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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노래-283화 (283/365)

283화. 파견대 (5)

세 시간을 더 이동해 도착한 곳은 아이베리아의 남쪽 항만 ‘로크포츠’

막 해가 떠오를 시간이었지만 그칠 줄 모르는 폭우는 아침을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덕분에 간간이 켜놓은 벼락 등불을 따라 겨우 선착장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바돈은 곧바로 현장에 나와 있는 뱃사람들을 붙잡고 물었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대답은 모두 똑같은 것이었다.

“보다시피 지금은 바닷길이 다 막혀서 배로는 못 건넙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

당장 눈앞에 위태롭게 출렁이는, 선착 된 배들의 몸짓만 봐도 나갈 수 없는 상황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으니까.

“이 시기에 이렇게 내리는 비는 대략 이틀에서 사흘 정도 유지됩니다, 그 안에 나갈 생각은 꿈도 꾸면 안 돼요!”

뱃사람은 친절히 불가능을 풀어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 대책을 세우기 위해 거친 빗줄기를 등진 채 선착장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선착장 바깥쪽에 세워진 거대한 교역소,

그 바깥 지붕 아래 모인 우리는 흠뻑 젖은 꼴이 된 서로를 바라보며 허탈한 한숨을 나눴다.

“뱃길을 통해 나갈 수 없다면 지하와 하늘길뿐인데…,”

시트리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바돈은 학술회에서 만들어진 아이베리아 지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곧바로 우리 위치가 있는 부분을 펼쳐 젖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여기, 벨두두 갱도 하나가 있습니다.”

그럼 가만히 듣고 있던 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 위로 자신의 손가락을 보탰다.

“벨두두 갱도라면 제브 제도를 거쳐 가는 길이라 곧바로 메트로폴리아가 있는 쪽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쭉 움직여 지도에 그려지지 않은 바다를 넘어 허공에까지 뻗었다.

이에 탐탁지 않게 듣던 벨리타인이 우려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곳은 난쟁이들의 구역이에요, 그리고 지하에는 언제나 괴물이 들끓는 법이죠.”

그럼 제이가 벨리타인의 의견에 힘을 싣는다.

“또 지하는 그 특성상 수많은 메아리가 녹아 있습니다.”

그 말을 마친 제이는 주섬주섬 가죽 주머니 안에서 무광의 잿빛 구슬 다섯 개를 꺼내 들었다.

“그 말은 통신의 주체로 메아리를 쓰는 작은 산의 신용이 매우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론이 수긍했다.

“지하는 그 종잡을 수 없는 지형 특성상 무리가 흩어질 가능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그 여백을 메꿔 줄 수단을 믿을 수 없다면…,”

그렇게 의견이 오가는 와중에,

“저…,”

눈치를 살피던 시트리에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내며 우리의 시선을 모았다.

그녀는 곧장 자신의 품 안에서 무언가를 쥔 채 그 주먹을 우리 앞에 내놓았다.

이내 손을 펼치자,

작은 실 거미 다섯 마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통신까진 무리지만 얘네들이라면 서로의 위치를 언제든지 특정할 수 있어요.”

자세히 보니 그것은 일반적인 거미가 아니었다.

곳곳에서 금속 재질의 광택을 내비치는 그 거미는 아주 미세한 톱니로 이루어진, 정확히 말하면 기계장치였다.

론은 작은 손바닥 안에 질서 정연히 모인 거미에 벌써 푹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원리가 뭡니까?”

론의 물음에 시트리에가 그 큰 눈을 끔뻑거리며 뭔갈 말하려다가,

“아마 설명으로만 하루가 다 갈 거예요.”

끝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창 지도에 집중하고 있던 바돈은 곧이어 지도의 한창 윗부분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 로크포츠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면 구름 선착장인 ‘오르트로’가 나옵니다. 오르트로는 아이베리아 내에 손꼽힐 만큼 큰 운항지죠.”

그러나 바돈은 곧바로 부정의 표정을 지으며 내게 조언했다.

“이곳까지 이동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진짜 문제는 이곳이 제국 시르아의 영토라는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흔히 말하는 제국 규모의 깃발,

아이베리아의 3강이라 불리는 세력은 리케니엔의 베나즈에 대해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은 상태다.

