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화. 메트로폴리아 (3)
“켓 데니즈 놈들이 이곳까지 온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잘못된 정보인 거 아냐?”
“그럴 리가, 탑의 갈까마귀를 뭐로 보고.”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채 주위를 둘러보던 두 장정이 저 너머 펼쳐져 있는 새벽을 바라보았다.
“오히려 정보대로 놈들이 메트로폴리아로 향했다면, 이쯤에서 흔적이 끊기는 게 당연한 거야.”
한 장정의 말에 나란히 서 있던 다른 장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곳이 그 정도로 골치 아픈 장소란 거야?”
“너, 그러고 보니 이런 ‘순례’는 처음이지?”
한껏 여유로운 목소리로 되묻는 장정에,
나란히 선 이는 시인하듯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맞아.”
“네가 어디서 왔다고 했지?”
“고립의 탑.”
“말 그대로 고립된 장소에서 늘 정해진 순례만 경험해 봤겠네.”
이쪽으론 한참 선배인 듯 보이는 장정은 친절함을 곁들어 설명을 계속해 주었다.
“우리 ‘선명의 탑’의 순례자들은 그 규모에 걸맞게 순례의 범위 역시 엄청나게 거대해. 저기 보이는 메트로폴리아까지 포함될 정도로.”
쭉 뻗은 손으로 저 너머 하늘에 펼쳐진 새벽을 아우르듯 가리키는 그 모습에,
어리숙한 장정은 그저 신기하다는 듯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이며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용케 살아남았네? 고립의 탑에서 말이야.”
이어지는 질문에 한 폭의 새벽을 넋 놓고 구경하던 장정이 퍼뜩 놀라며 대답했다.
“그러니 이쪽으로 편입될 수 있었던 거겠지.”
그 안엔 아직 씻겨 내려가지 못한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그때 나는 다른 순례에 투신하고 있었던 터라 참전하지 못했지만, 꽤 치열했다지?”
“맞아, 나도 말로만 들었지 탑과 탑…, 마법사와 마법사 사이에서 이뤄지는 전투는 처음 겪는 것이었어.”
방금 보였던 어리숙함은 어디 가고,
꽤 묵직한 침묵을 머금은 채 고개를 숙인 장정은 끝내 답답한 기분이 들었는지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까슬까슬한 검은 머리,
은색 눈동자.
그리고 양쪽 귀에 수놓은 듯 박힌 장신구들.
“다른 탑의 빙의자들이 물밀 듯이 밀려 들어와 탑 안에 건설된 이상을 무너트리는 그 상황은…, 정말 미친 것이었지.”
그는 아직 생생한 기억을 떠올리며 절절한 눈빛으로 그때를 회상했다.
탑,
탑은 용의 시대 이후 현자의 강제로 인해 위축된 마법사의 현 위상의 증표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위상이 탑이란 모양으로 축소되었다곤 하나,
절대적인 위상의 내용은 바뀐 것이 아니었기에.
마법사들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이상을 탑 안에 구축해 놓았다.
그러니까 탑은,
탑의 주인이 자신의 이상을 재료 삼아 건설한 또 하나의 세상인 것이다.
자연의 원소 개념에 작위를 집어넣을 수 있었던 마법사들에게 이상의 구축은 단지 방향이 살짝 다른 계산에 불과했을 정도로 간단한 일.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을,
바깥세상으로부터 도망친 자들이 끝도 없이 찾아왔다.
마법사들은 그들 가운데 몇몇을 선별해 자신의 의식을 담을 그릇으로 정했고,
그런 그들을 통해 본인은 접할 수 없는 바깥세상의 단편들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매개자를 바로 ‘빙의자’라 부른다.
그리고,
몇몇 마법사들은 이 빙의자들을 통해 다른 탑의 붕괴를 꾀하기 시작했다.
탑과 탑, 마법사와 마법사 사이의 전쟁.
그것은 어떤 화려하고 충격적인 마법들의 향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지금 시대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현자와 마법사들 사이에서 강제적으로 체결된 협약이 그 정도로 허술할 리도 없다.
그러니 방법은 하나.
자신이 건설한 이상 아래 모인 자들을 빙의자로 삼아 그들을 이끌어 다른 탑의 세상을 무너트리는 것.
해서 얻게 되는 건,
탑 하나만큼의 공간과.
그 공간으로부터 나올 자신의 무궁무진한 이상의 발현.
