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그물과 작살 (12)
바탄 교역소.
인접한 숲에 잡아먹히는 듯한 형태로 자리를 잡은 그곳은 진한 햇살 아래서도 그림자 진 곳이 더 많이 보일 정도로 음산했다.
거기에 더해, 공고에도 적혀있듯이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교역소 내 분위기는 말 그대로 최악에 가까워서.
지금 말을 타고 거리를 지나는 순간에도 몇몇 두 발 걷는 자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상황이 말이 아니군요.”
테론은 쓴 것을 씹은 듯, 얼굴을 구겼다.
“일단 공고를 낸 교역소장에게 가 봅시다.”
내 말에 담담히 고개를 끄덕인 테론은 이제 내 뒤로 바짝 붙어 능숙한 솜씨로 고삐를 놀렸다.
나는 무법자들 아래 방관적이고 야생적인 느낌으로 승마를 배웠다면, 그는 가문의 비호 아래 정적이고 점잖은 승마를 배운 듯 보였다.
제대로 겪어보지 못했음에도 그의 행동에서 기품이 느껴진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그 기품은 닮고 싶은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방관적이고 야생적인 승마를 사랑한다.
그로 인해 얻은 낭만은 그 어떤 경험과도 바꿀 수 없는, 내 몇 안 되는 보물이니까.
“도착한 것 같군요.”
굽이진 오르막을 거슬러 올라가 마주한 저택.
그 앞에 멈춰 선 나는 말에서 내려 고삐를 근처 나무 밑동에 묶고 열려 있는 검은 창살 문을 지났다.
뒤따르던 테론은 주위를 둘러보며 탄식을 내뱉기 바빴는데,
“도대체 저게 뭡니까?”
그 말대로 저택 앞마당엔 공개 처형을 당한 듯 보이는, 말뚝에 박혀 죽은 세 구의 시체가 보란 듯이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테론, 아무래도 공고 외적인 질문은 삼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군요.”
썩은 시체 냄새를 오선지 삼아, 더러운 파리가 음표처럼 몰려들어 윙윙거리는 그곳을 지나쳐.
문 앞에 당도하고 나니 그제야 인기척을 느낀 누군가가 저택 안쪽에서 반응했다.
“당신들은 누구요.”
굳게 잠긴 저택 대문, 그 안쪽에서 들려오는 무미건조한 목소리.
“교역소장이 직접 쓴 공고를 보고 찾아왔습니다.”
그 감정에 걸맞게 차갑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문은 생각보다 쉽게 벌컥 하고 열렸다.
“교역소장님은 저택 2층, 접견실에 계시니 따라오시오.”
반쯤 밀린 머리에 핀 검버섯, 그림자에 두어 번 거칠게 세수를 한 듯 보이는 초췌한 얼굴.
그리고 우주에 잡아먹힌 달처럼 굽은 등을 한 노인은 자신의 할 말을 마치기 무섭게 뒤돌아 우리를 안내했다.
그렇게 그를 따라 삐거덕거리는 계단을 올라 접견실로 향하자.
그 안엔 마치 우릴 기다렸다는 듯, 초로의 남자가 입에 물고 있던 연초를 바쁘게 내려놓으며 반겼다.
“어서 오시오.”
오늘 하루에만 벌써 몇 개의 연초를 태운 것인지, 수북이 쌓인 꽁초 위로 방금 핀 연초를 쑤셔 박은 그는 손을 펼쳐 앉을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말끔하게 밀려 반질거리는 머리, 갈라진 코끝이 인상적인 선 굵직한 그 남자는 우리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본인 소개를 했다.
“바탄 교역소장, 울레이즈 게만이라 합니다.”
“디안 베나즈, 그리고 이쪽은…,”
“테론 에인츠라고 합니다.”
꽤 삭막한 소개가 끝나자 빠르게 눈치를 살피던 테론은 품에 간직하고 있던 공고문을 내밀어 책상 위에 펼쳐 보였다.
그러자 울레이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고문과 우리를 번갈아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이번에는 제법, 범상치 않은 분이 오신 것 같군요.”
그렇게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린 울레이즈는 품에서 연초 하나를 꺼내 물고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두를 내뱉음과 동시에 옆에 있는 호롱불을 이용해 연초에 불을 붙인 그는,
후.
