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281화 (281/365)

281화. 파견대 (3)

안녕하십니까?

설계와 측량 및 계산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 ‘디세잉’입니다.

벌써 리케니엔에 저희 당사가 입점 된 지도 3개월이나 되었습니다.

그간 저희 디세잉은 리케니엔을 비롯한 경유지의 도로 설계 및 물길과 제방 측량을 도맡아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일을 진행했습니다.

귀하께서 이번 의뢰에 저희 당사를 선택하신 이유는 위와 같은 신뢰가 바탕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부심을 통해 저희 디세잉은 더욱 신중히 발전해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먼저,

이번에 발휘한 측량 및 계산은 두 발 걷는 자를 기준으로 하는 공식에 입각하여 진행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기준 공식 – 마이스터 세레본의 ‘두 발’ 정의 법)

또 산출된 수치는 원정 길드 업계 내 최신에 해당하는 정보를 기준으로 고려해 작성되었습니다.

(정보 제공처 – 론다이트 원정 협회)

마지막으로 리케니엔 내 입점 된 기업과 단체 모두가 이번 측량 및 계산 과정에 흔쾌히 협조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베나즈 집사부회)

(제리드 은행)

(레프리길)

(바슈)

(언틸 – 레틴)

….

후보군

1. 바돈 엥킬로

소속 : 베나즈 집사부

직책 : 시종장

비밀유지 수행 및 지속업무에 탁월.

이동수단 마련 및 진행 업무에 특화.

파견대 내 합리적 중재안 제시 가능자.

- 외부 물리 요소 억제력에 취약.

추진 – 7

의지 – 9

5. 론 에브리타즈

소속 : 레프리길

직책 : 레프리길 소속 자유 탐정

메트로폴리아 관련 사건 해결 건수 3건.

관찰 및 추론 능력 특화.

상황 인지, 이해, 해결능력 탁월.

- 통제 어려움, 상황 변수 유발 가능성 있음.

창의 – 10

냉정 – 8

9. 제이 팔기어

소속 : 제리드 은행

직책 : 수석 경호인

압도적인 물리 억제력.

선별 인원의 감시, 보호, 우선에 탁월.

선봉 전투 수행에 매우 탁월.

- 상하 관계 규율에 아주 엄격함.

강력 – 10

질서 – 10

13. 벨리타인

소속 : 바슈

직책 : 의료 부장

응급 처치 및 구호 업무에 탁월.

개인 물리 억제력 역시 훌륭함.

약물을 통한 선별 인원들의 능력 강화 가능.

- 성격이 이상함

해결 – 9

이상 – 10

16. 시트리에

소속 : 언틸 – 레틴

직책 : 1번 기술자

각종 장비의 정비, 유지 작업에 탁월.

설치된 위험요소 돌파 능력에 탁월.

기술적 이해에 매우 탁월.

- 외부 물리 요소 억제력에 취약

- 외부 요소에 민감

확신 – 10

불안 - 7

….

* * *

“공, 파견대의 윤곽이 대략 잡혔다 들었습니다.”

갑옷을 차려입은 조이가 헐레벌떡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에 번쩍거리는 그의 모습에 대고 물으면,

“출발하시는 겁니까?”

그는 투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답했다.

“예, 기사들의 소집이 막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군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인 나는 그제야 손에 거의 붙어있다시피 했던 서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거의 하루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

저 스무 장 남짓한 서류에 온 정신을 쏟아부었어.

그래서일까.

서류를 내려놓기 무섭게 속에서부터 튀어나온 푸념이 입술을 간질였다.

그래도 내뱉지 않으려 했는데,

막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은 조이의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리케니엔엔 훌륭한 인재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 푸념을,

조이는 벌써 이해했다는 듯 씩 웃으며 받아주었다.

“말과는 다르게 미간이 많이 찌그러져 있습니다만.”

말을 마친 조이는 겨드랑이가 불편한지 결국 옆구리 쪽 매듭 몇 개를 풀어 흉갑을 느슨히 했다.

