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35화 (35/365)

35화. 재

칼 만스타인.

만스타인 세공소의 제일가는 세공사이자 동시에 그 주인이기도 한 남자.

누구도 쉬이 발을 들일 수 없을 만큼 깊은 숲.

그곳에서 은밀하고 아름다운 세공소를 구축한 그는 거리낌 없이 광적으로 집착했던 미적 가치에 목을 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광적인 집착이 만들어낸 첫 번째 결실을 앞에 두고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일어서.”

칼의 말에 첫 번째 결실이 순종적인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순간에도 그것은 자신의 몸에 닿은 모든 빛을 찬란히 쪼개고 있었다.

“웃어.”

이어지는 그의 지시에,

첫 번째 결실이 활짝 웃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칼은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으로 한참이나 그것을 지켜보다가,

이내 쇠줄을 들고 와 웃고 있는 결실의 한쪽 광대와 볼을 가차 없이 깎았다.

서걱서걱.

서걱서걱.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소리가 방안에 가득 울렸지만,

첫 번째 결실은 짓고 있던 미소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유리 같은 피부가 깎이고 안에서 선홍에 가까운 핏물이 흘렀음에도 작은 신음조차 내지 않는다.

이윽고 작업이 끝났는지 쇠줄을 내려놓은 칼이 웃고 있는 그것을 보며 만족한 듯 경직되었던 표정을 풀었다.

“해가 떨어지겠어, 얼른 방으로 돌아가.”

* * *

이벤 힉스는 만스타인 세공소의 보안을 책임지는 자였다.

그는 용병 출신이었으며 모든 행동이 거칠었고 역겨울 만큼 심각한 가학성애자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 전체에 가득한 흉터는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그는 칼 만스타인이 없을 때만큼은 세공소에서 말 그대로 왕처럼 행동했고, 그 일련의 과정에서 거리낌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칼 만스타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어서 함부로 최고 등급의 보석을 손댈 수는 없었다.

물론 이벤 힉스는 그것에 손대지 않고도 얼마든지 그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었다.

칼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 날엔 그는 언제나 첫 번째 결실을 불러와 노래를 시켰다.

다섯 번의 세공을 거친 그 보석의 목소리는 은하수처럼 대체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 * *

아주 오랫동안 자릴 비웠던 칼이 호화스러운 마차와 함께 세공소로 돌아왔다.

그 마차엔 거대한 빈 상자 하나가 실려있었다.

그 상자가 얼마나 특별한 물건이었는지, 몇 세공사들은 그 상자의 대단함에 대해 떠벌리고 다닐 정도였다.

명장인 네 난쟁이가 달려들어 만든 상자다,

어떤 불꽃에도 타지 않는다더라,

상자를 닫는 순간 자물쇠가 자동으로 잠긴단다,

가장 특별한 보석을 담을 함이 될 것이라면서.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 한 사람이 세공소에 방문했다.

방문의 이유는 자신이 구매하기로 한 보석을 확인하기 위해서.

길고 흰 머리카락,

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

그 찬란한 빛깔들과 대비되는 주름진 잿빛 피부를 가진 방문자는 한참이나 고심하더니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좀 더 완벽하게 보관해야겠다 말하며 첫 번째 결실에 대한 의뢰를 취소했다.

* * *

이벤 힉스는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깨짐을 기다리는 여인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의 보석이 가치를 잃고 깨져갔기에 이런 이벤 힉스의 행동에 그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방식으로 하루에 한 번씩,

깨짐만을 기다리는 여인 하나를 골라 최대한 희롱하며 본인의 욕구를 채웠다.

그 당시 그는 인간이 아닌 짐승에 가까웠다.

마찬가지로 칼 만스타인의 광기는 말릴 수 없을 지경에 까지 도달해 있었다.

첫 번째 결실이 이룬 사례를 이용해 하루에 적게는 수십, 많게는 백에 가까운 이들을 깎고 세공했을 정도로.

이는 방문자가 제시한 새로운 목표와,

그 목표에 공감한 만스타인의 집착이 낳은 결과이리라.

그렇게 세공소에 켜켜이 쌓여만 가던 비명 속에서.

드디어 두 번째 결실이 탄생했다.

구매자는 그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와 그 결실을 보았고,

이 모든 걸 해낸 칼 만스타인에게 어떤 가능성을 봤는지 추가로 위험한 배팅을 제시했다.

그만큼 구매자는 절박했고 그렇게 보였었으니까.

자신의 물건을 저 영원히 불변하지 않을 보석에 담아달라고.

인간 세공사에겐 미지에 가까운 그 위험천만한 의뢰에,

칼 만스타인은 오히려 흔쾌히 수락했다.

* * *

일전에 가져왔던 그 대단하다는 상자는 세공소 어느 한구석에 팽개쳐져 있었다.

첫 번째 결실이 받아야 했던 취급과 똑같아진 것이다.

이제 세공소엔 단 하나의 비명만이 울려 퍼졌다.

