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299화 (299/365)

299화. 미로 (2)

한 층도 채 완전히 올라가 보지 못했던 기업 메킨토의 크기만 해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곳은,

심지어 건축물이랄 것조차 없는 황량한 사막 같은 곳임에도 그 메킨토가 상대적으로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단지 ‘부지’라는 개념만으로 이런 압도를 느껴보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

아이베리아는 깃발이란 모호하지만 확실한 수단으로 국경을 긋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키르즈의 냉동 창고]

아직도 일개 냉동 창고 하나조차 벗어나지 못했을 리가 없지.

간간이 시야에 떠오른 글귀 모양의 신기루는,

우리가 한참 전에 들어섰던 지역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냉혹한 눈보라,

단단히 쌓인 눈더미.

그 까마득한 흰색 곳곳에 우뚝 서 있는 건.

얼음과자다.

다만 손잡이로 보이는 부분이 최소 거대한 건물의 핵심 골조 규모라는 것.

이내 지나치는 풍경 속 보이는 산처럼.

우리 주위를 떠나지 않던 거대한 얼음과자 하나를 드디어 지나치기 시작했을 무렵.

잠잠했던 신기루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키즈르의 3대 명물, ‘블리’]

그리고 얼마 안 가,

뒤에서 론의 한탄이 쏟아졌다.

“저게 얼음과자라고? 하늘을 찌르려고 만든 창인 줄 알았는데.”

제이 역시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그러나 시트리에와 벨리타인은 그 거대한 얼음과자에 넋이 나간 듯 흥미로운 표정으로 구경하기 바쁜 눈치였다.

솔직히 극지방에서 절여진 산 하나를 통째로 뽑아 박은 듯한 얼음과자를 어디서 볼 수 있겠어.

게다가 맛에도 신경을 썼는지 거대한 얼음과자는 얼룩덜룩한 색을 입고 있는데 말이야.

인공적으로 만든 수정에 색소를 입힌 듯, 곳곳에서 보이는 자태는 영롱해 보이기까지 한다.

조금은 더,

구경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어서 이동합시다.”

나는 거대한 얼음과자 앞에서 멈춘 이들을 이끌고 다시 묵묵히 앞을 나아갔다.

메킨토에서 얻은,

미로 일부가 구현되어있는 지도를 통해서.

* * *

혹독한 추위를 거침없이 헤쳐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제이가 가진 인챈트 때문이었다.

그는 가진 인챈트를 아주 미세한 영역까지 다룰 수 있었고, 그래서 미약한 그을음이 일 정도의 열기를 내뿜어 우리 모두를 감싸주었다.

나는 전방에서 가끔 거세게 불어닥치는 눈보라를 쳐냈기에 결과적으로 이 거대한 얼음창고는 우리에게 그다지 큰 장애물은 아니었다.

그렇게 지체없는 움직임으로 한참 이동한 결과.

째깍, 째깍.

열린 회중시계를 통해 네 시간 정도가 지났을 그 무렵.

우리 앞에는 역시나 전혀 딴판인 풍경이 나타났다.

자로 잰 듯이 뚝 끊긴 겨울의 영역, 그 너머로 펼쳐진 곳은 윤택한 갈색빛이 가득했다.

흡사 태양이 한 발자국 다가가 태워버린 사막처럼.

다만 풍경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의 단내가 느껴졌다.

그 느낌으로 얼추,

너머 펼쳐진 풍경이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러한 예상에 확신을 부여하듯 다음 풍경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눈앞에 떠오른 글귀 모양의 신기루.

[키르즈의 ‘초콜리아’]

시트리에는 바로 뒤에 펼쳐진 혹독한 겨울을 눈에 담더니 문득 알게 된 것을 우리 모두에게 공유했다.

“붕괴 전으로 따지고 보면 냉동 설비 바로 옆에 초콜리아라는 생산부지가 있었다는 뜻이네요. 그렇다면 키르즈는 당시 유행했던 ‘순환식’ 공정으로 돌아가던 기업일 거예요.”

그녀의 말에 벨리타인이 바닥에 모래처럼 쏟아져 있는 작고 네모난 초콜릿 하나를 집어 들며 물었다.

“그 말은…?”

그럼 시트리에는 손가락으로 초콜리아 너머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곳 다음 부지는 열학적 설비가 있을 거란 말이죠.”

“쉽게 풀어서 말해줄래?”

“바로 뒤에 있는 겨울과 아주 정반대일 거라고요.”

