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85화 (85/365)

85화. 봉합 (2)

“저보다 싸게 해주는 곳은 없을걸요?”

포드 외곽,

어둡고 좁은 골목길로 통하는 길목에선 때아닌 흥정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식 관문을 거쳐 포드로 들어갈 수 없는 떳떳하지 못한 자들은 마땅히 그림자가 되어야 했는데,

그 그림자가 되기 위해선 먼저 길잡이가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앞길을 막고서 열띤 흥정을 하는 애꾸눈의 청년이 바로 수많은 길잡이 중 하나였다.

노련한 맥레인조차 포드의 ‘혈관’에 진입해 원하는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위해선 길잡이가 필수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눈앞에 보이는 골목길의 깊이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한가 본데.

“말이 통과할 수 있는 골목길이 그리 많지 않아요, 하지만 그 많지 않은 골목길을 모두 다 꿰고 있는 건 저밖에 없다고요.”

어눌한 말투로 술 냄새를 풍기며 말하던 애꾸 눈의 청년은 다짜고짜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들었다.

“은화 스무 개면 혈관 중에 있는 목적지라도 단숨에 도달시켜드릴게요.”

“너무 비싼데.”

맥레인이 투정을 부리자 청년은 지저분한 안대를 고쳐 쓰며 고개를 단호히 가로저었다.

“말 두 마리까지 포함한 가격이니 오히려 싼 거죠.”

“가격을 비교해 봐야겠어.”

“은화 열다섯 개.”

“가자, 디안.”

“열세 개.”

“…,좋아.”

맥레인은 흡족한 표정으로 내게 턱짓했고, 난 곧바로 품에서 은화를 세어 그에게 건넸다.

그러자 내 손에 들린 은화를 낚아채듯 받아간 청년은 제법 많이 후려쳐진 가격에도 불구하고 태연한 표정으로 안내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아마도 적정 시세는 그보다 더 싼 가격이었지 싶은데.

물론 따지고 드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겠지.

저 가격에 얽힌 이해관계라던가 하는 것에 시간을 쏟아부을 여유가 지금 우리에겐 없었으니까.

그렇게 길잡이를 따라 골목길에 들어서자,

막연히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복잡도의 규모가 굉장했다.

또 마치 깊은 숲에 자리 잡은 밤처럼, 이곳 역시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짙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보였던 하늘이 기울어진 건물들에 의해 가로막히고, 그나마 밝은 골목길도 언제 꺼질지 모르는 늙은 벼락 하나로 연명하는 꼴이었다.

거기다 이따금 지나치는 넓은 골목길엔 좌판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모르겠다.

이런 곳까지 와서 물건을 사갈까?

매대에 올라온 물건들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것들이다.

루투스 연골이라 적힌 좌판 위엔,

에메랄드의 그 영롱한 녹색을 내뿜는 젤리가 산처럼 쌓여 있었는데 과연 저게 섭취가 가능한 음식인지부터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그 외에도 적나라한 부분이 다 드러난 옷부터 박제한 여러 눈알이 주렁주렁 달린 목걸이까지, 골목 특유의 퀴퀴한 냄새와 어우러져 한없이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맥레인에게도 그것들은 너무나 신기한 구경거리였는지, 한동안 나와 같은 표정으로 구경에 삼매경이었다.

이내 넓은 골목길 끝, 정말 말 한 마리 겨우 지나가는 골목길에 들어선 길잡이는 그때부터 자신을 절대로 놓치지 말라며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턴 내가 알고 있던 ‘굽이치다’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새겨야만 했다.

골목이 나선형 계단처럼 층이 나눠 굽치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제멋대로 드러누워 있는가 하면.

어쩔 땐 우리가 걷는 이 바닥이 길이 아니라 쓰러진 건물이기도 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곳인지,

두 눈을 뜨고도 알 수가 없는 수준이야.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흘러,

말을 타고 있는 우리보다 훨씬 앞장서 거닐던 사내는 이제 한시름 놓았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우리에게 자랑하듯 자기 얘기를 떠벌렸다.

“이 길이 바로 우리 무에르 반시가 개척한 골목이죠, 무에르 반시라 하면 포드의 음지에서 활약하는 2대 조직 중 하난데 현재 우리의 보스인 데비 반시는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난쟁입니다.”

하지만 우리 둘 중 누구도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아니 담을 수 없었다.

당장 그의 꽁무니를 따라 고삐를 놀리는 데 온 정신을 쏟아부어야 했으니 말이다.

