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무저갱 (3)
“게헨나에는 총 네 개의 조직이 있어.”
늘 그래왔던 것처럼 길거리 상인에게서 무상으로 먹을 것을 받아낸 람비.
그는 곧 손에 쥔 카사바를 한입 크게 베어 물곤 설명을 계속했다.
“푸리나스, 트러빅, 카멘토, 알레아로.”
우물우물,
입안 가득 고인 카사바를 꿀떡거리며 우악스럽게 넘긴 그는 자신의 왼쪽 가슴팍에 있는 문신을 가리켰다.
그곳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건 푸리나스의 증표야.”
“아까 마주쳤던 그자들도 푸리나스인가?”
“그래, 맞아.”
람비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게 말했다.
“그냥 간단히 말하자면 푸리나스는 파란색, 트러빅은 녹색, 카멘토는 하얀색, 알레아로는 보라색으로 알아두는 게 좋아. 솔직히 언제 문신을 확인하고 자빠져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색으로 구분 짓기로 합의했거든.”
그래,
그편이 나도 더 편하네.
“트러빅 새끼들은 괴물 투기장 사업을 해, 네 조직 가운데 가장 잔인한 놈들이지.”
“괴물 투기장?”
람비는 뾰족한 귀 끝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괴물 투기장.”
자연의 맞물림으로 나타나는 그것들을 어떻게 투기장 싸움의 패로 쓸 수 있는 거지?
내 표정을 읽은 람비는 입에 남은 카사바 껍질을 바닥에 뱉으며 그 의문을 해소해 주었다.
“투기장 자체에서 괴물을 만들어내거든, 그 새끼들.”
“투기장 자체에서 괴물을 만들어?”
“그래, 그래서 괴물의 종류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 그런데 놈들이 그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그 괴물의 자세한 탄생 과정을 엮었기 때문이야.”
“탄생 과정?”
“봐봐, 괴물로 투기장을 운영할 정도면 반대로 해당 괴물을 그만큼 확실히 만들 수 있다는 뜻이잖아?”
나는 살짝 경멸을 담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서 인위적으로 그 괴물을 만드는 거야,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어텀’인데 산부를 생매장하면 그 맺힌 한으로 나타나는 괴물이거든.”
“…,역겹군.”
“그래, 그놈들은 게헨나 내에서도 가장 미친 새끼들이야. 그런데도 관문을 넘는 마차 가운데 절반은 그 씨발 것을 구경하기 위해 올 정도로 인기가 엄청나.”
그렇다면 내 직접 관문을 넘으면서 봤던 그 화려한 마차 행렬 가운데 몇몇도,
그 투기장을 구경하기 위한 목적이었을까.
“그나마 트러빅 놈들은 투기장 사업을 진행하는 것 외엔 다른데에 관심을 두지 않아, 그래서 놈들과는 구역 싸움도 잘 일어나지 않지.”
이제 람비는 광장을 지나쳐 푸른 천이 널려 있는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 그의 뒤를 계속해서 따르면, 다시 물 흐르듯 설명이 이어진다.
“다음은 카멘토인데, 이 새끼들이야말로 게헨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놈들이야.”
“그들이 뭘 했길래?”
“마약을 생산해서 팔아.”
내가 알고 있던 무법지대에 대한 개념이,
지금 막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왜 그래?”
이런 내 표정을 읽은 람비의 물음에, 나는 푸념을 하듯 옛 기억을 혀로 담아 내뱉었다.
“난 중립지역 출신이거든, 제법 척박한 곳이었는데 이곳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아서.”
내 말에 람비는,
히죽거리며 웃다가 이내 침을 뱉으며 담담히 말했다.
“시작부터 지옥인 곳이랑, 서서히 지옥으로 변해가던 곳이랑은 엄연히 다를 수밖에.”
그리고는 약간 씁쓸한 듯, 발걸음을 멈춘 그가 뒤돌아 나를 보며 푸념했다.
“중립지역에 전쟁이 일어났다지? 그럼 그곳은 이제 이 게헨나보다 더 개 같은 지옥으로 변했겠군. 이게 바로 시작부터 지옥인 게헨나와 다른 점이야.”
“뭐가 다른데?”
“처음부터 지옥인 곳은 더한 지옥으로 변하지 않게 규칙이라는 걸 세우거든.”
규칙이라.
하긴,
두 발 걷는 자들이 가장 착각하는 것이 있긴 하지.
규칙을 곧 튼튼한 울타리와 같이 생각한다는 것.
그것을 세움으로써 자신이 보호받을 수 있다는 착각.
