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291화 (291/365)

291화. 메트로폴리아 (5)

9월 1일.

내 이름은 오티스 카롤.

오티스 카롤이다.

뜬금없이 내 이름을 이렇게 되뇌어 적어보는 이유는,

혹시라도 내게 무슨 일이 생길 것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나는 메킨토의 영업부에서 일하고 있으며 주로 하는 업무는 외부 홍보 및 현장판매 쪽이다.

메트로폴리아는 필립스 산 정도의 높이, 그러니까 대충 40층 이상에 속하는 고층 건물만 총 2만 채 정도가 있다.

이곳은 난쟁이들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 말은 각 건물의 한 층마다 웬만한 도시 하나 정도의 규모가 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40층 이상 되는 메트로폴리아의 마천루들은,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제국이나 진배없다는 소리다.

빌어먹을 난쟁이들,

누구보다 작은 존재면서 그 손으로 빚어내는 것들은 세상 어떤 것보다 거대한…,

괴짜 같은 족속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왜 두서없이 이런 걸 끄적거리느냐면…,

나는 지금 상부의 지시에 따라 위층으로 향하고 있다.

나를 포함한 영업부에 속한 인원 전부가.

마치 도축장에 끌려가는 짐승처럼 24인승짜리 마차에 올라타 다음 층으로 향하는 긴 도로를 달리고 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보면 앞뒤로 같은 마차 수십 대가 기계처럼 나란히 달리고 있다.

바로 뒤에 있는 마차에 내 동료 마틴이 탔는데,

녀석도 나와 같이 겁에 질린 표정일까 궁금하다.

아, 뭔갈 더 적어 지금 느끼는 초조함을 덜고 싶은데.

막상 뭘 적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 각설하고 다시 적는다.

내 이름은 오티스 카롤이다.

나는 메킨토의 영업부에서 일하고 있으며 주로 하는 업무는 외부 홍보 및 현장판매 쪽이다.

오늘은 영업부 전체가 위층으로 소환되는 날이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문으로는 부서의 대대적인 혁신을 꾀하기 위함이라고 들었다.

지금 시점에서 그 혁신이란 단어는,

나와 같은…,

아니 나를 포함한 영업부 사원 모두가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보름 전쯤인가,

‘논스리스’라는 기업이 직원 전원의 잠을 거세시켰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건 기업적 시점에서 봤을 때 획기적인 혁신에 해당하는 사건이었다.

메킨토는,

영업부에 어떤 혁신을 일으키려고 그런 것일까?

우리를 어떻게 하려고?

그래서 내 이름을, 이 기업 내에 나의 위치를 계속 상기시키는 것이다.

혹시라도 그 혁신이라는 것 때문에,

자신의 이름마저 잃어버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아, 지금 막 마차가 다음 층으로 향하는 굽이진 오르막을 올랐다.

* * *

9월 3일.

새로 태어난 기분입니다!

저는 오늘도 내일도, 현장에서 고객님들을 위해 헌신할 겁니다!

그게 제가 태어난 이유니까요!

9월 4일.

오늘 만난 고객님이 무려 내게 영업 평가를 해주셨다.

세상에!

5점 만점인 친절 점수에 만점을 주셨다!

메킨토, 보이십니까?

저는 완벽한 영업사원입니다!

9월 5일.

나는 형편없는 새끼다.

오늘 만난 고객님은 매우 어리셨지만, 그 누구보다 깐깐한 분이셨다.

내 옷을 벗기고, 엎드려 절까지 시키셨지만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하신 듯 보였다.

결국, 그분은 내 영업 평가에 1점을 주셨다.

할 수만 있다면 고객님께 심장이라도 떼어드려 높은 점수를 받고 싶었는데.

메킨토,

나를 미워하지 마세요.

저는 완벽한 영업사원이 되는 게 꿈이라고요.

9월 9일.

메킨토!

제 임신한 아내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 아이는 커서 훌륭한 메킨토의 영업사원이 될 거에요!

친절 점수 5점을 밥 먹듯이 받아내는, 그런 최고의 영업사원이!

* * *

점점 참담해지는 뒷이야기를 차마 읽을 자신이 없어,

그래서 표지를 덮었다.

이런 내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시트리에는 우울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정황상,

메킨토의 영업부 전원은 혁신이라는 이름의 세뇌 비슷한 무언가를 당한 것으로 보여.

말 그대로 주어진 직무가 삶의 목표가 된 것처럼.

