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249화 (249/365)

249화. 반향 (3)

일방적으로 시작된 공격.

그것은 무차별적 폭격이었다.

자로 잰 듯한 제식으로 반복되는 투창, 그것이 상승기류를 만나 거대한 산 하나만큼의 궤적을 그리며 저 먼 고성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창대 곳곳에 난 구멍을 통해 울려 퍼지는,

휘이익!

그 굉음은 여기서도 귓불이 울릴 정도다.

인챈트와 병기의 적절한 배합으로 탄생한 파급.

나는 지금 그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다.

묵묵히 손을 뻗어 지시를 내리던 아리나는 다음 기수에게 시선을 옮긴 뒤 짧게 손짓했다.

그러자 기사단은 마차 대열을 순식간에 뒤로 물리고, 앞 열의 보병을 절반으로 갈라 측면으로 붙였다.

이내 전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기마대.

아리나 에커즈와 같이 중무장한 기사들로 구성된 그들은 타고 있는 말들조차 두꺼운 마갑을 두르고 있었다.

이어지는 아리나의 수신호에,

기마대의 기수가 금장으로 장식된 세이버를 치켜세우며 담담히 말했다.

“공격.”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1횡대, 30기에 해당하는 기마대가 성 쪽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직후 아리나가 다시 손을 번쩍 들어 올려 크게 외쳤다.

“1파 공세 후 즉시 돌입! 제4기수는 성 좌측으로 우회해 적들의 도주로를 차단하라!”

한바탕 투창을 떨어트린 직후 전개된 급작스러운 돌격 명령.

이에 에커즈 기사단은 군말 없이 군세의 육중함을 드러내듯 천천히, 그러면서도 차곡차곡 움직였다.

“공, 가시죠.”

그들의 행렬이 막 시작되는 그 시점, 아리나는 턱짓으로 전방을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그 옆을 나란히 달릴 수밖에 없었다.

* * *

아리나의 본대 제2기수.

마리아 에커즈.

그녀가 좌우로 펼쳐진 기마대를 한번 훑어보곤 다시 정면을 집중한다.

벌써 성의 지척까지 다다른 상태.

그러나 기마대는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되려,

마리아는 금장으로 장식된 세이버를 번쩍 들어 올렸다.

이에 반응하듯 세이버에서 푸른 빛이 폭발하듯 일렁였고, 이내 어둑한 하늘로부터 번쩍거리는 섬광이 터지기 시작한다.

현 에커즈 기사단 내,

최강의 기수.

마리아, 그녀의 인챈트가 그 모습을 막 드러냈다.

[12년, 프 템프레]

[밤을 속인 간헐적 아침 ‘빛나는 소나기’]

밤 묻은 하늘, 그 아래 괴이한 모습으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먹구름.

마치 이죽거리듯, 뭉글한 이빨을 드러낸 구름 사이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번쩍!

섬광과,

쾅!

폭음.

이내 고성 바로 위에서 마치 소나기가 내리듯, 줄벼락이 내리쳤다.

모든 것이 연결된 톱니바퀴처럼.

줄벼락은 곧 성 곳곳 난잡히 박힌 창대와 연쇄하여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그 반응이 어찌나 극렬한지 전류의 비명만으로 땅이 울릴 정도였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 너머로부터 불기둥이 치솟았다.

그 와중에도 몇몇 극렬한 전류 다발이 솟구쳤고, 이에 답하듯 자지러지는 비명과 아비규환에 빠진 외침이 성 곳곳에 난무했다.

* * *

임박한 새벽 출정을 대비해 준비를 서두르던 펜테아의 병사들,

그리고 기사들.

그들의 얼굴엔 마땅히 깃들어 있어야 할 어떤 소속감이나 충성심 따윈 없었다.

애초에 기업가들의 명을 따라 이 성에 주둔하고 있는 것부터가 증발한 이들의 뿌리를 방증했다.

다만 아이베리아에서 살아온 자들답게,

전투와 승리에 대한 열망은 가지고 있어 그들의 사기는 꽤 고취되어있는 상태였다.

형식상으로 바람에 휘날릴 깃발이 있었고, 그 깃발을 위시한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그에 따른 대가도 얻을 수 있었으니까.

펜테아의 영주로부터 명예를 얻을 순 없겠지만,

펜테아의 기업가들이라면 그 외 것들을 모두 얻을 수 있다.

그들은 그 마음가짐 하나로 끝까지 군세를 유지한 것이다.

인챈트를 가진 기사는 곧 있을 새벽 전투를 위해 힘을 가다듬었고, 병사들은 곧 지방과 피로 뒤덮일 무기를 위해 정성껏 기름을 먹였다.

