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상이 (3)
모든 인원은 각자 정해진 숫자를 이름으로 써야 한다.
숫자에 공백이 생겼을 경우 바로 뒤에서부터 공백을 채워 넣는다.
공백을 채우면서 변동되는 숫자는 새로운 이름이 된다.
고로 이백사십칠이었던 내 이름은,
일이 죽으면서 이백사십육이 되었다.
누구도,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일의 죽음에 대해서.
그만큼 죽음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갈색으로 일그러진 피부,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흘러내리는 흡사 진액과 같은 진물.
누가 봐도 괴물처럼 보이는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단어 말고 어울리는 단어가 또 있기야 하겠냐마는.
사실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일의 죽음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죽기 전 남긴 말이 중요했지.
오늘은 할당량이 두 배란다.
그 말은 즉 오늘 해야 할 일이 두 배로 늘어났다는 소리다.
바꿔 말하면…,
그래, 죽음밖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것 같네.
정말이지 저 단어는 우리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줄을 지어 채석장으로 이동하길 한참.
직전에 있는 숲에 도달한 우리는 자연스레 걸음을 멈췄다.
이윽고 너무나 익숙한 모습으로 길 양옆으로 펼쳐진 숲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질퍽한 늪지대가 펼쳐진 숲에는 곳곳에 바가지가 널브러져 있다.
그들은 곳곳에 놓인 바가지를 집어 든 채 주변에 인위적으로 파놓은 구덩일 향해 다가갔다.
구덩이 안에 담긴 것은,
한눈에 봐도 불결해 보이는 꾸덕꾸덕한 노란 액체.
우리 사이에선 오물이라 불렸지만, 아직도 그것의 명칭이 무엇인지 누구 하나 제대로 아는 이가 없다.
언젠가 주워듣기론 여러 나무에서 뽑은 수액의 혼합물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사람들은 바가지로 그것을 한가득 퍼 올려 자신의 몸에 끼얹기 시작했다.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악취, 닿기만 해도 불결함이 느껴지는 끈적한 감촉.
보기만 해도 욕지기가 마려운 그것을,
나도 한 바가지 퍼 올려 서슴없이 온몸에 끼얹었다.
이 과정은 작업 공정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모나켈이 주도하는 작업 공정에 말이야.
그렇게 오물을 뒤집어쓴 뒤 다시 질서정연하게 줄을 선 사람들 뒤로,
얼굴을 찌푸린 용병 하나가 품에 있던 종을 거칠게 흔들며 소리쳤다.
“움직여!”
힘겹게 소리친 용병은 바닥에 토를 거나하게 쏟아버렸다.
그만큼 우리의 몸에 발린 그것의 악취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다시 걸음을 옮긴 지 몇 분이 지났을까.
슬슬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공기는 뜨겁고 무거워졌으며, 공기 중엔 검은 잿가루가 흩날렸다.
끝내 숨쉬기조차 버거울 만큼 뜨거운 공기를 마주했을 때, 우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검게 그을린 채석장.
그 주위로 너울거리며 피어오르고 있는 검은 연기.
“자, 가세나.”
선두에 선 남자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산 중턱 채석장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동시에,
“쿨럭!”
“헙…!”
채석장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거센 열기에 선두 쪽 사람들 사이로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그 신음을 들으니 괜한 긴장에 달궈진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이내 채석장의 열기에 발을 들인 나는,
“크흡!”
온몸을 뒤덮는 열기에 아찔함을 느껴야만 했다.
본디 이 정도 열기라면 금방 피부가 오그라들어 녹아내리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채석장에 들어선 사람들 모두가 그 열기를 버텨내고 있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게 바로 직전에 우리가 뒤집어쓴 오물 덕분이었다.
다만 역설적이게도,
오물이 우릴 열기로부터 보호해주는 건 맞지만 그 부작용은 가히 끔찍한 것이었다.
흔히 ‘황토병’이라 불리는.
피부가 갈변되고 문드러지는 증상이 말이다.
아이러니하지,
열기에 화상을 입지 않게끔 해주는 보호제가 그 부작용으로 사용자의 피부를 문드러지게 하니까.
“오늘은 할당량의 두 배를 해야 하니 무리해서라도 중심부에 가까이 가야 해.”
칠.
우리 사이에서 작업반장이라 불리는 남자가 말했다.
그러자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이십삼이 따지듯 되물었다.
“여기서 더 가다간 우리라도 버티질 못할 겁니다.”
“모두가 할당량의 두 배를 채우기 위해선 이 방법밖엔 없어!”
