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148화 (148/365)

148화. 그물과 작살 (16)

“이 정도 양이면 맹수도 바로 죽을 텐데요. 바생님.”

“상관없어.”

남자의 무심한 말에, 덥수룩한 수염을 한 난쟁이는 가죽 가방에 보관된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그렇게 의자에 속박된 채 혼절해 있는 남자의 목덜미에 주사기를 박아넣고 약물을 투여하자.

“흐…어어어어억!”

깊은 수면에서 건져 올린 것처럼, 남자의 두 눈이 대번에 뜨였다.

다만 주사기의 용량이 너무나 컸는지, 대번에 떠진 남자의 눈은 삽시간에 충혈되어 버렸다.

그 아름다운 잿빛 동공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로.

이윽고 혼절 상태에서 깨어난 남자의 심장 소리가 주위 모두에게 들릴 만큼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각성제를 놨으니 다음은 마약을 투여하도록 해.”

재차 이어지는 바생의 무심한 말에 난쟁이는 가죽 가방에 들어있는 또 다른 주사기를 속박된 사내의 목에 박아 넣었다.

“끄…그으으윽.”

약물이 모두 투여되기 무섭게, 속박된 남자의 입가에 걸쭉한 침이 고이다가 이내 뚝뚝 흘러내렸다.

“준비됐습니다.”

뒤이어 주사를 모두 마친 난쟁이는 속박된 사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물러섰다.

“흐으…. 흐으….”

각성제와 마약의 혼용으로 온몸을 벌벌 떨던 사내는 그 사이에서도 본인의 정신력을 발휘하며 소리쳤다.

“나는… 테론 에인츠다…, 너희들이 저지른 짓은…, 결코 용납되지… 않아….”

그러나 테론의 신음 섞인 목소리에 무심한 인상을 한 바생은 건조한 웃음을 지며 그 앞에 마주 앉았다.

“이곳이기에 용납되는 일이야, 도련님.”

그러면서 그는 옆 책상 위에 나열되어 있던 정과 도리깨 사이에서 가장 작은 망치를 집어 들었다.

“도련님, 이제부터 내가 너를 아주 씹창을 내버릴 건데. 우리 서로 피랑 땀 흘리지 말고 좋게좋게 해결하자, 응?”

“닥… 쳐….”

혼미한 정신으로도 용케 일갈을 한 테론에게.

바생은 싱긋 웃으며,

쩍!

정확히 테론의 검지 손톱을 망치로 내리쳤다.

“끄으으으윽!!”

“어때, 진짜 지랄 맞게 아프지? 도련님 몸속에 들어간 각성제랑 마약 둘 다 신경을 활성시키는 거거든.”

“흐으윽…! 흐윽!”

무참히 깨져버린 검지 손톱, 그 몇몇 파편은 손톱 밑 살에 촘촘히 박혀 들어있다.

“도련님, 꽤 괜찮은 물건들을 가지고 계시더라고? 그런데 그 중에도 단연 돋보이는 건 검이더라.”

“너… 돌려…,”

쩍!

바생은 일말의 변화도 없는 무심한 표정으로 테론의 중지 손톱을 박살 내버렸다.

“크으그으윽…!”

마치 혀를 씹는 고통을 느낀 것처럼 상체를 덜덜 떤 테론은 어깨에 힘이 풀린 듯 축 처져버렸다.

“그냥 말 좀 들어, 너 말고도 작업 쳐야 할 놈들이 한둘이 아니야. 특히 너랑 같이 다니던 그 샌님 새끼….”

“넌… 내가… 죽인….”

“와…, 이 새끼….”

무심한 표정을 일관하던 그는 결국 기가 차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걸치고 있던 가죽 외투를 벗었다.

“야, 각성제 준비해. 기절할지도 모르니까.”

그리곤 난쟁이를 불러 재촉하자, 난쟁이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치사량에 가까운 약물로 깨운 거라 기절시키면 더는 약물로 깨울 수 없습니다!”

“보니까 이 새끼 근성 있어 보이는데, 한 세 통은 더 주사해도 되지 않아?”

“아무리 그래도…, 두 발 걷는 자이잖습니까….”

“하라면 해, 이 새낀 그러고도 버틸 것 같은 새끼니까.”

“아래서 드롱님이 우릴 기다리고 계시지 않…,”

“야.”

외투를 바닥에 내팽개친 바생은 대번에 난쟁이에게 다가가 그의 정강이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지금 이 공간에서 누가 제일 높아.”

“끅…! 그야… 당연히….”

“나지?”

“그렇습니다….”

“그럼 까라면 까, 좆만 한 새끼야.”

난쟁이는 하는 수 없이 방금 테론에게 주사했던 것과 똑같은 용량의 주사기를 조제 해야만 했다.

