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그물과 작살 (2)
남쪽, 계절을 타지 않는 눅눅한 덩굴이 끝없이 펼쳐진 지대.
‘어스키만’
흔히 구름이 도망친 땅이라 일컬어지는 이곳은 괴물의 고향이자 원정대들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괴물이란, 사회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그런 부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용의 시대 이후라는 특성으로 빚어진 생태계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생명체를 말한다.
또한, 원정대들의 그 안식처라는 것도.
일확천금의 기회와 단어 그대로 그들에게 안식을 강요한다는 이중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으리라.
이렇듯 위험천만한 덩굴 지대 초입에,
한 무리 원정대가 들어섰다.
그들은 모두 각양각색의 후드를 뒤집어쓴 모습이지만, 가슴에는 똑같은 상징이 박혀 있었다.
곧 그들 중 선두에 있던 이가 걸음을 멈추고 붉은 후드를 벗어 얼굴을 드러냈다.
긴 백발의 그 남자는 캐룸 길드의 수석 길잡이, 아톰 뱅퀴시.
그는 주위를 한참 살피다 이내 자신의 뒤를 바짝 따라오던 이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도착한 것 같은데, 지도를 보게나.”
그러자 아톰 뒤를 바짝 쫓던 남자가 자락이 짧은 후드를 벗어 품에 있던 두루마리를 펼친다.
“맞습니다, 저 앞이 스키렐 교역소입니다.”
갈색 곱슬머리에 툭 튀어나온 코.
그리고 살짝 끝이 뻗친 듯 보이는 두 귀.
캐룸 길드의 차석 길잡이, 베빌리.
그는 말을 마치곤 습기에 젖은 입가를 케이프 자락으로 훔쳤다.
이어 허리춤에 매달고 있던 유리통을 번쩍 들어 뒤따르는 자들에게 보이도록 크게 흔들자,
유리통 안쪽에 있던 수십 마리 곤충이 스스로 발광하며 녹색 빛을 뿜어냈다.
그러한 불빛을 본 캐룸 원정대는 순식간에 진입을 위한 대형으로 나란히 서서 천천히 앞을 향했다.
“벌써 역한 냄새가 느껴지는군.”
아톰은 미간을 일그러트리며 손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아톰의 그 행동에 베빌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저 멀리 보이는 방책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 냄새는 분명…, 라게니드일 겁니다. 그것도 산란을 마친.”
그의 대답에 아톰은 단망원경을 펼쳐 앞을 주시하곤,
“교역소가 완전 걸레짝이 되어 버렸군.”
씁쓸함을 다시며 입안에 고인 진득한 침을 뱉었다.
지금으로부터 이틀 전.
캐룸 길드에 대형 의뢰가 하나 들어왔다.
어스키만 일대 곳곳에 설치된 교역소 가운데 스키렐 쪽과 연락이 되질 않아 그 진상을 파악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아톰의 망원경으로 인해 드러난 진상은.
베빌리가 예상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베빌리, 보게.”
베빌리는 아톰이 건넨 망원경으로 전방을 살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반쯤 무너진 나무 방책.
아니, 무너졌다기보단 무언가에 의해 녹아내린 듯한 모습이다.
방책 너머 교역소 내부는…,
이미 허연 거미줄로 진창이 되어버린 모습이다.
“방책까지 거미줄이 쳐지지 않은 걸 보면, 방책을 녹인 건 아마도 라게니드의 양수일 겁니다.”
차분하게 분석을 시작한 베빌리의 말에 아톰은 마치 기특하다는 듯 노골적인 표정으로 감탄했다.
“그래, 자네 말이 맞네.”
“그렇다는 건 산란이 임박했을 시기까지도 제대로 된 둥지가 없었다는 말인데…,”
“다른 포식자에게 시달렸을 가능성이 있겠군.”
“예, 덕분에 놈은 현재 굉장히 예민하고 폭력적으로 변했을 겁니다. 본디 녹색 별빛의 영향을 받은 괴물들은 그 성정이 온순하겠지만…,”
“누구나 그렇듯 조용하고 차분한 자가 눈이 돌면 제일 무서워지는 법 아니겠는가.”
“굉장히 힘든 하루가 되겠군요.”
위험을 감지했음에도.
아톰과 베빌리의 눈은 더욱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원정대에게 위험은 곧 기회였으니까.
짧은 시간,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에 투신한 베빌리는 이제 어엿한 길잡이의 역할을 십분 소화해내고 있다.
그런 그의 안내로 잡아들인 대형 괴물의 수만 해도 일곱.
이로 인해 베빌리가 달성한 트로피의 수도 40에 달한다.
이러한 명성을 바탕으로 캐룸 길드 내 귀 큰 자들의 지지까지 얻어 작은 분대까지 결성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빌리는,
잊지 않는다.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만든, 과거 그 한 번의 만남을.