고립의 탑,
그 주인을 위해 일해왔던 순례자 ‘젤란’은 탑 내로 쳐들어오는 수백의 빙의자를 막기 위해 죽도록 싸웠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막는 데 실패했고, 그 결과 고립의 탑 안의 세상은 어떤 질서도 남지 않은 채 파괴되었다.
탑 안의 세상은 엄밀히 말하면 탑의 주인이 자신의 상상을 얇게 펼쳐 놓은 것과 같다.
그러니 탑 안의 세상이 무너져 내린다면 그것은 탑의 주인인 마법사의 상상이 죽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고립의 탑은 무너졌고,
그 주인도 무너졌다.
순례자인 젤란은 한순간에 자신의 믿음을 잃었다.
그런 젤란에게,
고립의 탑을 무너트린 선명의 탑이 손을 내밀었다.
그저 믿음이 절실했던 젤란은 그 손을 잡았고, 그렇게 지금 선명의 탑을 위해 일하는 순례자가 되었다.
…,
…,
여러 비명, 불길.
그리고 혼란과 절망이 고스란히 담긴 몇 장면이 스치고 나서야 젤란은 회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슬슬 본대와 합류하자고.”
그런 젤란을 기다렸다는 듯, 옆에 서 있던 장정은 심드렁한 말과 함께 몸을 돌렸다.
“선명의 탑은 순례를 어떻게 진행하지?”
뒤돌아 걸어가는 이에게 젤란은 물었다.
그러자 걸음을 멈춘 이는 슬쩍 고개를 돌려, 후드 속 살짝 삐져나온 입술을 벌린다.
“다 죽인다, 방해되는 부분이 있다면.”
* * *
화려한 조명,
그 아래 낡고 녹슨 간판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개중엔 복잡한 톱니장치로 움직이는 것도 있었는데, 대부분이 부식되어 처참하길 넘어서 애잔해 보일 정도였다.
끼익,
끼이익.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퉁명스러운 오르골 소리.
딸랑딸랑,
여기서 그치지 않고 어떤 간판에 달린 거대한 소라에선 열화된 노래가 튀어나오기까지 한다.
베니기어, 베니기어.
달콤달콤해.
베니기어, 베니기어.
새콤새콤해.
모든 함량 두우 배.
아이 행복도 두우 배.
그래도 가격은 그대로.
그래도 안 사주면 아동 학대.
…,
딱 들어도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노래다.
뒤따르던 제이와 론도 눈썹을 찌푸리며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은 표정을 짓는다.
시트리에는…,
간판에 달린 톱니에 정신이 팔려 귀가 닫혀 있는 것 같고.
벨리타인은 왜인지 흡족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베니기어란 게 뭔데?
하고 노래에 이끌리듯 고개를 돌려보면, 성벽처럼 두터운 문으로 굳게 달린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유리로 되어있는 외벽 너머엔,
형형색색의 짐승 모양 젤리가 가득 차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그 어떤 변색도 이뤄지지 않은, 윤택하기 짝이 없는 그 젤리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뭐가 함량 되어있길래?
뭐가 두 배인 건데?
홀린 듯 젤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나를 보니 조금은 놀랐다.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론이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베니기어 본사입니다, 일전에 베니기어와 관련해 사건 하나를 접한 기억이 있지요.”
“그게 뭡니까?”
“부유한 집의 아이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이의 혀는 잘근잘근 씹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지요.”
“그래서요?”
“알고 보니,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아이가 환상의 베니기어 젤리를 먹어야겠다 노래를 불렀다 합니다. 오래전 단종된 베니기어 젤리를 지금 시점에서 구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지만.., 부유한 집이었기에 어떻게 구하는 데 성공했나 봅니다.”
“해서, 그 젤리를 먹었을 뿐인데 그런 끔찍한 모습으로 사망했단 겁니까?”
내 물음에 론은 그때 기억이 떠오른 듯 께름칙한 표정으로 베니기어 본사 쪽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하필이면 아이에게 사준 젤리가 베니기어에서 나온 제품 중 하나인 ‘릴구아츄’였습니다. 먹으면 며칠 동안 혀에서 젤리 같은 재질과 맛을 느낄 수 있는 괴악한 젤리지요.”
“허…,”
“아이는 참지 못하고 본인의 혀를 씹어 먹었고…, 그렇게 죽은 겁니다.”
어찌 보면 메트로폴리아의 단편 하나를 본 셈인데.
시작부터 만만치 않구나.
론은 좀 더 재미난 이야기로 노선을 바꾼 듯 본격적인 표정으로 내게 설명을 이었다.