이제 바생은 좀 더 본격적으로 테론을 고문하려는 듯,

신난 얼굴로 다가와 다짜고짜 그의 한쪽 손의 손톱을 모조리.

쩍!

쩍!

쩍!

박살 내버렸다.

“끄아아악!”

“옳지! 비명 한 번 겁나게 크네! 봐봐 이 새끼 이런 걸로 기절 안 한다니까?!”

바생은 곧이어 자신의 손으로 방금 박살 낸 테론의 손을 짓누르며 물었다.

“솔직히 지금에 와선 네 가문이니 이름이니 다 족쇄 같을 거 아냐? 한 마디 만 하자 도련님. 검의 인챈트에 걸린 귀속을 풀겠다고 맹세하듯 중얼거리기만 하면 돼.”

“죽… 여….”

짝!

그는 테론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 죽… 여라.”

“야, 우리 갱단원 중에 호모 새끼가 있었지 아마?”

바생이 테론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난쟁이에게 묻자, 난쟁이는 조심스럽게 주사기를 가죽 가방에 넣으며 대답했다.

“바일레라고 있습니다.”

“그 새끼 들어오라고 해, 아직 덜 망가졌으니까 놈이 아주 좋아할 거다.”

“그… 그게.”

“왜!”

“바일레는 오늘 진료소에서 죽었습니다.”

난쟁이의 대답에.

“크… 크큭….”

테론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크크큭….”

그런 테론의 모습에 바생의 이마엔 굵직한 핏대 하나가 솟아올랐다.

“너 이 새끼 끝까지 한 번 웃어봐.”

그는 바로 책상 위에 나열되어 있는 금속제 너클을 손가락에 끼워 테론의 옆구리를 향해 사정없이 가격했다.

뻑!

퍼억!

퍽!

도중에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여러 차례 들렸지만, 테론은 아무런 신음도 내뱉지 않았다.

그저 이를 악문 채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볼 뿐.

“도련님 그거 알아? 여기까지 버틴 놈이 도련님을 포함해 딱 두 명이었거든.”

그러나 바생은 되려 기대에 찬 눈빛으로 책상 맨 끝에 있는, 끝이 둥글게 묶인 밧줄을 집었다.

“근데 그놈은 이다음에서 결국 인챈트를 포기하더라고.”

훙훙.

위압적인 바람소리를 내며 밧줄을 휘두르던 바생은 이내 테론 앞에서 보란 듯이,

뭉툭하게 묶인 밧줄 끝을 보여주었다.

거기엔 양초가 덕지덕지 발라져 있어 마치 거친 유리의 표면과 같이 반질거렸다.

“야, 우리 도련님 바지 좀 벗겨 줘라.”

바생의 이어진 명령에, 저 멀리 우두커니 서서 구경하고 있던 장정들이 달려들어 테론을 의자 째로 들어 올렸다.

속박된 테론은 몸부림을 쳐보지만,

한쪽 갈빗대가 나간 그의 몸짓은 그저 움찔거림에 지나지 못했다.

이내 하의가 벗겨진 테론의 코앞에서 바생은 콧바람을 불며 밧줄을 돌린다.

“보통 다섯 대쯤에 불알이 터지더라고. 그러니까 만약 버틸 생각이 있다면 네 대까진 고려해 봐.”

그렇게 둥글게 휘두른 밧줄이 테론의 의자 밑을 향해 쇄도하기 직전.

“뭐하고 있는 거야.”

제분소 2층 문이 벌컥 열리며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러자 바생은 휘두르던 밧줄을 얼른 거두고 허리를 숙여야 했다.

“슬슬 끝나가려던 차였습니다.”

“끝나? 벌써 반 시체로 만들어놨군. 저번처럼 얻어낸 것 하나 없이 목표를 죽일 생각이냐?”

“놈의 불알만 까면…,”

“야, 이번 건은 드롱님께서 꼭 완벽한 물건으로 인계받기를 원하신다. 네놈이 그 사이에 껴서 즐길 시간 따윈 없다는 소리야, 알아?”

“그러니까 지금 하고…,”

“한 대.”

바생의 말대꾸에, 방금 들어온 남자가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쏘아붙였다.

그러자,

바생은 들고 있던 밧줄을 바닥에 내려놓고, 자기 주먹으로 자신의 안면을 후려쳤다.

“두 대.”

이어지는 말에도 바생은 군말 없이 자기 주먹으로 자신의 안면을 후드려쳤다.

곧 그의 입과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크…큭…. 세 대는… 어떠신가…?”

그 모습을,

작게 떠진 실눈 사이로 지켜보고 있던 테론은 처참한 모습과는 달리 흉흉한 살기를 내뿜으며 이죽거렸다.

그런 이죽거림에 바생은 충혈된 눈으로 테론을 죽일 듯이 노려본다.

그런데 그때,

테론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방금 들어온 남자에게 말했다.

“제안… 한… 하나 할까…?”

