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상이 (2)
“저는 기업 모나켈을 존경합니다.”
초로의 남자.
그의 얼굴 일부분은 마치 토기로 빚은 듯 갈색으로 얼룩져 문드러진 모양을 하고 있다.
“기업 모나켈 아래서 일할 수 있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지요.”
그런 그가 애써 미소 지으며 아양을 떨었다.
“아시다시피 근래엔 지시하신 모든 것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망가질 대로 망가진 얼굴은 제법 그럴싸한 아양조차도 잘 그려내질 못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이내 불안한 기색을 드러내며 묻는 그에게,
맞은편 어두운 책상 너머에 조용히 앉아 있던 이가 고개를 내밀며 그 모습을 드러낸다.
뽀얀 살결이 인상적인 앳된 얼굴.
잘 정돈된 갈색 머리카락은 초로의 남자가 가지지 못한 윤택으로 젖어있다.
다겐 모나켈.
광산 기업 모나켈을 물려받은 어린 상속자.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손목에 찬 황금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이내 곱상한 눈매로 아름다운 미소를 그렸다.
“당신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요?”
경쾌하고 밝은 목소리,
그러나 그 물음에 초로의 남자는 대뜸 어깨를 움츠릴 뿐이다.
그래서 다겐은,
조금 옅어진 미소와 함께 다시 물었다.
“제가 묻고 있지 않습니까?”
초로의 남자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얼른 토해내듯 답했다.
“이… 일입니다.”
그런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피식 웃음을 지어 보인 다겐은 고개를 살살 저으며 되물었다.
“아뇨, 당신의 본명 말입니다.”
“제…, 본명 말입니까?”
“잠깐, 제가 한 번 맞춰보겠습니다. 그러니까… 돈… 돈 뤼오… 코들?”
다겐의 물음에,
일이라 불린 남자는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맞습니까?”
고민 끝에,
“아… 아닙니다. 제 본명은 돈리오 코들입니다.”
일은 그 물음에 제대로 답하길 선택했다.
돈리오 코들.
일그러진 그의 대답에,
다겐은 얼굴에 묻어 있던 미소를 순식간에 거두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까와는 달리 더욱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티히트라의 문화는 이해할 수가 없군요.”
자조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얼굴엔 업신여김이 가득한 다겐은 이제 돈리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천박한 발음만 봐도 그쪽 문화가 저급하다는 방증이 아니겠습니까.”
돈리오는 그의 뒤바뀐 태도 앞에서 그저 눈을 내리깔고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제가 그쪽의 저급한 문화까지 이해하고 포용해야 할까요? 말 해보십시오, 그 거북한 발음을 제 입에 담아 불러주길 원합니까?”
“아…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었지요?”
“제 이름은…, 돈…, 뤼이… 뤼오 코들입니다.”
“다시 한번, 당신의 이름이 뭐라고요?”
“돈뤼오 코들입니다.”
우스꽝스러운 발음으로 거짓된 자신의 이름을 내뱉는 남자.
그의 그런 모습을 본 다겐은 다시 미소로 얼굴을 적셨다.
“좋습니다, 돈뤼오 코들씨. 당신은 다른 ‘일’과는 다르게 저와 말이 아주 잘 통할 것 같군요.”
다겐은 돈리오를 안심시키려는 듯 온유한 자태를 뽐내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시작되는 일장 연설.
“세상은 변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에 타협하고 변해야만 해요, 아시겠습니까? 생존의 방법 자체가 달라졌다 이 말입니다.”
그 말에 돈리오는 그저 겁에 질린 채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오늘 당신을 이곳에 부른 건 단순히 그쪽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확실히 전임보다 더 나은 사람 같아 보이는군요.”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요, 이제 가보세요.”
드디어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돈리오는 서둘러 그에게 연신 허리를 굽혔다.
하지만 돈리오가 이제 막 방문을 열고 나가려 할 때,
“그런데 말입니다.”
다겐은 돈리오를 불러 세워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할당량의 두 배를 채워야 할 것 같은데요.”
그 말은 돈리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어… 어찌…?”
“당신의 이름은 돈리오도, 돈뤼오도 아니잖습니까? 그렇지요, 일? 말했잖아요, 세상이 변했다고. 당신은 그런 내 세상 속을 살아가는 사람이고.”
다겐의 말에,
돈리오는 금세 창백해진 얼굴로 두 손을 모아 싹싹 빌기 시작했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제발 자비를….”
“내 세상에서 당신은 돈리오도, 돈뤼오도 아니야. 그저 숫자 ‘일’일 뿐이지.”
다겐은 그 말을 끝으로 돈리오에게서 뒤돌아섰다.
