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233화 (233/365)

233화. 도

차라리 사고였으면 이해라도 했지.

인과적인, 하다못해 어처구니없는 우연으로라도 병신이 됐다면 이해했을 거다.

나는 두 발 걷는 자로 태어나지 못했다.

세상 누구에게나 붙여지는 그 자연스러운 호칭조차 내겐 허락되지 않았어.

나는 절름발이.

아이베리아의 남동쪽 구석, 어느 해안가에서 태어난 저주이자 모멸의 대상이었으니까.

“하하! 여기 라트락이 출현했다!”

“라트락의 사생아 새끼, 네 애미는 무슨 정신으로 괴물이랑 정을 나눈 거냐? 엉?”

해가 떠오르면 기다렸다는 듯,

마을의 아이들은 나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다.

외다리 괴물로 유명한 라트락을 빗대어 온갖 모멸을 뱉는 그들에겐 하루의 낙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내겐 늘 펼쳐지는 짧은 지옥의 단편 중 하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르겠지만 온몸의 멍과 함께 한 권의 책을 구해오신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불어 터진 입술로 잘도 그 책을 읽어주셨지.

“아이베리아의 깃발들은 몸이 불편한 자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만큼 특출난 재능을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내일이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그 얘기가 얼마나 허망한 거짓인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어머니가 읽어주는 그 대목은 듣기에 너무나 단 것이었다.

어느 날 지독한 굶주림을 견디던 와중, 어머니가 내 입에 넣어주셨던 빵조각보다 더.

그리고 그다음 날,

어머니는 눈을 뜨지 않으셨다.

나는 책을 품에 안은 채, 맨손으로 모래를 퍼 어머니를 덮어주었다.

모래를 퍼 덮는 것조차 시원찮았지만.

손이 다 짓물러 터질 때까지 모래를 푼 나는 기어코 내 어머니께 안식을 선물해드릴 수 있었다.

그렇게 길잃은 조개라도 몇 개 건지기 위해 해안가로 나오면, 다시 지옥의 단편이 펼쳐졌다.

“야, 얼른 이 마을에서 꺼지란 말이야!”

“너 이 새끼, 귀까지 먹었냐?!”

상대보다 자신이 우위인 걸 파악한 아이들은 순수를 빙자한 악을 내뱉는다.

같은 아이였던 내게 그것만큼 무서운 악도 없었다.

어른의 악은 같은 어른이 구체적으로 무서워하듯.

내겐 그들의 그 구체적인 악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으니까.

반항할 엄두조차 나질 않았어.

그래서 덜덜 떨며 애써 무시하려고 해도.

“이 씨발, 귀가 먹었으니까 몸으로라도 들리게 해줘야지!”

덩치 큰 사내 하나가 옆으로 달려들어 내 다리를 걸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죽이 된 모래사장에 처박히면, 나는 그 위에 새로운 죽이 되도록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얻어맞았다.

수십 분, 한바탕의 모멸을 쏟아낸 아이들이 흩어지고 나서야 나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책은…,

모래에 좀먹혀 종이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어머니의 유품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것보다 당장 얼굴에 들이닥친 짠 기운을 물리치는 게 더 급했다.

“아… 아….”

아니, 짠 기운이라기보다 안면에 내려앉은 모래 알갱이가 더 문제겠다 싶어서.

곳곳에 난 상처의 쓰라림을 무릅쓰고 파도에 몸을 맡겼다.

이내 한바탕 바닷물로 몸을 씻고 난 뒤, 미역 줄기처럼 흘러내린 붉은 머리카락을 넘기고 나니.

그 아래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 내 안면을 훑었다.

아, 이마가 너무 크게 찢어졌다.

“흐….”

그제야.

“흐흑…,”

설움이.

“흐아아아!”

폭발했다.

하지만 끝내.

“흐읍…!”

내지르던 소리를 감추기 위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혹여나 내 목소리를 아이들이 들을까 봐.

그래서…,

“끄윽… 끅… 끄으윽….”

필사적으로 흐느낌을 틀어막았다.

…,

…,

오백이십사, 오백이십오…,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을까?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해가 고개를 기울인 뒤였다.

상처에서 우러나오는 고통조차 먹먹해졌다.

애초에 배고픔이 그 고통의 발현조차 먹어치운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목숨을 붙들기 위해 배고픔은 내 오감을 철저하게 포식해가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숙여,

조용히 파도 소리를 바탕삼아 숨죽이고 있으면.

