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294화 (294/365)

294화. 교차점 (2)

[21년, 텍스윌리]

개인의 의지에 따라 나타난 소용돌이.

그것이 기업 메킨토의 1층 전반을 휩쓸기 시작했다.

[하늘이 뚫은 바다]

해당 인챈트에 붙어있는 이명에 걸맞게 육중한 물기를 머금은 채로!

그러한 재해의 중심에,

두 사람이 마주 서 있다.

오페라의 배닝스,

그리고 선명의 탑의 오닐.

이제는 모래로 빚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살아있는 것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한 배닝스는 고개를 틀어 주위를 살폈다.

그러한 사소한 움직임만으로도 그의 주위엔 끔찍한 건조가 흘렀다.

예컨대 그의 주변에 휘몰아치던 바람이 메말라 증발하는 게 두 눈에 보일 정도다.

한차례 주위를 둘러보던 배닝스는 이제 곧바로 뒤를 살폈다.

그곳엔 그의 동료이자 기업 오페라의 사원들이 있었다.

기압과 관련된 인챈트를 가진 자들을 필두로 오닐의 소용돌이로부터 겨우 목숨을 부지한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배닝스는,

이제 다시 오닐을 바라보았다.

“제법이야.”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빚은 비아냥은 오닐의 미간을 찌그러트기에 충분했다.

그 반응을 즐기듯 배닝스는 메말라 갈라진 땅처럼, 볼에 균열이 일 정도로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데…,”

이윽고 고개를 갸웃거린 배닝스가 타오르는 듯한 눈빛으로 묻는다.

“너,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구나?”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살기.

피식자를 다루는 포식자와 같은 그 일방적이고 순수한 살기에 오닐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 뒷걸음질도 한 번으로 그쳤을 뿐.

오닐은 묵묵히 자리를 지킨 채 들고 있던 창을 더욱 위쪽으로 치켜세웠다.

“이해, 맞아. 나는 못 했지. 하지만 이해를 못 한 건 너도 마찬가지야.”

창대의 솟구침에 맞춰 더욱 거세지는 소용돌이.

이제 메킨토의 도시 같은 거대한 1층은 그 절반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무너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한가운데서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배닝스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비아냥을 맞받아친 오닐에게,

배닝스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천천히 다가갔다.

“이해를 못 했다? 내가?”

“그래.”

“하.”

배닝스는 정말 앳된 아이처럼 순수히 웃었다.

“하하하!”

직감.

곧 무너진 댐 너머로 쏟아지는 물처럼, 배닝스의 광기가 쏟아질 것이다.

그것을 느낀 오닐은 양손으로 창을 고쳐잡고 자세를 다잡았다.

그리고 그러한 직감을 증명하듯.

“그럼 보여봐라,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배닝스는 두 발 걷는 자들을 초월한 움직임으로 땅을 박차 오닐을 향해 나아갔다.

절벽을 오르는 산양 따위의 각력이 아니다.

난쟁이의 쇠 두들기는 거대한 기계 따위의 위력이라고 봐야 할 만큼,

지금 배닝스의 육체 능력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닐은 놓치지 않았다.

그 역시 선명의 탑 아래 순례자들을 이끄는 자.

창을 둥글게 휘둘러 달려든 배닝스를 옆으로 빗겨낸 그는 그대로 지나친 배닝스의 등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창대 주위의 바람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일련의 모든 동작에 가미된 무시무시한 속도.

그러나 그렇게 배닝스의 등을 향해 내질러진 창은,

턱!

배닝스의 손에 정확히 가로막혔다.

“정말 괴물이 따로 없군…!”

혀를 내두른 오닐, 그리고 그런 그를 우습게 내려다보는 배닝스.

“넌 너무 느려.”

이어지는 배닝스의 비아냥에,

“그리고 넌 너무 빠르지, 상황의 판단까지도.”

오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같은 비아냥으로 받아친다.

그 여유로운 모습에 살짝 당황한 배닝스는 곧 오닐의 등 뒤에서 송곳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바람을 맞아야 했다.

내지른 창의 궤적과 뾰족함을 그대로 닮은 바람이 오닐에게 쏟아지길 한참.

이내 거센 바람이 멎고,

그 충격으로 일어난 무수한 먼지 속에서.

배닝스는 당연하다는 듯 멀쩡히 걸어 나왔다.

그는 이제 직전까지 보였던 나른한 여유 따위는 다 내버린 듯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오닐은 그제야 입술을 깨물며 두려움을 고백해야만 했다.

“시간을 끄는 건 여기까지인가.”

지금부터는 모든 판단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오닐은 즉시 주위에 만개시킨 재해를 거둬들였다.

이제 배닝스를 상대로 그 어떤 힘도 낭비하면 안 됐으니까.