또 대부분이 배불리 먹었고,

대부분이 어질러진 상태로 푹 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차출되어 마지못해 성벽 위를 순찰하던 병사는 저 높은 하늘에서부터 느껴지는 위화감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 !

작은 휘파람처럼 바람을 꼬집고 들어오는 소리가 그의 귀를 간질였고.

직후.

휘이이이이 ──── !

그것은 굉음에 가까운 피리 소리와 함께 그 실체를 드러냈다.

순찰하던 병사는 난데없이 쏟아진 창대에 그대로 몸이 꿰여 성벽 너머로 추락했다.

파바박!

파바바박!

뒤이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한 수많은 창.

도대체 어느 높이에서부터 떨어져 내린 것인지, 그것들은 돌벽도 아랑곳하지 않고 꿰어 들어 깊게 박혀 들어갔다.

부랴부랴 기사들 몇몇이 인챈트의 힘으로 쏟아지는 창대를 내치려 했지만,

그런 그들 역시 갑옷조차 입지 않은 상태였기에 허무하게도 줄줄이 꿰어 죽어 나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도대체 몇 개의 창이 쏟아져 내린 것인지.

그것조차 채 가늠하지 못한 혼란한 상황 속에서 또 다른 이변이 찾아왔다.

겨우 살아남은 병사들과 기사들은 순간 환한 빛을 토해내는 하늘 쪽으로 시선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그들의 남은 의지마저 말소시키려는 듯.

기어이 겹쳐진 구름 사이로,

밤을 깨트린 채 머리를 들이민 굵직한 벼락 한 줄기.

그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벼락 줄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쾅! 쾅!

“아아악!”

“모두 성관으로 올라와라!”

“안으로 들어가, 어서!”

몇몇이 내비친 침착함조차 벼락의 괴성이 짓뭉개버렸다.

그렇다고 침착함을 되찾고 대피한 그들 역시 안전을 보장받진 못했다.

쏟아지는 벼락 가운데 일부는 곳곳에 박힌 창대에 흘러 들어가 근처의 창대와 교류하듯 전류를 내뿜고 있었고,

이내 창대 사이사이로 아찔한 춤사위를 선보이며 번뜩거리던 전류는,

근처에 닿는 모든 것을 태웠기 때문이었다.

출정을 대비해 펼쳐놓았던 보급품과 장비가 제일 먼저 벼락의 먹이가 되었고, 차마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지 못한 자들이 차근차근 죽어 나가는 것을.

목격한 병사들과 기사들의 얼굴은 더없이 창백해져만 갔다.

이에 완전히 마음이 꺾여 얼굴에 공허가 드러나기 시작한 병사 하나가 주저앉아 절규한다.

그리고 그의 절규가 끝날 때쯤.

벼락은 거짓말같이 뚝 그쳤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침묵에,

살아남은 자들은 오히려 고막이 먹먹해져 오는 걸 느꼈다.

곧이어 기사 하나가 천천히 성내 정원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사방에 치솟은 불길들을 둘러보며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살아남은 병사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던 그가,

“모두 괜…,”

운을 떼기 무섭게 바깥쪽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한,

붕 ──── !

묵직한 피리 소리.

그것을 벼락으로 착각한 몇 병사들이 발작을 일으키며 더욱 움츠러들었다.

어느새 입술이 바짝 마른 기사는 자연스레 불에 그을린 성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잠시 후,

성문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문을 열어라, 그것이 인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최후의 선택지다.”

젊은 남자 것이다.

기사는 갈라져 피가 새 나오기 시작한 입술을 움찔거리며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는 병사들을 훑었다.

그들의 눈빛엔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기사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래도 같은 체계로 묶여 있던 동료였으니까.

선봉의 뒤를 받쳐주던 자들이었으니까.

기사는 묵묵히 걸음을 옮겨 성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곤 걸려 있는 거대한 빗장을 홀로 치우기 시작했다.

아니,

꿈쩍도 하지 않는 빗장을 다시 한번 전력으로 밀려는 찰나 기사의 손 옆으로 다른 손이 달라 붙어왔다.

검댕 묻은 병사들.

그들이 묵묵히 손을 보태 빗장 거두는 것을 돕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 중 몇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허무하거든.

가진 명예가 없어서.

그것을 기꺼이 나눠줄 자 역시 없어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 처절한 패배를 겪은 아이베리아의 전사들은 가벼운 깃발 아래 있는 게 얼마나 서러운 것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종래에 빗장이 완전히 거둬졌을 땐,

기사 역시 울분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쿵!

하고 두꺼운 빗장이 쓰러졌다.

직후 병사들이 온 힘을 다해 성문을 열자.

그 너머로 은빛 파도가 쏟아져 들어왔다.

