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284화 (284/365)

284화. 갱도

마치 세상을 거꾸로 뒤집은 듯 밑을 향해 솟구쳐 내려온 돌덩어리들.

그 돌덩이 사이사이엔 형형색색의 결정들이 촘촘히 박혀 제 색을 반짝인다.

아래로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호수가 거울처럼 잔잔하고,

사방에선 치열히 작업하는 곡괭이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이제 광차의 속도는 선로에 새겨진 흠까지 느껴질 정도로 느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느려진 속도만큼,

뿌연 어둠에 잠겨 있던 지하의 풍경은 점점 더 선명해져만 갔다.

이 깊은 지하에 건설된 갱도는,

정말 또 하나의 세상, 그 세상을 이루는 일개 도시처럼 보였다.

단지 지붕과 바닥의 개념이 뒤바뀌었다는 것만 받아들인다면 말이지.

이윽고 한 차례 완만한 내리막을 끝으로,

끼이익.

광차는 약간의 비명과 불똥을 남기며 멈춰 섰다.

“여기서부터는 직접 걸어가셔야 합니다.”

팍스는 광차 앞에 달린 여러 손잡이를 바삐 조작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군데군데 있을 작은 샛길들에 시선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무조건 가장 큰길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짧고 뭉툭한 손가락으로 저 너머 어둠을 가리킨 팍스는 잠시 입술을 움찔거리다가,

“부디 몸 조심히 가십쇼.”

투박한 손 인사를 던지고는 광차를 몰아 되돌아갔다.

우리는 그 광차의 요란한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저 제자리에 서서 멀뚱멀뚱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직전까지 광차의 반동을 온몸으로 받아냈던 터라,

아직도 머리가 어질어질했거든.

특히 바돈과 시트리에의 상태가 좋지 않아 그들이 회복될 때까지 론과 함께 미리 앞에 있는 길목을 점검했다.

“최근까지 이 길을 이용했던 흔적이 있군요.”

쭈그려 앉아 바닥 일부를 살펴보던 론이 담담한 톤으로 추리를 시작했다.

그런 그의 추리를 들으며 좀 더 앞으로 나아간 나는 품고 있던 예민한 감각을 쏟아 인지력을 펼쳤다.

난쟁이 팍스의 말대로 수많은 샛길이 느껴진다.

귓가에 스치는 수십 갈래의 복잡한 바람 소리가 그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 바람 소리에 걸쳐져 있는 무언가의 들숨 날숨까지도.

“바돈, 괜찮습니까?”

“예, 걱정 끼쳐 죄송합니다.”

“그럼 슬슬 출발합시다.”

내 말을 신호로 그들은 내 뒤를 바짝 따랐다.

앞은 나와 론이,

그리고 최후방은 제이가 나눠 분담해 일렬로 걷기를 몇 분.

그나마 서늘한 잿빛이라도 볼 수 있었던 주위는 어느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으로 뒤덮여 있었다.

동공의 적응 한계를 넘어선 그 어둠에 그 누구도 섣불리 이동할 수 없는 상황.

이때 행렬 중앙에서 떨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기…,”

시트리에,

그녀의 목소리다.

“말씀만 하신다면 제가 빛을 밝힐 수 있거든요.”

그 말에 마찬가지로 잔뜩 경직된 듯한 바돈의 목소리가 뛰쳐 나왔다.

“그… 그럼 얼른 빛을…!”

이에 론이 다그치듯 외친다.

“안 됩니다!”

그러자 순간 주위엔 당황스러운 숨소리만이 교차 되었다.

이러한 숨소리의 재질을 파악한 나는,

“진정하십시오, 모두.”

침착한 목소리로 그들 모두에게 말했다.

이런 내 목소리에 바돈은 크게 진정이 된 듯, 그 숨소리에 일순간 차분함이 깃들기 시작했다.

이어 론이 말을 잇는다.

“빛에 무언가가 꼬여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 맨 뒤에 있던 제이가 거기에 반문을 제시했다.

“이 정도 어둠이라면 토착들의 시각은 대부분 퇴화했을 겁니다.”

하지만 론은 그러한 반론을 아주 손쉽게 받아쳤다.

“그 사라진 시각만큼이나 다른 감각이 더 예민하겠지요, 그러니 빛은 더 위험합니다. 이곳엔 어울리지 않는 열기를 발산하니까요.”

론의 의견에 이번엔 벨리타인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의견을 내놓았다.

“나한테 톨레일 럼이 있는데…,”

당황한 바돈의 목소리가 툭 튀어나온다.

“갑자기 술 얘기는 왜…?!”

