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193화 (193/365)

193화. 떨기 꽃 아래 모루 (13)

굽이진 외벽을 건너면 드러나는 도시.

그것은 분명 인간의 숲이라고 불릴 만한 규모였다.

다만,

도시 위생이 상상 이상으로 좋지 않은 탓에.

“우욱…!”

테리아는 창백해진 얼굴로 연신 욕지기를 하기 시작했다.

중립지역에서부터 단련되었던 나조차도, 리디굴람의 악취는 버티기 힘든 것이어서.

“맞다, 내게 향수가 있었지.”

순간 로사플로에서 구매했던 향수가 떠올라 그것을 꺼내 테리아에게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받은 향수를 챙겨온 작은 손수건에 적시고는 그 자리에서.

상체를 틀어 두 팔로 갑작스레 내 목을 휘감았다.

“왁!?”

너무 놀라 육성으로 소리치자 테리아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도 사탕 입힌 사과 같은 입술을 비죽 올리며,

“왜 그렇게 놀라?”

잔망스럽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든 손수건을 입마개로 만들어 내게 씌워 주었다.

그러자 주위에 만연했던 악취가 말 그대로 물에 씻겨나가듯, 은은하면서도 깊은 꽃향기가 물씬 풍긴다.

“어때, 딱 맞아?”

“딱 맞아.”

“좋아.”

휙 고개를 돌리곤 다른 손수건을 꺼내 능숙히 입마개로 만들어 쓴 그녀는 그제야,

찌푸리고 있던 금빛 눈썹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렇게 악취에서 벗어나니 뒤늦게 리디굴람의 거리 그 면면한 모습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간판,

그 간판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굴뚝.

이 순간에도 굴뚝 밖으로 쉬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형형색색의 연기 기둥.

안의 모습이 다 보이는 어느 작은 공장 안에선,

두 난쟁이가 마치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가죽을 무두질하고 있고.

바로 옆 큰 공장에선 기다란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인간 뒤로 앳된 소년들이 거대한 송곳니를 운반하고 있다.

전혀 광물 같지 않아 보이는 소재이나 그것이 두들겨지는 소리는 분명,

깡, 깡.

거리는 차진 쇠 비명이었으며.

딱 봐도 산들바람에 나풀거릴 것처럼 보이는 얇은 직조물은 어째선지 사람이 들고 흔들어도 결 하나 까닥 않고 빳빳하게 서 있었다.

신비 옆에 기이,

기이 옆에 신비가 있는 거리는 내겐 틀림없는 새로운 세상의 단면이었지만.

동시에 그러한 가공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악취는 새로운 것 머금고 있을 설렘을 아주 산산이 부숴놓았다.

그나마 떨기 꽃을 거머쥔 손수건 덕분에,

이 거리를 아주 작은 꽃밭 위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반면 테리아는,

푸른 동공, 그 안에 번진 황금빛 홍채를 번뜩이며 거리에서 쏟아지는 기술들에 유감없이 호기심을 쏟아내고 있다.

방금까지 악취에 시달리며 욕지기를 일삼던 그녀였는데,

고작 그런 것으론 자신의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이길 순 없었던 거겠지.

“저거 저렇게 가공하는 거 아닌데.”

아니, 테리아는 입마개를 나풀거리며 나지막이 훈수를 두고 있었다.

“저렇게 불질하면서 잘도 간판을 유지하고 있네.”

같은 기술자로서 저들이 하는 일들이 잘못됐다 지탄 한 거야?

“그나마 이 골목에선 저 가게가 제일 수준이 높은 것 같아.”

테리아는 손가락으로 한 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과는 달리 그 가게에는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해서 그 이유를 물으려 했는데,

“가게의 질적인 수준과 소비자의 안목은 상통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 소비자들은 과정보단 매대에 화려한 물건이 올라와 있는 것에 더 관심이 많으니까.”

그녀는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내가 했을 질문에 대한 답을 말했다.

“그렇다고 모든 소비자의 안목이 가게의 질적인 수준과 상통하지 못할 리는 없잖아?”

그래서 하려던 질문을 바꿔서 그녀에게 묻자,

테리아,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러나 애석하게도 안목이 높은 소비자는 이런 델 오지 않지.”

