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298화 (298/365)

298화. 미로

“대충 건진 건 기업 메킨토와 관련된 진실뿐인 것 같군요.”

론은 자신의 작은 수첩에 뭔가를 빼곡히 적으며 말했다.

제이의 상태를 점검하던 벨리타인은 그런 론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탐정 양반, 정리하고 추린 내용이 어떻게 되는데?”

이에 론은 수첩에 마침표 하나를 찍곤 첫 장으로 되돌아가 자신이 적어낸 내용을 담담히 나열하기 시작했다.

“기업 메킨토는 주도하던 사업의 특성상 영업적인 능력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영업적 성과는 변변치 못한 상황.”

다음 장으로 넘긴 그는 귀찮다는 듯 그냥 수첩을 접은 채 벨리타인과 제이를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메킨토는 영업력을 상승시키기 위해 개혁을 추진한다. 해당 개혁의 내용은 영업부 전원의 정신 개조.”

그의 말에 벨리타인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 유명한 정신 직조법을 썼겠지…,”

“결과적으로 메킨토는 폭발적인 성장을 꾀할 수 있었고 그렇게 순탄히 성공 가도를 밟고 있었지만, 완성 직전인 0의 여파로 사내에 광증이 전파됨.”

제이는 직전 광증 무리를 상대했던 때를 떠올리며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광증으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 속에서 결국 0이 완성되었고, 그것의 추락 여파로 인해 발동된 회사의 보안 체계가 정규직을 제외한 모든 인원을 척살했다.”

이어지는 론의 말에 침묵을 유지하던 제이가 씁쓸히 대꾸했다.

“개판이로군.”

“아직 안 끝났습니다.”

론의 말에 벨리타인이 놀란 눈으로 주위를 살피며 대답했다.

“그게 무슨 뜻…?”

그럼 론은 벨리타인과 같이 주위를 살펴보며 전보다 조심스러운 말투로 입을 연다.

“조사 중에 인원 적 한계가 명확히 느껴지는, 그런 미약한 영업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이에 제이가 부상 입은 한쪽 팔을 고쳐 잡으며 신음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럼 생존자가 있다는 건데…,”

그 뉘앙스를 제대로 알아들은 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과거 메트로폴리아의 기업법은 떠난 자의 모든 것이 남은 자에게 승계되는 구조로 되어 있지요.”

그럼 제이는 놀란 표정으로 론을 바라본다.

론은 그런 제이에게 어깨를 슬쩍 들어 올리며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일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메트로폴리아와 관련된 의뢰를 받았었거든요. 보아하니 당시 제게 그리 관심을 가지시지 않은 것 같지만.”

그의 너스레를 받은 제이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무안함을 내비쳤다.

“어쨌든 생존자가 있다면, 그리고 그 수가 소수일수록 메킨토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더욱 거대할 겁니다.”

“예컨대?”

론이 내던진 의제에 벨리타인이 의문을 던지자,

제이가 대신 그것에 대해 답했다.

“회사의 보안 체계를 발동하거나, 이미 발동된 보안 체계를 보고받았거나.”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벨리타인,

이어 제이는 눈을 반짝이며 론에게 말했다.

“다행히 생존자 중 하나는 특정됐군요, 메트로폴리아 입구에서 마주쳤던 그 남자. 기업 메킨토의 영업사원이었잖아요.”

그 말에 옆에 있던 벨리타인도 눈을 크게 뜨며 론을 바라본다.

그런 둘에게 론은,

“그게…, ‘하나는’이 아닙니다.”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메킨토의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즉 그 자체가 이 거대한 기업의 전신이라 이 말입니다.”

제이는 즉시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곤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서 이 사실을 공께 알려야 합니다.”

* * *

“뭔가에 해방된 듯한 표정이었죠, 그는. 잘 돌아갔을까요?”

1층 광장.

뒷짐을 진 채 중앙에서 서성이고 있던 시트리에가 내게 물었다.

“잘 돌아갔을 겁니다. 대대로 메트로폴리아의 지금을 기록하고 있었을 테니까.”

