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메트로폴리아 (6)
굳게 닫힌 문,
그 앞에서 청진기 비슷한 것을 꺼내 든 시트리에가 본격적인 작업을 개시했다.
기업 메킨토의 보안과로 이어지는 그 문은 마치 주괴 하나를 통짜로 뽑아 만든 듯 보는 것만으로 육중함이 체감될 정도였다.
그런 밋밋하고 투박한 금속 재질의 문 앞에서.
시트리에는 생과 사를 오가는 수술의 집도의처럼 집중과 예민함을 내뿜었다.
딱딱.
손가락으로 문을 두들겨가며 가져다 댄 청진기를 통해 문으로부터 몇 번의 감청을 마친 그녀는,
이내 청진기를 떼었다.
“이 문은 자석식 반자동으로 설계된 문이에요, 꽤 까다로운 종류의 잠금장치죠.”
진단명을 말하듯 문에 대한 설명을 잇던 그녀는 차분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품속,
무수한 주머니가 달린 조끼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소리만으로도 구분이 가능한 겁니까?”
“거대한 문일수록 장치와 장치 사이에 큰 공간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그럼 문을 두들겨 그 진동으로 공백을 가늠할 수 있고 그렇게 공백을 가늠하면 잠금장치의 형태 역시 얼추 짐작할 수 있어요.”
오,
전문 지식으로 점철된 직업인…,
순간 테리아가 생각났다.
“그거 굉장히 멋지게 들리네요.”
최대한 점잖게 감탄을 내뱉어봤지만,
표정을 감추는 데는 실패했는지, 그녀는 내 얼굴을 보며 빙긋 웃었다.
아마 내 얼굴은 적나라한 감탄을 그리고 있었나 보다.
“학생 때 교수님이 이런 얘기를 해주셨거든요.”
그녀는 다시 품을 뒤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무슨 얘기 말입니까?”
“지식이란 것은 모르기에 흥미로운 것이고 알기에 지루한 것이다.”
재밌는 말이다.
그 말의 본의는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과정에 대한 지식의 경의로 느껴져.
“아이베리아의 기사이신 공께서 검을 휘두르신다면, 저 역시 그것을 보며 마땅한 감탄을 하게 될 겁니다.”
무안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해주는 말인가.
참으로 이지적인 여인이다.
그리고 그런 이지를 드러냈을 때 비로소 본모습이 나오는 사람 같아.
“그러나 저 역시 검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 못합니다.”
내 대답에 시트리에는 기다렸다는 듯 활짝 웃으며 답했다.
“저도 공께서 하신 말씀과 비슷한 말을 교수님께 했었지요, 그랬더니 교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뭐라고요?”
“근데 또 지식이란 것은 파고들수록 모르는 것의 연속이기에 흥미로울 뿐이라고. 끝에 말한 지루함이란 건 그러한 지식의 특성을 알기에 내뱉는 부족한 자의 탄식과 투정이라고.”
곱씹을수록 맛있네,
그녀의 말은.
“아, 찾았다!”
곧이어 시트리에는 주머니가 무수히 달린 조끼 속에서 작은 원기둥 모양의 쇳조각을 찾아 꺼내 들었다.
“그게 뭡니까?”
“자석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특정 금속에만 반응하는 자석.”
앞서 이 문은 자석식 반자동으로 설계되었다고 했었지.
“그렇담 문을 여는 열쇠 비슷한 겁니까?”
“열쇠까지는 아니고 그 역할을 대신해줄 핀 정도랄까요.”
직후 그녀는 문에 댄 자석을 세세한 손놀림으로 조작하기 시작했다.
“자석식 반자동으로 설계된 문은 지정된 톱니 하나가 특정 자기력에 움직이기 시작하면 나머지가 알아서 작동되어 열리는 방식이에요.”
“그 특정 자기력이 무엇인지 어떻게 분류한단 말입니까?”
그 물음에 시트리에는 날 바라보며 씩 웃는다.
“시간이요, 우리는 지금 아주 먼 옛날에 만들어진 문을 열고 있어요. 당시에는 첨단의 점철이었겠지만 지금에 와선 정형된 하나의 규격일 뿐.”
그런 평가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 두 발 걷는 자가 몇이나 될까…?
아, 그러고 보니 파견대 구성원을 측량한 기업 디세잉의 보고서에서 시트리에를 이렇게 평가했었지.
기술적 이해에 매우 탁월.
