨리는 어깨.
아래에서 두들겨 맞던 남자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생존 욕구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부러진 손목을 깨물었다.
“아윽…. 아아아아악!!!”
손목을 물린 이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반대쪽 손으로 남자의 정수리를 찍지만, 손목을 문 남자는 얼굴이 덜덜 떨릴 정도로 치악력을 부린다.
이내 얼이 빠지기 직전까지 내몰린, 손목 물린 남자는 전신을 한차례 파르르 떨더니 머리를 젖혀 그의 이마를 향해 내리찍었다.
쿵!
쿵!
틱,
투둑.
두 차례의 충격음과 함께 사방으로 쪼개져 구르는 이빨들.
“흐으으…!”하지만 이빨이 부서진 남자는 끝까지 오기를 부리며 주먹으로 상대 옆구리를 미친 듯이 후려쳤다.
드득.
끔찍한 소리,
그 소리에 반응하듯 튀어 오르는 상대의 상체.
이어 부서진 이를 드러내며 짐승처럼 달려든 남자는, 상대의 사타구니를 향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오우!”
“킥, 좋아 터트려버려!”
야만에 가까운 추임새, 그리고 사타구니를 공격받은 남자의 애처로운 울음.
이윽고 너덜거리는 이빨을 드러낸 채 상위를 잡은 남자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상대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꺽…. 꺼걱….”
어떻게든,
그 상황을 빠져나가려는 듯 두 손을 뻗어 몸부림쳐보지만,
상위를 잡은 남자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릴 뿐이다.
그렇게.
목이 졸린 남자의 몸부림이 멎었다.
그에 맞춰 홀 안을 가득 메운 기류는 매스꺼울 정도로 뜨거워져 있었다.
“흐… 윽… 히… 윽….”
상대의 죽음을 확인한 남자는 망연한 표정으로.
떨리는 손을 거두어,
슬피 울었다.
[와아!!!]
하지만 그 울음은,
가면 쓴 자들의 호기로운 함성에 금세 묻혀버렸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연륜을 무시할 순 없는 법이지!”
옆에 있던 트와드는 작게 쾌재를 부르며 크게 만족한 듯 여유롭게 한숨을 쉬었다.
“라이존트 가문은 이 게임에 열성적이어서 늘 상대하기가 꺼렸는데, 빈센님같은 귀한 분이 손님으로 오셔서 그런지 이렇게 이겨도 보는군요.”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구역질을 꾸역꾸역 참은 나는.
그런 그의 쾌재에 작게 웃으며 답했다.
“그것 참, 잘된 일이군요.”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마치 가면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트와드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침에 마셨던 물 때문인지 속이 매스껍군요.”
“국경지의 도시가 다 그렇지요, 얼른 나으셔야 할 텐데요.”
“바람을 좀 쐬면 괜찮아질 겁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참…. 방금 보여주신 것들 아주 잘 봤습니다.”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짧게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홀을 빠져나와 선미 부분에 작게 나 있는 난간을 향한 나는 얼른 가면을 벗어 목 안에 가득 차올랐던 역함을 내뱉는다.
“괜찮습니까, 도련님.”
그런 내 뒤를 어느새 바짝 쫓아온 매튜 아저씨는 천천히 내 등을 두들겨주었다.
“무법은 누군가에겐 생존의 문제이지만, 누군가에겐 장난감에 불과하기도 합니다.”
“대체 왜요.”
“글쎄요, 자기가 딛고 있는 계단의 높이가 어느 정도일까 확인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쥐고 있는 권력의 감촉을 실감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그 모든 걸 기저에 둔 채로 해대는 오만한 자위일 수도 있죠.”
고작 그 정도 이유.
늘 그렇듯, 내가 깎이고 고통 받았던 그 모든 일도.
고작 그 정도 이유였겠지.
