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78화 (78/365)

78화. 불한당

그는 별의 신봉자이자 술 중독자였다.

그는 밤마다 늘 취해있었고, 그렇게 취중의 어질러진 정신머리로는 항상 별을 찬양해댔다.

그에게 그런 행위는 일종의 면죄부를 부여받는 것과 같아서,

술에 취해 이름도 모르는 별에 대해 몇 시간이고 고성방가하는 날이면 어떤 짓이든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렇게 그는 늘 그랬던 것처럼,

별에 대한 찬양을 대가로 자식을 겁탈하려 했다.

그러나 유독 추웠던 그 날 밤만큼은 달랐다.

언제나 그맘때쯤이면 시체처럼 가만히 있던 소년은 품에 담고 있던 날카로운 나무 조각을 서슴없이 휘둘렀다.

자신을 겁탈하려는 아버지란 탈을 쓴 괴물의 목을 향해.

꿀렁꿀렁.

구멍 난 목에서 별에 대한 찬양 대신 피가 쏟아져 나온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소년은,

생애 처음으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완전히 혼자가 되어버린 소년은 제일 먼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쟁취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세상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었으며 그 어떤 가난한 자들일지라도 거창하기가 공평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그래,

소년은 ‘이름’을 갖기로 결심했다.

마침 그에겐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세상 모든 아이를 친구로 둘 정도로 대단한 녀석이었다.

그 녀석은,

용의 시대.

아이들에게 환상을 만들어 팔던 기업.

디르픽이 그려낸 멋있고 다재다능한 난쟁이.

소년은 그 난쟁이의 이름을 빼앗기로 했다.

그래도 그 난쟁이는 불평하지 않을 테니까.

언제나 자신을 다정하게 보듬어주던 난쟁이였으니까.

그래서 소년은 드디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소년의 이름은 ‘재키’

재키는 다정하고, 또 해결 못 하는 일이 없었으며.

그 어떤 상대를 만나도 지지 않는 천하무적의 탕아여야만 해.

그래야 ‘재키’니까.

* * *

쾅.

콰릉.

수동적으로 맞부딪친 구름 사이에서 반짝이는 비명이 울렸다.

그에 맞춰 신랄한 꿈에서 깬 사내는 침묵을 유지한 채 흘러내린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어 올렸다.

발가벗은 그의 몸엔 수많은 상징을 담은 문신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고, 그러한 문신이 새겨진 육체엔 신경질적으로 깡마른 근육이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재키.”

이윽고 요염한 여인의 목소리가 일어난 재키 머리맡에서 들려온다.

이에 고개를 돌린 재키의 시선에 한 여인이 맞물렸다.

경계 없이 풀어헤친 붉은 곱슬머리, 아담한 어깨 위로 두툼하게 얹어진 말랑거리는 살결.

그리고 아래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젖가슴.

포근함보다는 비적거리는 끈적함만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여인은 곧이어 익숙한 모습으로 재키의 목을 휘감아왔다.

“또 같은 꿈이야? 아니면 보스 생각에 밤잠이라도 설치셨나?”

“닥쳐, 디디.”

“가족한테 이렇게 매정해도 되는 거야?”

“가족이니까 그래도 돼.”

심드렁한 재키의 반응에 디디는 미간을 찌푸리며 넝마에 가까운 이불을 집어 신경질적으로 뒤집어썼다.

“잊지마, 재키. 너의 가족은 우리 ‘그리소’뿐이라는 걸.”

“그래서 내가 이렇게 왔잖아. 보스를 데리고 말이야.”

“도대체 뭐 때문에 그를 보스로 떠받들게 된 건데?!”

이불 속에서 사납게 외치던 디디에게 재키는 다 찌그러진 연초를 입에 물고선 그녀의 머리 부분을 쓰다듬었다.

“곧 알게 될 거야.”

텁텁한 연기를 내뱉으며 바지를 대충 걸친 재키가 밖으로 나섰을 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이름 모를 숲.

그 깊은 곳에 펼쳐놓은 움막.

라티아의 일이 끝난 직후 재키의 부름에 응답한 가족들이 한곳에 모여있다.

이어 다른 움막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한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장대한 체격.

시원스럽게 넘긴 머리.

호쾌한 이목구비를 가진 얼굴을 한 그는,

지금 중립지역 전체가 쫓고 있는 남자다.

“재키, 수배에 대한 건 알아봤나?”

다가오는 재키를 향해 시몬이 무표정한 얼굴로 묻는다.

