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262화 (262/365)

262화. 사고 (3)

내 이름이 뭐였지.

이백사십칠.

아니, 이백사십육.

아냐.

이백이십삼이던가?

혹여나 용병들이 내 이름을 물어볼까, 밤새 긴장하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용병에게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그것만으로도 벌목형에 처해 졌으니까.

그런데 궁금해.

그들은 우리 각각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고 있긴 한 걸까?

그러니까 얼버무리듯 대답한 이름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그들은 정확히 판가름 내릴 수 있느냐 이 말이야.

이렇게 생각하면 그냥,

정황상.

아니면 그저 기분상.

그들은 우리를 무차별적으로 벌목한 게 아닌가 싶어.

그러니 결국엔…,

용병들의 눈에 내가 띄지 않기를 바라게 될 뿐이다.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어.

저기요, 당신은 저 빽빽한 숲을 구성하는 나무들 각각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아, 물론 종을 얘기하는 건 아니고요.

이파리가 사부작거리며 지어준,

말 그대로 그 나무만이 갖고 있을 이름 말이에요.

누가 대답할 수 있나.

마찬가지로.

똑같은 갈색빛으로 문드러진 이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개인을 특정해 불러줄 수 있을까.

우리는 진즉에 두 발 걷는 자이기를 박탈당했다.

우리는 그저 기업의 부품이고, 소모품이며.

그렇기에 고갈이라는 결과만을 향해 내몰린다.

…,

괜한 긴장감에 오만 잡생각이 들어버렸다.

덕분에 정말 한시도 잠들 수 없었어.

그나마 긴장한 몸이 지쳐 슬슬 노곤함이 올라올 때쯤.

땡 ─ 땡 ─

시끄러운 종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서면, 한바탕 산사태를 끼얹은 숲처럼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신음이 뒤따라 들려왔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들려오는,

앳되고 씩씩한 목소리.

“이백이십오!”

아, 저게 내 이름이었구나.

어제보다 좀 더 문드러진, 그러나 어제보다 더 맑은 그 아이는 내게 다가와 살갑게 인사를 건넨다.

“어때, 잠은 좀 잤어?”

“어…,”

우물쭈물한 내 대답에 소년은 한입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난 이백이야!”

그리곤 어깨를 활짝 펴며 앳된 소망을 부풀렸다.

“정말 쉬운 이름이지? 이 이름으로 불릴 날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그런 그의 소망에,

나는 순간 피로도 잊어간 채 얕은 미소로 화답했다.

물론 그것도 잠시,

“얼른 움직여!”

검은 망토를 두른 용병들이 우르르 몰려와 겁박을 쏟아내는 바람에 우리는 모두 자리에서 급히 움직여야 했다.

“어제 작업량이 시원찮아서 오늘은 더 일찍 작업을 시작한다.”

말도 안 돼.

허망한 표정으로 용병의 눈치를 살핀 나는 곧 고개를 이쪽으로 돌려오는 그를 보곤 얼른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려야 했다.

“바로 이동해!”

용병의 선언에 우리는 줄을 맞춰 조용히 이동을 시작했다.

* * *

뜨겁게 달궈진 채석장.

그 입구 앞에서 오물이라 불리는 나무 수액을 온몸에 바르면,

동시에 심장은 더없이 벌컥거렸다.

곧 채석장에서 느낄 고통과 그 고통의 끝에 얻게 될 새로운 문드러짐이 그만큼 두려운 것이었으니까.

이제 줄 맞춰 선 우리는 채석장 속으로 빨려가듯 들어갔다.

압도적인 열기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그 열기를 담은 열풍에 온몸이 파르르 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 스러지지 않았기에,

우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한가운데 박힌 검은 기둥.

그곳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압도적인 열기가 채석장의 모든 것들을 무르게 만드는 와중.

이러한 중심에서 오늘도 나는,

그리고 모두는 온몸을 사용해 진흙같이 변한 석재를 퍼 올린다.

내게 할당된 구역에서 펄펄 끓는 진흙을 퍼 올리길 몇 분.

오늘도 역시 손끝에 단단한 무언가가 걸렸다.

해서 이번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도 볼 겸 주위 진흙을 하나도 남김없이 걷어냈다.

그렇게 드러난 것들은,

내 막연한 예상을 명확하게 만들어 주었다.

늑골.