공식적으론 우호나 중립, 적대라는 개념조차 없는.

말 그대로 미지로 가득한 세력들.

그런 미지 속으로 0을 들고 들어가는 것은 애초에 모순에 가까운 일이지.

바돈의 말대로 갱도에 비하면 하늘길은 그 두 가지 요인만으로도 고를 명분이 없다.

이제 그들은 내 선택을 기다렸다.

사실 지금만큼 좋은 기회는 없다.

베나즈 가문의 내부로는 베르융의 주도로 군의 재편이 일어나고 있어 변방의 빈틈이 없을 시기이고,

바깥쪽으로는 이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가 지키려는 비밀의 봉인이 되어주고 있었으니까.

이 비가 그치기 전에 아이베리아를 벗어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리라.

나는 그들 모두와 눈을 마주친 뒤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갱도로 갑니다.”

* * *

로크포츠에서 북쪽으로 이십 여분을 이동하자 산등성이로 올라가는 거대한 길목이 나타났다.

그 길을 따라 두 개의 가파른 둔덕을 넘으면,

탁 트인 고원이 우리를 환영하듯 펼쳐진다.

평야 중앙에 나 있는 길 끝에는 갱도 입구 근처에 지어진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시간상 막 오후로 접어드는 시기임에도 마을은 한 줄기 빛조차 없는 칠흑으로 젖은 상태였다.

마을로 들어서 곧장 산 중턱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이동한 우리는 금방 거대한 나무 방책에 가로막혀 멈춰야만 했다.

“누구!”

방책 너머,

꽤 낮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이에 대고 바돈이 큰 목소리로 외친다.

“갱도 길을 타기 위해 왔소!”

“하긴, 이 비라면 바닷길 전부가 폐쇄되었겠지!”

“맞소!”

“통행료! 두당! 은화 20개! 이동은! 알아서!”

“잘 알았소!”

바돈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덜컥!

하며 들려오는 육중한 소리.

이에 맞춰 나무 방책 양 끝에 있던 거대한 톱니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녹슬고 거대한 톱니가 두 바퀴 정도 돌아가자 나무 방책은 겨우 한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큼 열렸다.

슬슬,

바람 먹은 불씨처럼 지펴지기 시작하는 긴장감을 안은 채 우리는 비에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겨 방책 너머로 향했다.

쇠와 숯,

꿉꿉한 땀과 비,

방책 너머엔 그것들이 뒤섞인 묵직한 냄새가 가득하다.

많은 난쟁이가 갱도 앞을 쏘다니며 무언가를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

방책 너머에서 우리에게 말 걸었던 난쟁이는 부랴부랴 다가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따라와! 이동 전용 선로가 따로 있으니까!”

검댕 묻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앞장선 난쟁이는 금방 눈앞에 보이는 아무 난쟁이 하나를 붙잡았다.

붙잡힌 난쟁이 역시 온몸에 검댕을 칠하고 있었건만,

“팍스! 저 인간들에게 길 안내해라!”

검댕이고 뭐고 필요 없다는 듯 곧장 알아보고 이름을 부른다.

그럼 또 제대로 알아본 것인지 부름을 받은 난쟁이는 땋은 수염이 실룩이도록 고개를 끄덕이곤 우리에게 다가왔다.

“광차는 대략 30분을 이동하는데, 그 이후 난 길을 통해 가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참고로 광차에서 내린 시점부터 우린 외부의 위험요소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

팍스라는 난쟁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우리에게 재차 안내를 거듭하곤 빠른 걸음으로 앞장섰다.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선로의 시작점.

그리고 시작점 너머를 삼킨.

밤으로 향하는 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두운 갱도의 입구.

그 크기만 해도 펠테아의 성이 전부 다 들어갈 정도다.

“세상에, 웬만한 둔덕 따위도 삼킬만한 구멍이군.”

론이 감탄을 내뱉자 난쟁이 팍스는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화답했다.

“난쟁이들 사이에선 큰 축에 끼지도 못하는 규모입니다, ‘발라그드’의 입구에 비하면 젊은 나무에 난 옹이구멍 수준이죠.”

