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34화 (34/365)

34화. 구름 위에서 (11)

큰 구름을 지키던 호위병 셋이 맥없이 나가떨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꺄아악!”

“맙소사…!”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엔제이의 손에서 쏜살처럼 날아간 세 자루의 단검은 정확히 호위병 셋의 목에 박혀 있었다.

그런 그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다시 시선을 옮겼을 땐,

이미 맥레인이 다섯을 추가로 베어 넘긴 후였다.

그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아연실색하며 흩어져 도망쳤고, 그중 절반은 취기를 이기지 못해 여기저기 구르고 넘어지며 혼란을 가중했다.

그러는 와중에,

“빈센님!! 이쪽으로!!”

붉게 상기된 얼굴로 날 애타게 부르는 트와드의 모습이 보였다.

에르니 역시 그런 그의 뒤편에 꼭 붙어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일은 제가 해결합니다. 에르니를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가 있으세요.”

“하지만…!”

“어서! 어차피 놈들은 날 죽이지 못해. 아직도 모르겠어? 빨리 가서 선수를 돌리란 말이야! 어차피 우리가 이길 싸움이라고!”

내 닦달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트와드는 이제야 알았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알까?

자신도 앤서니 가문의 썩은 뿌리 중 하나가 될 거라는 걸.

아니 꿈에도 모르고 있을걸.

이성 위에 취기가 내려앉은 지금 내가 하는 말조차 바로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걸 보면 말이야.

그렇게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난 트와드가 에르니의 팔을 잡아채고 도망치려 하는데,

“기다릴게요, 빈센. 당신을 사랑하는 이 에르니가요!”

아직 떨어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에르니가 트와드에게 끌려가기 직전 애절한 목소리로 날 부른다.

안녕, 에르니.

만나서 즐거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

이내 앤서니 가문의 부녀를 끝으로 장내엔 서로 대치하고 서 있는 두 무리밖에 남지 않았다.

“어서 놈들을 포위해서 몰아!”

기세를 몰아 내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병사들에게 야단치기 무섭게 허리에 곡검을 차고 있던 친위대 하나가 선두로 나섰다.

“빈센님을 호위해라, 내가 정리하지.”

딱 봐도 느껴지는 흉흉한 살기, 검을 뽑아 드는 자세에서부터 느껴지는 달인의 기품.

이거 만만치 않은 상대겠다.

긴장감에 맥레인을 보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지만,

맥레인은 오히려 그를 무시한 채 주위에 있는 병사들의 머릿수를 세고 있었다.

그 모습에 검을 빼든 친위대는 일갈하듯 함성을 내지르며 맥레인에게 달려들었고,

칵!

하는 한 번의 쇳소리를 끝으로.

곡검과 사람의 손목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과정은 볼 수 없었다.

친위대의 몸에 가려진 탓에 맥레인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소리로도 알 수 있듯,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은 틀림없이 일 합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으… 으아악!!”

이윽고 잘린 손목을 부여잡고 그대로 주저앉은 친위대의 비명.

그리고 이어지는 맥레인의 가차 없는 칼질에,

울컥거리는 피와 함께 친위대의 고개가 푹 떨궈졌다.

그 광경에 방금까지 날 보호하고 있던 병사들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얼른 싸우란 말이야!”

그 동요에 기름을 붓듯, 좀 더 날 선 목소리로 그들을 자극하자.

결국엔 병사 대부분이 무기를 버리고 달아나버렸다.

이제 몇 남지 않은 친위대와 병사 무리는 더욱 사색이 되어 날 감싸기 시작한다.

“다르마야 가문과 어긋나서 좋을 건 하나도 없어. 어서 도련님을 넘겨라.”

시온이 매서운 표정으로 말하자 결국 친위대 하나가 대뜸 내 목덜미를 붙잡아 그 앞으로 질질 끌고 갔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이 개새끼들! 드디어 눈에 뵈는 게 없어지기 시작했나 보구나!”

최대한 몸부림을 치며 병사들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어보지만, 병사들은 그런 나를 경멸스럽게 바라볼 뿐.

그렇게 날 시온 앞에 내팽개친 친위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몇 남지 않은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목숨을 아끼고 싶거든 지금 일어난 일은 모두 잊어라. 우리는 저들과 대적하지 않는다.”

그 모습에 시온이 감탄한 듯 그에게 말했다.

“현명하군. 충의가 남아있는 병사들을 지키려는 네 모습에 감복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얼마 남지도 않은 저 진짜 병사들마저 잃게 될 테니까. 얼른 그분을 데리고 이곳에서 꺼져라.”

“그러지.”

“경고하는데, 지금 이곳의 병사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금세 병력을 추스르고 다시 너희들을 공격할 거다.”

“왜 우릴 걱정 해주지?”

“그쪽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모시는 앤서니 가문을 너희 다르마야라는 가문으로부터 지키려는 것뿐이야.”

“그래, 알겠다.”