애석하게도,
규칙은 천국을 만들기도 하지만 지옥을 만들기도 한다.
시몬 바스티유가 어떻게 무너졌는가,
개인의 욕망을 가족이라는 규칙으로 포장해 하나둘 동료를 떠밀었기 때문이 아닌가?
“게헨나는 끝 대신 지옥의 유지를 선택한 거로군. 규칙을 세움으로써 말이야.”
“맞아, 그런데 정말 중립지역 출신 맞아? 혀에서 튀어나오는 번지르르함도 그렇고 생긴 것도 그렇고 난 형씨가 아이베리아 출신인 줄 알았거든.”
툭 튀어나온 그의 통찰에 관통당했다.
하지만 감출 이유도 없지.
“출신은 중립지역이지만, 맞아. 난 아이베리아에서 왔어.”
“어쩐지, 까딱하면 그 호모 놈이 죽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괜히 든 게 아니었어. 검은 망토 속에는 분명 기사들이 들고 다닐 법한 명품이 있겠지?”
야인에 가까운 외형과는 달리,
람비.
그는 꽤 날카로운 구석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살아가며 자연스레 터득한 것일까?
“아이베리아의 기사를 만난 적이 있어?”
내 물음에 람비는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아이베리아의 기사들은 이 지옥마저 갈라버릴 사신 같은 존재니까. 카멘토 놈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아이베리아의 기사들이야.”
“무슨 사건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들리네.”
“카멘토 놈들의 약이 니플리엔 제국의 유력 가문 딸래미에게 흘러 들어갔던 적이 있었어, 약에 취해서 팔 하나를 절단해야 할 정도로 자해를 했다나 봐. 그 사건으로 니플리엔의 기사들이 게헨나를 찾아왔었지.”
“그래서?”
“난 그때 자고 있었거든, 그런데 씨발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수십 번을 내리치는 거야.”
벼락,
인챈트의 능력을 발휘했군.
“그 사건으로 카멘토의 사업장과 구역 하나가 증발해버렸어. 이후로 그 미친놈들은 적어도 아이베리아의 기사라면 학을 뗄 줄 알게 됐지.”
말을 마친 람비가 갑자기 두 갈래 골목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어 그는 경직된 표정으로 두 갈래 골목길 중 하얀 천이 널려 있는 거리를 가리켰다.
“봐.”
하얀색이라면 카멘토의 구역이겠지.
하고 그가 가리킨 곳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나는 순간 올라오는 욕지기를 꾹 억눌러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격하게 올라오는 욕지기를 다 막을 순 없어서.
“욱…!”
입을 틀어막아야만 했다.
“카멘토 새끼들은 스스로 새운 규칙에 제일 엄격한 놈들이야, 그리고 그 규칙은 자기 구역에 있는 자들까지 포함되어 있지.”
그의 말을 들으며 다시 한번 시선을 위로 올린 나는,
그제야 빨랫줄에 널려 있는 세 구의 시체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해풍에 말려놓기 위해 손질한 생선을 널어놓은 것처럼.
갈라진 배를 드러낸 채 두 손이 묶여 매달려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마치 과시하듯 배 안의 내용물이 길게 바닥까지 늘어져 있다는 것.
“저들은 카멘토 구역에 거주하고 있는 자들이야, 처형의 이유가 뭔지 알아? 그저 다른 조직의 골목에 발을 들였기 때문이야.”
태연하게 설명을 마친 람비는 반대편 파란 천이 널린 골목길로 들어섰다.
“봐, 내 말이 맞지? 이곳은 엄연히 규칙으로서 유지되고 있는 지옥이라는 걸.”
“그래, 그 말이 맞네.”
* * *
손빨래하는 아낙, 그 등에 업혀 칭얼대는 아이.
그런 매끈한 아이의 얼굴에 연신 따갑게 내려앉는 파리들.
우두커니 서 있는 소년은 지나가는 람비를 우상 보듯 올려다보고 있고.
아이를 업고 있던 앳된 소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후드를 뒤집어쓴 내 얼굴을 살펴본다.
“어쨌든 그 사건 이후 니플리엔은 선박의 검열을 강화했어, 마약이 기어들어 갈 구멍조차 막아버렸지.”
“그런데도 아까같이 잘도 자기 세력의 힘을 과시하던데.”
“애석하게도 마약에 대한 수요는 끊이질 않았거든, 그래서 카멘토 놈들은 시선을 남쪽으로 돌렸어. 지랄 맞은 바다 니플리안트를 통과해 마약을 유통하기로 한 거지.”