매튜 아저씨는 날 위로하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미안합니다, 도련님. 이 땅 위에 이런 장면도 있다는 걸 미리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명백하게 따지고 보면 하늘 위인걸요. 그것마저 미리 알려주실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 미소 덕분일까.
난 금세 차분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맥레인이 보여준 부분이 있기도 하고.
그런 내 대답에 매튜 아저씨는 안심한 표정으로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 시몬 바스티유가 어떤 이유로 결성됐는지 아십니까?”
“아뇨. 어떤 이유인데요?”
“질투 때문입니다.”
“질투?”
“세상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고통, 강요, 시기, 슬픔, 공포 등등….”
내가 본 것들과 똑같구나.
매튜 아저씨는 씁쓸한 표정으로 구름 한 점을 눈가에 담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세상은 몇 사람들에겐 한없이 다정한 것들만 보여주기도 합니다.”
“세상에 대한 질투….”
“맞습니다, 도련님. 저희는 세상에 대한 질투심으로 모이게 됐습니다.”
이내 고개를 돌린 매튜 아저씨는 그 깊은 눈동자에 날 담고서 담담히 고백했다.
“저희는 세상이 보여주지 않았던 걸 쟁취합니다, 빼앗습니다. 세상으로부터 그것들을 본 자들에게서요.”
그의 주름진 손이 내 어깨를 포근히 감쌌다.
“기만해도 되는 삶을 본 자들에게선 기만을, 사치를 위시하는 삶을 본 자들에게선 사치를.”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내 표정을 묵묵히 지켜보던 매튜 아저씨는,
이내 내 어깨에서 손을 뗀 다음 하소연을 하듯 중얼거렸다.
“몇 사람들은 저희를 의적이라 말합니다. 또 몇 사람들은 거악의 무법자 집단이라 말하지요.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가족이라 말합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갔다.
그리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꿔 말하면, 우린 의적이 될 수도 있고 악인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는 거겠죠.”
매튜 아저씨가 눈가에 익살스러운 주름을 한가득 품고서 웃으셨다.
“그렇겠네요. 기왕이면 가족이 좋겠어요.”
마음이 한결 정돈된 기분이다.
“기분은 좀 어떠십니까, 도련님?”
그 물음에 곧바로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갑시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 * *
트와드는 가면 속에서 있는 힘껏 미간을 찌그러트렸다.
뭐가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
분명,
앞서 있던 공연에서 그는 불편한 기색을 보였었다.
고작 체한 것 가지고 나타날 기색은 아니었어.
아니면 그런 쪽으론 흥미가 없었나?
그럴 리가.
다르마야측에서 접근한 시점부터 그 이름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해왔었다.
확실히,
미천한 서열에 그 성격마저도 망나니에 가까운 셋째 자식을 자세히 묘사한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그러니까 다르마야 가문에서 빈센은 일종의 치부에 불과한 존재라는 거다.
하지만 그런 존재조차 더할 나위 없는 기회다.
기업가인 나는 물론이고 제법 이름 있는 귀족들조차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의심하는 것조차 버거운 기회!
애초에,
그의 얼굴을 보고 누가 의심할 수 있겠어!
변방의 신부도 그를 보면 발등에 입을 맞추면서 성자님 오셨네, 찬양할 거다.
솔직히 놀라긴 했다.
아무리 서열 꼴찌에 내쳐진 자식이라고 해도 그 외모면 가문의 얼굴로 쓰였을 텐데.
아니면 그쪽 왕실의 딸들을 홀려 혼사를 넘봐도 될 정도야.
황금이 좋긴 좋나 봐.
씨에 금칠이라도 한 걸까?
어쨌든,
지금은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
무슨 일인지 그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어.
혹시,
그가 끌고 다니던 시종에게 너무 노골적이었던 게 걸린 건가?
솔직히 그건 어쩔 수가 없잖아?
빈센과 비교돼서 더 그런진 몰라도 시온인지 맷인지 하는 시종 놈들은 하나같이 천한 것들의 냄새가 난다.
