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146화 (146/365)

146화. 그물과 작살 (14)

안면이 으깨진 괴물의 머리를 베어 피를 빼고, 그 몸통은 밀실 앞에 고이 묻어 일말의 동정을 표했다.

이어 모닥불을 작게 피워 그 위에 테론이 건넨 단검을 달군 나는,

“준비됐습니까?”

천 조각을 입에 욱여넣고 있는 테론에게 물었고, 그는 결심한 듯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의 환부에 단검을 가져다 대자.

치이익─

하얀 연기가 무서운 기세로 뿜어져 나온다.

비릿한 피와 매캐한 탄내가 공존하는 그 상황에서, 테론은 단 한 번의 신음도 내뱉지 않았다.

“급한 대로 조치를 하긴 했지만, 어서 가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 할 겁니다. 귀 큰 자의 연고를 바른다면 흉터도 그리 크게 남진 않을 거고요.”

말 그대로 상처를 지진 건 당장 노출된 오염을 임시로 막아낸 것에 불과했으니까.

“감사합니다, 디안님.”

그래도 이미 한 번 경험해봤던 일이라고, 테론의 상처를 생각보다 능숙하게 봐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로 등반이 지체될 순 없습니다.”

“아뇨, 테론. 몸의 회복이 먼저입니다.”

“하루면 충분합니다. 디안님이 저를 위해 애써 시간을 내주셨는데…, 그것을 낭비할 순 없어요.”

부정은 하지 않겠다.

동시에 그의 말투에서 확고한 생각을 엿본 나는 그저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이상 그를 말리려 든다면 그건 기사 테론으로서의 자존감을 건드리는 일이 될 테니 말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글쎄, 아까 보여주었던 테론의 실력을 생각하면 그의 행동은 아집이 아닌 확고한 신념이라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확실히 합시다, 테론. 오늘 남은 시간 동안은 오롯이 치료를 위해 다 쓰십시오.

“그럼 염치없이 이번 층에선 디안님께 신세를 좀 지겠습니다.”

테론은 자조적인 미소와 함께 옆구리를 감싸 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바탄 교역소장, 울레이즈 게만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창백히 질려 있었다.

그의 시선은 책상에 박힌 듯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의 앞에 감히 마주하기도 벅찬 상대가 마주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냥감이 방금 막 사냥을 하러 나갔다, 그 말인가 지금?”

마주한 이는 가래가 낀 듯한 걸걸한 목소리로 울레이즈에게 재차 물었다.

그러자 울레이즈는 어깨를 벌벌 떨며 간신히 대답했다.

“그… 렇습니다.”

“그건 뭐 밖에 나가 있는 우리 애들이 내게 더 자세히 보고해주겠지.”

이어, 울레이즈와 마주한 남자는 테이블 위에 뭉툭한 손을 올렸다.

그 손엔 온갖 휘황찬란한 장신구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는데, 그런 장신구 사이엔 거멓게 칠한 문신이 빼곡히 그려져 있다.

“내 이곳에까지 와서 자네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겠지?”

“무… 물론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어찌…,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말은 잘 통해서 좋군…, 그럼 행동으로 증명해 봐.”

마주한 이는 책상 위에 올린 뭉툭한 팔을 더욱 앞으로 내밀어 울레이즈의 눈앞에 내놓았다.

그러자 울레이즈는 경직된 얼굴로 그의 검지에 달린 알 굵은 보석 반지에 입을 맞췄다.

“그럼, 믿고 가 보겠어.”

울레이즈의 행동에 흡족한 듯, 마주한 이는 의자에서 껑충 뛰어내렸다.

그는 난쟁이 드롱 레다.

론다이트의 탑에서 손가락에 꼽을 만큼 오래된 등반자이자, 초입을 등반하는 자들에겐 지옥 그 자체와도 같은 존재이며.

그의 이름을 따 만든 드롱 갱단의 영향력은 이미 2층 전역에 퍼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법 가치가 있는 등반자를 집단 린치하여 대상이 가진 것을 모두 빼앗고, 그 세를 지금까지 불려 나가며 유지한 것만으로도 그와 그의 갱단은 살아있는 공포였으리라.