둘의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친위대는 병사들을 데리고 장내를 빠르게 벗어났다.

맥레인은 그것을 잠자코 보고 있다가 이내 품에서 연초를 꺼내 물었다.

“그럼 시작하자고.”

감색 연기를 내뱉으며 낮은 목소리를 낸 그의 말을 끝으로, 매튜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수고했어, 디안.”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그들을 본명으로 부르고 싶었는지.

“네, 매튜 아저씨.”

손을 잡기 무섭게 매튜 아저씨는 단숨에 날 일으켜 세웠다.

촙과 안드레는 막 일어선 내게 다가와 몸에 묻은 먼지를 손수 털어주었다.

“제법인데, 무법자.”

촙의 대견하다는 듯한 말과,

“월주도 한 병 챙겨가자, 오늘 밤에 셋이서만 모여서 마시자고.”

벌써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안드레의 말에 절로 입가가 올라간다.

“자 빨리빨리 움직이자! 맥레인과 엔제이는 시간을 벌어, 우리는 물건을 챙긴다.”

보스가 손뼉을 치며 우리 모두에게 명령을 내리기 무섭게 맥레인이 엔제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엔제이, 제발 병신 짓 하지 말고 맡은 일이나 하자고. 응?”

“걱정하지 마.”

* * *

슬슬 기류가 심상치 않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아챈 맥레인이 짙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사방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그의 예민한 귀에 포착되었다.

그 발소리들은,

하나같이 사슬을 두른 듯 짤각거리는 쇳소리가 났으며.

무엇보다,

그 움직이는 소리가 체계적이었다.

그럼 이제 맥레인은 곰곰이 생각하며 저 발소리에 대해 통찰한다.

덤으로 그 통찰에 보탬이 되어줄 연초를 흠뻑 빨면서.

‘빈센이 우리 쪽에 넘어간 걸 알아채면 섣불리 총을 쓰진 않겠지. 애초에 떠다니는 기체 안에서 그런 짓을 섣불리 하지도 않을 테지만.’

습.

‘제법 중무장한 발소리를 들어보면 구름 내부를 돌아다닐 때 보지 못했던 병사들인 것 같고.’

후.

‘애초에 이곳에 주둔해 있던 병사들의 무장은 형편없었어, 그렇담 지금 이 발소리를 내는 놈들은 앤서니 가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아니야.’

습.

‘우리가 확인할 수 없었던 장소에 가문이 고용한 용병 놈들이 주둔하고 있었나 보군. 꼴에 기업가라고 보험을 들어놓은 건가.’

후.

생각을 마친 맥레인이 다 닳은 연초를 바닥에 튕기며 엔제이를 살피기 위해 반대쪽 테이블을 살펴보다가.

이내 표정을 있는 힘껏 일그러트려야 했다.

왜냐하면,

그는 테이블에 어지럽혀져 있는 각종 고급스러운 음식과 샴페인을 쥐새끼처럼 집어먹고 있었으니까.

“엔제이! 뭐 하는 거야!”

“이런 걸 언제 또 먹어보겠어?”

“오늘은 네가 싼 똥에 절대로 넘어져 주지 않을 거니까 그렇게 알아.”

“알겠어, 알겠…, 컥.”

급하게 대답하던 엔제이가 목에 걸린 음식에 연신 기침을 하다 술이 담긴 잔을 허겁지겁 비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명심해! 총은 금지다! 샌님 같은 도련님을 구출하고 나머지는 생포해라,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홀에 다다른 용병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들이 채 홀에 모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맥레인은 이미 그들을 향해 매섭게 달려들고 있었다.

‘쓰는 무기는 팔카타, 도끼에 가까운 도검.’

‘대부분이 우라드제 갬비슨을 입었고, 소수만이 그 위에 체인메일을 둘렀다.’

‘아키드에서 배 타고 건너온 용병’

짧은 시간,

눈에 들어온 모든 것들을 파악한 맥레인의 손에서 이내 그들이 극복할 수 없는 상극의 검술이 펼쳐진다.

상단에서부터 빗겨 내려오는 검술에 순식간에 용병 셋의 면상이 넝마가 되어 쓰러지고.

뒤이어 달려드는 병사의 목엔,

기막힌 타이밍에 날아온 단검이 박힌다.

이미 바람을 가르는 단검 소리를 포착한 맥레인은 그런 그들에게 그 어떤 행동도 낭비하지 않았다.

맥레인이 스탭을 밟으며 몇 발자국 이동하면,

“아악, 젠장!! 내 눈이…!!”

“소… 손이 내 손이!”

급소를 공격당해 재기불능에 빠진 용병들의 곡소리가 연신 울려 퍼진다.

그러나 그 야성이 늑대의 것을 닮은 용병들 몇은,

이미 그 둘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을 찾으러 빠르게 이동한 뒤였다.

* * *

흐르는 공기에서부터 부쩍 소란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

맥레인과 엔제이가 한바탕 싸우고 있는 걸까.