“이 럼은 모난 바람에 스치기만 해도 불이 붙을 정도로 독하거든요, 내게 분무기가 있으니 어떻게든 살포식으로 불 질러 진행하면…,”

“내가 들어 본 것 중 가장 미친 발상이로군!”

질색하는 바돈의 목소리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헛웃음이 뒤따라 나왔다.

이렇게 가다간,

깊이를 알 수 없는 지지부진에 빠질 테니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진행이냐,

아니면 숙고냐.

내 선택은,

“시트리에, 빛을 밝히십시오. 가장 중요한 건 정확한 방향이니까.”

진행이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트리에가 있는 방향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곧,

위잉, 위잉, 위잉.

뭔가 돌아가는 듯한 느낌의 소리가 이어졌고.

얼마 안 가.

확!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시트리에,

그녀는 전구 달린 모자를 쓴 채 자신의 허리에 매달린 둥근 손잡이를 있는 힘껏 돌리고 있었다.

“이… 이걸 돌리면 허리에 있는 상자에 든 먹구름 조각이 펌프질 되서…, 그러니까 전구 안 마른벼락을 품게 되거든요.”

뭐, 죽어가는 불씨에 바람을 넣는 그런 개념이라는 거겠지.

위잉, 위잉, 위잉.

겁을 먹은 듯 계속 손잡이를 돌리던 시트리에에게 나는 손을 뻗어 제지했다.

“그쯤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주 밝고 좋아요.”

위잉.

“정말요…?!”

“예.”

위잉.

“네…!”

그제야 손잡이 돌리는 것을 멈춘 시트리에는 머리 위에 번쩍거리며 맺힌 벼락 빛을 올려다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 공! 그러니까….”

맨 뒤에 있던 제이가 마른 침을 삼키며 나를 불렀다.

그제야 시트리에에게서 시선을 뗀 나는 주위에 만연한 이질적인 기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슬쩍 눈알을 굴려 옆을 살피면…,

뭔가가 있다.

그것도 수두룩하게.

둥근 벽과 천장에 매달린 그것들은 매우 많은 다리를 갖고 있었다.

재질 역시 반들반들한 게,

흔히 보던 절지류들이 거대화된 것 같은 모습.

무수한 다리 중 몇 개만을 휘적거리는 그 행위 속에서 소리 따윈 들리지 않았다.

태생적으로 타고난 암살자라는 뜻이겠지.

애초에 괴물의 부류였다면 저렇게 간을 보는 행위 따윈 하지 않았을 거다.

아주 짧은 시간,

모든 상황을 파악한 나는 조용히 나만을 바라보는 행렬 중앙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눈치 빠른 바돈이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턱을 들었으나,

그에 대고 얼른 고개를 가로젓자 바돈은 마른 침을 삼키며 들어 올린 턱을 내려놓았다.

큰 소리도 필요 없다.

그냥 경각을 전달하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니까 신호를 위한 샘 역시,

“뛰어.”

필요 없다.

짧은 말과 함께, 정말 충실히 앞만 본 채 우르르 달리기 시작하는 다섯 사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들려오는,

끄르르르르르르륵.

끼이이익.

즈르르르르.

비벼지는 갑각 따위의 매끄럽고 지끈거리는 소리.

“으아아아아!”

거한 비명을 지르며 앞만 보고 달리는 시트리에의 위로,

가시 달린 관절부 하나가 쏟아진다.

선봉을 유지하던 나는 곧장 뒤돎과 동시에 그 반동으로 꺼낸 검을 앞으로 쏟아내듯 휘둘렀다.

팍!

검의 궤적 모양으로 뛰쳐나간 바람결은 그대로 쏟아지던 관절부를 도려내었다.

끼익!

그제야 우리에게도 공격 수단이 있단 걸 알아차린 포식자들은 두서없는 공격들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쿵! 쿵!

하며 바닥에 꽂히기 시작하는 가시.

그리고 그 틈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나와 제이는 몇 번의 시선을 주고받으며 쏟아지는 관절을 베고 길을 열었다.

위력이 강한 공격은 이 환경 자체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절제로 점철된 공격을 거듭해 헤쳐나가야만 한다.

앞을 맡겼던 론 역시 어느새 단검과 머스캣을 든 채 가로막는 관절들을 손쉽게 쳐내고 있었다.

“공! 뒷길이 함몰되어도 괜찮습니까?!”

제이의 다급한 외침에 나는 대답 대신 의문을 담은 표정으로 답하였다.

“그러니까 외교적 문제로 번질까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냥 뭘 하고 싶은 건지 말씀하세요!”

내 외침에 론은 말없이 자신의 아밍 소드를 치켜들어 보였다.

인챈트.

그 힘을 한바탕 풀어 지금의 양상을 완전히 바꿔버리겠단 건가?