덜컥.
무언가 걸린 낚싯대처럼.
육중한 소리와 함께 자석을 쥐고 있던 시트리에의 양팔이 우뚝 멈췄다.
이제 그녀는 방금까지 보여주었던 이지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저어…, 공. 열린 것 같은데요….”
드르르.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육중한 문 안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하는 무수한 톱니 소리.
“어… 어떻게 해요…? 우리 주…죽진 않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별안간 그녀가 집어먹은 겁에,
나도 모르게 자루 위에 손이 올라갔다.
그렇게 힘으로는 도저히 열 수 없을 것 같던 문이 짐승의 주둥이처럼 활짝 벌려졌고,
너머에 감추어져 있던 공간이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 * *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그 사실을 절절히 통감한 제이는 말없이 검을 집 안에 넣었다.
그의 주위는,
새까맣다 못해 빛조차 들어서지 못할 만큼 그을려 있다.
정확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던 광증 무리는 대부분이 그 그을림 속에서 흔적조차 없이 증발해버렸다.
그나마 형체를 유지한 것들이 있긴 했지만,
툭 건드리면 금세 가루로 흩어질 재에 불과하다.
사실 제이에게 있어 광증 무리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그 광증 무리에 대한 대처로 인해 딸려올 위험이 문제지.
혹여나 발휘한 인챈트의 힘으로 인해 메킨토의 보안 체계를 건들기라도 했다면,
일은 걷잡을 수 없는 형국으로 번졌을 것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개인이 다 막아낼 수는 없으니까.
특히나 피아식별의 개념이 없는 제이의 인챈트라면 더더욱.
하지만 사실 제이는 그러한 모든 것을 상정했음에도 인챈트를 펼쳤다.
파견대를 이끄는 이가 누구인가?
불특정 다수에게 오는 위협마저 물리칠 수 있는 존재다.
0,
그리고 베나즈의 이름을 가진 자.
차라리 방금의 싸움으로 메킨토의 보안 체계를 건드렸다면, 그래서 파견대 전체에 어떤 위협이 가해졌다면.
그러면 베나즈는 불가피하게 전력으로 검을 뽑아 들었을 것이다.
하면 제이는,
어쩌면 갱도에서 보았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디안 베나즈의 ‘본심’을 엿볼 수 있었을지도.
마치 쉬이 가늠할 수 없는 무게를 거머쥔 천칭처럼.
혼잡하게 피어오른 생각들에 정신이 팔려있던 제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임무에 집중해야 했다.
어찌 되었든,
이 파견대 임무로 말미암아 베나즈 가문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이 지금에 있어선 가장 큰 목표니까.
“론, 벨리타인, 모두 무사하십니까?”
제이는 곧장 뒤돌아 후드 자락을 휘날리며 동료를 살피기 위해 달려갔다.
* * *
차가운 재질의 공기.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나아가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거대한 공동 하나가 우릴 맞이한다.
그러한 공동 양옆엔 무수한 장치가 길게 나열되어 있다.
내 뒤를 바짝 따르던 시트리에는 주위를 둘러보곤 이내 긴장 풀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행히 보안 체계를 건든 것 같진 않아요.”
직후 그녀는 옆으로 걸어가 나열된 장치들을 살피고는,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불렀다.
“이쪽으로…,”
그렇게 그녀의 부름에 따라 다가가면, 곧 장치 더미 속에 금속으로 만들어진 어떤 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유리로 만들어진 덮개 너머엔,
사람, 아니.
두 발 걷는 자와 같은 외형을 가진 무언가가 고이 잠든 모습으로 누워 있다.
“저게 바로 메트로폴리아의 가장 강력한 보안 체계에요.”
시트리에는 관을 가리키며 긴장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아…, 있는 겁니까?”
내 물음에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의 동의를 한 그녀의 얼굴엔,
복잡함이 가득했다.
끝내 그녀는,
“엄밀히 말하자면요.”
모호함을 담아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대답을 곱씹으며 한 차례 관 속에 담긴 것을 훑은 나는,
기억을 더듬어 일전에 제이가 거론했었던 부분에까지 금세 맞닿을 수 있었다.
기업 ‘돌체르’
그리고 그 기업에 의해 생산되었다는 ‘인형’
이러한 인형으로서 추구했던 것은…,
‘외부의 위험요소에 근거를 차릴 필요는 없다.’