이미 일찍부터 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켰음에도 드롱이 바깥세상으로 나가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애초에 나갈 필요가 없을 만큼, 탑 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잘 나가는 실세였으니까.

그가 좋아하는 오입질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가진 권력을 이용해 더한 짓도 할 수 있었을뿐더러.

이 세상이 실패자를 다루는 방법은 단 하나, 망각뿐이었기에 등반자를 대상으로 한 일들에 후환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이곳은 드롱에게 있어 낙원인 것이다.

이제 그가 곱게 땋은 옆머리를 휘날리며 접견실 밖 복도에 모습을 드러내자,

수십이 넘는 그의 부하들이 일거에 허리를 숙였다.

그들 가운데 드롱보다 작은 이는 없었으나, 드롱보다 높은 이도 없었다.

곧 그중 한 명이 드롱의 오른편에 붙어 나지막이 보고를 올렸다.

“드롱님, 숲과 대화를 하러 나갔던 놈들이 복귀했습니다.”

“일은 성공적으로 끝마쳤나?”

“숲을 제 안방처럼 드나드는 귀쟁이놈들입니다, 목표물이 제아무리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다고 해도 자연 속에 일부가 된 놈들을 솎아낼 순 없습니다.”

“내가 그걸 물었나?”

드롱이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거슬린다는 듯 언짢은 표정을 짓자, 오른편의 남자는 태연하게 자기 주먹으로 사정없이 본인의 안면을 후려쳤다.

퍽!

윗입술이 터지고, 코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지만.

남자는 되려 담담히 고개를 숙여 드롱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를 넘었습니다.”

“나는 네 비상한 머리가 좋아, 다만 그 머리에 달린 구멍이 좀 거슬릴 뿐이지. 그래서? 일은 성공적으로 끝마쳤나?”

“네.”

“좋아, 내가 직접 놈들에게 보고를 받도록 하지.”

짧은 다리로 성큼성큼, 복도를 가로지르기 무섭게 지나친 장정들이 각을 재듯이 드롱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드롱이 저택 밖으로 나왔을 땐,

마당에 포진해 있던 사내들이 기다렸다는 듯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그들의 수만 족히 오십에 달했다.

개중에는 마법이 걸린 물건으로 무장한 자들도 있었고, 비록 그 숙련도가 처참할지언정 명색 상 인챈트를 거머쥔 자들도 있다.

이는 대외적으로 드롱 갱단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이윽고 드롱의 손짓에 귀 큰 자 무리가 살금살금 다가와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말해.”

“의뢰를 마치고 놈들이 이곳으로 복귀하고 있습니다.”

“의뢰를 마쳤다? 그 의뢰는 이 층계에서 가장 어려운 의뢰였을 텐데.”

“그만큼 놈들이 가진 것들이 범상치가 않아 보였습니다.”

“크기가 어때? ‘큰 건’ 같나?”

드롱의 물음에 귀 큰 자 하나가 즉답했다.

“아주 큰 건이 될 겁니다.”

“그럼 이제 파고들 지점을 내게 설명해 봐.”

검은 리넨 바지 주머니에 한쪽 손을 찔러 넣은 드롱이 굵직한 턱을 들어 올리며 재차 묻자,

방금 대답한 귀 큰 자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괴물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그들 중 하나가 부상을 얻었습니다. 아마도 마을에 복귀하는 즉시 치료를 받겠지요.”

“그럼 그놈부터 솎아내면 되겠군, 적당한 때를 봐서 작업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럼 자연히 남은 하나도 알아서 작업 칠 각이 나올 테지.”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린 드롱은 이제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유유히 저택 안뜰을 빠져나갔다.

* * *

“그럼, 테론. 여기서 헤어집시다. 이곳의 진료소에서 치료를 받고 계시면 제가 뒤따라 당신을 찾아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교역소에 도착하자마자 테론과 짧게 인사를 주고받은 뒤 그대로 교역소장이 있는 저택으로 향하던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뒤돌아 테론을 살폈다.