“야.”

달콤한 향기와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정말이지 인기척을 마주한 벌레처럼 화들짝 놀라 반응했다.

그러나 그 뒤에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할 모멸은 들리지 않았다.

그것을 인지하고 흐릿해지던 두 눈에 힘을 주자.

그제야 눈앞의 존재가 선명히 맺혔다.

“안녕?”

별빛 탄 물로 염색이라도 한 걸까.

시원한 하늘색 머리카락을 두 뺨에 얹은 채 날 내려다보고 있는 한 소녀.

그녀는 곧 입은 드레스가 무색하게 축축한 모래사장 위,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너, 이름이 뭐야?”

일말의 모멸조차 담겨 있지 않은 그녀의 눈빛에,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처음으로 답했다.

“도.”

“도?”

“출신이나 행방이 불분명한 자들에게 붙는 이름이야.”

그녀는 머리카락 색과 똑같은 푸른 눈을 반짝였다.

“왠지 멋있는걸.”

“아니, 하나도 멋지지 않아.”

“아냐, 멋진 거야.”

따지듯 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쉬이 반박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은 아주 확고한 의지로 빛나고 있었으니까.

“생각해 봐, 네가 출신과 행방을 직접 고를 수 있는 거라구!”

“내가…?”

“응! 도라는 이름 앞에 네가 찾은 것을 덧붙인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에 너라는 가장 확실한 증표를 남기는 것이 아닐까?”

그런가.

그런 쪽으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어.

하지만…,

“내가 할 수 있을까.”

“어?”

“난 보다시피 절름발이야, 병신이라고. 남들보다 빠르게 뛸 수조차 없는 내가 뭘 할 수 있지!?”

비쩍 마른 다리를 내보이며 일갈하듯 외치자,

그녀는 슬쩍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런 표정을 지을 줄 알았어.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 역시 못…,

“그렇담 남들보다 빨리 생각하면 되는 거잖아?”

그녀는 당당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그들이 두 발 걷는 자라고 불리기 무색할 정도로, 생각으로 그들을 압도하면 되는 거잖아. 그걸로 우뚝 서면 되는 거잖아.”

되려 그녀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책에서 읽었는데 빠른 것보다 무서운 건 보다 빠른 것이 있을 거라는 가정이래. 가정은 생각을 만나면 기정이 되고, 기정은 곧 사실이 되니까.”

해는 분명 고개를 기울였는데.

왜 이렇게 눈부신 것인가.

그래,

그녀가 눈부셨다.

빛났다.

“그러니까 남들보다 빨리 뛰어 봐, 그리고 그것을 사실로 만드는 거야, 너의 생각으로.”

* * *

다음 날이 밝기 무섭게,

나는 해변 대신 마을을 찾았다.

오금이 저릴 정도의 굶주림을 겪은 내 몸은 본능이라는 이름 아래 생각보다 민첩해져 있었고,

기어코 매대에 올라온 빵 하나를 훔치는 데에 성공하기까지 했다.

이 도둑질이 걸린다면 얻어맞아 죽을 게 뻔했기 때문에 나는 빵을 품에 안고서 정말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그렇게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언덕 위에서 게걸스러운 포식을 마친 나는 그제야 먹먹했던 오감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쓰라린 고통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사이에 피어오르는 여유가 더 컸기에.

나는 간만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것을 만끽했다.

그러다가.

부─

하는 묵직한 뱃고동 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울려 퍼졌다.

해안가와 멀리 떨어져 있던 나조차 그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그 고동은 정말이지 묵직한 것이었다.

해서 절뚝거리며 겨우 해안가 근처로 다가가 보자.

난생처음 보는…,

정말 산처럼 거대한 함선 한 척이 정박해 있는 것이 보였다.

이어지는,

댕─

청명한 종소리와 함께 배에서 은빛을 뽐내는 기사들이 상륙하기 시작한다.

비루했던 나에게 그것은 정말이지 찬란한 것들이어서.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깃발들이다.

배에서 내린 기사들은 한쪽 어깨에 휘장을 두르고 깃발을 내세운 채 마을 쪽으로 행군했다.

[아이베리아의 깃발들은 몸이 불편한 자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만큼 특출난 재능을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땅, 아이베리아에서 몸이 불편한 자들을 유일하게 보듬어 살피는.

그런 깃발들의 주인이 이 땅에 찾아온 것이다.