그렇게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밖을 나선 돈리오는, 아니 일은 생각했다.
만약,
그의 말에 좀 더 현명하게 대답했더라면,
자신이 살아온 삶을 그의 앞에서 모두 부정했더라면,
그랬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텐데,
그러면 지금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돈뤼오.
아니 일.
그는 다겐에게 빌미를 제공했다는 죄책감에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행여나 자신의 눈물이 매끈한 마룻바닥에 떨어질까,
갈색으로 문드러진 팔뚝으로 황급히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 * *
이백사십칠은 내 이름이다.
그러나 이 이름도 곧 바뀌게 될 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이름은 이백오십이었으니까.
이젠 숫자가 아닌 내 진짜 본명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하루하루 말도 안 되는 고된 노동에 착취된 내 몸은 이미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마치 큰 톱니바퀴 사이에 끼어 여지없이 돌 운명에 놓인 작은 톱니바퀴처럼,
하루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가기만 하거든.
설령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변하는 건 없을 거다.
땡- 땡-
차게 식은 새벽 공기를 타고 울려 퍼지는 종소리.
이에 맞추어 하나둘 부스럭부스럭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
하나같이 황토를 끼얹은 듯, 신체 일부가 갈색으로 문드러진 그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기괴하기 짝이 없다.
내가 그중 하나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소름 끼치지만.
그러고 보니 전에 용병 하나가 보라색 연초를 태우며 이런 말을 했었지.
‘장작’들 일 나갈 시간이라고.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
“이백사십칠, 왜 벌써 일어나 있어?”
문드러진 손으로 두 눈을 비비며 내게 말을 걸어오는 아이의 이름은 이백삼십.
막 열 살이 된 소년이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아이의 물음이었지만 반사적으로 투정을 내뱉었다.
내 생각하기에 열다섯도 투정이 제법 어울리는 나이라 생각하거든.
“등에서 진물이 멈추질 않아.”
어제,
‘황토병’이 등 쪽에까지 번져버렸다.
확 문드러진 등에선 기다렸다는 듯 진물을 콸콸 쏟아냈다.
용병들이 왜 우릴 보고 장작이라 놀리겠는가,
갈색 위로 진득한 진이 묻어나오는 게 딱 그 별명이랑 어울리잖는가?
“나도 잘 알지, 예전에 나도 등 때문에 고생 좀 했거든.”
이백삼십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피식 웃는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들어와 거칠게 굴려진 그의 몸은,
이미 장작이라고 불릴 수준을 넘어선 상태였다.
만약에,
우리가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서로의 본명을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친한 사이가 되지 않았을까?
기업 모나켈은 티히트라에 들어와 광산 일체와 그 주변 마을의 토지를 사들였다.
어른들의 말로는 이미 티히트라의 영주가 그 모든 것들을 허가했다고 그랬어.
처음엔 같은 마을 어른들도 기업의 주도하에 드디어 티히트라가 부흥하게 될 거라며 벅차했었는데.
막상 현실은 지옥보다 더한 것이었다.
티히트라의 광산 주변 내 마을 거주자는 모두 광부 노동자로 강제 편입되었고,
그러한 노동력을 극한으로 발휘하기 위해 모나켈은 황토병을 유발시키는 작업 공정을 집어넣었다.
솔직히 어른들의 벅참을 들으며 나도 여러 가지 상상을 부풀려왔었는데.
드디어 난쟁이들의 거대한 기계장치를 두 눈으로 보게 되겠구나.
마치 모래 산을 무너트리는 아이의 장난처럼,
산을 파헤치는 그 웅장한 기계의 움직임을 매일매일 볼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내가 그 기계를 흉내 내기 위한 일개 부품이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언젠가 모두가 잠든 밤중에.
이백삼십의 진짜 이름을 들어봤으면 좋겠다.
곧 날이 완전히 밝자 검은 망토를 두른 장정들이 우리 쪽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기업 모나켈의 용병들.
짤랑거리는 금화 소리만을 쫓아 움직이는 박쥐들이다.
잿빛의 두꺼운 갑주를 두른 그들의 모습은 우리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윽고 장정들 가운데 하나가 우리 앞으로 걸어 나와 작은 두루마리를 펼쳐 들었다.
“과연, 오늘은 내게 즐거운 날이 될 것 같군!”
짧은 콧수염을 실룩이며 두루마리 속 내용을 보고 미소짓는 남자.
그의 이름은 마레이크.
우리 사이에선 ‘벌목꾼’이란 별명으로 더 악명높은 사내다.
그는 우리를 내려다보며 크게 이죽거리고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은 교대 없이 전원 채굴장으로 들어간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흘러나오는 수많은 탄식.
