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어떤 대가
온갖 공구를 꺼내 덩굴처럼 엮인 톱니와 정글처럼 난립 된 실린더를 해친다.
투박하고 고되기 그지없는 그 작업을,
시트리에는 간간이 경쾌한 미소를 짓기까지 하며 즐기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그런 그녀를 보조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건 내게도,
아주 흥미로운 것이었다.
“공, 보이세요? 수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스스로 움직이는 실린더가.”
“예, 잘 보입니다.”
작고 미세한 것부터,
층계 기둥 격에 속할 정도로 큰 것까지.
오랜 세월을 비웃듯 한 톨의 녹 없이 윤택함을 유지한 체 바삐 움직이는 원통들.
쉬지 않고 움직이는 기계장치의 움직임은 확실히 경이로운 것이었다.
그래서 난 그녀의 제자라도 된 듯 순진한 궁금증으로 무장해 사정없이 퍼부었다.
“도대체 동력원이 뭐길래 이런 유지력을 발휘하는 겁니까?”
그럼 시트리에는 걸림돌 없이 말하는 사전처럼 즉답해주었다.
“당시 기업들 대부분은 지하 층계에 따로 동력실을 건축해요, 그 동력실에 들어가는 건 해당 건물 전체에 동력을 전달해줄 만큼의 바다죠.”
“바다?”
“정확히는 구체 모양 격실에 한 폭의 바다를 담는 거예요. 그런 다음 최소 석 달에서 일 년 정도 쓸 동력을 한 번에 뽑는 식이죠.”
“원리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도 됩니까?”
계속되는 내 질문에 귀찮을 법도 한데, 그녀는 오히려 신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며 열성적으로 대답해주었다.
“구체 모양 격실에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압축 장치가 있어요.”
그녀는 검지와 엄지를 이어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인 뒤 검지를 말아 동그라미의 크기를 점점 줄였다.
“이런 식으로요, 이렇게 한 폭의 바다를 극한으로 압축한 뒤 격실 외벽을 통해 엄청난 열을 전달하면.”
“증기가 나오겠군요.”
“그것도 엄청나게 폭발적인.”
그녀는 싱긋 웃으며 설명을 이었다.
“용의 시대가 끝나면서 새 시대를 짊어지게 된 천재 과학자들이 변한 법칙들을 이해한 뒤 가장 먼저 고안해 낸 게 바로 바다를 이용한 동력원이었어요.”
정말 그녀의 말 그대로 천재라 불릴 만하네.
“아무튼, 극한으로 압축한 바다로부터 뽑은 폭발적인 증기는 회사 전체에 혈관처럼 얽힌 관을 통해 동력을 전달하죠.”
“이제야 그 ‘엄청나게 폭발적인’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군요. 한바탕 뽑아낸 증기가 석 달에서 일 년 정도의 동력을 책임 질 정도면…,”
그녀는 감동한 듯 눈을 반짝였다.
“맞아요, 정확해요. 이 메킨토보다 훨씬 큰 기업들은 아예 사냥한 구름을 지하에 넣어 독자적인 환경을 구축하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동력원에 마르지 않는 순환을 집어넣은 거죠.”
곱씹을수록 놀라운 얘기다.
“그렇담 그 기술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겠군요?”
내 물음에 시트리에는 애매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챈트라는 게 널리 퍼진 지금, 그런 동력원들은 다 옛날이야기가 됐어요.”
그녀의 눈빛은 못내 아쉬운 듯한 감정이 녹아 있었지만, 금세 더 반짝이는 눈빛을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펼쳐지고 있는 이야기가 훨씬 더 재밌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난 옛이야기에 못내 아쉬운 감정이 드는 이유는…,”
그러니까,
이런 비슷한 결을 느껴본 적이 있었지.
맥레인, 당신이 내게 알려줬었던.
“로망 같은 개념으로 자리잡혔기 때문이겠죠.”
내 대답에 그녀는 놀란 얼굴로 날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퍼뜩 정신을 차렸는지 고개를 휙 떨구었다.
그리고 떨궈진 고개에 맞추어 코에서 뭔가 맺혀 떨어진다.
“시트리에, 괜찮습니까? 코피가 나잖아요.”
“허… 흡… 괜찮아요. 그러니까 이건 과출력 비슷한 거라고 생각…, 아니 그러니까…,”
조심스레 그녀의 턱을 받친 뒤 급한 대로 소맷자락 끝으로 피를 닦아주자,
또 왜인지 그녀의 벨트에 채워져 있던 전구가 반짝거린다.
“어어…, 이건 그러니까 감정 변압기 때문에 이러는 건데…,”
시트리에는 별안간 한참을 얼버무리다가도 미세하게 변한 톱니 소리에 냉정한 표정으로 돌변했다.
“아…! 공, 3번 실린더를 잡아주세요!”
“네.”