“기업 돌체르, 그곳에서 생산된 인형. 그 인형으로 말미암아 구축된 보안 체계…, 겠군요, 이건.”
끝내 기억을 정돈해 얻은 결과를 내뱉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즉답했다.
“맞아요.”
“그런데…, 어떤 장치라고 하기엔 그 만듦새가 너무 절묘하네요, 기분이 이상해질 정도로.”
“… 그렇죠.”
정말이다.
저 관 속에 담긴 인형은 두 발 걷는 자를 그대로 박제해 전시해 놓은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는 내내 위화감이 들어.
그녀는 곧 관에 다가가 동정하는 듯한 눈빛으로 유리관을 쓰다듬었다.
“이 당시의 과학은 기준도, 그 기준을 보호할 법령도 존재하지 않았어요. 따라서 어떤 ‘격’의 추출도, 어떤 ‘자아’의 출력도 서슴없이 이뤄졌지요.”
“그 말은, 이 인형이 앞서 말한 그것들로 만들어졌다는 겁니까?”
“네, 살아있지만 살아있다고 말할 순 없는 그런 존재로 만들어진 거죠.”
세상에.
그제야 그녀의 그 모호한 표현이 이해가 된다.
“가장 확실한 보안은 보안이 망가질 환경에 섞여들어 상황이 발생한 즉시 투입되어 압도적인 억제력을 발휘하는 것이에요.”
“망가질 환경이라는 건…,”
“두 발 걷는 자들을 말하는 거죠. 체계는 그 자체만으로 구멍이 생기지 않아요. 그 체계를 다루는 자들에 의해서 생기지.”
“그래서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진 거군요. 그들의 환경에 자연스레 섞여들 수 있게.”
“네, 그러나 그들과는 전혀 다른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지요. 어떤 상황이든 물리적으로 봉합할 만큼.”
하지만…,
“하지만 그들도 결국엔 어떤 인격이나 자아로부터 만들어진 존재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인형이라고 할지라도 객관적인 판단을…,”
“인격이든 자아이든, 어떤 추출물이나 출력물이 된 이상 누군가의 입맛대로 수정될 수 있으니까요.”
말을 마친 시트리에는 슬픈 눈으로 관 속에 담긴 인형을 한참이나 살펴보았다.
“인형은 몇 안 되는 지식의 저주에요.”
그 말에 동의합니다, 시트리에.
엄밀히 말하면 지식의 저주라곤 할 수 없겠지만,
그것과 비슷한 저주 아래서 살아봤으니까.
그녀는 이내 관에서 시선을 뗀 뒤 부쩍 쾌활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그거 알아요?”
그러면서 또 다른 흥미를 내뱉을 준비가 되었는지,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럼 나는 자연히 반색하며 되물었다.
“뭐죠?”
시트리에는 천장을 바라보며 희망을 담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형 가운데서도 끝내 자신의 자아를 되찾은 존재가 있데요. 그래서 두 발 걷는 자들의 사회 속으로 들어가 그들처럼 살아가는 그런 존재가 있데요.”
“마치 전설처럼 들리네요.”
“그런가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아주 희박한 확률일 테니까.”
“하지만, 분명 존재하기에 그런 이야기가 있는 것이겠죠.”
내 대답에 시트리에는 천장으로부터 시선을 거둬,
가장 빛나는 눈빛을 내게 쏟으며 답했다.
“네, 분명 존재하기에.”
* * *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장정들이 그림자처럼 메킨토의 거대한 홀을 가로질렀다.
마치 액체처럼,
아니면 물러난 해만큼 다가온 밤처럼.
한없이 유연하고 정숙한 그들은 이내 한자리에 집결하였다.
“지금부터, 우리는 거룩한 순례를 시작한다.”
가을, 낙엽 사이에 잠든 바람의 이죽거림처럼.
장정 하나가 같은 구성원에게만 들릴 법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그럼 집결한 그들은 후드 속 결연한 눈동자를 빛내며 묵언의 동의를 보냈다.
그렇게 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직전,
“확실히 달콤한 냄새에 벌레가 꼬이기 마련이지.”
멀리서 경박한 목소리 하나가 뛰쳐나왔다.
“그러니 달콤한 것에 벌레가 묻지 않도록…,”
이내 목소리가 들려온 어둠 쪽으로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한 남자.
“하나하나 밟아 터트려 죽여야겠지.”
배닝스 오페라.
그가 살기를 가득 품은 표정으로 이죽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