아하,

그건 그렇지.

“그리고 요즘은 안목도 돈으로 사는 시대니까, 어느 발길이 끊긴 깊은 산중의 기인이 운영하는 대장간이니 온 세상을 방랑하며 자신의 물건을 뽑기처럼 파는 괴짜 기술자니 하는 건 이제 철 지난 로망이잖아?”

“테리아,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좀 이상한데.”

내 말에,

그녀는 나를 올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나는 그 철 지난 로망에 빠져 사는 어리석은 기술자니까.”

어쨌든 요지는.

“과정의 질적이고 결과의 만듦새고, 결국엔 둘 모두를 충족시킬 안목을 발휘하기 위해선 많은 돈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이지?”

“어, 만약 그럼에도 충족하지 못했다면 제일 먼저 돈이 부족한 건 아닐까 생각부터 해야겠지.”

* * *

리디굴람 중앙에 있는 내벽을 통해 중심지로 향하자 들어온 풍경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알록달록한 벽돌로 쌓아 올려진 길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줄지어 늘어선 건물들은,

지붕의 모양부터가 고급스러웠고 대부분 공장 내부가 유출된 외벽 거리와는 달리 이곳은 안에서 결렬한 가공 소리만이 들릴 뿐, 내부 모습이 보이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다만 여기서도 특유의 그 악취는 굉장해서,

테리아와 나는 입마개에 향수를 한 번 더 뿌려야만 했다.

그런데 악취에 시달리는 건 비단 외부인뿐만이 아니었는지.

중심지를 거니는 행인들 모두가 우리와 비슷한 입마개를 쓰고 있었다.

이미 리디굴람에선 그러한 입마개가 일종의 장신구와 같은 취급인지 상류층으로 보이는 이들의 입마개는 빻은 보석으로 자수를 넣은 양 화려하기까지 했다.

단지 입마개 그 하나만으로도,

외벽과 내벽 사이의 양극화가 얼마나 벌어졌는지 짐작이 갈 수 있을 정도네.

“오르미그의 기름은 일개 소상인이 다룰 수 있는 소재가 아니야, 그렇다고 중형급 원정대에서도 쉬이 다루기 힘든 소재여서 대형 원정대가 운영하는 곳까지 가야 해.”

“그럼 이보다 더 깊숙이 들어가야겠네.”

“응.”

벤투스를 몰아 굽이진 벽돌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앞의 두 벽과는 달리 규모가 더 작은 벽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부터는 보이지 않던 병사들이 깃발 휘장이 새겨진 가죽 코트로 무장한 채 보초를 서고 있었다.

벤투스를 몰아 그 벽에 다가가자.

병사들은 단지 내가 타고 있는 말의 모습을 살펴본 것만으로도 별 경계 없이 곧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일개 병사들조차 말의 품종을 구분할 수 있다는 건가?

이내 마지막 벽 너머로 도달한 우리는,

아래로 깎인 길 양옆, 높은 석탑으로 점철된 도시를 마주할 수 있었다.

석탑 사이사이로는 거대한 도로와 같은 규모의 구름다리가 기하학적인 모습으로 지어져 있고,

그 위로는 마차를 비롯한 화려한 복색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길 거니는 모습이 보였다.

테리아는 그러한 석탑 도시를 눈에 담으며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이것이 바로 현존 건설 기업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악시안의 작품…!”

반대로 나는 가장 높은 석탑 위에 휘날리는 깃발을 올려다보며 감탄했다.

이 거대한 성을 거머쥔 저 가문의 위상은 얼마나 높을까.

그러면서도 이렇게 거대하게 꽃펴 있는 저 깃발은 어떤 고충을 가졌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고충을 해결했는지 할 수만 있다면 저들의 기록서라도 훔쳐보고 싶은 마음이다.

간신히 석탑 단지에서 눈을 떼고 거리에 박힌 팻말을 발견한 나는 곧 그 깃발이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위대한 벨로스터의 길]

벨로스터 가문이라.

이 정도 규모라면 아이베리아 중심 땅 내에서도 손가락에 드는 깃발이겠지.

과연.

과연 나는 이곳까지 번질 수 있을까.

마땅히 베나즈로서 번질 수 있을까.