내 대답에 그녀는 안심한 표정을 짓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괜히 획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품속 벨트에 묶인 작은 전구엔 껌뻑거리며 불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럼 공, 따지고 보면 이 기업을 손에 넣으신 거네요.”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그건…,”

나는 속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기업 메킨토의 인장을 꺼냈다.

은빛, 그 속 곳곳에 칠색의 무지개가 칠해진 오묘한 반지.

손바닥 위에 올라온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나는 무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에게 답했다.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게 맞겠지요. 이것은 기업 메킨토의 전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해방을 증명하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그럼 그녀는,

작게 핀 미소와 함께 조심스레 내 옆으로 다가왔다.

“다른 분들은 무사하실까요?”

사실 이미 내 감각은 멀리서 다가오는 세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겐 확답 대신 확신이란 걸 주고 싶어서.

“무사할 겁니다.”

담담히 대답해주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 이어진 침묵.

이상하게 주위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 시트리에는 한참 입술을 움찔거리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그래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면,

시트리에는 놀란 표정으로 큰 눈을 끔뻑거리기만 한다.

그 끔뻑거림에 맞춰 반짝거리는 벨트의 전구는 덤이다.

“왜 그러십니까, 시트리에.”

“그러니까…,”

그녀는 손가락으로 하얀 자신의 머리카락을 휘휘 감으며 조심스레 질문을 이어갔다.

“공께서는 깃발의 주인이시니…, 마땅히 미래의 배필 역시 예정되어 있…, 있겠죠?”

예상치 못한 질문에,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구태여 꾸밈말로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그녀에게 내 기준을 말해주었다.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예정이라는 단어에 예속될 생각은 없어요.”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오뚝한 코끝을 움찔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당근을 입가에 둔 채 식욕을 예열하는 토끼 같아 보였다.

“왜… 왜요? 아니, 어째서요? 그러니까 계속 무례를 범해서 송구합니다만, 그러니까….”

무례를 범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끝내 폭발한 궁금증에 못 이겨 질문을 잇는 그녀의 모습은,

뭔가 보는 재미가 있다.

“예속은 편중을 만들기 때문이니까요. 베나즈 깃발의 구심점은 힘입니다. 그 힘이 깃발과 깃발이 맺은 관계에 매몰되기 시작한다면, 저는 언젠가 그 매몰지점에 무게를 두게 될 겁니다. 어쨌든 저도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으니.”

시트리에는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그 감탄에 고마웠다.

한낱 인간이라는,

과거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내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찬을 비추는 그녀가 고마워.

시트리에는 다시 엉뚱한 질문을 이었다.

“그렇다면…, 끝까지 배우자 없이…?”

이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랑받길 원하고, 또 사랑하길 원하는 건 어쩔 수 없어 그것에 대해선 확답하기 힘들군요.”

시트리에는 잠시 솟아오르는 듯한 광대를 감추려는 듯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냥 뭔가 그녀의 마음속 무언가가 충족된 것 같네.

그러나 그 충족이 순전히 나에 대한 호감에 기인한 것으로 보여서,

섣불리 뭐라 어떻게 행동해야 할진 모르겠다.

이상적인 것과 도덕적인 걸 덕지덕지 이어붙여 애써 포장해 대답하긴 했지만,

나도 사람인걸.

바돈, 갑자기 당신이 보고 싶네요.

맥레인, 당신이 있었다면 남자 대 남자로서 한껏 토로해 봤을 거야.

…,

테리아.

너와 나 사이에 일었던 불꽃은 한바탕의 불똥이었을까.

아니면 거대한 화마의 시작을 알리는 반짝임이었을까.

어렵다 어려워.

애정 문제는.

* * *

부쩍 활기를 띠기 시작한 시트리에게 별안간 벌떡 일어나 한 곳을 가리켰다.

“공, 저기!”

반가움이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리면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이미 그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똑똑히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자니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론과 벨리타인에게 부축받고 있는 제이의 모습을 보자마자 달려가려 했지만,

제이는 한사코 손을 흔들며 제지했다.

“공, 저는 괜찮습니다. 이렇게 주책없이 부상을 당해 면목이 없습니다.”

“제이, 크게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짧고 뜨거운 반가움을 나눈 뒤,

론은 즉시 알아낸 정보들을 내게 공유했다.