아마도 오늘이 지나고 무사히 집에 돌아간다면, 늘 그랬듯 그의 어머니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곤 웃음 짓고 그 웃음에 배부른 그의 아내는 궁금증을 갖고 놀다 잠을 청하겠지.
생각해보면 말이야.
중립지역은 언제나 타인에게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 살아가야만 했던 곳이었는데.
그런 불모지의 땅에서도 그는 마치 믿음의 씨앗과 같은 존재였었단 말이지.
베빌리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자네 웃은 건가?”
“원래 힘든 일을 앞두고 웃는 귀 큰 자가 일류입니다.”
“그건 일류가 아니고 정신이 아픈 게 아닐까.”
아톰은 결국 자기가 말해놓고 픽 웃어버렸다.
“이제 출발해 봅시다, 아톰님.”
“그래, 가자.”
* * *
캐룸 길드의 상징이자 셉투아긴(70) 트로피에 도달한 위대한 사냥꾼.
리키 매젠이 집결한 원정단원 한가운데 서서 낮고 근엄한 말투로 선언했다.
그 모습은 깃발만 없었다뿐이지, 마치 전장을 앞두고 병사들의 심장을 데우는 지휘관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들뜬 가슴으로 캐룸 원정단의 일원이 되길 결심했고, 그 결심을 이룬 자들아.”
마찬가지로 리키의 말을 듣는 원정단원들 역시,
바람을 껴안은 불씨처럼 일거에 번뜩였다.
“오늘의 괴물은 너희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가 후드 속에서 한쪽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렇게 결의를 다진 캐룸 원정단은 각자의 위치로 뿔뿔이 흩어졌다.
베빌리 역시 그를 주축으로 모인 분대를 이끌고 스키렐 교역소로 향했다.
그의 분대 가운데 베빌리가 신용하는 이는,
귀 큰 자 ‘소여’
10대 후반의 그 어린 사내는 가볍고 장난스럽게 생긴 인상과 달리 제법 행동이 점잖았다.
다만,
“그 새끼 다리에 달린 발톱이 제일 비싸다고 들었지 말입니다.”
점잖은 행동과는 달리 살아온 환경을 증명하듯 입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거칠었다.
마치 중립지역의 무법자처럼.
“동시에 그 다리에 달린 발톱이 제일 위험하니까 조심해라.”
“명심하겠슴다, 대장.”
소여는 일단 정해진 서열이 있다면 무조건 따르는 자였다.
더군다나 베빌리와 같이 출중한 실력을 자랑하는 이라면 더더욱.
이런 소여와 달리, 베빌리가 이끄는 분대의 부관인 귀 큰 자 ‘세멜레아’는 굉장히 까다로운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베빌리, 우리는 어디로 진입합니까?”
그녀는 위대한 뿌리 출신으로, 인간 사회 내에선 귀족과 같은 신분이었다.
다만 서열이 밀리는 귀족 자식들이 다른 높은 서열 가문의 시동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그녀 역시 뿌리 내에서 입지가 강한 편은 아니었기에 자신의 자립을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오른쪽을 돌아 교역소 후방으로 진입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토벌이 끝날지도 모르잖아요?”
“라게니드는 그렇게 쉽게 사냥당할 괴물이 아닙니다.”
물론 예외라는 게 있기는 마련이지만.
또다시 예전의 일을 떠올린 베빌리는 얼른 고개를 가로저으며 세멜레아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이번 작전은 연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혼자가 아니라 캐룸 길드 전체가 해내야 하는 일입니다.”
세멜레아 정도면 충분히 정면으로 들어가도 리게니드와 어느 정도 싸움을 성립시킬 수 있긴 하겠지.
위대한 뿌리의 후손들은 저마다 고유로 내려오는 기술들을 익힌 자들이니까.
하지만 결코 승리를 쟁취해내진 못할 거다.
인챈트나 인간들이 말하는 그 ‘비전’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두 발 걷는 자는 결코 괴물을 잡지 못해.
“세멜레아, 알겠습니까?”
재차 이어지는 베빌리의 물음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수긍해야만 했다.
그렇게 구역질이 올라오는 교역소를 우회해 뒤쪽으로 진입한 베빌리는 분대를 정렬시켜 놓은 채 신호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내.
파아악!
정면 쪽에서 불을 머금은 화살 하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솟아올랐다.
그러자 이어지는,
그──────!
형용할 수 없는 그르렁거림이 교역소 전체를 울린다.
신호가 사라지자마자 리키 매젠이 이끄는 선봉대는 교역소로 달려들어 품에 있던 칠월의 햇살과 팔월의 벼락이 담긴 유리병을 던졌다.
쾅!
파앗!
쨍한 빛 위에 덧칠되는 반짝거림.