이윽고 숨 막혔던 골목을 빠져나오자,

제법 그럴싸한 대로변이 우릴 반겼다.

이제 길잡이는 자기 일이 끝났다는 듯하던 말을 뚝 그치곤 인사도 없이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가버렸다.

* * *

포키스가 보낸 새를 통해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한 우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허름한 폐가의 문을 두들겼다.

쿵쿵.

사방에서 만연히 들려오는 소음에 묻혀 듣지 못할까 봐,

쿵쿵.

맥레인은 다시 한번 문을 두들겼고 동시에,

벌컥 하고 열린 문 너머.

“맥레인.”

매튜가 튀어나와 그대로 맥레인의 어깨를 붙잡았다.

“매튜!”

반색하며 그대로 매튜를 끌어안은 맥레인의 얼굴에서 짙은 안도감이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디안 오빠!”

“디안!”

매튜 아저씨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안나 아주머니,

그리고 비질라.

“안나…, 비질라!”

오랜만이야 정말.

튀어 오르는 비질라를 끌어안고서 안나에게 꾸벅 인사하자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받아주었다.

마지막으로 포키스가 나오자 맥레인은 손을 내밀어 그와 짧은 악수를 하곤 어깨를 부딪쳐 인사를 주고받았다.

“안녕, 디안.”

“포키스, 반가워요.”

짧고 뜨거웠던 재회의 순간을 만끽한 우리는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

머나먼 길을 돌아왔구나.

그래도 목적지에 잘 도착한 것 같아 다행이다.

허름한 테이블.

그러나 그 위에 놓인 단란은 거창하다.

둘러앉은 여섯 사람은 서로 간 있었던 일을 열렬히 나눴다.

그간 개개인이 겪었던 일들을.

안나 아주머니는 포드에 숨어든 직후 가진 재주 덕분에 직물을 만지는 일을 하며 버텼다고 한다.

비질라는 그런 안나 아주머니를 도와 포드에 꼭 필요한 셈을 도맡아 해왔고.

포키스는 두 사람을 추격하는 세브리의 용병 둘을 처리하고 이곳까지 동행한 뒤 따로 빠져나와 흩어진 가족들을 찾았다고 했다.

수색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했을 시점이 불과 사흘 전이라 했는데 지금 맺은 결실을 보면,

확실히 새를 다루는 포키스의 정찰 반경은 대단하네.

“오늘 밤에 다시 밖으로 나갈 생각이야.”

“그럼 같이 나가자고.”

포키스의 말에 맥레인이 곧장 말을 이었지만, 잠자코 듣고 있던 매튜가 대번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렸다.

“너는 안 돼.”

“안 될 게 뭐가 있어요?”

“잠자코 내 말 들어.”

안 그러면 모두에게 너의 상태를 알릴 테니까.

라고 말하는 듯한 매튜 아저씨의 매서운 표정에 맥레인은 그대로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디안, 네가 포키스와 동행하거라.”

“네, 매튜 아저씨.”

* * *

깊은 골목에는 새삼스럽기만 한 늦은 밤.

나는 포키스와 함께 밖을 나섰다.

미리 나와있던 길잡이와 접선한 우리는 이번엔 또 다른 골목길을 통해 포드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갑갑했던 골목을 벗어나 맞이한 밤하늘이 이렇게나 개운하게 느껴질 줄이야.

줄곧 침묵을 지키던 포키스는 기다렸다는 듯 내게 푸념했다.

“요즘은 함부로 새를 날릴 수가 없어서 문제야.”

“왜요?”

“곧 겨울이 다가오니까, 새들은 대부분 겨울로부터 도망치거나 겨울을 덮고 자야만 하는 짐승이거든.”

그렇구나.

깨달음을 얻은 내 표정에 포키스는 웃으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겨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활동하는 새들은 길들이는 데에 많은 시간과 시설이 필요해. 무법자로선 해낼 수 없는 일이지.”

“해서 이제 막 겨울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 좀처럼 보기 힘든 새가 날아다닌다는 건…,”

“십중팔구로 주인이 있는 새라는 뜻이야.”

그것참 새롭다.

자유를 만끽한 이후 맞이하는 첫 겨울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는데, 겨울의 은밀했던 한 페이지를 훔쳐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잖아.

“그래서 내가 다루는 새들도 함부로 날릴 수 없어, 특히나 지금은 중립지역의 굵직하다 하는 작자들이 모두 우리를 노리고 있잖아?”

그러고 보니 포키스와 마주쳤던 그 순간부터 새 지저귀는 소리가 한 번도 들리지 않았는데,

“포키스의 새는 지금 어디에 있죠?”