그렇게 메킨토의 1층을 덮친 소용돌이가 거짓말처럼 그치고, 구속되었던 배닝스의 동료들도 자유를 되찾은 그 순간에.

“얼른 여기서 멀어지자고…!”

“배닝스, 저놈 저번처럼 날뛸 거야!”

그들이 제일 먼저 선택한 것은 동료인 배닝스로부터 멀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닐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러니까 이렇게 재해를 품과 동시에 다른 순례자들을 후퇴시킨 그 본연의 목적엔,

저들의 생존이 상정되어 있지 않다.

해서.

오닐은 눈앞의 맹수를 뒤로한 채 창을 휘둘러 도망치려는 기업 오페라 일당의 퇴로를 가로막았다.

휘두른 창의 궤적에 따라 휘몰아치는 바람.

그 바람에 가로막힌 일당은 당혹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가진 재해로 그것을 풀어헤치기 급급하다.

일시적으로 그들이 묶였음을 확인한 오닐은 서둘러 뒤에 있을 배닝스를 대적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억!”

그렇게 고개를 돌린 오닐의 코앞엔,

어느새 배닝스가 다가와 있었다.

배닝스는 그 자리서 주먹을 내질러 오닐의 배를 가격했다.

퍽!

하는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한바탕 전신이 위쪽으로 들썩인 오닐은 그 자리서 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거어억…!”

뭐지?

배닝스의 인챈트는 분명 가뭄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것은 보통 광범위한 지역에 영향을 끼치는 ‘장악형’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

그런데 이 파괴력은…,

‘재림형’에서나 볼 법한 힘이다.

앞서 보았던 배닝스의 신체 능력은…, 그래.

장악형 인챈트지만 해당 재해와 관련된 모든 역사를 이해했기에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방금의 타격으로 확신했다.

배닝스의 인챈트는 재림형이다.

짧은 시간,

복잡한 생각을 아우른 오닐은 씁쓸한 표정으로 한참을 무릎 꿇어야만 했다.

배닝스는 그런 오닐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태양을 하나의 양분으로밖에 알지 못하는 너에게, 태양은 재앙이었음을, 그 빛이 죽음이었음을 알려주마.”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일갈한 배닝스는 곧장 창을 들고 있던 오닐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아직도 배에 꽂힌 주먹에 신음하고 있던 오닐은 그저 배닝스의 손에 의해 인형처럼 다뤄지고 있을 뿐이다.

[17년, 퍼레시타스]

[구름에게 버림받은 땅]

배닝스는 자신의 팔찌에 깃든 지독한 재해,

가뭄 속 또 하나의 역사를 발휘했다.

[전이]

해당 가뭄이 일어난 지 사흘째, 무심한 태양으로 인해 벌어진 폭발적인 메마름의 확산.

그것이 막 오닐의 오른팔을 붙잡은 배닝스의 손에서 빚어졌다.

“아아아악!”

별안간 오닐은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호소하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팔을 뒤덮고 있던 사슬 갑옷은 붉게 달아올랐고, 그 안의 가죽옷은 검게 그을리기 시작했다.

이 모든 건 배닝스의 손으로부터 일어난 일이었다.

그렇게 훤히 드러난 오닐의 오른팔.

그것을 붙잡고 있던 배닝스는 타오르는 듯한 눈을 내리깔고 단언하듯 말했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느껴봐, 이게 바로 갈증이다.”

그 말을 끝으로,

오닐의 오른팔에 있는 핏대가 꿈틀거렸다.

안쪽에서 피가 끓는 듯 격하게 울컥거리는 그 오른팔에선 뿌연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고.

“흐그으윽… 으아악!”

그 뿌연 수증기에 얼굴이 뒤덮인 오닐은 처절하기 짝이 없는 비명을 계속해 질렀다.

이내 모든 일이 끝났다는 듯,

배닝스는 붙잡은 오닐의 오른팔을 놓아주었다.

축,

처진 오닐의 오른팔은.

가뭄에 갈라진 땅처럼 처참히 갈라진 상태로 메말라 있었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가루로 흩어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모습으로 말이다.

“네게 새겨진 갈증은 서서히 너를 좀먹어 갈 것이다. 그전에 그것을 해갈시킬 수 있을지 궁금하군.”

쭈그려 앉아,

넋이 나간 오닐에게 신이 난 듯 말을 거는 배닝스.

“이대로 확 널 집어삼켜 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면 시시하잖아. 아주 천천히, 너를 무너트리는 게 더 재밌을 것 같더라고.”

그는 오닐의 앞에서 휘적휘적 부담스러운 손짓을 더 해가며 천진한 아이처럼 희롱했다.

그러면서 슬쩍 상체를 기울여 오닐의 뒤편에 보이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이제 너희들은 도망친 순례자 놈들을 쫓아, 메킨토 안에 있는 놈들은 나 혼자서 처리할 테니까.”