한바탕 거나하게 연기를 뿜으며 말을 이었다.
“교역소 내 전과자들의 소행인 줄 알았습니다. 두 번째 피해자가 나왔을 땐 어떤 미친 새끼가 저지른 연쇄 살인인 줄 알았어요.”
울레이즈는 떼가 낀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유력해 보이는 전과자 몇을 잡아 처형했지요.”
마당에 처형된 시체는 바로 그들이었군.
“그리고 보란 듯이 다음 날 세 번째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똑같은 방식으로요. 그때 깨달았지요, 이건 두 발 걷는 자의 소행이 아니라는 걸.”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테론과 시선을 마주치며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괴물에 대한 단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인지라…, 이렇게 공고까지 내걸게 된 겁니다.”
이윽고 울레이즈는 피다 만 연초를 버릇처럼 꽁초 더미 위에 비벼 끄며 우리에게 말했다.
“조사는 자유롭게 하셔도 좋습니다, 제 비서가 여러분과 함께 움직일 테니 부디…, 그 괴물 놈의 머리통을 제게 가져다주십시오.”
* * *
“안녕하십니까, 울레이즈님의 비서인 케넷이라고 합니다.”
삐죽삐죽한 붉은 머리, 녹색 눈에 볼이 안쪽으로 빨린 듯 홀쭉한 인상을 한 청년은 우리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디안.”
“테론입니다.”
간단한 소개를 마치기 무섭게 나는 머리 하나만큼 작은 키를 가진 케넷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혹시 피해자를 볼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세 번째 피해자는 유족의 요청에 따라 매장된 상태라 보실 수 없지만, 다른 모든 피해자는 안치소에 있습니다.”
그 부분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거다.
피해자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살해당했다고 했으니까.
케넷을 따라 외진 곳에 마련된 석실에 들어서자, 입구에서부터 한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석실 깊숙한 곳, 순백의 천에 덮인 채 누워있는 시신 앞에서 나와 테론은 케넷의 안내를 따라 짧게 묵념의 시간을 가지고 그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
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동공이 흰자 위로 퍼져 녹은 듯한 형상을 띠고 있다.
그야말로 괴물의 짓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그렇다고 두 발 걷는 자가 범인이 아니란 확신도 할 수 없다.
인챈트를 가지고 있는 자라면 능히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을 테니까.
곧바로 석실을 나온 나와 테론은 역할을 분담하기로 했다.
“테론, 저는 일단 마을 근처 숲을 둘러보겠습니다.”
“그럼 저는 마을을 탐문 해보도록 하지요.”
줄 시계를 열어 시간을 확인한 나는,
“바깥세상 시계로 두 시간 뒤에 다시 만납시다.”
테론과 약속을 한 뒤 곧바로 인근 숲을 향했다.
* * *
무지라는 베일에 감추어진 괴물의 정체를 밝혀내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괴물이란 것은 그 발생의 기원과 아주 강력한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관련된 단서를 찾기만 한다면 괴물에 무지할지라도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지금껏 만나 왔던 괴물들이 그러했으니까.
매튜 아저씨, 그리고 케니와 함께 퇴치한 디글렛은 ‘꿈’과 연관되어 있었고.
베빌리와 함께 대적했던 숲의 읍소는 ‘복수’와 연관되어 있었다.
자, 바탄 교역소의 악마여.
너는 어떤 것과 연관 지어져 잉태되었나.
친절한 나무들의 조언을 듣고 숲의 숨겨진 길을 따라 더욱 깊숙한 곳에 들어가자,
그곳에서 오래전부터 방치된 듯 보이는 저택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곳곳엔 그을린 흔적이 역력했지만,
내부는 제법 멀쩡하여 벽에 걸린 그림도 식별이 가능할 정도였다.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던 나는 2층으로 이동해 가장 큰 침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케케묵은 먼지에 더럽혀진 그림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림 속엔 나란히 서 있는 여섯 사람이 해맑은 표정을 하고 있다.
보아하니 이 저택에 살던 가족들 같은데.
그중 여인 하나의 배가 불러 있는 걸 보아 임신 중인 것처럼 보인다.
보통, 출산을 염두에 둔 집이라면.