찬란한 위용을 두른 채 성관 내를 가득 채운 은빛 군세는 진형을 갖춘 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약속받은 인도를 몸소 증명해주듯이 말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명예로워 보였고,

또 당당해 보였다.

이내 선두에 있던 젊은 남자가 마주 서 있는 기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병사들을 추스르시오, 이젠 당신이 그들을 통솔해야 할 테니.”

“그게…, 무슨 말이오…?”

기사의 반문에 젊은 남자는 말에서 내려 그대로 기사를 지나치며 말했다.

“곧 당신 위가 없어질 테니까.”

* * *

아리나는 두꺼운 나무문을 향해 거침없이 발길질했다.

그렇게 박살이 나 패대기쳐진 나무문 너머로,

고급스러운 양복을 입은 두 남자가 발작하듯 반응하며 품에서 머스킷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그저 그들을 향해 걸어 나갈 뿐이었다.

이내 두 남자의 손에 들린 머스킷에서 불꽃이 일었지만,

타탕!

그 폭음이 무색하게.

피익!

탄알은 그녀의 갑주에 흠집조차 내질 못하고 미끄러지듯 흘러가 버렸다.

용의 시대를 지배했던 그 폭발적인 숨결도.

용의 시대 이후 두들겨진 강철을 뚫진 못한 것이다.

그들의 총성에 화답하듯, 아리나는 클레이모어의 날 끝을 쥔 채 달려들었다.

마치 대 갑주 전투를 하듯,

양쪽을 단단히 잡은 클레이모어로 기업가 하나의 턱을 잘라낸 그녀는 그 반동을 놓치지 않고 날 끝을 쥔 손을 놓음과 동시에 휘둘러 도망치려는 나머지 하나의 허리를 베었다.

“그어억… 억!”

끓는 소리와 함께 주저앉은 기업가가 엉금엉금 기어가며 도망쳐보지만, 아리나는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가 정확히 심장 부위에 검을 박아 넣었다.

그리곤 무신경한 목소리로,

“가시죠, 길을 계속 열겠습니다.”

뒤에 서 있는 내게 말하곤 다음 문을 향해 발길질을 이어갔다.

그들이 쌓은 부도,

지위도,

이 순간엔 모두 무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손수 증명하듯, 아리나는 마주한 채 반항하는 그들을 철저하게 도륙했다.

이윽고 가장 두꺼운 문 앞에 다다르자,

그 문 너머로 황급히 도망치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리나는 그리브로 문을 툭툭 차보며 두께를 가늠하고는, 별 고민하지 않고 허벅지 띠에 채워진 두꺼운 쌍발 머스킷을 뽑아 들었다.

이어 자물쇠 부분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

쾅!

손쉽게 문을 따버린 그녀는 저 멀리 도망치는 몇 무리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좋은 옷을 걸친 자의 무릎을 정확히 조준해.

쾅!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다.

보기와는 달리,

과격하기가 테티르에 버금갈 수준이네…,

아리나는 투구 속 무표정한 얼굴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살살 쐈으니 죽진 않았을 겁니다, 아마도.”

이어 뒤따르던 에커즈의 기수들이 달려들어 나머지 도망치려는 자들을 하나둘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아리나는 무릎을 부여잡은 채 쓰러진 남자를 발로 차 똑바로 앉게 한 뒤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나는 그런 그 앞에 조용히 서서 내려다보았다.

“디안! 베나즈 공! 공께 긴밀하게 할 이야기가 있소!”

기름을 발라 번지르르한 머리, 그 아래 직전까지 묻어 있던 기품이 볼품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나 아란드 렐렉! 펜테아를 기업 중심으로 일으킨 사람이오! 나를 이용하시오, 날 이용하면 분명 후회하지 않을 거야!”

손바닥을 내보이며 여러 가지 항변을 쏟아내던 그를 향해.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잠깐 고민한 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확실히, 후회되진 않는군.”

내 대답의 뜻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는 당황한 얼굴로 나와 뒤에 멀찌감치 떨어진 아리나를 번갈아 보더니 경련을 일으키듯 고개를 가로젓기 시작했다.

곧바로 뒤돌아선 채 아리나에게 눈치를 주자,

그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날 지나쳐 앞으로 걸어 나왔다.

“자… 잠깐! 잠깐! 잠깐!”

아란드의 입에서 급박함이 연거푸 쏟아졌지만,

거기까지.

아리나는 그의 머리에 쌍발 머스킷을 조준한 채.

쾅!

방아쇠를 당겼다.

아이베리아에선 불명예스러운 것을 처리하는 데에 쓰이지만,

반대로 값비싼 사치품이기도 하니.

여러모로 그의 최후와 어울렸다고 봐도 되겠지.

이런 복잡한 의미를 반영하듯.

아리나의 손에 들린 총구 너머로 허연 연기가 복잡하게 너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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