그 생각을 하며 이제 막 안드레와 함께 전시되어 있던 짐승의 박제품을 보따리 안에 담았다.

“디안, 이곳은 이제 내가 할 테니까 일단 중요한 것부터 미리 챙겨 놔.”

이어 안드레가 곧장 구석에 전시된 물건들을 가리키며 말했고, 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그것을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주위에 만연한 모든 빛을 흠뻑 빨아들이는 듯한 검을.

조심스럽게,

그 자루에 손을 얹으려는데.

“놈들이다!”

저 멀리서 낯선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들려왔을 적엔 이미 병사 셋이 매튜 아저씨를 붙들고 있었다.

주위에 둘 정도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면 이미 매튜 아저씨가 그들을 제압한 듯 보였지만.

그 덕에 자극을 받은 셋 중 하나가 매튜 아저씨를 향해 검을…,

생각하길 멈추었다.

이미 내 손엔 검이 붙들려 있었다.

바닥을 치달아,

짙게 깔린 구름을 가르며,

숲을 뛰어다니며 얻은 감각들을 폭발시켜.

선?

점?

모른다.

맥레인이 보여줬던 그런 것들을 똑같이 그릴 수는 없다.

그래,

내가 그릴 수 있는 걸 그리면 되는 거야.

의식을 따돌린 본능의 움직임으로 몸은 이미 적들의 지척에 도달해 있었고.

뒤늦게 따라온 의식이 검을 잡은 손에 확신을 부여한다.

* * *

맥레인과 엔제이는 다급한 표정으로 동료들이 있는 곳을 향해 뛰어갔다.

이미 그들의 뒤편엔 수많은 시체와 곧 그렇게 될 것들이 낙엽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이내 다다른 곳에서,

맥레인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서 펼쳐진 절체절명의 순간.

매튜의 목숨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그 순간.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앞선 그였지만.

이내,

더 경악스러운 것을 목격해야만 했다.

디안,

녀석이 엄청난 속력으로 치달아 매튜를 붙잡은 셋을 베어 넘겨버린 거다.

“워허, 씨발 저게 뭐야?!”

옆에서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엔제이는 진심이 담긴 감탄을 내뱉었다.

감탄을 내뱉을 만하다.

검술에 무지한 자조차 방금 그 장면은 대단해 보였을 테니까.

그래서 맥레인은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천재라 불리는 자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지.

점과 선만을 알려주었을 뿐인데 그걸 가지고 명화를 그려내는 자들.

그런데,

그 천재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고 들어본 적이 있다.

들어만 봤다.

‘지금까지는.’

하지만 이제 알겠다.

그게 무엇을 말하는 건지를.

점과 선만을 알려주었을 뿐인데,

명화를 넘어서 한 ‘유파’를 창조해내는 자.

천재를 넘어서,

사조를 만들어내는 창조자.

그걸 말하는 거였다.

디안.

네가 그런 존재였어.

* * *

“이제 얼른 마무리 짓자고! 안드레!”

“보… 보여요 보여! 보라색 꽁지깃! 골다스 종!”

차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안드레가 별안간 난리를 친다.

그에 맞춰 촙과 나는 묵묵히 물건들이 가득 담긴 보따리를 끌었다.

이윽고,

차창 너머 위태롭게 날아오는 조각 배, 아니 조각구름이라고 해야 맞는 말일 것 같은 것이 이쪽으로 접근해왔다.

거기엔 반가운 얼굴이 타고 있었다.

포키스.

그가 능수능란하게 키를 잡아 조각구름을 큰 구름 옆에 밀착시켰다.

그렇게 우리는 가득 챙긴 물건과 함께 조각구름에 옮겨타 큰 구름에서부터 떨어졌다.

하지만 그 순간,

큰 구름에서부터 포화가 떨어졌고.

우리가 타고 있던 배 후미에 그중 하나가 직격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매튜 아저씨의 위급한 목소리,

“촙, 우리가 날고 있어!”

“추락하는 거야 병신아!”

이어지는 촙과 안드레의 정신없는 대화.

그 사이에서 본능적으로 큰 구름 쪽을 살펴보던 나는,

이내 누군가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큰 구름 한 편에 작게 돌출된 난간.

그곳에,

트와드가 날 죽일듯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다.

이제 모든 진상을 알았겠지.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니,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트와드는 손에 들고 있던 것으로 날 조준했다.

그것은,

그랬지.

앤서니 가문의 가보.

이내 그가 들고 있던 총구에서 보랏빛 화염이 일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서서히 내 몸이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디안?”

추락하는 조각구름에 정신이 팔려있던 가족 중.

제일 먼저 상황을 파악한 맥레인이,

점점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 들어온다.

“커흑….”

뜨겁다.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야.

“뭐야…, 이거…, 발렉손의 숨결이잖아.”

내 옷을 찢어 상처를 살핀 맥레인의 표정이 돌처럼 굳는다.

그리고 그 직후,

내 시야는 완전히 어둠에 잠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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