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교차점 (4)
시트리에는 기계장치 뒤쪽에 숨어 귀를 막은 채 웅크렸다.
그러면서 숨기 직전 보았던 것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디안 베나즈로부터 급작스레 불어닥치기 시작한 바람, 그 바람 가운데 가장 굵직한 줄기 하나가 인형 무리 사이로 내리쳐졌다.
그리고 그러한 타격만으로 수십에 달하는 인형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장담하건대,
그 광경은 그녀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리라.
인형이,
과거 과학의 결정체인 그 인형이.
장난감처럼 부서질 수도 있는 거였구나.
지금에 이르러 정립된 비과학적 초자연이 과거의 금자탑인 과학을 무너트리는 순간이다.
쾅─!
고막 너머 정신이 너울거릴 만큼 폭력적인 굉음.
“끗…!”
그 아찔함에 시트리에는 더욱 세게 귀를 막은 채 짧은 신음을 내뱉어야만 했다.
왜 그렇게 많은 기업과 조합이 저 베나즈 가문 아래 입점 되길 원했는지,
그 결정적인 이유를 드디어 이해했다.
주도를 아우를 수 있는 결정적인 힘,
지금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저것.
한바탕 계속된 폭음과 진동은 얼마 지나지 않아 뚝 멎었다.
말 그대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처럼.
그래서 슬쩍 막았던 귀를 열자 부조화를 느낄 만큼의 정적이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멍한 표정으로 기계장치로부터 고개를 빼꼼 내민 그녀는,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디안 베나즈는 조용히 검을 거두곤 주위를 찬찬히 살폈다.
그가 살피는 곳엔 파편화된 인형들의 잔재가 전시되듯 널려있었다.
“시트리에.”
곧이어 뒤돌아 묻는 디안의 말에 그녀는 딸꾹질하듯 상체를 움찔거렸다.
“에… 예!”
“보안은 어떻습니까.”
“아…!”
서둘러 기계장치를 살피던 그녀는 아직 넋 나간 목소리로 디안에게 답했다.
“보안은…, 아직 해제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기계장치에 나열된 계기판을 살핀 그녀는 디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더는 동원될 보안 체계가 없다고 나오네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해제를 하고 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네… 네!”
너무나 태연한,
아까와 같은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와 말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시트리에는 놓친 넋을 쉬이 붙잡지 못했다.
* * *
“제이, 괜찮습니까?”
론의 물음에 오른쪽을 주시하고 있던 제이가 퍼뜩 정신을 차려 대답했다.
“예, 벨리타인님 덕분에.”
그러면서 제이는 자신의 팔에 지지대를 받치고 있는 벨리타인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러자 그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되려 제이에게 따지듯 대꾸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육체길래 고작 뼈에 금이 간 것에 그친 건지.”
그리곤 예리한 눈빛으로 제이를 바라보며 통찰한다.
“이 경이로움을 보고 있자면 꼭 아이베리아의 기사 같군요.”
그 말에 제이는 슬쩍 미간을 찌푸리다가도 금세 풀어진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로 그치지 못할 것 같았으면 애초에 제리드의 수석 경호의 자리에 앉지도 못했을 겁니다.”
“하긴, 유서 깊은 쪽이라면 기업 쪽이 더 대단한 건 사실이지요.”
슬쩍 밀어내는 듯한 제이의 반응을 칼같이 확인한 벨리타인은 구슬리듯 대화를 매끄럽게 끝냈다.
그렇게 둘의 대화가 끝나자 론이 오른쪽 길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디안 공께서 보안을 건드리셨을까요.”
이에 제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정도로 부주의할 분은 아닙니다.”
그 의견에 벨리타인 역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제이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담 이 상황을 유발한 첫 굉음이 3자에 의해 일어났다는 소린데. 그 말은 즉 또 다른 외부인이 이곳에 들어섰다는 것이고…,”
추리를 이어간 론이 숨을 쉬듯 결론을 도출해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작동한 인형들이 돌연 특정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고…, 얼마 안 가 첫 굉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폭음이 들려왔다…, 어떤 상황으로 인해 인형들이 디안 공께 도달한 걸로 보이는군요.”
제이는 론의 결론에 확신을 부여했다.
“정확합니다.”
그럼 벨리타인이 되묻는다.
“확신의 근거는?”