그 바다가 얼마나 매서운지는,
내가 잘 알지.
“그런데 웃기게도 그런 무모한 유통으로 인해 마약의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어, 내 알기로는 원가에 150배 이상일걸?”
“맙소사.”
“그러다 보니 열 중에 아홉이 유통 중에 뒈져도 수지타산이 맞는 거야. 오히려 전보다 벌이가 좋아졌지. 덕분에 자연스레 놈들의 세가 커졌고 요즘은 다른 골목들을 넘볼 지경까지 이르렀어.”
방향을 가리키는 팻말이 있다 한들,
그곳이 지옥인 이상 목적지 역시 지옥일 수밖에 없네.
“자 그리고 다음으로는 알레아로인데, 이놈들의 주 사업은 도박이야.”
지금까지 들어본 것 가운데 가장 얌전하게…, 느껴진다.
“검은 정장을 입은 샌님들은 다 알레아로 놈들이라고 보면 돼. 놈들은 앞서 설명한 두 조직과는 달리 약간 결이 달라. 마치 사업가처럼 행동하거든.”
“솔직히 지금까지 들어본 이야기를 통틀어 가장 정상처럼 느껴지는걸.”
내 말에 람비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렇지, 여기선 보기 힘든 정석적인 쌍놈들이니까. 다만 그놈들을 절대로 우습게 보면 안 돼, 무려 퍼비스와 연줄이 닿아 있거든.”
“퍼비스?”
화약의 성지, 피로스를 수도 삼은 기업.
말로만 들어보면 마치 나라를 세운 것처럼 느껴진다.
“보면 퍼비스가 의도적으로 알레아로 놈들의 뒤를 봐주는 것 같아, 마치 외도 사업을 벌이는 것처럼.”
설명을 이어가던 람비는 갑자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자랑했다.
“방금은 꽤 그럴싸했지? 의도적으로 외도 사업을 한다니, 형씨 데리고 다니니까 내 혀도 금세 번지르르해졌나 봐.”
“기업 퍼비스의 자금 줄 중 하나라고 봐야 하는 게 맞겠네.”
“맞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였어.”
람비에게 많은 설명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히려 전보다 궁금한 것이 더 많아졌어.
“궁금한 게 있는데, 이런 곳에 당연히 들릴 법한 총성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 건 무슨 이유지?”
내 첫 질문에 람비는 헛웃음을 지으며 즉답했다.
“이곳에서 돈 버리는 짓을 저지를 사람이 누가 있겠어? 화약은 사치품이라고. 여기서 머스킷을 들고 다닌다? 그건 씨발 나 좀 털어주세요 하고, 지갑을 내미는 꼴이나 다름없어.”
“화약의 성지인 피로스가 바로 뒤에 있는 데도?”
“산지에 간다고 해서 보석을 헐값에 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게다가 퍼비스는 화약 통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잘하면 이곳에서 원하는 화약을 손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무리인듯싶다.
그럼 이제 가장 궁금했던 것을 질문할 차례다.
“생각해보니 당신네 조직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했는데.”
사실 그가 의도적으로 자신이 속한 조직을 제외한 다른 조직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단순히 다른 조직들을 먼저 열거해 자신의 조직을 조금 좋게 포장하려는 목적인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말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상기한 목적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
내 물음에 람비는,
말없이 계속해서 깊은 골목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말해줄 수 없는 건가?”
해서 걸음을 멈추고 다시 물으면,
그는 잔뜩 긴장한 듯 거기에 맞춰 걸음을 멈춘 채.
“사실은 말이야, 형씨 같은 자는 우리 조직 내에선 아주 귀하거든.”
“…, 상품으로써?”
그 말에,
떨리는 목소리로 뒤돌아 나를 바라보던 람비는 의표를 꿰뚫린 듯 두 다리를 덜덜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푸리나스는 인신매매를 중점으로 하고 있어, 그런데 매일같이 관문에서 외지인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그 사업의 결이 조금은 변질됐지.”
“예컨대?”
“예컨대…, 앞에 방문한 외지인이 상품을 주문하면, 우리는 이후 찾아온 외지인 가운데 그에 부합한 자를 찾아 주문자에게 배달하는 거야.”
“그래서, 누군가가 주문한 상품에 내가 부합했다? 그가 정확히 어떤 주문을 했지?”
천천히,
허리춤에 달린 질리스에 손을 얹자.
그 움직임만으로도 어깨를 들썩이던 람비는,
“아이베리아의 기사, 아니면 적어도 그에 준하는 무력을 겸비한 자.”
이젠 이를 부닥치며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