“그거 아십니까? 베니기어의 환상적인 맛의 레시피를 얻기 위해, 수많은 파견대가 저 기업을 노렸습니다.”
“그런데 외부의 침입 흔적은 보이지 않는데요.”
“맞습니다, 그 문을 여는 것조차 실패했지요.”
우리 이야기를 뒤에서 바짝 쫓아 듣고 있던 시트리에가 불쑥 끼어들었다.
“저 건물은 ‘벌락’ 양식으로 지어졌어요, 희대의 천재 난쟁이로부터 고안된 건축 방식이죠. 건축물 전체에 걸쳐 하나의 퍼즐 같은 보안이 내포되어 있어 그것을 풀지 않는 이상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요.”
“무너트리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요.”
이어지는 내 질문에 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메트로폴리아의 모든 건물은 수많은 보험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즉 외부 요인으로 인한 붕괴를 막기 위해 여러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소리지요.”
그 론의 말을 시트리에가 넙죽 받아친다.
“물리적으로 강행하다간 메트로폴리아 전역에 걸쳐 있는 보안 체계가 반응할 거예요. 가장 간단한 예를 들자면, 거대한 선박 하나 분량 만큼의 화약 병기가 사방에서 휘몰아친다던가…,”
여간 미친 곳이 아니로군.
“그렇담 적어도 이 너머에 있을 미로란 곳은 그런 부분의 걱정 따윈 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이어지는 내 물음에 멀찍이 걷고 있던 벨리타인이 작게 읊조렸다.
“그런 복잡한 체계들이 곱게 갈려서 뿌려진 곳이 바로 미로죠,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무거나 한 것처럼 취급받는…,”
끝으로 제이가 내 얼빠진 표정을 보며 괜히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이 당시의 광기는…, 단지 설명만으론 전부 설명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 * *
거대한 길을 따라 이동하길 대략 한 시간.
건물로 이루어진 숲을 끝도 없이 헤집으며 다다른 곳은,
가위로 자른 듯 뚝 끊긴 길 너머로 펼쳐진…,
사막.
정확히 말하자면 혼잡했던 문명 하나를 분쇄해 흩뿌려놓은 것 같았다.
잔해들로 구성된 드넓은 사막은 곳곳에 산등성이가 보일 정도로 험준하기 짝이 없었으며,
와중에 몇몇 톱니장치가 스스로 날뛰듯 움직이며 기괴함을 더했다.
일전에 만났던 기업 메킨토의 영업사원, 아소에게 받은 지도를 펼쳐 보아도…,
도통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난잡한 그 더미 앞에서.
우리는 한 꺼풀 꺾인 듯 뒷걸음질 쳐 좀 더 확실한 계획을 재고하기로 했다.
미로에서 길을 찾기 위한 확실한 근거를 비롯해,
앞서 해결해야 할 약속도 있고 말이야.
“마침 들른 김에 그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도 나쁘진 않은 거 같습니다.”
뒤돌아 두 블록을 건너간 길목.
그 앞에서 론이 나를 부르며 한 건물을 가리켰다.
[메킨토]
이제 나는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좀 더 바탕을 명확히 칠해놓고 갑시다.”
그럼 그들은 군말 없이 내 제안을 받아들였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문이 활짝 열린 기업 메킨토를 향했다.
[하루에 길 잃는 사람만 4,500명.]
[그중에 길바닥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431명.]
[어디서요? 바로 이 메트로폴리아에서요!]
[이러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저희 메킨토가 나섰습니다!]
[물론 돈이 없어 굶는 것은 예외입니다.]
웅장하기 짝이 없는 홀,
그 위로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는 당차기 짝이 없는 회사의 포부.
수많은 파견대의 임시 거처 및 경유지가 되었던 듯, 난잡하게 어질러진 곳곳에 느껴지는 보금자리의 흔적.
그리고,
곳곳에 보이는 자리에 앉은 자세 그대로 풍화된 듯 보이는 백골들.
제법 소름 끼치는 풍경의 연속이었지만,
메킨토가 메트로폴리아의 안내 전반을 도맡아 사업하던 기업인 걸 생각하면 대번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얻게 될 모든 자료는 앞으로 나아갈 이정표가 되어줄 테니까.
“2개 조로 흩어진 뒤 모여서 정보를 취합하는 걸로 합시다.”
내 말을 끝으로 우린 어떤 동굴을 탐험하듯,
아니면 빽빽한 숲으로 가려진 산을 등정하듯.
거대한 건물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