그러자 재키는 연초를 바닥에 내던지며 미끄러지듯 이마 위로 쏟아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예상대로 앤서니 트라이던트 새끼들이 본격적으로 개를 푼 모양입니다. 근데 웃긴 게 뭔지 압니까?”

“뭔데?”

“그 고집 센 기업가 놈이 글쎄 라티아에 관련된 귀족 놈들에게 우리 얼굴을 절대 안 팔려 했다는 겁니다.”

“본인 수중에 우리가 들어와야 한다 이 말인가?”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놈들에겐 범인 찾기가 가장 중요한 문제잖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부정에 관련해 일어난 대대적인 숙청에서 절대로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요.”

“무법자도 구원자가 될 수 있군, 의미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야.”

말끝을 흐린 시몬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포키스와 안드레 쪽은?”

“골 때립니다. 애초에 내 가족, 아니 지금은 명색이 ‘우리 보스’의 가족인 그리소 애들로는 찾는 데 한계가 있어요. 그들이 살아있다면 한껏 움츠러든 채 더욱 경계할 테니 시몬 바스티유가 아닌 이상 발견해도 접촉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거고요.”

재키는 이어서 숨 돌릴 시간조차 없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보스. 시몬 바스티유는 생각보다 강하잖습니까? 솔직히 띠껍긴 하지만 맥레인의 실력을 보면 그놈도 어디선가 잘 살아서 우릴 찾을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그래, 재키. 알아. 그래서 다시 한번 네게 고맙다고 말해야겠군. 네 가족이 아니었다면 시간을 벌기 힘들었을 거야.”

“말했잖아요. 그리소도 이제 보스의 가족이라고.”

말을 마친 재키는 눈 밑에 새겨 넣은 검은 점이 무색해 보일 정도로 싱긋 웃어 보였다.

이어서 재키는 시몬에게 보란 듯이 움막 주위를 돌아다니며 마주치는 이들에게 시몬에 대한 존경을 보이도록 했다.

그리고 그러한 인사가 대충 끝날 무렵,

새똥과 깃털로 범벅이 된 누더기를 걸친 한 사내가 바쁘게 달려왔다.

“보…, 아니 재키!”

“무슨 일이야?”

“어제 말했던 그 건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재키는 그를 데리고 곧바로 시몬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재키? 무슨 일이지?”

그런 그의 모습에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시몬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 묻자,

“보스, 어제 나눴던 이야기에 관련된 일입니다.”

재키는 눈을 번뜩이며 차분히 설명을 이었다.

* * *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이었을까.

어느 황무지를 통과하고 있었을 때쯤 시몬은 그리소 일당과 마주쳤다.

그리소 일당은 말 그대로 순혈에 가까운 무법자들로 구성된 거친 자들이었으며, 반대로 시몬 바스티유는 거칠었지만 그만큼 유대감으로 뭉친 조직이었다.

그런 성향이 극과 극인 그들이 서로 마주하고서도 용케 적대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당시 그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개 같은 상황에 처해있었다는 것.

비록 성향이 다를지언정 중립지역에서 무법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진 상황이란 건 별다를 게 없었고.

그로 인해 서로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게 된 것이다.

결정적으로 큰 건에 해당하는 작업을 같이하게 되면서 시몬은 일당을 이끄는 재키에게,

재키는 조직을 이끄는 시몬에게 서로 끌린 거다.

그리고 시몬은 잠깐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지금 현재, 또다시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재키는,

그래.

재키는 막힘이 없다.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오로지 그의 의지 하나뿐.

그리소 일당은 그런 그의 의지를 밀어주는 받침대 역할을 묵묵히 해낼 뿐이다.

반목과 충돌이 오가는 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시몬 바스티유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시몬, 자신을 보스로 모시는 재키가 그리소 일당과 함께 받침대 역할을 해내고 있다.

“에탄, 새들로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보스께 보고해라.”

재키의 말에 에탄이라 불린 넝마에 가까운 남자는 곧바로 시몬 앞에 고개를 숙여 존중을 내비쳤다.

“보스, 저는 그리소의 수다쟁이 에탄이라고 합니다.”

“보스는 네 소개 따윈 필요 없어.”

“헤헤, 재키. 앞으로 보스께서 날 부르실 일이 많아질 것 같은데 이름 정도는 소개해도 괜찮잖아?!”

“그냥 본론을 말해.”

재키의 닦달에 시몬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를 말렸다.

“재키, 괜찮아. 가족의 이름을 아는 건 당연하면서도 중요한 일이잖나.”