아 맞다, 그 중립지역에서 고용했다던 한 놈을 빼곤.
모두 다 퀴퀴하고 묵은 바람 냄새와 비릿한 건초 냄새를 물씬 풍겨왔으니까.
뭐, 중립지역을 오랫동안 여행했으니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는데.
그 특유의 천박한 행동들이 유독 내 눈을 거슬리게 하잖아.
만약 이것 때문이라면,
그가 돌아왔을 때 정식으로 사과해야겠어.
말이 날 위해 모인 자들이지,
내게서 기회가 떠나가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 기회를 채갈 놈들투성이다.
특히 아까 전 행사에서 망신을 당한 라이존트 놈은 흠 같은 걸 발견하려고 눈에 불을 켠 채 지켜보고 있을 거야.
“지금부터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물건들로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경매를 시작합니다!”
경매가 시작됐다.
빈센은 어딜 간 거야?!
“앤서니 트라이던트의 소장품들과 이곳에 모이신 여러분들의 자애로운 기부로 구성된 물건들은 감히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환불은 선택사항으로 고려되지 않을 정도로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종 하나가 구름에 가려진 햇빛을 담은 병을 들고 와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장내 조명이 일순간 느긋한 석양빛으로 일변했다.
“첫 번째 물건을 소개하겠습니다. 250곡의 노래를 온전히 기억해 부르고, 70여 가지의 이채로운 성 지식을 가진 귀 큰 자들입니다. 먼저 성별이 남자인 물건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소개가 끝나기 무섭게 가면 쓴 자들이 박수를 보낸다.
그 박수에 맞춰 차려진 단상 위로 조각 같은 몸을 가진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올라왔다.
그런 그의 왼쪽 관자놀이엔 흰 점 같은 흉터가 나 있었다.
“보다시피 최소 흉터로 시술을 마쳐 미관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금화 오천 개부터 시작합니다.”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에서 올라오는 흰 팻말.
트와드는 점점 초조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필 뿐이다.
그렇게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
“금화 6700개! 더 없습니까?!”
경매인이 첫 물건의 낙찰을 부르기 직전,
“만 개, 뒤에 나올 물건까지 합쳐서 이 만에 사지.”
감미로운 목소리가 뒤편에서 울려 퍼졌다.
몇몇은 그 목소리에 감탄을, 또 누군가는 그 내용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트와드는 그 둘 모두에 해당한 듯, 경악한 표정으로 가면을 벗은 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빈센을 바라봐야만 했다.
“빈… 센님?”
“이제 다들 답답한 가면은 벗으시지요, 방금 제게 보여주신 행사의 의미는 슬슬 간 보지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신호 아니었습니까?”
트와드의 얼굴에,
화색이 돋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뒤따르던 시온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말렸다.
“벌써 그러시면….”
“시온, 조용히 해. 트와드씨 이곳에 전서구 같은 건 당연히 있겠지요?”
“무… 물론이죠.”
“시온, 은행장에게 전서구를 보내. 미리 준비해 놓은 금화 50만 개를 국경도시로 이송하라고.”
“…빈센님.”
“두 번 말하지 않겠어.”
내겐 보여준 적 없는,
그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망나니에 가까운 살기 가득한 목소리가 트와드는 반갑기만 한지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아직도 가면을 쓸 겁니까?”
이어지는 빈센의 말에 장내의 사람들은 서둘러 가면을 벗기 시작했다.
“그럼 경매를 계속 시작합시다, 그리고 트와드씨. 당신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둘이서 긴밀하게.”
“그럼요, 그래야지요.”
“참, 경매인?”
“…예?”
“다음 올라올 물건에 미리 가격을 불러주지, 3만이다.”
장내가 순식간에 술렁인다.
그 술렁거림의 중심에 있는 트와드는,
생각한다.
씨발, 끝났다.
이제 나는 빈센이라는 기회를 붙잡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