곧바로 그녀에게서 받은 공구로 작은 실린더를 붙들고 있으면, 그녀는 톱니 사이에 미세한 톱니를 껴 작동 체계를 순식간에 우회시켰다.
“됐어요! 이제 발동된 보안 체계는 얼마 안 가 작동을 중지할 거예요.”
마치 곱씹느라 바쁘게 실룩거리는 토끼의 코처럼.
불그스름해진 인중을 움찔거리던 그녀는 내 눈치를 살피다가 끝내 해맑게 웃었다.
* * *
메킨토의 보안까지 해제되면서,
이젠 위협의 여지조차 없어졌다.
그래서 나와 시트리에는 보다 더 여유롭게 메킨토 1층과 2층에 걸쳐져 있는 기획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의자와 책상이 끝없이 늘어선 그곳은 곳곳에 백골들이 널브러져 있었는데,
그 주위의 물건들을 보아하니 예전에 온 파견대나 용병들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바꿔 말하면,
기획과 곳곳에 보안을 작동시키는 함정들이 산재했었다는 소리겠지.
물론 그런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나와 시트리에는 기획과를 아무렇지도 않게 활보하고 다녔다.
굳게 닫힌 문과 서랍 따위를 막 열고 다니며 정보를 캔 덕분에,
얼마 안 가 유의미한 것들을 추려냈다.
그렇게 녹슨 책상을 사이에 두고 그 위에 엄선한 정보들을 쏟아낸 나와 시트리에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열거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메킨토의 사정을 관통하는 굵직한 정보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영업부 개조 기획]
영업력 강화를 위한 이사진들의 회의 결과 영업의 소모품화 추진.
1. 해당 사내 변혁 추진을 위해 기업 ‘벨트 – 인트리’의 세뇌 기술을 책정.
1 – 1. 사원들은 영업 업무에 개인의 환경적 역량까지 동원하는 맹목이 심어져야 함.
1 – 2. 세뇌를 통해 개조된 사원들은 최소 5세대까지 종속 가능한 되 물림이 발휘되어야 함 (*이사진의 특별 지시입니다.)
1 – 3. 위 1 – 2에 적힌 항목의 기술적 명칭을 ‘부품 통’으로 지칭함. (*이사진의 특별 지시입니다.)
2. 성공적인 세뇌를 위해서는 그에 따른 보상이 필요하다는 조건에 따라 영업사원 전체에게 목적의식을 부여하기로 결정.
2 – 1. 영업사원을 대상으로 한 점수 제도.
2 – 2. 고객으로부터 만점에 해당하는 5점을 받을 시 최고의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설정.
2 – 3. 무분별한 보상을 막기 위해 점수 책정은 기획과에서 직접 관리.
*3. 영업사원에게 점수를 주기 위해선 직접 기획과에 와서 문의하여 30분의 대기 시간을 걸친 뒤 직접 매기는 것으로 변경합니다. (*이사진의 특별 지시입니다.)
*3 – 1. 어차피 영업 고객 대부분이 귀찮아할 것이니 그 부분의 부담을 덜기 위해 고안된 이사진의 획기적인 절충안입니다.
*3 – 2. ‘부품 통’이 있는 이상 영업사원의 완전한 정신적 소모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이대로 진행하십시오.
4. 제일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지만, 세뇌의 조절 및 해제와 관련해선 이사진의 인장 결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아까 보았던 수첩의 내용이 그토록 처절했던 거구나.
거기다 기획과에 보이는 이 시체들 가운데엔 어쩌면, 우연히 만나 친절을 베푼 영업사원을 위해 점수를 매기기로 한 모험가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내용을 읽고 있던 시트리에는 지끈거림을 느꼈는지 굳은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공, 여기에 적힌 내용대로라면 메트로폴리아 입구에서 마주쳤던 그 아소라는 남자는…,”
“생존한 메킨토의 영업사원, 그의 자손이겠지요.”
처음 보는 우리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풀었던 그는,
자랑스럽다는 듯 자신이 메킨토의 4세대 영업사원이라고 했었다.
이제 와 보니 지독한 되 물림의 증거였을 줄은…,
씁쓸한 감정을 휘발시키려는 듯,
바삐 다른 서류를 들춰보던 시트리에는 금방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내게 들고 있던 것을 건넸다.
“공, 보세요.”
[영업력 강화를 위한 메트로폴리아의 ‘미로 지도’ 작성 기획]
최근 미로로 가려는 고객들이 많아 미로 지도 작성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함.
이사진 만장일치로 미로 지도 작성을 개시.
기획자 : 아소 (*2세대)
이사진 승인 : 아소, 아소, 아소, 아소, 아소 (*2세대)
“이걸 보면 기획자도, 그것을 승인한 이사진도…,”
“모두 아소로군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아는 것이 없었으니까.