시몬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 재키는 말없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제 눈치를 보던 에탄이 썩은 앞니를 드러내며 조곤조곤 말을 늘여놓기 시작했다.

“보스, 어제 재키에게 전해 들은 보스의 전언에 따라 관련된 정보를 얻기 위해 새들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그 새들의 눈과 귀로 들은 것 가운데 제법 흥미로운 것들은 따로 보우와 재재를 시켜 탐문도 시켰는데…,”

말을 잇는 도중 에탄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입안에서 썩은 내가 날 정도로 킥킥 웃어댔다.

“에탄, 이 병신아…!”

재키가 섬뜩한 눈으로 노려보자 에탄은 겨우 웃음을 참으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그리소의 알아주는 호모 새끼들이거든요, 보우와 재재 말입니다, 킥킥!”

에탄은 이내 자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숙여야 했다.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냉정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시몬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에탄이 곧바로 사과하기 무섭게,

짝!

재키는 사정없이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얼마나 강하게 후려쳤는지, 에탄의 코와 입술에선 피가 새어 나왔다.

재키는 이에 그치지 않고 연이어 에탄의 뺨을 갈구기 위해 손을 들었으나,

시몬은 그를 제지했다.

“재키, 그만.”

그러자 재키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뚝 그친다.

그 둘의 눈치를 살피던 에탄은 금세 부어오른 볼을 움찔거리며 어눌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어제 말씀해주신 대로 일대에 떳떳하지 못한 세공사들을 찾아 샅샅이 뒤져봤는데…,”

“봤는데?”

“개중 의심 가는 놈 몇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글쎄…,”

재키가 다시 손을 들어 올리려 하자 에탄은 퍼뜩 놀라 방금의 그 느릿하고 어눌한 말투가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보우와 재재가 살아 있는 것을 재료 삼아 만드는 보석을 예로 들며 그들을 하나하나 고문하며 심문하던 가운데 한 놈이 불기를 ‘만스타인 세공소’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었더랍니다.”

그 말에,

시몬의 눈이 일순간 커졌다.

“그럴 리가, 시기상으로 만스타인 세공소의 경력자가 지금 시점에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

“사람이라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놈은 귀쟁입니다. 그것도 늙은 귀쟁이.”

이어지는 에탄의 대답에 이번엔 재키의 눈이 번뜩인다.

“에탄.”

시몬은 이어 풀어진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그 말을 들은 에탄은 그제야 미소지으며 다시 한번 그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 * *

시몬은 낡은 후드를 뒤집어쓴 채 말 위에 올랐다.

그런 그의 뒤로 재키 역시 말 위에 오른다.

이어 시몬 쪽으로 쪼르르 달려온 에탄은 실에 묶인 반지를 조심스레 그에게 건넸고,

그것을 받아 든 시몬은 말없이 새끼손가락에 끼웠다.

이제 에탄은 반지에 묶인 실 끝을 자신의 품에 있던 새의 한쪽 다리에 묶어 날려 보냈다.

이윽고 녹색 깃을 가진 조그마한 새의 날갯짓과 동시에.

그 둘은 새가 인도하는 방향을 따라 고삐를 잡아 말을 재촉했다.

어느새 하늘에 맞물려 있던 구름은 서로 빗겨나가 멀어져가고 있었고,

추적추적 내리던 비 역시 뚝 그쳤다.

하지만 아직 우중충한 심보가 남아있었는지,

하늘은 쉽사리 햇빛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말이 멈추고, 거기서 내려선 두 남자가 다다른 외로운 폐가에 들어서자.

들려온 기척에 놀란 누군가의 신음이 안쪽에서 흘러나왔다.

“흐…저는 정말… 다 말했어요…”

그 신음의 근원지로 다가가니 검은 천으로 눈이 가려진 채 피로 범벅이 된 늙은이가 하나 있다

그의 손가락은 절반 이상이 꺾여 있었고, 무릎은 피멍이 들 정도로 두들겨 맞은 덕에 물이 찬 상태다.

한눈에 봐도 고약한 고문으로 인해 걸레짝이 되어버린 신세.

그러나 시몬은 그의 상태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조용히 마주 앉아 본론을 꺼낸다.

“만스타인 세공소에서 일했다지.”

“…네…네…네네!”

혹여라도 남은 손가락마저 꺾일까,

들려오는 질문에 미친 듯이 답하며 부들부들 떠는 늙은 귀쟁이.

그런 귀쟁이에게 시몬은 다시 묻는다.

“그럼 말해 봐. 거기서 만들어진 보석 가운데 가장 특별했던 보석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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