“확실히, 그렇게 고민할 바에 믿음직한 기사 몇을 대동해 가는 게 가장 편할지도 모릅니다.”

그는 내 푸념을 공감해주다가도 냉정히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메트로폴리아는 전투적 요소 하나만으론 파훼할 수 없는 곳입니다. 여러 방면으로 철저한 공략이 필요하지요. 그리고…,”

“기업 및 조합과의 경직된 관계를 좀 더 느슨히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맞습니다.”

나는 곧장 턱짓으로 그의 겨드랑이 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조이는 자신의 느슨해진 흉갑을 살피다가, 끝내 내 의중을 알아차린 듯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느슨함은 빈틈을 만듭니다.”

내 말에 조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옆구리 매듭을 꽉 조였다.

“그럼 정치로 다시 꽉 조여 매야지요. 이 점, 모든 기사가 단단히 상기할 수 있도록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조이 경, 그럼 몸 성히 다녀오십시오.”

“공께서도 부디 무사히 돌아오시길.”

서로 짧은 대화를 주고받은 뒤, 조이는 내게 기사의 예를 보인 후 밖을 나섰다.

이제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종을 울려 바돈을 불렀다.

* * *

“그럼 이렇게 정하신 다섯으로 파견대 업무를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게서 다섯 장의 서류를 건네받은 바돈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그에게,

“잘 부탁드립니다, 바돈.”

슬쩍 웃으며 답하자 그는 그제야 경직된 표정을 풀었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영주님.”

늦은 저녁.

곧 있을 출발에 대비해 준비를 시작했다.

메트로폴리아는 바다를 건너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기에 개인 짐을 더욱 간추려야 한다.

파견대는 하나부터 열까지 비밀유지를 기본으로 행동해야 하기에 더더욱 신경 써야 해.

외지에 있을 다른 깃발의 하수인과 새들의 시선에 들키지 않은 채로 임무를 완수해야 하니까.

복장은 검은색 셔츠와 광을 죽인 감색 가죽 바지.

허리엔 얇고 질긴 가죽 벨트, 그 우측엔 확장성을 고려해 멜빵끈 하나를 달았다.

그러한 벨트에 체결한 가죽 주머니는 총 세 개.

각각 편의 물품과 식량, 위위키, 검에 먹일 기름으로 채워 넣었다.

무장은 새비안 한 자루.

이것 하나만으로도 개인 무장 내에선 과한 수준일 것이다.

그렇게 출발 준비를 다 마친 뒤 오랜만에 꺼낸 어스름을 걸친 채 밖으로 나오면,

어두운 갈색 후드를 뒤집어쓴 바돈이 문밖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

“공, 나오셨습니까.”

“출발합시다.”

짧게 대화를 주고받은 뒤 우리는 나란히 후드 자락을 휘날리며 저택 밖을 나섰다.

“리케니엔 동쪽 길에 짐 마차 하나를 미리 주차해 놨습니다.”

“다른 인원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모두 짐 마차가 있는 쪽으로 집결할 겁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저택 밖을 빠져나온다.

슬슬 서늘한 새벽으로 접어들려는 시간,

부쩍 차가워진 공기가 벌어진 후드 너머로 스며든다.

이윽고 접어든 리케니엔의 동쪽 길.

사람 하나 없는 그 길 왼편엔 거대한 짐 마차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다.

그곳을 향해 다가가자 기다렸다는 듯 길 양옆에 펴 발린 어둠 속에서 네 사람이 튀어나왔다.

그중 가장 다부진 체격을 가진 잿빛 후드가 내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파견대 임무를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이 팔기어라고 합니다.”

그 뒤로 어두운 적색 후드를 뒤집어쓴 여인이,

“선별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시트리에입니다.”

손가락으로 후드 자락을 집은 채 인사를 건네었다.

곧이어 남은 이들도 인사를 이어가려던 순간,

투둑.

툭.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빗줄기.