[영업 집중을 위해 영업과를 제외한 메킨토의 모든 과 폐쇄]
거슬리기 때문에 영업을 제외한 메킨토의 전반 사업 및 모든 업무를 일시적으로 정지합니다.
기획자 : 아소 (*3세대)
이사진 승인 : 아소, 아소, 아소, 아소, 아소 (*3세대)
“이것도 보세요, 역시나 아소라는 이름뿐이에요.”
다음으로 찾은 서류를 내민 그녀를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약간의 소름이 깃든 헛웃음을 짓는 것뿐이었다.
직후 나는 해당 서류를 통한 추론을 슬쩍 내밀었다.
“영업 집중을 위해 메킨토의 모든 과를 폐쇄했다면, 역설적으로 영업을 통해 얻어야 하는 점수 역시 기획과에 걸린 보안 때문에 얻지 못했을 겁니다.”
내 이야기를 충분히 납득 한 그녀는 더욱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한참,
말없이 서류를 뒤적거리던 우리는.
먼지 쌓인 어떤 지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것은,
미완성되었지만 우리가 목표로 하는 목적지 정도까진 아주 세밀하게 그려진 지도였다.
그리고 그 지도의 작성자는.
3세대 아소.
지금 아소의 아버지였을 그가 이 지도를 만들기 위해 쏟아냈어야 할 희생은 얼마나 컸을까.
어쨌든 덕분에 원하던 것을 찾을 수 있었으니.
“시트리에, 아직 집결까지는 시간이 충분하니까 도움을 준 아소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도록 합시다.”
내 말에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우리는 기획과를 쏘다니며 미처 뒤지지 못한 구역들을 휘저었다.
그리고 가장 구석진,
아예 열거하지 않기로 작정한 것처럼 방치된 장소에서 모든 영업사원이 등록되어있는 명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둔기로 써먹어도 될 만큼 무지막지한 두께를 자랑하는 그 책을 펼친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본 뒤 약속이라도 한 듯 책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비교적 빳빳한 새 종이로 뒤덮인 마지막 장엔,
삐뚤빼뚤하게 그려진 아소의 얼굴과 공백인 점수 칸이 있다.
그 점수 칸 안에,
나는 직전까지 느낀 순수한 동정을 쏟아내듯 만점으로 가득 채워 넣었다.
그렇게 점수 칸이 채워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우리의 뒤로 인기척 하나가 나타났다.
* * *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일 거예요.”
소심한 모습으로,
울먹이며 등장한 초로의 남자.
굶주린 초 끝에 물린 불처럼, 그래서 그에 감동해 열렬히 녹아 촛농을 쏟아내는 것처럼.
그간 억제되어왔던 오만가지 감정을 드러내며 울먹이던 그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초라함과 동시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기업 메킨토의 영업 역사상 최고의 성과를 이룰 수 있게 된 건 모두 고객님 덕분입니다.”
그는 조심스레 다가와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어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얼른,
쩍쩍 갈라진 그의 손을 두 손으로 와락 받아주었다.
“아, 그렇지요. 우리 고객님께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아소, 이제 더는 그런 맹목적인 소모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씁쓸함을 뒤로 넘기며 구태여 그를 말려보지만,
이미 행복에 겨운 그의 귀에 내 목소리가 들어갈 리 없다.
그는 낡은 가죽 주머니에서 작은 인장 하나를 꺼냈다.
“고객님,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려주셨으니 그에 걸맞은 사은품을 드리는 건 당연한 얘깁니다.”
그렇게 얼결에 건네받은 인장.
그 인장을 가리키던 아소는 순수한 얼굴로 말했다.
“사은품으로 기업 메킨토를 드립니다, 그건 메킨토의 다섯 이사진의 권한을 결합한 인장이에요. 뭐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니달라르 은행의 비밀금고’를 여는 열쇠이기도 하죠. 그래봤자 하반기 영업 기획만도 못한 특급 비밀 따위지만.”
그저 터무니없는,
그런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던 그는 그래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가.
끝내 불안한 표정으로 품에 아주 고이 담아두고 있던 것을 꺼내 들었다.
“그래도 마음이 편해지질 않네요, 이런 적은…, 처음이라서요. 내가 성과를 내다니…! 세상에! 그러니 제 가족의 가보도 가지시는 게 맞을 거예요”
“아소…!”
“무려 1세대 아소, 제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쭉 전해져 내려오는 소중한 보물이에요.”
무턱대고 들이미는,
낡아서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한 종이 뭉치.
마지못해 받아든 나는 표지에 아주 흐릿하게 새겨진 글씨를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려야 했다.
“사… 직서.”
이제 알겠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나는 그 자리에서 이젠 글씨 하나 남지 않은 낡은 사직서를 펼쳐,
그 위에 기업 메킨토의 인장을 찍었다.
아소,
당신의 사직서는 수리되었습니다.
그러니 저주로부터 벗어나…,
이제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