기업 메킨토는 무조건적 친절만을 베푸는 기계를 만들고 싶어 했던 걸까?

자아라는 것이 완벽히 거세된 채 설정된 대로 움직이는 기계를 말이야.

게다가 지금까지 읽은 내용의 정황상.

세뇌 비슷한 것은 다음 세대까지 영향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 메트로폴리아 바깥에서 만났던 그 아소라는 자도…,

지독하군.

“정말 지독하군요.”

뒤늦게 내뱉은 짧은 감상에,

시트리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아는 것을 담담히 늘어놓기 시작했다.

“용의 시대 이후에 접어들면서 그 저주라는 모호한 개념 역시 어떤 확실한 실체로 나타났거든요.”

“당시 메트로폴리아의 기업들에겐 역으로 축복처럼 느껴졌겠군요.”

“그렇죠.”

시트리에는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보듯 멍한 눈으로 한참을 생각하다가,

끝내 머릿속에서 찾은 것들을 내게 나열했다.

“대학에 다녔을 당시 비록 본과는 아니었지만.., 저주에 대해 조금 배운 적이 있거든요. 오늘날 대부분의 저주는 귀 큰 자들에 의해 만들어져요.”

“저주가 귀 큰 자들의 주류 기술 따위로 부상했다면, 그 기원 역시 귀 큰 자들로부터 시작됐겠군요.”

“네, 메킨토의 영업부 전체에게 건 그 저주에 가까운 세뇌 역시 아마 귀 큰 자들이 만들어냈을 거예요. 그리고 보아하니 저주의 강력한 매개는 아마 영업사원의 평가표일 거고요.”

그래서 매겨지는 점수에 그리도 맹목적이었던 건가.

고객이라 불리는 그들의 가벼운 감흥 하나만으로도 극심한 좌절을 맛봐야 했던 이곳의 영업사원들은,

그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야.

아소, 당신은?

“시트리에.”

“네?”

“메킨토는 확실히 메트로폴리아의 지리적 정보를 얻기에 좋은 곳입니다.”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저 메트로폴리아에서 만들어지는 흔하디흔한 필연 중 하나일까.

하필 메트로폴리아의 소개 및 안내를 주업으로 삼던 기업이, 하필 그 기업이 남긴 악습으로 인해 대를 잇게 된 당사의 영업사원이.

작금의 메트로폴리아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니.

누군가 작위적으로 만들어놓은 놀이판 같다.

타히그의 소설, ‘블레막’처럼.

하지만 이곳은 누군가의 작위가 들어간 어떤 한정된 공간 따위가 아니다.

현실이기에,

아이러니한 모양으로 비벼지고 소용돌이쳐진 과거로부터 만들어진 지금이기에.

지금에서야 당연해진 인정을 베푸는 게 마땅한 일이다.

“아소라는 인물이 아니었다면, 우린 어쩌면 덜컥 미로에 발을 들인 채 한참을 헤맸을지도 모릅니다.”

내 의중을 간파했는지, 시트리에는 싱그러운 웃음을 자아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에게 걸린 그 연결고리만큼은 부숴야겠습니다.”

이러한 내 말에 그녀는 망설임 없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께서 그렇게 하시겠다 하시면 그렇게 될 뿐입니다. 저희는 그저 뒤따를 뿐입니다.”

* * *

론과 벨리타인은 무언가에 쫓기듯 미친 듯이 달아나고 있었다.

그 둘의 뒤를 자처해 따라 뛰고 있던 제이는,

지친 기색 없는 얼굴로 뒤돌아 재빠르게 후방을 훑었다.

“제이! 아직도 따라오고 있습니까?!”

차오르는 숨을 겨우 참은 채 묻는 론에게, 제이는 담담히 즉답했다.

“그냥 뛰십쇼.”

“제기랄!”

작게 외친 론은 그러면서 자신의 옆에서 나란히 뛰고 있는 벨리타인을 바라보았다.

얼굴은 젊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모조리 중년의 것인 그녀는 제이와 마찬가지로 지친 기색이 없어 보였다.

“나만 힘든 거야?!”

거기에 뭔가 불합리함을 느낀 듯 론은 이를 꽉 깨문 채 더욱 힘주어 뛰었다.

“론, 벨리타인. 앞쪽은 안전한 것 같으니 계속해서 뛰십시오. 뒤는 제가 처리하고 가겠습니다.”