그런데 어떤 생명체의 것인지는 모르겠어.

마치 보석처럼 하얗게 빛났고, 그 크기 역시 도저히 가늠하기 힘든 것이었으니까.

단지 늑골의 한쪽, 그것도 한 줄기 뼈의 윗부분만이 살짝 드러났을 뿐인데 그 범위가 내가 누울 수 있을 만큼 크다.

한참 하얗게 빛나는 뼈를 내려다보고 있던 나는,

“빨리빨리 해! 오늘은 한 사람도 벌목 당하지 말자고!”

곧 뒤통수에 끼얹어진 말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작업에 집중해야만 했다.

이내 갈무리한 진흙을 막 옮기려던 와중.

땡 ─ 땡 ─

채석장 바깥에서 시끄러운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소리는,

우리 모두에게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뭐야! 뭔데 벌써 작업시간이 끝났다는 거야?!”

“이런 미친 새끼들…! 기어이 우리 모두를 죽일 작정인가?”

그도 그럴 것이,

작업을 시작한 지 겨우 한 시간 정도밖에 안 됐거든.

열풍에 의해 느끼는 고통보다, 별안간 갑작스레 울려 퍼진 종소리에 대한 공포감이 더 커서.

우리는 모두 하얗게 질린 채 계속해서 울리는 종소리를 따라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 * *

채석장 밖.

용병들은 막 티히트라에서 온 전령의 이야기를 들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필이면 이럴 때 오나?”

“설마 섭정 일 때문은 아니겠지?”

“무슨 소리야, 원래 시찰이라는 게 당하는 입장에선 항상 안 좋은 때라고.”

그러던 와중,

용병들 사이에서 가장 악명높은 이.

벌목꾼이란 별명을 가진 마레이크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전령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럼 전령은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그 물음에 즉답했다.

“현장 정리를 하라는 회장님의 명령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 정리의 종류가 뭐냐니까?”

“정리에 종류가 어딨나, 그저 치우는 게 정리지.”

마레이크의 날선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전령의 모습에,

용병들 몇몇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치우라고? 다 죽이라는 거야?”

“허 씨벌, 시찰 한 번에 2기수 다 나가리 되겠군.”

“1기수를 본보기 삼은 덕에 2기수는 제법 빠릿빠릿했는데 말이야.”

그러나 마레이크를 위시한 그의 최측근 용병들은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어차피 우린 주어진 일만 하면 될 뿐이야, 마레이크.”

“솔직히 요즘 돌아가는 꼴이 심상치 않긴 했어, 그 ‘구’라는 노인네 말이야.”

“그 새끼들이 들고 일어설까 봐 구를 포함한 그의 측근들은 일부러 건들지도 않았는데.”

이렇듯 측근들이 첨언을 이어가자,

마레이크는 이미 결정을 내린 듯 자신의 도끼를 어깨에 들쳐 맨 뒤 무덤덤하게 말했다.

“3기수는 그 ‘구’ 같은 노인이 나오지 않게 우리가 잘 버무려야겠지.”

그 말인즉.

2기수의 처리를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용병들은 이제 준비를 서둘렀다.

무기를 점검했고, 그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위치를 선정한 것이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이 나고.

용병 중 하나가 작은 망치로 종을 때렸다.

땡 ─

땡 ─

거의 고문 수준의 노동이 이뤄졌을 때만 울렸던 종이, 작업을 시작한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울려 퍼진다.

하지만 고작 부품 따위가 의심할 리 있겠나.

마레이크는 막 채석장 입구로부터 걸어 나오는 그들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문드러진 자들의 눈엔 하나같이 의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개중엔 고된 노동이 잠시 중단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미소를 머금은 자들도 있었다.

그렇게 채석장 밖으로 나온 이백이 넘는 장정들이 웅성거리고 있을 때.

용병 하나가 나서서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과정에서도 용병 몇몇은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눈길을 주고받기 바빴다.

이런 모습을 마레이크는,

‘병신들…,’

탐탁지 않아 했다.

하루하루 삶과 죽음을 넘나들었을 저들의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 그런 그들 앞에서 저런 어리숙한 시선 따위를 주고받다니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이목을 집중시켰던 용병도 제법 긴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더니,

되지도 않는 말을 내뱉는다.

“잠시 휴식이다.”