내 질문에 포키스는 걸친 자캣의 가슴 주머니를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빼꼼,

작고 둥근 머리가 튀어나온다.

나와 맥레인을 찾아왔던 그 새로구나.

“오늘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새를 날릴 생각이야, 너와 맥레인을 발견했던 곳에서는 새로운 걸 건질 수 없을 테니.”

“그럼, 빨리 가죠.”

이제야 알았는데,

포키스의 숲 읽기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거기다 낙엽의 울음소리조차 잠재우는 그의 걸음걸이는 감탄이 나올 정도야.

그런데 포키스는 되려 나를 보곤 놀란 표정으로 물어왔다.

“디안, 몰라보게 변했구나?”

“예?”

“숲을 타는 것부터 소리를 죽여 이동하는 것까지, 낙엽의 경지라 할 만큼 능숙하잖아.”

내가 그에게 새로이 느낀 점만큼, 그 역시 내게서 많은 걸 보았나 보다.

그래,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

그 안에 해냈던 일들을 생각하면 제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변할 수밖에 없기 마련이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숲 사이를 주파한 나와 포키스는 이제 어느 한 곳에 멈춰 서서 새 날릴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해봤자 내가 할 것은 없었지만.

포키스는 새를 꺼내 두 손에 품은 뒤 엄지 사이로 드러난 공간에 대고 작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새의 언어일까.

맞다면 무슨 뜻일까.

궁금했지만 이내 벌어진 포키스의 손으로부터 작고 앙증맞은 새가 쏜살같이 날아가 버렸다.

“포키스, 방금 새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잎사귀 뒤에 숨어 조심조심 다녀오거라.”

내 질문에 그는 새가 날아간 궤적을 따라 지긋이 바라보며 답했다.

이어서 그리운 얼굴로 말하는 포키스.

“그거 알아? 버드가 나보다 새의 언어에 더 능통했었어.”

“정말이에요?”

“그래, 그는 언제나 새를 따라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어 했지. 그의 꿈은 작은 조각구름 배를 장만해서 떼 짓는 새와 나란히 항해하는 거였단다.”

“…,정말 멋진 꿈이네요.”

“멋진 꿈이지. 버드는 지금쯤 어디를 날고 있을까?”

포키스의 찌푸려진 미간으로부터 씁쓸함이 흐른다.

“적어도 우리 마음속에서만큼은 그를 행복하게 해 줘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일부러 그를 위한 위로도 가족들과 나누지 않았어. 괜히 붙잡는 것 같잖아.”

뚝.

그의 한쪽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하지만 엔제이는 관심이 고픈 놈이어서 그럴 수 없었지. 놈의 꿈은 그냥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거나 먹으며 한량처럼 사는 거였으니까.”

굳세고 강하지만,

반대로 부드럽고 감성적인.

포키스는 그런 사람.

하지만 오묘하게도, 부분부분 맥레인과 비슷한 구석이 많은 사람.

나는 시큼한 콧잔등을 찡그리며 뜨거워져 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느끼는 이 슬픔은.

짧지만, 짧았기에 강렬하게 박힌 단편의 기억 속,

그리움에 대한 존중이다.

나는 다시 애써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언젠가 저에게도 새의 언어를 알려주시겠어요?”

이에 포키스가 화답하듯 주름진 얼굴을 익살맞게 구긴 웃음으로 답했다.

“그야 물론이지.”

* * *

[가족의 대들보인 너는 염원하던 따듯한 햇빛 아래서 대단한 사치를 부리게 될 것이다.]

테라리스.

그 햇볕을 맞으며 동시에 내가 그토록 염원하던 꿈을 만끽한 다라…,

점성술사마저도 내 운명에 찬사를 보내는구나.

하지만 이는 미리 들은 완성된 운명.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과정이란 뼈대를 쌓는 것뿐.

내 그리운 가족들.

어서 내 가족들을 만나야 해.

내 완성된 운명에 그들과 함께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이긴 기분이 드는 것만 같구나.

이 빌어먹을 세상을.

“보스!”

두꺼운 시가를 입으로 뜯어 불을 붙이려는 찰나, 재키가 헐레벌떡 내게 달려왔다.

“보스! 새가 날아왔어!”

완성된 내 운명을 생각하면 그건 당연히 일어날 일이었어, 재키.

하지만…, 생각보다 그때라는 게 일찍 찾아왔군.

“포키스의 새가 확실해!”

“가자, 이제 다시 모일 때가 왔다. 시몬 바스티유의 문제아들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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