단호한 칠의 말에 항변하던 이십삼은 끝내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이후 칠은 순식간에 작업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그에 맞추어 나 역시 그의 말에 따라 작업을 개시했다.
열기로 달궈진 채석장 중심부.
그 가운데에는 기업 모나켈이 설치한 특수한 기둥이 박혀 있었는데,
구, 아니 이제는 팔인 어르신께서 말씀하시길 저것은 기업에 의해 특수하게 가공된 공업용 인챈트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채석장 전체를 달구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열기는 저 기둥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리라.
해서,
이렇게 달궈진 채석장에 특수한 보호제를 바른 우리가 들어가 무엇을 하느냐 하면.
채석을 위한 도구 그 자체로서 작용하기 위함이다.
이 채석장은 지금 모든 부분이 진흙과 같이 무른 상태다.
나도 안다.
단순 열기만으로 이 단단한 석질이 무르게 변하진 않는다는 걸.
그렇지만 결국 모른다.
중간에 어떤 공정이 더 들어갔기에 이 거대한 채석장을 하나의 진흙밭으로 만들었을까?
아무튼,
우리는 그 달궈진 진흙밭 위에서 말 그대로 공구 그 자체가 된 듯 양손으로 석재를 펐다.
네다섯이 나란히 모여 퍼온 진흙을 한곳에 모으면 다른 네 다섯이 그것을 그대로 퍼 올려 채석장 밖으로 이동하는 것을 반복.
지극히 단순하고도 강도 높은 노동,
그것도 끓는 환경에서 벌어지는 그것들은 우리에겐 틀림없는 지옥이었다.
“헉…! 헉…!”
열기에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양팔로 파헤치고, 또 파헤치고.
그것을 모아 뒤로 밀어낸 뒤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가 눅진한 진흙으로 변해버린 석재를 파헤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팍!
하고 손끝에 걸리는 단단한 무언가.
“악!”
무른 진흙을 취급하느라 단단한 것에 대한 대비가 없었던 내 손가락은 그대로 꺾여버렸다.
반사적으로 아랫입술을 깨물었지만,
“허업…!”
그마저도 얼른 입을 닫아야 했다.
지독한 열기가 금세 내 입속으로 기어들어 왔기 때문에.
피지 못할 고통에 찔끔 흘린 눈물이 채 맺히기 무섭게 열기에 증발해버렸다.
대체,
단단한 그것이 무엇이기에.
남은 한 손으로 조심스레 진흙들을 퍼내자 곧 단단한 무언가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뭐지?
함부로 입을 벌릴 수 없어 속으로 되물어볼 뿐이다.
지독한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단단한 형질을 유지한 채 남아있는 그것은.
딱 보기에도 굉장히 풍화된 것이었지만, 진흙더미 사이에 박혀 있어서인지 모습만큼은 고고해 보였다.
좀 더,
주변을 퍼내자 이윽고 그것의 대략적인 윤곽이 드러났다.
뼈?
갈비뼈 같은 모양이야.
다만 부러져서 떨어진 부분인지 그리 크진 않다.
그렇다곤 해도.
사람의 것이라곤 말할 수 없는 크기인 건 확실하다.
“모두 마무리 준비해!”
한창 넋을 놓고 그것을 구경하고 있던 와중, 뒤통수를 맞은 듯 들려오는 칠의 목소리.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얼른 그것에서 눈을 떼고 주위에 헤쳐놓은 진흙을 퍼 올렸다.
* * *
땡 ─
땡 ─
시끄러운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소리에 맞춰 막 채석장을 빠져나온 우리의 온몸은 펄펄 끓는 김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끓는 진흙 속에서 몇 시간을 일했을까.
정확한 시간은 종을 치는 용병들만이 알고 있겠지.
작업 시간은 오롯이 용병들의 맘으로 정해졌으니 말이다.
콧구멍에 빻은 잎사귀를 쑤셔 넣은 용병 하나가 막 채석장 밖으로 나온 우리를 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이 새끼들은 나올 때마다 무슨 산불이 난 것 같단 말이야.”
이어지는 그의 비아냥에 듬성듬성 짝다리를 짚은 채 서 있는 용병 몇몇이 웃음을 터트렸다.
곧 용병 중 하나가 우리 옆에 산처럼 쌓인 진흙을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야, 많이도 퍼 왔다 정말.”
우리는 그 용병의 말에 내심.
안도했다.
할당량을 채운 것 같았거든.
그러나 뒤이어 같은 용병들의 인사를 받으며 등장한 남자가 이런 우리의 안도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이 새끼들, 할당량 두 배인 걸 그새 잊은 거냐?”