지금 당장 나는 덜 여물어.

이런 원대한 생각조차 품기 벅차다.

그러니 지금은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자.

말을 몰아 내리막길인 중앙 도로를 가로지르면, 곧 테리아는 눈에 불을 켠 채 나를 멈춰 세웠다.

“디안, 바로 이곳이야.”

도착한 그곳 앞엔,

절벽 하나를 포 떠와 석탑 외벽에 붙여놓은 아주 장엄한 건축물이 있었다.

그런 석탑 벽면에 붙인 절벽에는 마찬가지로 글귀 하나가 아주 장엄히 조각되어 있었는데,

[영원한 무지개, 일곱 원정 연합 ‘칠라드’]

“허.”

결국엔 규모에 압도되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어야만 했다.

그러나 채 감탄이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별안간 소란스러운 방울 소리가 곳곳 골목길에서부터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나와 테리아는 영문을 모르고 그저 점점 가까워져 가는 소리 앞에서 멀뚱멀뚱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망아지를 타고 있는 소년들.

그 수가 어림잡아 백에 가까워 보인다.

그들은 하나같이 손목에 커다란 방울을 매고 있어 이동하는 내내 정신이 사나웠지만,

거기에 더해 아이들은 목청껏 동네방네 큰소리를 치기까지 했다.

“잡혔어요, 잡혔어!”

“사냥에 성공한 메길란이 막 디리굴람에 도착했어요!”

“경매요, 경매요!”

“관심 있는 자들은 모두 참여하세요!”

이내 아이들이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여러 골목으로 찢어져 잠든 거리를 연신 일깨우며 멀어져갔다.

한바탕 그들의 소음에 휩쓸린 우리는,

그저 서로 바라보며 눈만 끔뻑거렸다.

* * *

궁금증이라는 게 참 무섭지.

우리는 소년들이 홍보한 그 경매가 무엇인지 기회가 있다면 구경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곧 두 발 걷는 자들이 사방에서 몰려와 석탑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윽고 칠라드의 깃발을 어깨에 두른 장정들이 걸어 나와 군중 앞에 서면,

그 뒤에 쳐있던 장막이 거둬지며 거대한 괴생명체의 사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메갈란은,

바다 특유의 고질적인 변덕으로 죽은 고래로부터 생성되는 괴물이라 했다.

그렇게 탄생한 메갈란은 헤엄치는 그 자체만으로도 해류를 만들어 말 그대로 바다의 변덕에 일조하는, 뱃사람들에겐 사신과 같은 존재란다.

그런 괴물을 사냥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칠라드 연합의 3번 기수이자,

벨로스터 가문의 사남.

라에기르 벨로스터.

왜 이렇게 자세히 아냐면, 구태여 칠라드 쪽에서 그를 마치 무대 위에 올라온 배우처럼 소개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모인 군중 가운데 여성 몇은 라에기르의 눈빛만으로 실신할 지경에 이르렀다.

여러모로,

대단하면서도 생소한 경험이었다.

해서 이제 궁금증도 대강 해결했겠다.

나와 테리아는 군중 밖을 빠져나와 본격적으로 오르미그의 기름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칠라드의 인증이 박힌 공식 상점을 중심으로 수소문을 하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그에 대한 향방을 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찾고자 하는 물건에 대한 정보를 쫓고 쫓아 도착한 상점은.

[빈의 만물상]

석탑으로 점철된 도시 내에서도 제법 허름한 곳이었다.

앞서 테리아가 했던 얘기 때문일까.

비록 허름한 가게였음에도 그만큼 내 마음은 기대로 가득 차올랐다.

말 그대로 안에서 대단한 기인이 튀어나올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상점 문을 열어 테리아와 함께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두서없이 난잡하게 어질러진 물건들.

정리라는 개념이 거세되면 딱 이 모습이 아닐까 싶다.

곧 우리의 인기척을 들었는지, 안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남루한 복장의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무엇을 찾는가?”

오오, 기인이다 오오…,

그의 물음에 테리아가 입마개를 고쳐 쓰며 대답한다.

“오르미그의 기름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눈썹을 살짝 일그러트린다.

“그거라면 분명 이곳에 있지.”

오!

“그런데 어딨는지는 모르겠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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