덕분에 내 쪽에서 얻은 결론을 설명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메트로폴리아,

그 거대한 곳 가운데.

점 정도 규모에 불과한, 그러나 거대한 첫 모험의 바탕이었던 기업 메킨토의 결정적 결론은.

욕망과,

그로 인한 업보였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소모품으로 취급당했던 말단 영업사원이, 종래에 최후의 생존자가 되어 회사의 운명을 자신의 자유와 맞바꾼.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

절대로 윗자리에서 내려올 일 없다는 과신으로 설계한 메트로폴리아의 법이 끝내 아소의 해방을 위한 장치 따위로 전락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결국엔 따로 주인공이 정해져 있던 기업 메킨토의 이야기, 그 주연으로서 끝맺음 지은 우리는 얻은 지도를 통해 바깥으로 나섰다.

* * *

다시 봐도 거대하기 짝이 없는 대도시, 메트로폴리아.

그 중심지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파편화된 문명의 사막.

그곳으로 향하는 경계선에 막 도달한 나와 나를 따르는 파견대는 맞닥뜨린 웅장함에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완성과 동시에 추락한 0,

그 여파로 인해 생성된 하나하나가 도시 규모에 육박하는 기업들의 엉킴.

그것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내 눈에 떠오르기 시작한 무언가.

[키르즈의 과자 정원]

눈앞에 떠오른 선명한 글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일렁이던 글귀는 한바탕 내 시야에 새겨지듯 있다가 연기처럼 휘발되어 사라졌다.

나를 따르던 파견대 역시 같은 것을 봤는지 모두 놀란 표정으로 한마디씩 거들었다.

“세상에, 제이! 당신도 보셨습니까?”

“저도 봤습니다, 론.”

“환각의 종류인 건 확실한데.”

“어떤 기계장치 따위로 만들어 낸 걸까요?”

이게 바로 처음 아소를 만났을 때 그가 설명해주었던,

미로 지역 전역에 퍼진 ‘신기루’인가!

어느 광고 기업이 무너져 내리면서 누출된 기술 말이다.

생각해보니 참으로 절묘하다.

지금 펼쳐진 배경과 딱 어우러지는 환경의 맞물림이.

파편화된 문명의 사막.

그 끝없는 사막에 가득 채워진 광고 기업의 기술 ‘신기루’

과연 탑에 의해 날씨가 조립되는 지금 시대에 딱 걸맞은 모습이로구나.

“그럼, 갑시다.”

내 말을 끝으로 우리는 키르즈의 과자 정원이라 지칭된 거대한 사막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이거…, 과자 같은데요?”

시트리에는 놀란 얼굴로 자신의 발아래 놓인 파편들을 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을 따라 고개를 내려보자,

정말 지천에 있는 모든 것이 알록달록한 과자 파편들이다.

별안간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이런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글귀가 내 시야를 덮쳤다.

[놀라지 마십시오!]

[당신이 보는 것은 신기루가 맞지만 동시에 신기루가 아닙니다.]

[갈증에 메마른 뇌가 내뱉는 짜증이 아니란 것이죠!]

[아, 정말로 갈증이 느껴지신다고요?]

[그렇다면 최고의 음료 회사, ‘블라스투’에서 나온 신제품을 드셔보세요!]

[최고의 음료 ‘블라스투!’]

[새로 출시된 ‘모유 맛’ 절찬 판매 중!]

[키르즈의 과자 정원에서 서쪽으로 89,221걸음!]

별안간 번잡스럽게 나타난 글귀들의 연속에,

나는 뒤따르는 이들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쳐가며 어이없음을 나눠야만 했다.

어쩌면 메트로폴리아의 진짜 광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일지도.

아니나 다를까,

단내나는 과자 사막을 거쳐 위로 올라가기 무섭게 우리 앞에 나타난 한바탕의 겨울.

극명하게 갈린 경계선 너머로 휘몰아치는 눈보라는 눈에 담고 있음에도 믿겨 지지가 않을 정도다.

어떤 인챈트의 영향인가 싶었지만,

두껍게 쌓인 눈밭에 발을 들이자마자 그러한 생각을 고쳐야만 했다.

[키르즈의 냉동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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