바돈은 즉시 날 돌아보며 물었다.

“제대로 된 인사는 이동하면서 나누는 게 좋겠습니다.”

“그게 좋겠군요.”

* * *

투두둑,

빗줄기는 점점 거세져만 간다.

그에 맞춰 차창에 새겨진 망울진 빗금도 점점 커진다.

좁은 마차 안에 셋 셋으로 마주 앉은 사이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이러한 기류를 헤치는 건 내 몫이다.

하여 후드를 벗어 얼굴을 보였다.

그러자 나머지 다섯 역시 허겁지겁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벗는다.

나는 드러난 면면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쳐가며 정식으로 인사했다.

“이렇게 부름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디안 베나즈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들려오는,

“헙.”

숨찬 소리.

이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인다.

살짝 선홍이 감도는 백발.

그 아래 맺힌 진한 금색 눈동자.

내 또래로 보이는 그 앳된 소녀는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에 얼른 두 손으로 얼굴을 감췄다.

“죄…, 죄송합니다.”

드러난 그녀의 귀 끝이 금세 타오르듯 붉어진다.

그러자 그녀 맞은편에 앉은,

건조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중년의 여인이 흥미로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덜컥 마신 호흡의 깊이를 보니 이성을 향한 놀라움과 호감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니까요. 막간엔 약간의 성욕도 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 만해 주세요!”

백발의 소녀는 허겁지겁 고개를 가로저으며 맞은편 여인을 제지했다.

약간의 정적.

곧 바돈이 애써 헛기침을 하며 가라앉은 기류를 환기했다.

“그리고 저는 베나즈 가문을 모시는 시종장 바돈 엥킬로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바돈의 점잖은 소개에 다시 이야기는 정상적인 궤도로 안착했다.

바돈의 소개를 이어받은 이는,

살짝 뻗친 적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

“정식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제이 팔기어라고 합니다.”

제리드 은행 측의 인사다.

그리고 역시 그 제리드 은행이 주는 위압감에 걸맞은 사람이로구나.

저 어두운 주홍색 눈동자 속엔 무엇을 감춘 걸까.

쉬이 그 진위를 파헤치기 힘든 남자야.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오히려 든든한 느낌이다.

파견대의 좌우 중 하나를 다 맡겨도 걱정 없겠지.

이어서 검은색 더벅머리를 한 남자가 주위를 쭉 둘러본 뒤 마지막으로 내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레프리길 소속 자유 탐정, 론입니다.”

나는 그의 인사에 반갑게 화답했다.

“이번 티히트라와 관련한 일로 큰일을 해내셨다 들었습니다.”

이에 론은 긴장 풀린 얼굴로 활짝 웃으며 화답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상호 간에 물 흐르듯 이어진 짧은 대화였을 뿐인데도,

나머지 세 사람의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다음으론 고개를 푹 숙인 백발의 소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저… 는 시… 시트리에라고 합니다. 기술직에 종사하고 있어요…,”

후드를 뒤집어썼을 때와는 전혀 다른,

쑥스러움이 가득한 그녀의 인사가 끝나자 마지막으로 바돈 옆에 앉아 있던 중년의 여인이 내 쪽으로 고개를 튼 채 입을 열었다.

“베나즈 가문과 함께 일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벨리타인이라고 합니다.”

양옆으로 잘 정돈된 감색 머리카락,

깊은 눈매로부터 드러난 농익음은 분명 중년의 것이 확실하지만 얼굴은 그완 상반되는 젊음을 갖고 있다.

여러모로 가장 수수께끼 같은 인물임은 틀림없는 것 같네.

그렇게 겨우 상호 간의 통성명이 끝났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마차 내엔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관계의 경직을 풀기엔 아직 너무나 이른 시간이었을까.

자연스레 차창 너머로 시선을 옮기면,

마차는 막 리케니엔을 빠져나와 동남쪽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비는,

쏴아아!

이제 그 줄기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우렁차게 쏟아지고 있다.

한창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마차의 바퀴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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