다른 보석들은 이미 다 팔리거나 깨진 뒤였기에 그 비명이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작은 방 안에 갇힌 채 방치되고 있었던 첫 번째 결실은 그 비명에 괴로워했다.

아주 많이 괴로워했어.

그런 그 괴로움의 냄새를 맡았을까.

이벤 힉스는 얼굴의 흉터를 움찔거리며 찾아와 괴로움에 젖은 그에게 쉴 새 없이 지껄였다.

곧 그녀가 깨질 것 같다고.

그럼 자기가 그런 그녀를 가지고 놀 수 있을 거라고.

자기 인생 최고의 순간이 될 거라고.

비명을 반주 삼아 문 너머에 갇혀있는 그에게 괴로움을 주입하는 건.

이벤 힉스에겐 최고의 놀이였다.

* * *

날기를 갈망하던 새가 날개를 다쳐가며 새장을 빠져나온 것처럼.

그는 기어코 몸부림을 쳐가며 갇혀있던 방에서 나오는 데에 성공했다.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그의 양 뺨엔 굳은 눈물이 작은 수정이 되어 붙어 있을 정도였다.

한쪽 손목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었고,

반대쪽 손은 모든 손가락이 뒤틀린 채였다.

그렇게 그는 달려갔다.

* * *

그녀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게 없었던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내게 부탁했다.

편하게,

자길 편하게 해달라고.

그 부탁이 너무나 절실해 보여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어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작은 수술칼을 들어 그녀의 심장을 찔렀다.

아리아는,

웃으면서 눈감았다.

마지막까지 날 바라봐 주다가 편안히 눈감았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작은 솥에 꾸역꾸역 담긴 채로 팔팔 끓는 것 같아.

아니, 이미 다 기화해서 뿌연 증오와 매캐한 분노만이 남아 허망한 가슴 속을 떠다니고 있어.

어느 순간 몸의 떨림이 멈췄다.

뿌연 증오와 매캐한 분노 역시 서서히 흩어졌다.

남은 거라곤,

다 타버리고 남은 재와,

그것을 닮은 초라한 악의뿐.

본능적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곳엔 이제 막 아리아와 하나가 될 준비를 마치고 칼 만스타인의 손길만을 기다리는,

검은 물체가 놓여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악의는 무엇일까.

고민은 하지 않았다.

난 그것을 집어 들고 가차 없이 씹었다.

이빨로 잘게 부쉈고 억척스럽게 목 뒤로 넘겨버렸다.

충격에 턱 한쪽이 나가고, 파편화된 이빨이 우수수 쏟아졌지만.

의식 없는 바위가 그저 바람결에 넘어져 아래에 있던 생명을 앗아가듯.

난 그것을 찢고 조각내어 끝내 모두 삼켜 이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고작,

내가 이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악의의 전부라는 것에 통감하며.

허무함에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이제 멀리서 다급하게 뛰어오는 여러 발소리가 들린다.

이벤 힉스의 기대 찬 흥얼거림, 칼 만스타인의 광적인 신경질.

당황한 세공사들의 주절거림까지.

이윽고 그들이 현장에 들이닥쳤고,

동시에 그들의 모든 표정이 싹 굳어버렸다.

어느 것 하나 건질 것 없는 그 수렁을 보고 누가 태연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겠는가?

우스웠다.

그 모습이 너무나 우스워 절로 흥얼거림이 나왔다.

“제레니아, 당신은 날갯짓이 그려낸 바람결처럼.”

조각난 이빨 사이로 흘러나오는 환희의 노랫소리.

“날리는 꽃잎이 쓰다듬은 바람결처럼.”

곧이어 이벤 힉스가 격앙된 표정으로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내게 다가와 주실 수는 없나요?”

이윽고 거침없는 손길로 내 머리채를 잡았다.

내게 잡힐 머리카락이 남아있었던가.

그러고 보니,

유리와 같았던 피부가 대부분 사람의 살결로 돌아와 있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난 분노하는 이벤 힉스의 얼굴을 노려보며 노래를 이어갔다.

내 노래 좋아했잖아.

실컷 들려줄게.

“나는 언제나 그대 날갯짓에 무너지는 바람, 그대 향기에 망가지는 바람.”

내 농락에 칼 만스타인의 만류에도 흥분을 참지 못한 이벤 힉스가 품에서 단검을 꺼내 번쩍 들어 올렸다.

“멀어지는 건 왜 그대의 몫인가요, 다가가는 건 왜 나의 몫인가요. 대답해 주오, 제레니아.”

이어서 그 단검이 내 목을 향해 내려꽂히기 직전.

마치 세상이 내 바람을 듣고 반응한 것처럼.

이질적이고 고혹적인 불꽃이 내 몸을 기점으로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굶주림을 형상화한 것처럼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태웠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말도 안 되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목청이 터질 듯 비명을 질러대야만 했지만,

잔인하기도 하지.

검은 불꽃은 아주 천천히 느긋하게 그들을 태웠다.

내 의사를 반영이라도 해준 듯이.