문드러진 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웅성거림은 더욱 커졌으며, 그들 내부엔 벌써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자들까지 생겼다.

이러한 의심의 중심엔.

구.

그 노인이 있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작은 벌레라도 몸부림을 치면 잡기가 어렵기 마련이거든.

그래서 마레이크는 번쩍 손을 들어,

“덮쳐!”

벼락같은 목소리로 쩌렁쩌렁 외쳤다.

* * *

비명이 사방에서 터진다.

그 사이에 멀뚱히 서 있던 나는,

황망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저 갈대처럼.

불어오는 바람에 어느 방향으로든 힘없이 꺾일 것처럼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어.

그래도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방금 낯익은 얼굴 하나가 창에 꿰인 채로 땅에 처박혔다.

도끼와 칼이 난무했고,

그 난무에 맞춰 팔과 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막 채석장 밖으로 나온 우리들의 피는 뿌연 연기가 나올 정도로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허… 흐….”

울컥.

거부할 수 없는 그 나이대의 두려움이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왔다.

달달 떨리는 두 다리 사이로는 지린 오줌이 줄줄 흘러나왔다.

끓는 열기에 문드러져 사람 같지 않은 몰골이 된 우리였지만, 반대로 뜨겁게 달아오른 피는 누구보다 더 강한 생명의 향기를 품고 있었다.

그렇게.

용병 하나가 날 보며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의 손에 들린 손도끼가 번쩍 들어 올려지는 순간.

“이백이십오!!”

누군가 뒤에서 내 팔을 바짝 잡아당긴다.

덕분에 내리친 손도끼를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뒤로 나자빠져 피로 범벅이 된 진흙 위에 나뒹군 나는, 곧 같이 나뒹군 이백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이… 백?”

“뭐해! 얼른 도망쳐야 해!”

나보다 나이가 적은,

그 작은 소년은 지금 나보다 커다란 씩씩함을 내뱉고 있었다.

“이백… 이백…,”

덜컥 울음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있던 이백의 팔을 더욱 세게 쥐었다.

이백의 커다란 씩씩함에 동화되었을까.

이제 나는 그 아일 끌어당겨 외쳤다.

“가자!”

피범벅이 된 진흙 속을 비집고 일어나 달린다.

그렇게 차린 정신 속, 채석장 입구 쪽에서 벌어지는 실랑이를 우리는 목격할 수 있었다.

“모두 채석장 안으로 들어가!”

“길을 열어야 해!”

“저 새끼들은 절대로 저길 못 들어갈 거야!”

구.

영감님을 필두로 그의 측근들이 문드러짐 속 다부짐을 드러내며 용병들과 몸싸움을 서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몸싸움 너머엔,

채석장 입구가 있다.

그래서 고작 작은 두 소년이었지만 그것이라도 보태기 위해 달려들었다.

이내.

열렸다.

채석장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용병 몇몇이 뜨거움에 질려 뒷걸음질 친 것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이제 들어가기만 하면,

그러면.

“억…!”

“이백…?!”

순간 맞잡은 이백의 손이 미끄러지듯 내 팔을 할퀴며 사라졌다.

그 사라지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려 보면,

이백의 문드러진 등가죽을 낚아챈 마레이크가 서 있다.

“아…,”

말이 안 나와.

마레이크는 붙잡은 이백의 어깨에 도끼를 쑤시듯 찍었다.

“아… 아… 악…,”

이백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내 온기가 남아있을 팔을 펼친 채.

“이… 배….”

그런 그를 향해 나아가려던 찰나,

“뭐해! 들어가!”

다른 이의 손에 이끌린 나는 채석장으로 빨려가듯 들어갔다.

* * *

“몇이나 도망쳤어!”

“아 씨발!”

용병들의 욕지거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널브러진 시체들 사이에서 간간이 숨 붙은 자들을 확인사살 한 그들은 이제 지붕 위에 올라탄 고양이를 바라보듯,

멍하니 채석장 쪽을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뭐해, 이 새끼들아.”

마레이크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채석장으로 향하는 길을 가리켰다.

“우리도 들어간다, 그 새끼들 다 죽여야 우리 일도 끝나는 거야.”

그의 말에 용병들은 곧바로 반박했다.

“수액을 뒤집어쓰자는 거야?!”

“우리도 그놈들과 같은 꼴이 되라는 거야 뭐야?”