“뜨거운 건 딱 질색인데.”

벨리타인은 벌써 질린 듯 축 처진 모습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굳이 키르즈를 통해서만 갈 필요는 없다.

내게는 메킨토에서 얻은 지도가 있으니까.

거기다 우리에게 뒤편의 겨울과 버금가는 혹서를 견딜만한 것은 없다.

바람은 되려 그곳의 열을 더욱 효과적으로 부추길 테고, 그렇다고 태풍의 눈을 떠올려 그곳의 기상을 증발시켜 버려야 할 만큼 해당 경로를 고집할 이유조차 없으니.

가만,

시트리에가 말한 순환식 공정이라면 더더욱 문제가 될 수 있겠네.

어쨌든 키르즈가 붕괴하면서 그 순환식 공정이라는 건 이 일대의 환경이 되었을 테고.

그렇다면 그 열을 건드는 것 자체가 지금 일대에 구축된 환경을 뒤흔드는 꼴이 될 테니까.

결과적으로 되돌아갈 길을 잃게 될지도 몰라.

“키르즈는 여기서 끝입니다, 우린 이곳을 통해 북서로 이동할 거예요.”

나는 지도를 펼치며 그들에게 말했다.

그럼 그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다가와 머리를 맞대며 내가 내민 의견에 따라 시선을 한 곳으로 모았다.

이윽고 론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기업 ‘알가르’라…,”

그 말에 벨리타인이 반사적으로 즉답했다.

“마취계열 약제에 한해선 원류 급에 해당하는 기업인데.”

그럼 제이가 그녀에게 묻는다.

“당장 키르즈의 꼴을 생각하면 그곳도 위험한 것 같은데요.”

그러나 벨리타인은 제이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짐승에 한정한다면.”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제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재차 물었다.

“짐승이요?”

이에 벨리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가르는 두 발 걷는 자들과 짐승들의 차이를 완성 시켰을 정도로 굉장한 기업이야.”

그녀의 대답에 꼬리를 문 나는 다시 한번 재차 물었다.

“결과적으로 두 발 걷는 자들에게는 무해하다는 말이군요?”

벨리타인은 그런 내게 고개를 숙인 채 점잔을 부렸다.

“그렇습니다, 공.”

“하면 알가르를 통해 가는 게 오히려 더 좋겠군요.”

마지막으로 떨어진 내 말에 지도에서 하나둘 시선을 뗀 그들은 모두 무언의 동의를 보냈다.

* * *

과한 것은 언제나 반대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지금이 그렇다.

곳곳에서 풍겨오는 격한 단내는 얼마 안 가 코끝이 쓰라릴 정도로 씁쓸한 것이 되어 있었다.

발에 차여 굴러다니는 것들은 모두 돌멩이처럼 단단히 굳은 초콜릿들이었고,

가끔 나부끼는 바람엔 마모된 초콜릿들이 흘린 미세한 알갱이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위와 같은 말이 모두에게 통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벨리타인은 작게 흥얼거리면서까지 곳곳의 특이 문양 초콜릿들을 주워 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녀와는 반대되게 제이는 품에서 꺼낸 천으로 입과 코를 가렸으며, 론은 챙겨온 연초를 풀어 안에 있는 마른 풀을 뭉쳐 코에 박아 넣었다.

시트리에 역시 중간중간 얼굴을 찌푸렸지만,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마른 입술을 혀로 훔칠 때면.

“바람이 달아요.”

하고 해맑게 웃었다.

제이와 론과 같이 어스름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던 나는 그들 몰래 어스름을 거둬 불어오는 바람을 맛보기도 했다.

정말 그녀의 말대로,

알록달록한 단맛이 후각을 찌르고 미각을 관통하는구나.

속으로 작은 탄성을 내뱉는 와중,

바로 뒤에 있던 론이 성큼 다가왔다.

“공.”

“무슨 일입니까?”

“일전에 메트로폴리아와 관련된 의뢰를 받고 이곳에 왔을 때 말입니다. 그때는 이 미로가 절대로 들어가선 안 될 구역처럼 느껴졌었거든요. 의뢰인을 포함해 만난 모두가 미로와 관련해선 두려움을 드러냈으니까요.”

론이 왜 이런 말을 내게 하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덕분에 그가 가진 의문과 같은 것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환경적 요소만으론 당시에 그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을 리 없다, 그거군요.”

론은 이제 놀란 기색 없이 그저 눈썹을 위로 높이 치켜뜨며 입술을 쭉 내민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처럼 제 심중을 정확히 꿰뚫으셨습니다, 공.”