명령을 내린 배닝스였지만,

그는 다시 표정을 일그러트려야만 했다.

아직,

배닝스의 동료들은 오닐의 바람에 의해 갇혀있었으니까.

“너…, 이 새끼.”

그는 다시 오닐을 내려다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너 같이 근성이 넘치는 애들이 우리 오페라의 고객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윽고 배닝스는 손을 뻗어 오닐의 목을 붙잡았다.

“하, 이렇게 끝내긴 아깝지만 하는 수 없지.”

그렇게,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던 오닐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지그시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그 모습에 배닝스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조금은 흐릿해진 상태였지만,

의식을 붙잡고 있던 오닐의 두 눈은 배닝스가 아닌 배닝스의 뒤쪽을 향해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의아하게 생각한 배닝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 하는 거야? 나 여기 있어.”

하지만 오닐은 배닝스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그저 웃을 뿐.

“흐… 흐….”

오닐의 웃음에 배닝스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다그쳤다.

“날 봐, 이 개새끼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닐은 배닝스의 뒤쪽을 보며 실실 웃을 뿐이다.

“아, 생각보다 더 늦었네.”

이윽고 작게 읊조리는 오닐의 말에,

배닝스는 굳은 얼굴로 오닐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오닐이 동료 순례자들을 피신시키고, 이들의 발을 묶은 궁극적인 이유.

그것이 방금 막,

배닝스의 눈에 들어왔다.

두 발 걷는 자?

아니.

두 발 걷는 자의 모습을 한 인형.

메트로폴리아 전역에 설계된 보안, 그것을 담당하는 금지된 기술로 점철된 작품.

정말 빚은 듯이 아름다운 모습을 한 그것은 조용히 오닐과 배닝스를 비롯,

근처 오페라의 사원들까지 한바탕 훑었다.

그리고 그런 인형의 뒤로,

또 다른 두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창,

눈가리개를 쓴 채 질주하던 말처럼 오닐에게 맹목적이었던 배닝스는 그제야,

너무나 뒤늦게.

오닐의 진짜 목적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런 배닝스의 멍청한 경주마 같은 모습에 오닐은 더욱 낄낄거리며 웃어 재꼈다.

오페라는 환경을 봐가며 추심하지 않는다?

그 말이 참으로 같잖은 것이란 게 이제 증명될 테니까.

너무 느리다고?

이렇게나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는 주제에?

껄껄거리며 웃는 오닐을,

배닝스는 턱이 갈라지도록 이를 씹으며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자,

세 명, 아니 인형 세 개체가 반응했다.

배닝스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외쳤다.

“도망쳐, 빨리!”

마치 당겨진 방아쇠처럼.

배닝스의 외침과 동시에 가공할 속력으로 달려오기 시작한 인형들.

그것들 가운데 하나가 배닝스 앞에 멈춰 섰다.

배닝스는 그 인형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지만,

인형은 그 주먹을 향해 같은 주먹을 내질러 그의 팔을 문자 그대로 분쇄해 버렸다.

으드득,

으적.

하는 소리와 함께 팔꿈치 뼈가 튀어나오는 와중에도 배닝스는 일말의 신음도 없이 남은 손으로 인형의 머리를 붙잡았다.

기계에게 갈증이란 요소는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림형 인챈트로 인해 강화된 본인의 위력만큼은 통한다.

해서 배닝스는,

“으아아아!”

붙잡은 인형의 머리를 그대로 바닥에 내쳤다.

그러는 와중에도 인형은 주먹을 내질러 배닝스의 옆구리를 박살 내버렸다.

입 밖으로 붉은 피를 토해낸 배닝스,

하지만 그는 지독한 광기를 부려 인형의 머리통을 그대로 짓눌러 부숴버렸다.

그렇게 겨우 한숨을 돌리며 고개를 돌리면,

“아아악!”

“어… 어어 안 돼!”

“사… 살려줘!”

두 인형에 의해 종이처럼 찢어지고 구겨지는 자신의 동료들이 보인다.

인형이 내지른 주먹에,

배 밖으로 척추뼈를 뱉으며 접힌 자.

악력만으로 머리통과 척추 일부가 뽑혀 절명한 이.

어린아이의 손에 의해 정형되고 성형되는 진흙처럼.

오페라의 동료들은,

하나하나가 인챈트를 가진 채 오랜 세월 메트로폴리아에서 군림했던 그들은.

그렇게 두 개체의 인형에 의해 곤죽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과거 메트로폴리아의 광기와 이에 비롯해 만들어진 울타리.

이윽고 학살을 마친 두 인형이 배닝스에게 다가왔다.

그 와중에 한 인형은 오닐의 머리통을 발로 밟아 으깨버렸다.

“하…, 이런 씨….”

넋이 나간 채 허탈한 욕지거리를 뱉은 배닝스는 그대로,

인형이 내지른 주먹에 머리통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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