그러나 이런 반박은 마레이크의 대답에 금방 묵살됐다.

“다겐 모나켈이 과연 어떤 지랄을 할까? 이 끝나지 않은 난장을 보면 말이야.”

끝내 그들은 숲길로 달려가 수액을 뒤집어썼다.

대부분이 그 역함을 참지 못하고 토를 쏟았지만, 반대로 독기가 오를 대로 오른 그들은 무자비한 걸음걸이로 채석장에 들이닥쳤다.

* * *

“노… 놈들이 옵니다!”

“이런 세상에…!”

아연실색하는 사람들 속,

나는 허탈하게 앉아 있다.

가시지 못한 슬픔이 있는데,

이 지독한 열기는 이런 내 슬픔을 내뱉는 족족 휘발시켜버린다.

증오의 방향은,

마땅히 내가 가지고 있을 이 증오의 방향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당장은,

이 슬픔마저 말려버린 열기가 증오스럽다.

그래서.

나는 이 증오를 해갈할 거야.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꼭.

저 멀리 용병들의 모습이 보인다.

몇몇 사람들은 진흙으로 변한 석재를 튀기며 격렬히 반항한다.

그 사이를 유유히, 본능에 맡긴 채 가로지른 나는 내가 일했던 구역 앞에 앉아.

두 팔로 진흙을 휘저어 빛나는 뼈를 마주했다.

이 열기는 모든 것을 무르게 했지만,

단 하나를 무르게 하지 못했어.

그렇기에 이 무르지 않은 유일한 것으로 나는…,

양손을 맞잡은 채 뼈를 향해 내리쳐.

뻑!

계속.

뻑!

계속…,

* * *

난무한 비명 속,

이제 채석장 내 남아있는 자들은 얼마 없다.

그들을 모두 정리하고 저 인챈트가 구속되어있는 기둥을 해제하면.

모든 일이 끝이 난다.

그런데,

한 소년이 그 기둥을 향해 정처 없이 다가가고 있다.

그래서 마레이크는,

“저 새끼 막아!”

막 문드러지기 시작한 팔을 뻗어 외쳤다.

용병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지.

이 열기 속에서 움직임을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를.

그래서 허우적거렸다.

볼썽사납게 말이야.

보다 못한 마레이크가 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이제 소년과의 거리는 불과 열 보 남짓.

그대로 잡아채 목을 비틀어버리면 된다.

그런데 소년의 손에 들린 것은 대체 뭐지?

아,

막 소년이 손에 든 것으로 기둥을 찍었다.

하지만 그따위 것으로 기둥이 부서질 리가…,

쩌적.

쩍.

마레이크는 다섯 보 남짓한 거리를 남겨두고 멈춰 서야만 했다.

단 한 번의 내리침만으로 기둥에 균열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끝내.

팍!

하고 유리와 같은 파편을 쏟은 기둥 속에서.

피골이 상접 한, 말 그대로 뼈에 가까운 팔 하나가 힘없이 쏟아져 내렸다.

기둥 앞에 서 있던 소년은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을 보며 공포에 젖어 들었다.

아아,

몰랐던 거지.

인챈트는 두 발 걷는 자를 통해서만 그 위력이 발휘된다는 사실을.

그래,

기둥 속에는 그 인챈트를 발휘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감금되어 있었다.

알겠는가,

너희들을 착취했던 열기 역시 착취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 속에 바로 너가 빠져 있었다는 걸 말이야.

한 걸음 더,

마레이크가 그 소년에게 다가간다.

앞으로 네 보.

세 보.

두…,

“너도 괴로웠던 거야, 그렇지.”

슬슬 들려오는 목소리에,

마레이크가 당황한 표정으로 걸음을 뚝 멈춘다.

“야…! 멈….”

이어 소년이 하는 행동을 제지하기 위해 두 팔을 뻗었지만,

소년은 손에 들린 하얀 것을 내질러 기둥 속,

불상의 인물을 찔렀다.

[19년, 칼라스피로]

[침묵을 깨고 세상을 향해 소리 지른 산]

[완전 구현]

그것은 과거, 묵묵히 침묵을 유지했던 화산 멜리칸의 일갈이자.

세상이 가진 뜨거움의 일부분.

그것이 원주인의 죽음을 통해 그 당시의 재해 자체의 재현으로,

───────── !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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