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202화 (202/365)

202화. 떨기 꽃 아래 모루 (22)

검은 눈에 시선을 쏟은 뒤,

그것을 닫힌 방문 아래 너머로 굴리면.

곧 또 다른 시야가 머릿속에 맺히기 시작한다.

그 시야는 문 닫힌 방 너머를 바닥 시점에서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두 눈 외에 또 다른 시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 감각은 너무나 이질적이고 낯선 것이었지만, 그 행위를 몇 차례 더 반복하고 나니 금방 익숙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검은 눈이 가진 능력의 세부적인 것들을 알아낼 수 있었는데,

첫째는 알레의 두 아이가 일러준 대로 검은 눈을 마주친 시간이 곧 해당 능력의 지속시간이라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검은 눈에 시선을 10초간 쏟았다면, 그것이 내게 제공하는 시야의 지속시간 역시 마찬가지로 10초다.

여러모로 반복 숙달하는 과정에서 최대 3분까지 시선을 쏟아봤는데도 무리 없이 그 시간만큼 능력을 발휘하는 걸 보니,

훨씬 긴 시간까지 작동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로는 검은 눈이 제공하는 시야 영역이다.

처음은 검은 눈에 그려진 희미한 흰 점을 중심으로 그것이 마치 동공처럼 작용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생전 바치가 의안으로 쓰기 위해 새겼던 흔적이었을 뿐.

검은 눈은 그 자체로 전방위적인 시야를 제공했다.

바닥 따위에 닿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분에서 말이야.

다만 머릿속에 맺힌 시야는 사람의 눈과 같이 한정적인 범위여서 전체적인 시야를 두루 파악하기 위해선 고개를 움직여만 한다.

이런 능력과 능력을 발휘하는 영역을 놓고 봤을 때.

정말 소설에서 묘사한 것처럼 제3의 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물건이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발동 조건.

시선 먹인 검은 눈은 내 손을 떠나고 정확히 3초 뒤에 그 능력을 발휘했다.

또 검은 눈이 제공하는 시야는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감각의 감성 안에 있어 내가 원하는 때에 차단할 수 있었다.

그 과정은 눈을 감는 것과 같이 간단한 것이었다.

요컨대 검은 눈의 제약적 관건은 시간이라는 건데,

그것을 감안해도 충분히 파격적인 능력이라 볼 수 있겠다.

동시에 마그나베노스가 가진 능력이 얼마나 절륜한 것인지 실로 절절히 실감했다.

마그나베노스의 능력 중 하나인 압도적인 시야 제공은,

그 범위도.

또 복합적인 작용점도 검은 눈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것은 두 발 걷는 자의 감각을 초월해 사용자 자체를 재해화 시켜버리는 것에 가까우니까.

더군다나 검은 눈이 가지고 있는 시간적 제약 따위도 존재하지 않지.

다만 이런 마그나베노스에도 그에 상응하는 제약이 있기는 하다.

바로 사용자가 감당해야만 하는 무지막지한 반동.

그걸 생각하면 말 그대로 힘에 비례하는 대가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검은 눈은 그 나름대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물건임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 물건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 준…,

소설의 주인공 알레의 두 아이.

그는 분명 이것이 ‘엘릭시르’를 찾을 때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고 했었지.

두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을 봄으로써.

이건 아주 결정적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소설 주인공의 발언이니까.

생각해보면,

테리아가 알려준 소설 내용 가운데 분명 이런 내용이 있었다.

알레의 두 아이 중 하나는 예지 능력을 가졌다고.

이는 두 아이 중 하나가 바로 이 세상의 주인인 마법사 타히그이니 어쩌면 참으로 타당한 이야기지 싶다.

아마,

이른 낮에 나를 찾아왔던 이는 붉은 머리 청년이 아닌 타히그였을 것이다.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지.

그는 자신의 소설이자 세상인 이곳에서 외지인인 내 바람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주었다.

그것은 자신의 세상에 개연성을 부여해준 나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아니면 이것마저도 그의 소설 속 커다란 흐름 중 하나였을까.

마법사가 아닌 이상,

내가 그것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

* * *

테리아는 그녀의 감긴 눈꺼풀 너머로 펼쳐졌던 내 이야기를 듣곤 연신 아쉬움을 내뱉었다.

주인공인 알레의 두 아이가 어떤 이인지 꼭 보고 싶어 했다면서.