그것도 이렇게 큰 저택이라면 아이와 관련된 물건을 들여놓은 흔적이 있어야 할 텐데.
이 저택에는 아이와 관련된 용품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저택 밖을 나와 뒤쪽, 이제는 수풀이 우거진 뜰을 거슬러 올라가자.
사람 하나 간신히 들어갈 법한 밀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밀실은 바깥에서부터 두꺼운 쇠사슬로 잠겨 있어 안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구조였다.
작심하고,
워 해머를 쇠사슬 가운데에 쑤셔 넣고 지렛대 삼아 끊어버린 뒤 굳게 닫힌 문을 조심스레 열어 보았다.
안에는,
이미 백골이 되어버린 시체가 하나 있다.
밑바닥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그릇이.
백골이 앉은 부분 주위엔 알록달록한 얼룩이 보인다.
얼룩은 보아하니 눅진하게 녹은 색연필인 것 같은데…,
자세히 더 들여보자, 백골 머리 부분 뒤편에 아주 정성껏 보관해 놓은 듯 보이는 낡은 양피지 하나가 보였다.
용케도 밀폐를 유지해 상태가 양호한 그 양피지 안엔.
삐뚤빼뚤.
나란히 서서 해맑게 웃고 있는 일곱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제 지금껏 지나쳤던 장면들이 내 머릿속에 한 장면으로 포개어진다.
이 밀실의 백골은 배부른 여인이 출산한 아이일 것이다.
모종의 이유로 이 밀실에 갇혀버린 것 같은데.
찌르르, 찌르르.
이윽고 줄 시계에서 한참 만에야 첫 알람이 울렸다.
테론과 약속 한 시간이 다 되었구나.
* * *
테론과 만나 내가 보았던 것을 모두 얘기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대번에 눈빛을 번뜩이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케넷의 눈을 피해 교역소의 기록 보관소에 침투했는데, 그 가운데 이런 기록이 있더군요.”
“그보다 어째서 그곳에 침투한 겁니까?”
“그곳은 조사할 수 없다고 하길래요.”
“테론, 보기완 달리 과감하시군요.”
“누군가는 물 위에 낚싯대를 대고 물고기가 낚이길 기다리겠지만, 또 누군가는 직접 물에 들어가 잡을 물고기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부터 해볼 수도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대뜸 물에 들어가서 무엇을 보셨는지요?”
“뭐, 그들이 왜 보관소를 조사하지 못하게 하는진 대충 알 수 있었습니다. 교역을 통해 따로 뒷돈을 뺀 기록이 남아있더군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테론은 자신이 그곳에서 보고 적은 기록을 내게 건네주었다.
“여러 특이한 사건에 대한 기록도 몇 있었는데, 그중 눈에 띄는 사건 몇을 추렸거든요.”
“그런데?”
“디안님이 말씀해 주신 그것과 딱 들어맞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종이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던 나는, 특정 문단에서 그 시선을 멈춰야만 했다.
근친의 결과는 악마의 소환이었다.
그 문단을 발견하자마자 나는 테론과 서로 눈빛을 나누며 고개를 절로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베롯 가문의 자식들은 금단의 영역을 침범했고, 그 결과를 세상에 내놓았음에도 철저하게 숨기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비밀은 영원하지 않았고, 결국엔 발각되어 모두가 악마의 자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쪽 콧구멍을 막을 정도로 비대한 윗입술. 눈꺼풀은 뒤집혀 그 붉은 속살이 드러나 있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손가락은 말 그대로 악마의 본모습이라 할 수 있었으리라.
이에 마을의 모든 두 발 걷는 자가 합세해 부정을 불태우고, 악마를 봉인하니 그가 탈출하지 못하도록 평생에 걸쳐 멸시의 시선으로 감시해야 할 것이다.
근친으로 인해 기형아가 탄생했고,
그것을 불길한 것으로 여겨 마을 사람이 그를 평생 가둬놓았다는 사건.
이로써 피해자의 상태, 깊숙한 숲에 숨겨진 저택, 그 저택에 관련된 이야기를 토대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시선’
아마도 괴물의 정체는,
평생 멸시의 시선을 받으며 고독하게 죽은 그의 사념을 먹고 자란 것이 아닐까.
이제 괴물의 근원을 알았으니.
“디안님.”
“네, 이제 사냥의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