“좋지, 그래서 우리가 얻는 건?”

“혹…시… 모르지…. 인챈트를… 너희에게 넘겨… 줄지….”

“좋아, 말해 봐.”

“저… 새낄 내 앞…에서 고문시켜….”

테론의 그 발언에 방금까지 그를 고문을 하며 의기양양했던 바생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너 이 씨발…!”

곧바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는 찰나,

그 서두를 잘라먹는 사내의 한 마디.

“그럼, 정말 인챈트를 넘겨줄 건가?”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이 새끼한테 놀아날 작정입니까?!”

“닥쳐.”

사내의 무참한 시선을 느낀 바생의 얼굴이 급작스럽게 붉어지기 시작한다.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얘들아 저 새끼 묶어라.”

남자의 발언에 장정들은 군말 없이 다가와 바생의 몸을 속박하기 이르렀다.

“이 병신들아! 저 새끼한테 놀아나는 거라니까! 이거 풀어!”

“놀아나는 거라고 해도 해볼 가치는 있잖아, 안 그래 바생?”

“허, 이 개새끼…, 내가 너네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해왔는데…!”

“이번 기회에 아무나 할 수 있는 그까짓 일 말고, 아무도 못 하는 일을 해보는 거야, 어때? 설령 놀아나는 거라고 해도 너 따위를 희박한 확률에 걸 수 있다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것 같은데.”

“하하… 하하하! 이 새끼 이렇게까지 덜떨어진 새끼일 줄은 몰랐는데…!”

“자 그래서, 놈을 어떻게 고문하면 되지?”

남자의 물음에 테론은 상체를 들썩이며 격통 속에서도 참을 수 없다는 듯 크게 웃었다.

“과연…, 근본 없는 짐승… 새끼들이로구나…. 너희들은….”

“봐! 저놈은 우릴 지금 가지고 노는 거라고!”

“닥쳐, 바생. 자, 말해라.”

“그럼…, 놈의…, 불알을 까… 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고….”

테론의 말에 남자는 바로 바닥에 놓인 밧줄을 주워,

그것을 엄청난 세기로 휘둘러 바생의 사타구니 사이를 올려쳤다.

“끼… 끼이익…!”

바생은 감히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그대로 눈을 뒤집어 깐 채 혼절했다.

하지만 사내는 밧줄 질을 멈추지 않았다.

퍽!

퍽!

오히려 테론이 당황할 정도로, 사내는 바생의 골반까지 부술 기세로 밧줄을 미친 듯이 휘둘러 쳤다.

그렇게, 바생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다가온 난쟁이가.

“죽었습니다.”

사망 선고를 내리기 무섭게, 사내는 손에 들고 있던 밧줄을 내팽개치며 테론에게 다가갔다.

“오해하지 마라, 그저 언제가 됐든 저놈을 정리하려던 차에 좋은 기회가 왔을 뿐이니까.”

말을 마친 사내는 책상 한가운데 놓인 칼을 빼 들었다.

“그리고 난 너희 같은 부류가 제일 아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

이윽고 검을 번쩍 들어 올려 테론의 오른 손목을 향해 매섭게 내리치려는 찰나.

“아… 안돼!”

테론은 혼신의 힘을 다해 절규했다.

그 절규에 사내는 입가에 만연한 미소를 띠었다.

“그렇지, 검에 죽고 사는 너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요 손목 아래에 있는 것뿐이지.”

“너…!”

“더군다나 검술의 명가인 에인츠 가에서 손 병신이 된 자식을 자식이라 인정해 줄까? 천만에, 그저 너의 어리숙함 때문에 인챈트를 잊어버렸다 칭얼거리기만 해도 손목을 잃은 것보단 좋은 취급을 받을 거다.”

제법,

날카로운 그의 통찰에 테론은 처음으로 두려움에 떨었다.

저 사내는 뭐 하는 작자이기에…,

혹시 등반자이기 전에 깃발을 가진 자였을까?

“자, 이제 너는 마주한 갈림길 중 하나를 택해야 해. 참고로 나는 뜸을 들이는 걸 아주 싫어한다.”

그의 경고에 테론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테론은 기묘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뭔가가,

뭔가가 위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설마 셋째 형님의 의지라도 되는 걸까 하며 고개를 쳐든 테론의 눈엔.

아까의 기세는 어디 가고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발발 떠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비로소 깨달았다,

본인만 이 기묘한 감각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래서 그 기묘한 감각이 느껴지는 천장 쪽 방향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힘겹게 들어 올렸다.

아,

제분소의 천장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보다.

하늘에 떠오른 저것은 뭐지.

마치…,

‘태풍의 눈’

* * *

[0]

[마그나베노스]

[세상을 관통한 창공의 눈]

탑의 만들어진 하늘 따위론 감당할 수 없는,

그 거대한 눈이 떠졌다.

한 남자의 의지로 인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