그 탄식 중 하나는 내 것이었다.
지옥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던 유일한 시간마저 빼앗겨 버렸으니 탄식이 안 나오겠는가!
하지만 그런 탄식 가운데,
그 누구도 저 용병에게 이유를 따지려 들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티히트라의 비호에서 배제된 비자유민이었으니까.
하루아침에 모나켈이 가진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이윽고 용병들이 자리에서 벗어나자 여기저기서 큰소리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무려 3일이야! 3일 동안 꼬박꼬박 할당량을 채웠어,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말이야!”
“진정해라, 이십칠.”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어르신?!”
이십칠이란 젊은 남자는 큰 목소리로 한 노인에게 어르신이란 칭호를 아무렇지도 않게 붙였다.
보통 숫자가 아닌, 이름이나 호칭으로 누군가를 부르는 게 적발됐을 경우 말 그대로 용병에게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는다.
그리고 그렇게 두들겨 맞은 이들 중 대부분은 이틀도 채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
그러나 그러한 규칙에도 지금과 같은 예외가 하나 있었는데,
방금 이십칠이 어르신이라 부른, ‘구’라는 이름을 가진 노인의 존재가 그 예외다.
그는 이곳 어른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일종의 정신적 지주인 인물로서 내가 보기에도 그 카리스마가 여실히 느껴질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잘은 몰랐는데,
어디서 주워듣기로 예전 광산 주변 마을 공동체를 이끌어갔던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용병들은 언제부턴가 그에 한해선 조금 관대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는데, 방금과 같이 어르신이란 호칭을 대놓고 써도 그들은 모른척했다.
아무래도 ‘구’를 건드리는 순간, 이곳 어른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맞설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겠지.
그래봤자 전신이 흉기와 다름없는 용병 놈들이 일당백으로 우릴 짓밟아버리겠지만, 그렇게 되면 저들도 모나켈에게 결코 무사하진 못할 거다.
무엇보다,
어르신은 이곳 사람들을 온건한 방향으로 타이르고 중재하고 있기에 굳이 용병들이 건들 이유가 없었다.
“우리가 이 지옥에서 며칠이나 있었지, 이십칠? 두어 달쯤 되었나?”
“이젠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그래, 이곳은 그 짧은 시간마저 잃어버릴 정도로 혹독하지.”
자리에 쭈그려 앉아 있던 어르신이 일어서자 이십칠은 그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은 노인치고는 상당한 거한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지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뿐. 할당량을 채워 이곳에서 벗어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
“너무 꿈같은 얘기 아닙니까!”
“꿈같기에 더 간절해야지 않겠나, 실제로 그 꿈같은 일을 해낸 자들도 여럿 있지 않은가?”
노인이 슬슬 걸어 나와 좌중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실제로 우린 꽤 오랫동안 잘 버텼네, 기업 모나켈은 말 그대로 괴물에 불과하지만 뱉은 말은 무조건 지켜내는 놈들이기도 하지. 저들이 말하는 그 알량한 선진 문화가 그걸 법으로 정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공동 할당량의 끝이 슬슬 다가온다 그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렇다네 이십칠.”
어르신의 말에 모두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놈들이 작업에 박차를 가하려는 걸 보니, 얼마 남지 않은 우리 할당량을 단번에 해결하려는 듯 보이네.”
이내 어르신이 눈을 질끈 감고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니 지금부터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세나.”
그 말에,
방금까지 탄식만이 가득했던 사람들의 눈이 번뜩였다.
나 역시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 자연스럽게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전체에게 부여된 공동 할당량을 모두 채우면, 그다음부턴 개인 할당량으로 넘어간다.
모나켈의 소유가 된 각자의 집과 땅의 값어치만큼 그 할당량을 채워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쟁취한다는 말이야.
그렇게 모두 작업을 위해 움직이려는 찰나,
“어르신! 어르신!”
누군가가 급히 달려와 어르신을 부른다.
“무슨 일인가, 육십삼?”
어르신의 물음에,
남자는 사색이 된 채 그저 따라오라는 듯 손짓할 뿐이었다.
그런 그의 손짓에 따라 수백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고 나도 그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따라가 보니,
그곳엔,
한 남자가 목을 맨 채 죽어 있었다.
일그러진 얼굴,
굳게 닫힌 두 눈,
그 사이로 흘러나온,
이제는 차가워진 눈물 아래로.
목에 매어져 있던 얇은 팻말이 우리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저로 인해 고통받으실 분들에게 미리 사죄드립니다.]
[오늘 작업 할당량은 두 배입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일 올림.]
이제 내 이름은 이백사십육이다.
그리고 여긴,
내가 태어나고 자란 티히트라의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