그런 그녀는 주인공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이미 끝장을 들춰본 나로서는 그녀의 순수한 무지를 지켜주고 싶어서, 그래서 그가 내게 해준 조언을 뺀 다른 나머지 이야기들은 하지 않았다.

이어서 검은 눈을 집은 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테리아는 처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묘한 이질감을 느꼈는지 금방 미간을 찌푸렸다.

“신기하네, 도구가 신체의 또 다른 기관으로 작용하다니.”

그러면서 자조적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푸념한다.

“뭔가 날 닮았는걸.”

자신의 오른팔을 휘휘 저어 보이면서.

나는 그런 그녀 옆에 앉아,

그녀의 오른팔을 거머쥐었다.

그 가느다란 것은 내 손에 손쉽게 들어왔다.

그녀는,

“뭐… 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눈에 담긴 별을 훔치듯 빤히 쳐다보았다.

따듯했다.

의수로 대체된 그녀의 오른팔은.

색이 창백할 뿐이지 살갗은 부드러웠으며,

그 깊은 곳엔 단단한 뼈가 느껴졌다.

그녀가 가진 가장 큰 수수께끼는 내 눈엔 영락없이 완벽한 그녀의 일부로 보였기에.

“네게 비할 물건 따위는 없어.”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울컥하며 튀어나온 그 확신은 아마도,

물건으로서 착취당해왔던 내 과거에 대한 응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테리아 루스.

그녀는 금 묻은 눈동자를 천천히 굴리며 푸르른 빛을 반짝였다.

그러고는 순간 깊은 곳에서 울화와 같은 슬픔이 터져 나왔는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꾹 다문 입술에 맞추어,

그녀의 도랑 같은 눈매 끝에 새초롬한 망울이 걸린다.

그런 표정을 잘도 지으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

그러면서도 꿋꿋한 척 얼른 표정을 고친 그녀는 이제.

“그거야 당연한 말이지.”

제법 능청스럽게 대답하고는 미소짓는다.

“그런데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 거야…?”

이어 오른팔을 붙들고 있는 내게 핀잔을 주면 나는 거기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손을 떼어야만 했다.

이내 다시 어색한 시선을 나누다가,

서로 얼버무리듯 검은 눈에 대한 주제로 매끄럽게 넘어갔다.

“그래서 알레의 두 아이가 말하기를, 두 눈으론 결코 볼 수 없는 것을 봄으로써 엘릭시르를 찾는다고 했지?”

“맞아.”

“그 말은 제3의 눈인 검은 눈의 도움이 있어야만 볼 수 있다는 건데.”

“그렇겠지.”

멀뚱멀뚱,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잠자코 지켜보던 테리아는 원론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죽치고 앉아서 고민하는 것보단 밖으로 나가 생각해보는 게 좋지 않겠어?”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네.

* * *

엘릭시르.

그것은 분명 테카테 호수에 있다고 했다.

분명 이에 대한 위치는 빈이 제일 잘 알고 있으리라.

그는 우리가 찾아왔을 때도 자신의 딸을 보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지만, 이내 테카테 호수에 대한 것을 묻자 기꺼이 딸의 이마를 닦던 수건을 놓았다.

“알레카 서쪽 숲을 넘으면 거대한 호수가 하나 나오네, 숲이 꽤 깊어 길을 잃기 쉬우니 조심해야 할 거야.”

주름진 손으로 정성껏 약도를 그려주는 그의 모습에선 혼신을 엿볼 수 있었다.

“난 그곳에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엘릭시르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엔 찾지 못했어.”

이윽고 완성된 약도를 우리에게 건네며 탄식하던 빈은,

“내게는 탄력을 뒷받침해줄 젊음도, 몰두를 위한 시간도 많지 않았으니까.”

다시 따듯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딸의 이마를 정성껏 닦기 시작했다.

어느새 간절한 바람은 주름지고, 당장 눈앞에 누워 있는 자식을 보살피는 데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만 하는 노인의 모습은…,

참으로 구슬픈 것이었다.

하여 약도를 받은 우리는 곧바로 벤투스 위에 올라타 길을 떠났다.

그렇게 나선 알레카의 거리는,

대부분 홍등을 벗어던지고 지붕 유리로 모은 햇살을 이용해 특산품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마을 주민 가운데 몇몇은,

말을 타고 가는 나를 알아보곤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 * *

“솔직히 아직도 확신이 서질 않아.”