직후 들려오는 제이의 말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 론이 헐레벌떡 뒤돌아 물었다.

“혼자서 가능하겠습니까?!”

그럼 묵묵히 뛰고 있던 벨리타인이 다가와 그의 머리통을 앞으로 쑥 밀어버린다.

“그냥 달려!”

그렇게 쏜살처럼 앞을 향해 나아가는 둘을 뒤로 한 채.

제이는 달리기를 멈추고 그 자리서 유려한 움직임으로 뒤돌아 검을 뽑았다.

그의 인챈트는 틀림없이 막강한 것.

그러나 발휘하는 힘의 종류가 피아식별이 불가한 것이기에 저 둘의 부제가 아니면 맘 놓고 쓸 수 없다.

제이는 이제 자신의 예민한 감각을 최대로 펼쳤다.

이내 촘촘한 그물처럼 펼쳐진 감각의 범위 안으로 어떤 무리가 들이닥친다.

“이렇게 빨리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제이는 살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공과 함께 있을 때 나타나 줬으면 좋았을 것을!”

이어 짧게 본심을 고백한 제이의 검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어찌나 강한 열기인지 검은 곧 주위 반경을 밝힐 정도로 빛났다.

그리고 그렇게 밝혀진 공간 안으로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어떤 무리.

신경질적인 근육의 모습을 그대로 박제한 듯,

건조하고 창백한 피부.

듬성듬성 빠진 머리카락 아래 뿌옇게 질린 눈동자.

기괴하게 돋아난 이빨, 손톱.

그리고 몸집에 걸맞지 않은 초월적 움직임.

이들은 메트로폴리아를 찾은 어설픈 자들의 천적이자 절대적 포식자.

광증 무리였다.

0이 떨어지며 깨진 하늘,

그곳으로부터 여과 없이 쏟아진 별빛에 뇌가 녹은 자들.

별에 대한 광신을 넘어서,

직접적인 별빛으로 인해 변이되고 그 변이된 힘을 다른 움직이는 모든 것에 발산하는 존재.

제이는 검을 휘둘러 날에 들러붙어 있던 열기를 풀어헤쳤다.

의식이 있는 자라면 공간을 일그러트리는 그 열풍 앞에 주춤거리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광증 무리에게 이지적 당연함을 따지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들은 물처럼 제이가 쏟아낸 열풍을 향해 그저 쏟아지듯 달려나갈 뿐이다.

그대로 전신에 불이 붙어도, 팔과 다리가 녹기 시작해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기 시작했음에도.

그들은 괴성을 지르며 굶음을 해소하려는 짐승처럼 게걸스럽게 달려든다.

그 악착같은 모습에 직전까지 냉철을 유지하던 제이마저도 학을 떼어야만 했다.

“기업의 망령 새끼들…!”

엄밀히 말하면 광증 무리는 메트로폴리아의 생존자들이다.

좀 더 헤아리자면,

메트로폴리아의 운명을 결정지은 소수에 의한 다수의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그들에게 제이는 욕지거리 비슷한 것들을 내뱉었다.

그런데 왜일까?

제이가 쏟아낸 그 말은 왜인지 광증 무리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가 내뱉은 발언의 방향은 정해지지 않은 모호한 것에 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까지 종속된 채 지낼 셈이냐!”

제이는 타 죽어가는 광증 무리를 향해 조금은 애달픈 목소리로 외쳤다.

* * *

킁, 킁킁.

천으로 두 눈을 가린 남자가 짐승처럼 기어 다니며 냄새를 맡는다.

이윽고 고개를 쳐든 남자가 썩은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아, 냄새가 난다. 메킨토 쪽이야.”

이에 근처에 있던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이가 묻는다.

“켓 데니즈 놈들이 맞아?”

그럼 눈을 가린 이는 짐승처럼 기묘한 울음소리로 한참을 웃더니, 기쁨에 겨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런 사소한 것의 냄새가 아니야, 최상품이다. 뜨겁고 눅진하기 짝이 없는 어떤 보배의 냄새.”

그의 그 발언에,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십 장정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피어올랐다.

목표로 설정한 것 이상의 것이 포착된다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이례적인 사건에 굶주려있는 자들이다.

탑의 순례자가 다 그렇듯.

곧이어 순례자들 가운데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가 말없이 손가락을 펼쳐 한 곳을 가리켰다.

그 방향은 메킨토.

“그렇다면 가야지, 갇혀 있는 역사적 재해의 해방을 위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