이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들의 비명을 반주 삼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처 없이 타오르는 세공소 안을 거닐었다.

이미 신체는 보석이 아닌 사람의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다고 나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리아, 나는 사람이 맞는 걸까.

나는….

모르겠어.

그렇게 도달한 세공소의 한구석.

검은 불꽃에도 그 모습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상자를 발견한 나는,

조용히.

그 상자로 들어가 세상으로부터 숨었다.

* * *

박동하는 심장이 느껴진다.

그런데 예전과는 다른 느낌.

한 번씩 뛰어야 할 심장이 두 번에 걸쳐 요란스럽게 두근거린다.

그 박동이 너무나 이질적이고 강한 것이어서,

처음 몇 번은 상체 전부가 그 박동에 맞춰 움찔거릴 정도였다.

머릿속엔,

꺼져 있던 촛불이 밝게 켜져 있었다.

그럼에도 등잔 밑은 어두웠지만, 중요한 건 그 외에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명확하게 드러났다는 거다.

그러다 문득.

가장 최근의 기억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여러 장의 그림을 빠르게 넘기듯 흘러간 그 마지막엔,

그랬지.

난 총을 맞았었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마치 오랫동안 숨어 있었던 상자가 활짝 열렸던 것처럼.

그러자 모든 몸의 감각이 일깨워져 주변의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덜그럭덜그럭.

출렁이는 천막,

요란스럽게 흔들리는 마차.

마차 뒤편에 정성껏 마련된 공간.

그 안에 가지런히 누워있던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구석에 딱 달라붙은 채 둘이서 엉겨 붙어 잠을 청하고 있는 촙과 안드레가 보였다.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여러 권의 책이 널브러진 가운데 비질라가 곤히 잠들어 있구나.

슬쩍,

상체를 일으켜 세운 나는 곧바로 심장 부근을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아직 덜 마른 약재를 품은 채 꽁꽁 묶여있는 붕대가 느껴졌다.

그것을 살짝 젖혀 맨살을 더듬어보니,

손끝에 이질적인 것이 만져졌다.

피부 위로 울긋불긋하게 솟은 그것은,

흉터.

내 몸에 흉터가 남아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냥 뭔가,

그 이질적이고 생생한 기억 속 내 모습으로부터,

내가 사람임을, 그런 존재임을 증명해주는 것 같아서.

그러면서도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얼른 마차의 천막을 조심스레 걷었다.

순간 천막 너머로 새파란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 뒤로 시원한 숲의 향기, 새들의 지저귐이 아직 덜 깨어있던 내 오감을 확 깨운다.

“어?!”

그러다가 내가 타고 있던 마차 뒤를 바짝 쫓고 있던 엔제이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어어어?!!”

당황하며 입에 머금고 있던 견과류를 튀겨내던 그가 입술을 파르르 떤다.

“어어어!! 일어났다!! 일어났어!!”

양 뺨을 붉게 물들이며 수염을 실룩거리던 엔제이가 꽥꽥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동시에 앞에서부터 덜그럭거리며 이동하던 마차가 순서대로 멈춰 섰다.

“뭐야, 엔제이!”

저 앞에서 들려오는 매튜 아저씨의 목소리.

“뭐가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답하는 재키.

그리고 익숙한 연초 냄새.

“디안! 디안! 너 괜찮아?!”

엔제이가 허겁지겁 마차에서 내려 뒤뚱뒤뚱 내게 달려왔다.

그런 엔제이의 목소리에,

저 앞에서부터 부쩍 바빠진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가 어찌나 듣기 좋은지,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순식간에 시몬과 매튜 아저씨, 맥레인을 선두로 모두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오…, 이런…,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매튜 아저씨가 얼른 마차에 올라와 날 살피더니 눈물을 글썽이신다.

“심장을 관통당했는데도 멀쩡한 사람은 지금껏 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중얼거리시던 안나 아주머니는 끝내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소란에 뒤늦게 깬 촙과 안드레가 불쑥 뒤에서 달려들었다.

“뭐야 디안!”

“이런 씨발, 내가 말했잖아 디안은 금방 일어날 거라고!”

비질라도 조용히 일어나 날 보고 웃고 있었다.

“너에게 해줄 얘기가 많아, 디안.”

“촙,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디안은 이제 막 일어났잖니.”

흥분한 촙을 진정시킨 매튜 아저씨가 인자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돌아와서 기뻐, 디안. 가는 길이 멀어. 우선은 조금 더 쉬도록 해.”

“어디로 가는 거죠?”

“남쪽으로, 햇살이 달아오를 때까지. 그리고 그 뜨거움에 질려 우릴 뒤따라오던 놈들이 나가떨어질 때까지.”

그 말을 끝으로, 마차의 행렬은 다시금 삐걱거리며 움직인다.

그러는 와중에,

마지막까지 잠자코 서 있던 맥레인이 다 핀 연초를 바닥에 버리며 슬쩍 모자를 잡고 내게 인사했다.

“잘 돌아왔어, 디안.”

처음이다.

그가 진심으로 내 이름을 불러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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