그 역시 처한 환경에 대한 파악 정도는 했을 것이다.

말인즉,

그가 가진 인챈트는 내가 가진 것에 비하면 환경을 변화시킬 걱정이 적다는 뜻이겠지.

찰나의 시간 아래 내놓은 결론,

그것을 고개의 끄덕임으로 표출하자.

격하게 달려가던 제이는 발하나를 축 삼아 그대로 몸을 빙그르르 돌렸다.

* * *

[9년, 페록스칼러]

어느 겨울을 일그러트린 세상의 열기.

추억, 이틀간의 그을음.

내가 가진 인챈트는 과거,

한겨울에 일어난 휴화산의 변덕.

그러한 변덕 가운데서도 내가 지금 꺼내고자 하는 것은,

해당 재해의 첫 번째 기록.

‘이틀간 세상 일부를 구겼던 지열의 발현.’

벌써 아밍 소드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나는 손목을 한 바퀴 돌려 검을 거꾸로 잡은 뒤 그대로 바닥에 꽂아 넣었다.

검날의 재질과는 상관없이,

뜨겁게 달궈진 날은 빵을 가르듯 땅속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주위 바닥에서 붉음을 품은 채 갈라진 바닥은,

이어 벽,

그리고 천장에 이르러 주위 모든 풍경을 아지랑이라는 이름으로 일그러트렸다.

무너지는 모래알갱이처럼,

부산스럽게 몰려오던 그것들은 열기가 요구하는 모양대로 일그러지며 추락했다.

이어 동굴의 붕괴를 걱정해 얼른 검을 뽑아 든 나는,

순간 몸 안에 가득 찬 열기를 내뱉기 위해 입을 벌렸다.

“허헉!”

입가를 타고 굉장한 기세로 뿜어져 나오는 증기.

그리 나쁘진 않은 결과다.

아니,

오히려 결과론적으로 봤을 땐 정말 좋은 기회였어.

자신의 인챈트를 드러내는 것만큼,

같은 인챈트를 가진 자의 경계를 허물게 하는 일은 없으니까.

그렇게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 뒤를 돌자,

어디로.

다들 어디로 간 거지?

모두 홀연히 사라지고 없다.

* * *

“론?”

“저와 같은 샛길로 미끄러지셨군요, 공.”

내 부름에 어둠 속에서 들려온 대답.

“이거 생각만 해도 환공포증이 일 정도로, 샛길이 촘촘히 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 론은 허탈함을 토로했다.

그리고 그의 그 허탈함에 나는 공감을 보태야만 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제이를 뒤로 한 채 큰길을 따라가던 도중, 시트리에가 크게 휘청거리며 넘어졌었지.

그러면서 그녀 머리 위에 있던 빛이 일순간 바닥으로 꺼졌고,

그 상태에서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발을 디뎌가며 이동하는 와중…,

이렇게 함정에 가까운 샛길로 빠져버렸다.

“후…, 다들 무사할까요?”

직전까지 뛰었던 터라 아직 거친 숨을 물고 있던 론이 내게 물었다.

“무사할 겁니다, 적어도 그 절지류에게선.”

“이거 함부로 이동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괜히 더 깊숙한 곳으로 빠질 수도 있으니까요.”

일단,

서로의 위치를 추정이라도 해 보자.

“바돈! 시트리에! 벨리타인! 다들 무사하십니까!”

큰 목소리로 외치자 어둠 속에 있던 론도,

“모두! 제 목소리 들립니까!”

뒤이어 목청껏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러면,

…,

…,

…,

“들려요!”

“무사한…,”

“들려…,”

“겁니…,”

“저…,”

“들…,”

온갖 샛길을 통해 쪼개져 들어온 메아리가 뒤늦게 우리에게 들려왔다.

추정은커녕 되려 움직일 엄두조차 나질 않는군.

“이제 와 하는 말인데, 파견대라는 거 정말 힘들군요.”

어둠 속에 있을 론에게 토로하듯 말하자,

그는 잔잔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제게 부싯돌이 있는데, 이거 함부로 키기 겁납니다. 또 뭐가 보일 것 같아서…,”

“그래도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으면 다행이죠, 괴물이었다면 이 상태 그대로 공격당했을 겁니다.”

내 대답에 론은 역시나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죠, 그랬지요…, 하,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의 말에 뭐라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는 와중,

이마 위쪽으로 간질간질함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감각적인 쪽으로 느껴지는 간질거림이었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 보면,

그제야 론에게 들려줄 대답이 떠올랐다.

“아마도 곧 이 갱도 자체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위로 막,

작은 톱니로 만들어진 거미 한 마리가 빛나는 실 하나를 내뿜으며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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