보는 순간 뇌가 저릴 것만 같은 그 섬광의 향연에,
끼기기긱─────!
교역소 안쪽에서 터져 나오듯 뿜어진 흰색 거대한 무언가가 땅에 전신을 비벼대며 몸부림쳤다.
그 무지막지함에 교역소 인근의 지축이 흔들리는 게 느껴질 정도다.
“지금이다! 쏴라!”
기세를 몰아 좌측에 있던 아톰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동시에 우측이 반응하여 화살을 쏟아부었다.
그들이 쏜 화살은 통짜 쇠로 만들어져 끝에는 강철 실로 엮은 끈이 매달려 있었다.
파바박!
쇄도하던 쇠 살이 그대로 몸부림치는 흰 덩어리의 발들에 박히자,
끄극────!
그것은 비명을 지르더니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대기…!”
상황의 변화를 알아차린 리키가 손을 번쩍 들어 외치자 일순간 찾아온 침묵.
아직 얼룩처럼 남아있던 섬광의 잔흔이 서서히 멎어가고, 드디어 시야에 들어온 것은.
수북한 흰색 털로 뒤덮인 거대한 거미 한 마리.
그것은 주둥이에 달린 다리와 같은 협각을 펼쳐 눈을 가린 채 움츠러든 모습을 하고 있어서.
“죽은… 거야?”
정면에 대치한 원정대 가운데 하나가 착각해 중얼거렸지만,
“원정대의 금칙어를 쓰다니, 이런 병신새끼!”
곧 다른 누군가가 따갑게 타박한다.
그리고 그 타박을 증명하듯 동시에 움츠러들었던 거대한 거미가,
자박자박자박자박.
여덟 다리를 교차해 움직이며 자세를 정돈하고는.
기이익────!
괴성을 지르며 단박에 쇠 살이 박힌 왼쪽 다리들을 휘둘러 쳤다.
쾅!
쇠 살 끝에 연결된 쇠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교역소 동쪽 방책이 와르르 무너지고,
“으악!”
“악!”
그곳에 있던 원정대원들의 비명이 쏟아져 나온다.
그 상황에 리키는 곧바로 자신의 워 해머를 양손으로 가득 쥔 채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43년, 베체네스]
[뿌리까지 양단한 구름의 외침]
워 해머에 담긴 것은 한 줄기 벼락.
재림형 인챈트.
순식간에 그의 전신에 흐르기 시작한 전류.
그리고 그 흐르는 전류에 맞춰 인간의 탈을 아득히 벗어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신체.
푸른 안광을 번뜩인 리키가 곧 거미의 앞쪽 다리를 향해 있는 힘껏 워 해머를 휘둘렀다.
뻐억!
하늘에서 집채만 한 우박이 떨어지면 이런 소리가 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온몸이 움츠러드는 굉음과 함께,
리키가 휘두른 워 해머로부터 허옇게 질린 풍압이 둥근 모양으로 퍼진다.
타격을 받은 거미의 앞다리는,
마치 안쪽에서 폭발한 듯 찢겨 바닥에 나뒹굴었다.
기이이이익────────!!!!
오늘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든 하루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의 괴물은 우리를 죽이지 못한다.
“진입!”
기회를 엿본 베빌리가 번쩍 손을 앞으로 펼쳐 명령했다.
이런 베빌리와 마찬가지로, 교역소 각 방향에서 대기하고 있던 캐룸 원정대들이 속속들이 교역소 내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 * *
이제는 허허벌판이 되어버린 라티아의 남쪽 끝.
작게 마련된 포구.
전쟁을 기회로 타지의 상인들이 차려놓은 그곳에 방금 막 한 남자가 도착했다.
관리인인 난쟁이는 부랴부랴 그 남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배를 타실 겁니까? 아시다시피 상황이 상황인지라 추가금이 생깁니다.”
“얼마지?”
어스름을 뒤집어쓴 남자의 말에 난쟁이는 뒤편에 범상치 않아 보이는 말을 흘겨보며 말했다.
“저 말에다 금화 하나만 더 받겠습니다.”
“말도 함께 간다.”
“두 제국 사이에서 도망치려는 귀족분이 흔적을 남기면 되겠습니까? 보아하니 망명길에 오르시는 것 같은데…,”
“내 물건을 먹다간 단단히 체할 거야.”
난쟁이는 남자의 살기에 마른 침을 꿀꺽 삼켜야만 했다.
행색을 보면 깃발 가진 사람인 것 같은데, 그 풍기는 향기가 중립지역의 무법자 같았기 때문이었다.
“금화 두 개면 충분하겠지.”
“어… 어어 넵.”
뭐에 홀린 듯 남자가 건넨 금화 두 개를 받아 든 난쟁이는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남자 뒤를 쫄래쫄래 따랐다.
“그런데 어… 어디로 가십니까?”
“주변에 원정대 길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