“그럼 그것과 관련해 알아낸 것이 있겠군요.”

“예.”

“그게 뭡니까?”

“개인적으로 메트로폴리아의 미로에 대해 조사를 몇 번 해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중심부로 들어갈 때마다 강해지는 별의 시선, 그리고 지금처럼 각종 헤쳐진 기업들에 의한 환경만으로도 위협적인 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말끝을 흐리는 그를 말 없이 기다려주자,

내 눈치를 살피던 론은 곧 주저하던 내용을 천천히 입에 담았다.

“진정 체감할 수 있는 위험은 그 환경 속에서 탄생한 ‘것들’이라는 겁니다.”

“탄생한 것들…,”

“공, 티히트라 내 기업 모나켈과 관련한 사건 있지 않습니까.”

좀 더 은밀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를 보니 나도 모르게 살짝 뒤를 살펴봐야만 했다.

지금의 론은 나를 제외한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살짝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 그의 은밀에 버금갈 만큼 고개를 기울여 주었다.

그러자 론은 그제야 머뭇 없이 안에 담고 있던 것들을 차분하게 나열할 준비를 마쳤다.

“예, 론.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관련해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다.

직접 개입해 하나하나 진상을 따져가며 들여다보았으면 하는, 그런 아쉬움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고개를 내밀어 들여다볼 수 없었던 상황이었고, 또 그렇다고 그런 상황들을 동시에 해결할 능력이 내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티히트라와 관련된 일은 한 발자국 뒤떨어진 상태에서 지어진 해결을 목격해야만 했다.

그런데,

“제가 그 과정을 수사하면서 알게 된 것들이 몇 있습니다.”

그 사건에 누구보다 앞장 서 있던 론이 관련된 것들을 내게 이야기해주려 하고 있다.

“기업 모나켈의 작업 공정입니다. 모나켈은 ‘인챈트의 공구화’를 통해 광산 사업을 해왔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땅 위에서도 불법인 방법이지요.”

“인챈트의 공구화라 한다면.”

“인챈트와 그 힘의 매개를 한 곳에 가둔 채 외적인 강압으로 해당 인챈트의 힘을 억지 발현시키는 방법입니다.”

나는 마른 입술을 한껏 적신 뒤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위에서 말한 모나켈의 그 작업 공정이, 융성했을 당시의 메트로폴리아에선 불법이 아니라는 겁니다.”

“해서요, 굳이 앞서 모나켈과 관련한 사고를 예시로 든 이유가 뭡니까?”

론은 굳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당시 모나켈에서 일어난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떨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생존에는 두 가지 의문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하나는 모나켈이 공구화한 인챈트의 증발과 다른 하나는 미채굴 지역 일부가 마찬가지로 증발한 흔적을 띄고 있다는 것.”

재상의 보고서에선,

볼 수 없었던 내용이다.

“바꿔 말하면 유일한 생존자는 뒤따르는 두 개의 의문을 통해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그 생존자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아쉽게도 저로선 그 부분까지 접근할 순 없었습니다.”

내 얼빠진 표정을 살펴보던 론은 덩달아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푹 내쉬다가.

다시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공, 메킨토를 떠나기 전 해주셨던 말씀 있지 않습니까. ‘아소’ 말입니다. 메킨토의 말단 영업사원이자 ‘유일한 생존자’요. 비록 그는 모나켈의 사례와는 다르나 역설적이게도 종래엔 메킨토의 유일한 전신이 되었습니다.”

“그렇지요.”

“마치 공식 같지 않습니까? 어떤 ‘만들어진 운명’처럼 느껴질 정도로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앞서 두 사례에서 보인 공통된 공식처럼, 이 미로가 진정으로 위험한 이유는 미로 내에 앞서 말한 공식과 같이 살아남은 자가 있을지도 모를 거란 겁니다.”

“론, 당신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뭡니까.”

“주위의 환경적인 요소든, 그것이 인챈트가 되었든 생존자는 결정적으로 그것들을 통해 살아남았다는 겁니다. 예컨대 증발한 것과 ‘융화’를 한 듯이.”

아니,

아니다.

론, 당신은 아직 본심을 꺼내지 않았어.

눈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마른 목소리로 되물었다.

“론.”

그럼 그는 잠시 입술을 꾹 닫고 있다가, 이내 낮고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공, 제리드를 믿지 않는다는 거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들을, ‘제리드를 경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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