“두 번째의 그 폭음은 보통의 인챈트론 흉내조차 낼 수 없으니까.”
제이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오른쪽을 주시했다.
최대한 곁에서 지켜보고 싶어 했던 입장에서, 방금의 폭음을 놓친 건 그에게 있어 굉장히 아쉬운 일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려온 폭음과 그에 뒤따라온 압력.
그리고 진동만으로도.
제이는 속으로 수많은 소름과 전율을 느껴야만 했다.
베나즈와 0의 조화는 상상 이상이다.
‘과연 가장 고대하던 것답게’
“무사하실까요, 무려 메트로폴리아의 인형들인데…,”
론의 걱정에 제이는 튀어나오려는 헛웃음을 겨우 삼켰다.
그래도 직전에 두 눈으로 본 것이 있으니 론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제이 역시 전해 들은 것이지만,
그 인형의 뼈대를 이루는 금속이 바로 제리워드 가문에서 생산한 합금이다.
물론 그 합금이 아주 극소수로 생산되던 ‘제리드 강철’은 아니었지만,
인형에 쓰인 뼈대 금속만 놓고 봐도 인간의 뼈처럼 외부의 보충으로 성질이 보강되는 극상의 성능을 자랑한다.
뼈대부터 그런 기술로 점철되어 있으니 당시에 인형이 살아있는 학살이라 불렸던 거겠지.
그러나 지금에 와선 글쎄.
인형이 발휘하는 물리력만 놓고 보자면 아이베리아의 그 기사들을 우습게 상회하겠지만,
끝내 발휘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비교가 불가하다.
인형이라는 개념 자체가 도태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거기다 현시대 정점에 속한 개념이 둘이나 붙어 있잖아.
베나즈,
그리고 0.
그러니까.
“건물이 무너지지 않아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디안 공께서 인형에 당하셨을 리는 없습니다.”
제이는 둘에게 자신이 가진 확신을 증명하듯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럼 서둘러 움직입시다. 인사과와 복지과에 미로와 관련된 정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제 자리에서 일어난 제이가 앞장서 거대한 도로 너머로 나아갔다.
벨리타인과 론은 그런 그의 뒤를 따라 묵묵히 더욱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 * *
[인사과]
낡은 팻말 아래,
수많은 타자기와 갈변된 종이가 가득 채워진 서랍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눅눅하길 넘어서 비릿한 종이 냄새가 가득한 이곳에서,
흥미진진함을 감추지 못한 론은 즉시 주위를 둘러보며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머릿속에 입력시켰다.
그런 론을 지나친 벨리타인은 인사과 끄트머리에 연결된 복지과 쪽을 기웃거렸다.
그 사이,
빈자리 하나를 골라 앉은 제이는 이곳으로 오기 직전 벨리타인이 건넨 진통제 한 병을 마셨다.
그리고 그때,
론은 벌써 인사과 내에 있는 가장 심층적인 지점에 도달해 그곳에 있는 서류들을 살피고 있었다.
* * *
[지도 (신간) 제작 달성보고서]
[기획부 매출 갱신 상여]
[기획부 승진자 명단]
[영업력 미달 관련]
[이달의 우수 직원]
흠, 흥미로운걸.
대부분이 상승세를 그리는 듯한 서류인데 딱 하나.
[영업력 미달 관련 보고서]
이건 제법 우울한 주제로군.
추리의 정석 가라사대,
뭐든 비교적 적은 부분부터 파고들어야 일이 쉽게 풀리는 법이지.
해당 서류를 집어 한바탕 먼지를 털고 난 뒤 고급스러운 궤짝을 열듯 조심스레 표지를 넘겼다.
그러면 비록 반짝이는 보물은 아니지만,
내 눈에서만큼은 반짝이는 것들이 가득하다.
[21달 연속 영업력 미달]
하락, 하락 또 하락입니다.
우리 자랑스러운 메킨토의 영업사원들은 뭐가 문제인지, 혹시 타 기업의 스파이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실망스러운 결과물만을 내놓고 있습니다.
인사과에서 단행한 벌점 및 감봉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이지요.
저들을 어떻게, 얼마나 더 효과적으로 압박해야 실적이란 걸 내놓을까요?