해서,

어제 보았던 소녀의 조언대로 나는 머리를 굴렸다.

감히 직언하건대, 마을 사람 그 누구보다 빠르게!

그들에게 나를 증명해야만 한다.

그들을 통해,

내 삶의 변화를 가정할 것이다.

거기에 내 생각을 붙여 기정으로 바꾸고 이내 사실로서 모든 것을 증명해 보이리라.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런데 그런 미묘한 떨림이 끝내 멈추자.

주르륵.

하고 코에서 진득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안돼,

적어도 그들에게 비루한 모습을 보일 순 없어.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힘겹게 이끌며 바닷가로 향했다.

생각보다 너무 멀리까지 왔어.

이 다리로는 바닷가까지 가는 데만 해도 시간이 엄청나게 걸릴 거야!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이 떠나기 전까진 단장을 마치고 마을로 갈 수 있어!

허겁지겁,

도중에 몇 번을 넘어져도 우악스레 일어나 바닷물에 상처를 씻고 흙먼지를 닦았다.

혹시라도 기사님들이 좋게 보진 않을까, 내 유일한 자랑거리인 붉은 머리카락도 한바탕 헹궈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서둘러 마을로 향하는데.

불길한 냄새가 내 코를 스쳤다.

하여,

본능적으로 마을 근처에서 발걸음을 멈춘 채.

군중이 운집해있는 마을 광장을 훔쳐보았다.

어.

기사들은,

댕─

청명한 종을 울리며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한데 모았다.

“우리는 부정한 자를 비롯해 괴물의 청탁을 받은 간교한 자의 뿌리를 뽑으러 왔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남자의 선언을 끝으로,

몇 기사가 성인 남녀와 청년 하나, 그리고 소녀를 붙든 채 광장 단상 위로 올라섰다.

“마녀의 내통자인 부쉬라 가문은 앙 실러 데우스의 공정함 아래 심판받게 되었다.”

이어 두루마리를 든 기사가 안에 내용을 차갑게 정독한 뒤,

“집행.”

그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일가족으로 보이는 그들을 붙든 기사들이 단검을 뽑아.

그 목을 차례로 가르기 시작했다.

이내 소녀의 차례가 되고,

내 시선이 거기에 맞물릴 때쯤.

나는 익숙한 하늘 한 점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어…, 어…,”

비참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 숙인 그 소녀는,

글쎄.

내 그 어떤 인지보다 빠르게 목이 베어져…,

툭.

하고 묵직한 소리를 내며 광장 단상 아래로 추락했다.

“마을에는 아직 정화가 필요하다, 괴물의 청탁을 받은 간교한 자들을 색출하라!”

욱.

울컥하고 토악질이 뿜어져 나왔다.

기껏 포식한, 아직 소화조차 덜 된 빵조각들이 목을 타고 거꾸로 용솟음쳤다.

그 용솟음에 맞춰 두 눈에선 눈물이 뚝뚝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앞서 있던 건,

이대로 있다간 필시 죽음을 맞게 될 거라는 것과.

해서 이곳에서 얼른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

슬렁슬렁,

마을 밖을 빠져나가기 위해 기어가고 있는데.

“너! 이 괴물 새끼!”

익숙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몸은 얼음장처럼 굳어버렸다.

압도적인 두려움으로 인한 경직.

끽끽거리며 움직이는 고개로 겨우 뒤돌아보면,

덩치 큰 소년이 날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다.

“여기…! 여기에요 기사님들!”

“아… 아돼…. 안돼…!”

손사래를 치며 애원해봤자 그가 들어줄 리 없다.

“여기!!”

그러나 그때.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소년이 허공에서 한 바퀴 돌듯 휘청거리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말 그대로 단숨에 까무러친 소년 옆으로는,

정말이지 거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높이 솟은 회색의 노인이 지팡이를 고쳐잡은 채 서 있었다.

“아이야,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어 그는 물었다.

그러면서 드러난 주름진 얼굴은.

내가 가진 모든 생각으로도 쫓지 못할 만큼 가공할 만한 이지적 면모가 깃들어 있었다.

“… 도…,”

“도? 그게 네 이름의 끝이냐?”

아냐.

아니에요.

내가 찾은 세상의 단편은, 실마리는.

소녀의 이름이었어.

“기지어 도.”

벌벌 떨리는 입술로 울먹거리며 답하자 노인은 활짝 웃으며 내게 말했다.

“찾았구나,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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