“무슨 확신?”

“테카테 호수에 엘릭시르가 정말 존재할지.”

그녀의 궁금증을 대변하듯,

후드 바깥으로 비죽 튀어나온 금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건 연금술사들이 추구하는 완벽의 매개이자 환상에 가까운 개념이거든. 그런데 우리가 지금 그것을 찾고자 하고 있잖아.”

“원래라면 구할 수 없는 물건이란 말이야?”

“꼭 그렇지만은 않아, 의도와는 달리 우연의 일치로 엘릭시르가 탄생한 사례가 있긴 하거든.”

“말만 들어도 뭔가 희박한 느낌이네.”

“그만큼 모호한 것이니까.”

다만,

이곳은 엄연히 마법사의 상상으로 건설된 세상이기에.

우연 하나 정돈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약도에 적힌 내용을 따라 서쪽 숲을 가로질러 가자 곧 숨겨진 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만약 약도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 숲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헤맸을 거야.

그 정도로 이 숲은 아주 고약하다.

바람결에 재잘거리는 나뭇잎들은 하나같이 거짓만 늘여놓고 있어.

다만 빈이 이곳에 쏟았을 시간의 결실을 손에 쥐고 있는 이상, 숲의 유린은 우리에게 통하지 않는다.

해서 무사히 숲을 빠져나가자,

곧 우리 앞에 장대한 풍경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 일부분을 똑 떼어 삼킨 거대한 호수.

그 양옆으로 도열 하듯 나열되어있는 산들.

보기만 해도 심경이 시원해지는 절경이었지만 동시에 그 절경에서 우리는 절망을 맛보아야만 했다.

“이건…,”

내 탄식에,

테리아가 공감하듯 이어 말한다.

“너무 큰데…?”

규모가 엄청나다.

물살만 있었다면 바다라고 착각할 만큼.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수색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을 정도로 크다.

“디안, 저기에 배가 있어.”

그녀의 말대로 호숫가엔 노 두 개를 품은 낡은 배 한 대가 뭍에 반쯤 올라와 있었다.

저 배를 타고 호수를 수색하면 될까 싶지만 서도…,

아마 저 배로 수면 위를 훑는 대만 십수일이 걸릴 거다.

그래도 일단은…,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가보는 게 낫겠지.

말에서 내려 그녀와 함께 뭍에 나온 배를 떠민 뒤 그 위에 올라탔다.

이어 노를 붙잡고 잔잔한 수면을 긁어 나아가면 금방 망망대해에 걸쳐있는 기분이 들었다.

엘릭시르를 찾아야 한다는 막막함이 들기도 잠시.

머금은 하늘 위로 노를 젓고 나아가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그 반증으로,

테리아는 아이와 같은 천진한 표정을 지으며 금세 주위 풍경을 만끽하였고.

그런 그녀와 마주 보며 노를 젓고 있던 나조차도 순간 가슴에 흥겨움 한 줄기를 걸쳤으니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호수 한가운데로 진입한 뒤에 나는 노 젓는 것을 멈추었다.

그러자 그녀는 배가 멈추길 기다렸다는 듯,

날 빤히 쳐다보며,

넌지시.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었다.

“이 의수는 내 아버지, 아르테서스의 전부였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비단 아버지뿐만 아니라 모든 대장장이가 꿈꾸는 것이지, 연금술사들의 꿈인 엘릭시스처럼.”

테리아는 두 뺨을 붉히면서도, 계속해서 날 빤히 쳐다보며 오른팔을 덮고 있던 소매를 걷었다.

“내 오른팔은 제리드 강철로 만들어졌어. 세 살 먹은 아이의 의지만으로도 성형이 가능한 희대의 금속이지.”

제리드 강철이라면,

그래 분명 책에서 그 이름을 본 적이 있어.

“그냥…, 알려주고 싶었어. 너한테는.”

이내 마주한 내 눈길을 피하는 테리아,

그런 그녀의 가녀린 목은 뻘겋게 상기되어 있다.

“그리고 더 많은 것도 말해주고 싶고.”

애써 고개를 획 돌린 채,

내 눈치를 살살 살피며 내뱉는 모습이 잔망스럽기 그지없어.

사랑스럽다…,

그녀는.

“다 듣고 싶다, 네 얘기.”

그래서 그런 감정에 시인하듯 담담히 대답했다.