최근 퇴사한 영업사원이 한 말에 따르면 ‘지도 팔이, 타 기업에 기생한 관광요소 팔이나 하는 기업 주제에 영업은 무슨 거대 기계 납품회사 수준으로 요구한다.’ 였습니다만,
모두가 아는 그걸 이제야 알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영업부 관련해 봉급 인상을 검토해보았지만,
아쉽게도 기업 메킨토의 총 봉급지분 가운데 9.6할이 메킨토의 이사진에 할당이 되어 있는 터라 인상은 불가합니다.
이사진이 받는 봉급 가운데 0.083할 정도를 내리면 영업부 전체에게 인상적인 봉급 인상을 해낼 수 있겠지만,
하하, 하늘에 별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그딴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 추가로 내년까지는 이사진의 봉급을 9.7할까지 올리는 것을 검토 중입니다.
그래서 이 영업력 미달을 어떻게 타파하는가는,
역시 외부의 힘을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인사과는 며칠 내로 영업부 전원을 집합시킬 수 있도록 조치하십시오.
불복하는 영업부 인원은 최악의 인사 벌점을 받을 수 있게 조치하시고요.
우리도 슬슬 합리적인 ‘소모품’을 들일 때가 된 것 같네요.
“가관이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그만큼 적혀 있는 내용은 내용이라기보다 ‘지랄’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이거 위에서 내려온 정식 문건 맞나?
무슨 적혀 있는 말투가 이따위지?
주위를 좀 더 살펴보자.
아마도 지금 서 있는 이곳이 가장 상급자가 사용하던 자리로 보이는데,
보통 상급자는 바로 밑 하급자에게 모든 일을 짬처리시키기 마련이니까…,
시선을 돌려보면 유독 다른 곳보다 많은 분량의 서류가 놓여있는 자리가 있다.
찾은 것 같네.
서둘러 달려가면 이제는 빛이 바래 잿빛으로 변한 작은 약 포장지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조심스레 집어 들어 가늘게 뜬 눈으로 살피면,
[잠 – 약탈자]
잠을 대출해 드립니다!
한 알에 3일, 후유증은 구겨서 나흘 뒤 당신에게 버려요!
수면 억제제로군.
이 약의 존재를 증명하듯 책상 위로 시선을 돌리면 정말 서류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빠르게 눈을 굴려 서류의 표지를 확인한 나는,
곧 또 다른 문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영업부 개변 후 영업력 증가]
전 대비 413% 증가.
영업 중 사망자 1달간 93명.
특이사례) 아이 하나가 심장을 빼내면 계약하겠다고 장난을 건 지 하루 만에 영업사원 하나가 산채로 본인의 심장을 적출 하려다 사망함.
정신 속박의 세기가 너무 강해 내달부터 조절 요망.
당시의 유행을 따라 영업부 전원에게 강력한 최면 따위를 건 건가?
말 그대로 정신을 하나의 소모품으로 치환하는 데에 성공한 거지.
다음 서류를 보면…,
그래서 이 폭발적인 영업력 덕분에 메킨토가 메트로폴리아 내에 가장 잘나가는 정보 및 소개와 관광 설립 기업이 되었군.
그 다음은…,
광증?
서서히 0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게 대두되던 시점이로군.
메킨토 내의 직원 대부분이 이때 서로 뜯고 죽이고 아주 난리를 쳤구먼,
그 와중에도 해당 부분을 차분히 보고로 작성해 올리다니.
내용은 하나같이 보기만 해도 속이 매스꺼울 정도다.
그런데 웃기네, 지금 보고 있는 보고서에 의하면 영업부는 외부에서 영업 업무를 하느라 본사를 휩쓴 광증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어.
자,
이제 이게 메킨토의 공식적인 마지막 서류다.
[인사인계]
그 수많은 풍파를 겪은 뒤의 서열은 어떻게 되었는지, 한 번 볼까?
[메트로폴리아의 공식 법령에 따라 사망자의 업무는 남은 생존자에게 자동 인수인계됩니다.]
[기업 메킨토의 생존자는 ‘1명’으로 위 메트로폴리아 공식 법령에 의거 각 과의 모든 업무와 권한은 위 생존자에게 이양됩니다.]
[이사진 전체 역시 사망했으므로 메킨토의 공식적인 소유권은 최후의 생존자에게 이양됩니다.]
그렇게 도달한 마지막 문단에서,
나는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생존자 – 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