역시나 시선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했더니, 그는 본인의 시야에 내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요량으로 그 자리 그대로 선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차라리 걸음을 서둘러 그의 시야에서 내가 얼른 사라져주는 게 좋겠어.

뒤돌아보지 않고 저택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얼마나 걸었을까, 다시 고개를 뒤로 돌렸을 땐.

이미 테론이 서 있던 거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와 있었다.

이제 저택으로 들어선 나는 인기척을 느껴 현관으로 나온 초로의 남자와 짤막하게 눈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접견실로 향했다.

그 안에서 바탄 교역소장 울레이즈는 처음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접견실 책상 앞에 앉아 연초를 피우다가 나를 보곤 부리나케 그것을 비벼 껐다.

“오셨습니까?!”

어째서인지 그의 모습이 아까 전보다 더욱 초췌해진 것 같은데.

아마도 그만큼 이 일이 해결되길 바라고 있었던 거겠지.

그 기대에 부응하듯, 나는 열 마디 말 대신 손에 주렁주렁 달고 있던 것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

“이제 더는 무고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 겁니다.”

“정… 말입니까?”

“네, 용의자는 바로 괴물이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놈의 머리를 가져왔으니 확인해보고 싶으시다면…,”

내 말에 울레이즈는 검은 피로 얼룩진 천을 보곤 자연스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굳이 확인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현명한 선택이야.

훼손이 생각보다 심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후유증에 시달릴 수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설마 이 사건이 오늘 이렇게 해결될 줄은 몰랐습니다.”

울레이즈는 잠시 입술을 질끈 다물더니,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이어 접견실 뒷벽, 잠겨 있는 보관함을 열어 그 안에서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은 수첩을 꺼내 내게 건넸다.

“이건 이번 의뢰에 대한 보수입니다. 설명하기 좋아하는 나무 위위키로 만든 수첩에 마법사가 한 방울의 모습으로 구현해낸 ‘정돈’이라는 개념을 버무린 것이죠.”

설명하는 것만 들으면,

저것이 바로 마법 걸린 물품이로구나.

“최대 두 권의 책 분량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으며, 받아들인 책의 핵심 내용이 정돈된 모습으로 이 수첩에 기재되게 됩니다. 이후 다른 책을 받아들이게 되면 앞에서부터 기록된 내용부터 차례로 삭제되니 사용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저 말의 요지는…,

어쨌든 직접 한 번 써보면 이해가 될 거란 거겠지?

“그럼, 마다하지 않고 잘 받겠습니다.”

“그리고…,”

울레이즈는 이어서 책상 서랍에 들어있던 가죽 주머니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피해자의 유족들이 내건 이번 사건의 현상금입니다. 금화로 200개이니 모쪼록 마음 편히 받아주시기를.”

그런데 말이야.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

울레이즈의 얼굴에 왜 이리도 짙은 두려움이 묻어 있는 것인가?

사건은 해결됐고, 이제 피해자는 늘지 않게 되었는데.

그가 느끼는 두려움의 기원은 아직 뿌리 뽑히지 않은 느낌이 들어.

그리고 그 두려움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처음 그를 마주했을 땐 보지 못했던 두려움이었으니까.

하여,

책상 위에 놓인 주머니를 가져갈 겸 성큼성큼 울레이즈에게 다가가 고개를 내밀어 물었다.

“울레이즈.”

“에… 예!”

“뭡니까?”

날카롭게 쏘아붙인 내 물음에,

울레이즈의 안색은 겨울의 아이베리아처럼 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안면을 덜덜 떨며 호소하듯 한 가지 단어만을 반복한다.

“미안하오….미안하오….정말 미안하오…,”

그 말을 들은 즉시 나는 온몸을 타고 올라오는 기묘한 불안감을 토대로 시선을 저택 창밖으로 옮겼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찌 됐든 일은 벌어졌고,

그 일은.

테론, 그와 우선 적으로 관련이 있을 확률이 가장 높다.

무식하게 날카로운 본능만을 앞세운 나는, 일말의 의심 없이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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