이제 팍스는 거대한 광차 위로 펄쩍 뛰어올라 우리에게 손짓했다.

“광차 안에 타면 곧바로 안에 있는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광차 난간을 붙잡고 있다가 손가락 잘려도 저는 모릅니다. 그 말은 광차 밖으로 머리도 내밀면 안 된단 말이에요.”

투박한 그의 경고가 되려 나를 상기시켰다.

하나둘, 광차 안에 모두 탑승하니 그제야 후드에 스며든 축축함이 온몸을 무겁게 짓누른다.

바돈은 곧바로 품에서 쨍함이 담긴 유리병을 꺼냈다.

그 유리병을 눈에 담은 시트리에는 드디어 살았다는 듯 안도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고,

언제나 경직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던 제이조차 반색하였다.

옹기종기,

광차 안에 앉은 여섯 사이로 유리병을 내민 바돈은 이제 은근한 미소와 함께 굳게 닫힌 뚜껑을 열었다.

화악!

하고 번지는 쨍함.

동시에 사방에 스며드는 7월, 어느 날의 날씨.

비록 내가 뒤집어쓴 어스름은 젖지 않았지만.

몸 주위에 때려 박혔던 빗방울의 무게감이 다 날아간 듯한 느낌이다.

이제,

광차 운전석에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은 팍스가 뒤돌아 우리를 내려다보며 선언했다.

“출발합니다, 혹시 누구든 기절하면 옆 사람이 꼭 붙들어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난쟁이는 자신의 앞에 있는 금속 레버를 당겼다.

그러자 마치 얼음 위에 놓인 듯,

미끄러지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광차.

심상치 않은 속도감에 내 몸의 근육이 신경을 단단히 붙잡는다.

끼리릭!

왼편으로 거칠게 튀어 오른 불똥.

그리고 전신에 그대로 전해지는 무지막지한 반동.

하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듯.

후우욱!

광차는 순식간에 땅 밑으로 푹 꺼지듯 하강했다.

* * *

끼리릭!

이따금 선로를 할퀴는 바퀴 소리.

휘이이!

위로는 쏜살같은 바람의 할큄 소리.

그리고 가끔,

쿠쿵!

하고 격하게 흔들리는 차체.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선로이기에…!

광차 바깥으로 펼쳐진 시야는 푹 꺼지고 솟아나길 반복하고 있다.

이쯤 되면 선로의 생김새보다,

그런 선로를 도대체 어떻게 건설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쿠쿵!

쿠쿵!

“악!”

“으악!”

연달아 흔들린 차체에 덩달아 튀어나오는 몇몇 신음.

바돈은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푹 숙여 숨죽이고 있었고, 시트리에는 이미 정신 줄을 놓은 듯 전신이 퍼덕였다.

벨리타인은,

“예에에에!”

광소를 퍼부으며 즐기고 있다.

제이는 의외로 이쪽에 약한 듯 바돈과 같이 고개를 숙인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론은,

“허! 으…! 어!”

어떤 장난감처럼 달라진 높낮이에 따라 여러 가지 반응을 쏟아냈다.

이런 그들의 반응 모두를 아우른 나는,

그들의 안전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 담담히 고개를 돌려 앞을 주시했다.

솔직히,

흥미롭고 재밌었다.

시몬 바스티유에 있었을 적,

큰 건을 수행하는 와중에 느꼈던 감정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느낌.

결정적으로,

맥레인의 주먹은 이것보다 훨씬 빨랐거든.

“자, 지랄의 굽이길이 모두 끝났습니다.”

팍스의 말을 끝으로 격했던 광차의 움직임이 뚝 그쳤다.

쭉 펼쳐진 평평한 선로,

그 위로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광차.

“오른쪽을 보십시오, 저곳이 바로 벨두두 갱도의 1 심부입니다.”

팍스는 오른편을 가리키며 자랑하듯 외쳤다.

그런 그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면,

“아.”

감탄이 절로 나온다.

깎인 산의 속.

그 안의 결정들이 만들어낸 밤하늘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맞이하는 하루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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