그녀는,

내게서 표정을 숨기려는 듯 고개를 더욱 돌렸지만.

그런 그녀의 뒷모습에서 뽀얀 광대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 으… 래서…, 이젠 어떻게 하지?”

다시 시작된 그녀의 능청스러운 얼버무리기.

거기에 나도 같은 능청으로 섞여 본다.

“검은 눈으로 뭘 봐야 할지도 오리무중이야.”

* * *

유유자적,

호수 위에 한참을 유랑하듯 떠다니던 우리 위로 스멀스멀 밤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추위를 느끼는 테리아에게 어스름을 덮어줬음에도 그것이 가시질 않아서.

“아무래도 뭍으로 나가야겠어.”

노를 붙잡으려는 찰나, 그녀는 이제 익숙한 모습으로 내 손목을 붙잡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다려 봐, 이럴 줄 알고 챙겨온 것이 있으니까.”

그녀는 곧 벨트 주머니에서 둥근 유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게 뭐야?”

“알레카의 특산품, 라센이 내게 따로 챙겨준 거야.”

둥근 유리 안에는 쨍한 빛이 맺혀 있었다.

“그게 알레카의 특산품인 햇살이구나.”

“응.”

이어서 벨트에 매달려 있던 컵으로 호숫물을 받아낸 그녀는,

그 안에 유리를 집어넣고 마주 앉은 우리 가운데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곧 유리에서 뿜어져 나온 햇살이 물을 통해 그 쨍함을 사방에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러면 따로 불 피울 필요가 없지.”

“대단하네, 연금술이란 건.”

“저번에도 말했듯이 이건 연금술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거야, 물은 가장 기본적인 투영의 매개니까. 햇살 맺힌 유리를 물에 담가 그 쨍쨍함을 투영해낸 거지.”

…,

순간 찌릿한 무언가가 내 머릿속을 관통했다.

그 저릿한 뇌리를 느낀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질문했다.

“테리아, 바다에는 있지만, 호수에는 없는 게 무엇일까?”

이에 테리아는 내가 원하는 답을 금방 내놓았다.

“파도?”

“맞아, 호수는 파도가 치지 않아.”

그렇기에 하늘을 온전히 베어먹지.

“물은 연금술에 있어서 투영의 매개라고 했었지?”

“응.”

엘릭시르는 그 자체로 연금술의 정수와도 같은 개념이다.

호수에 있을 엘릭시르를 찾고자 한다면 마땅히 연금술에 관련된 단서부터 접근해야 해.

그 말은 즉,

호수는 자체로 투영의 매개이고,

그 호수가 투영해내는 무언가가 바로 엘릭시르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결론에까지 도달하면,

문득 지금 호수에 비친 것이 무엇인지 쳐다보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결정적인 것을 눈에 담았다.

아침에는 감지만,

밤에는 눈을 뜨는.

무수한 별들이 호수 위에 촘촘히 박혀 있는 모습을.

내가 호수라면,

엘릭시르를 머금고 있는 호수라면.

그것을 투영할 하늘은 어둡기를 바라겠어.

그래야만 누군가가 구분이란 걸 하고 발견이란 걸 할 수 있을 테니까.

하늘에는 없는,

호수가 투영해낸 것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테리아, 내 신호에 맞춰 유리에 담긴 빛을 하늘로 쏠 수 있겠어?”

“해볼게.”

그녀와 무언의 고갯짓으로 신호를 주고받은 뒤,

시선 담은 검은 눈을 꺼내 있는 힘껏 위로 던지면.

곧 내 머릿속에 밤하늘을 담은 호수의 풍광이 선명히 맺혔다.

그리고 그 시점에 맞추어,

“지금!”

테리아에게 신호를 주면 그녀는 오른손가락 하나로 손쉽게 컵 안에 담긴 유리를 부숴 위쪽으로 햇살을 쏘았다.

그러자 곧 머릿속에 맺혀 있던 호수의 풍광 위로 햇살이 들이닥친다.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아님에도 그 쨍함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어 떨어지는 검은 눈을 받아들고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됐다!

위에서 바라본 호수의 모습이 잔상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어.

이제 그 잔상이 사라지기 전에,

나는 얼른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머릿속에 남은 잔상 위로,

두 눈에 보이는 밤하늘이 포개어지니.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테리아도 금방 깨달아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아,

보인다.

밤하늘엔 없지만,

호수엔 있는 별 하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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