마레이크.
우리 사이에선 벌목꾼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자.
그가 매서운 도끼눈으로 우리를 한차례 훑어보았다.
“딱 봐도 미달이니 그에 대한 처분은 받아야겠지, 야 가서 몇몇 솎아내.”
마레이크는 입꼬리를 실룩 올리며 주위 용병들에게 소리쳤다.
이에 용병들은 우리를 둘러싼 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그 순간만큼 공포스러운 시간이 또 있을까.
모든 지옥의 종착역과도 같은 그 상황 속에서,
용병들은 아무런 기준도, 제시도 없이 몇몇 사람들을 골라 빼내기 시작했다.
“아… 제발!”
“안됩니다! 저는…!”
“오늘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진짜예요…!!”
끌려가는 자들 모두 절규하듯 애원했지만, 용병들은 전혀 듣지 않았다.
끌려가지 않은 자들은 제 코가 석자였기에, 비통한 안도를 느끼며 고개를 떨굴 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꺾인 손가락이 들키지 않도록,
손을 포갠 채 제발 넘어가길 기도하고 있을 뿐이다.
아,
날 살펴보던 용병이 막 지나갔다.
직전까지 줬던 긴장이 팍 풀리는 느낌.
그러나 반대로 그만큼 치달아 오르는 어떤 분노에.
절로 이가 갈린다.
그렇게 솎아진 인원들이 우리 맞은편에 나란히 섰다.
그들은 모두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것은 극한의 두려움에 젖게 되면 나타나는 모습이었다.
마치 인형과 같은,
그런 모습 말이야.
선별이 끝나자 주변 기둥에 기대어 쉬고 있던 마레이크가 설렁설렁 걸어 나왔다.
“좋게 생각해, 작업에서 배제되는 거잖아? 이 개 같은 짓거릴 해서 돌려받는 거라곤 겨우 너희들의 비루한 집과 땅뿐이라고.”
말을 마친 그는 제 손으로 날카롭게 다듬은 거대한 도끼를 든 채,
주변 용병에게 턱짓했다.
그러자 용병 둘이 나서서 선별된 인원 하나의 발을 걸어 자빠트렸다.
“히… 이익!”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바닥 위에 내쳐진 남자는 온몸을 달달 떨 뿐이다.
앙상하게 문드러진 몸이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발악하던 남자는 결국 용병 둘의 힘을 못 이겨 한쪽 팔을 펼쳐야만 했다.
그 앙상한 가지와 같은 팔 위에 선 마레이크는,
입에 남아있던 과일 껍질을 질겅질겅 씹으며.
일말의 지체도 하지 않은 채 도끼를 번쩍 들어.
퍽!
남자의 팔을 찍었다.
이것이 마레이크.
그의 별명이 벌목꾼인 이유였다.
* * *
늦은 밤.
폴란은 지독히 달라붙어 정리해낸 문서들을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티히트라의 섭정이라곤 하지만 섭정에게 주어지는 권한의 극히 일부조차 행사하지 못하는 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은 것이다.
기업 모나켈을 찍어누를 수 있는 자료들을.
수십 년 전부터 기사의 땅 아이베리아에 기업과 조합이 들어오면서 그 노동법 또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아직도 이 땅은 지성보단 야성이 날뛰기 좋은 곳이었기에 드리워진 음지 역시 커다랗다.
모나켈도 그 음지 중 하나다.
리케니엔에 들어온 법 기관에 이 문서를 들이미는 것으로, 베나즈의 이름이 들어간 명령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그럼 티히트라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뿌리는 물론,
뒤이을 후발주자들의 야성을 억누를 사례가 되어줄 것이다.
“몰룬 경.”
폴란은 씁쓸한 표정으로 책상 위에 고이 모셔놓은 아모룬 가문의 휘장을 내려다보았다.
“말씀하신 대로 될 겁니다.”
비장한 표정을 다잡은 폴란은 이제 시종을 시켜,
“바로 티히트라를 떠나 리케니엔으로 가거라, 가서 재상께 내 직접 대담을 원한다고 전해야 한다.”
그동안 참아왔던 수를,
“예, 알겠습니다.”
착수했다.
* * *
폴란의 명을 받고 빠져나온 시종은,
조용히 말머리를 돌려 티히트라 안쪽을 향했다.
그런 그를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어두운 골목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검은 양복의 사내.
그의 어깨엔 기업 모나켈의 인장이 자수 되어 있다.
그들은 한참을 마주 선 채 이야기를 나눴다.
단지,
그 대화가 그들 머리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어두워 잘 들리지 않았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