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301화 (301/365)

301화. 미로 (4)

메트로폴리아만이 가지고 있는 새벽으로도 온몸의 잔털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과거의 광기가 나열된 풍경으로도 이런 소름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내 감각을 거스르고 있는 기척에 온몸의 잔털을 삐쭉 세워야 했으며,

마찬가지로 형용할 수 없는 소름을 느껴야만 했다.

이런 나를 뒤이어 한 박자 늦게,

제이의 얼굴이 싹 굳었고.

다음으로 론, 벨리타인, 시트리에가 막연한 공포를 느끼며 몸을 굳혔다.

자연스럽게 자루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번잡스러운 기척이 느껴지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이에게 나머지 인원을 맞긴 채,

한창 앞장서 걷던 나는 곧 앞선 모든 것의 시발점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우윽, 우윽, 우윽.

그것은 작게 고인 물가에 고개를 처박은 채 욕지거리 비슷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살덩이?

뼈를 발라낸 두 발 걷는 자들을 한 대 뭉쳐 그대로 반죽해놓은 듯한 그것은 지금,

물을 마시고 있다.

다리라 부를 수 있는 부위는 살덩이에 짓눌려 꺾여 있었고, 등 위로 더듬이처럼 돋아난 두 팔은 뭔가에 닿은 달팽이의 눈처럼 파묻힌 채 꿈틀거린다.

저게,

저게…,

대체 무엇일까?

이런 내 의문을 대변하듯 이제는 익숙한 신기루가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키르즈의 ‘식욕’]

지저분한 광기로 점철된 광고도, 그렇다고 어느 구역임을 알려주는 소개문도 없이.

신기루는 해당 생물체에 대한 설명을 덩그러니 내놓았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저 부분은 누출된 광고 기술인 신기루의 변질된 부분이라는 것을.

신기루가 정확히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특정 지역이나 그러한 지역의 특성으로 인한 목격자의 연상을 통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이곳에 먼저 와 저것을 목격했을 무수한 자들에 의해 고착된 연상을 확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기루가 풀린 지 한참이 지난 지금 상정하지 않았을 저것의 명칭이 이렇게 나타날 리 없잖은가?

모든 기척을 죽인 채,

움찔거리며 물을 마시고 있는 저것에 대해 다시 한번 차분히 정의를 내려보기로 했다.

당연하게도,

저것은 괴물일 것이다.

그리고 근래에 아이베리아의 ‘의무’를 다하면서 알게 된 정보들, 즉 괴물을 성립시키는 3원칙인 ‘발단’ ‘전이’ ‘증폭’에 입각해 판단 내려보자면.

기업 키르즈의 환경이 발단…,

아니.

식욕이라 불린 저 살덩이 자체가 발단이어야만 해.

그럼 메트로폴리아의 생태를 따져야겠지.

저것 자체는 제이가 말했던 광증에 의해 나타날 가능성도 있으니까.

예컨대 누군가 별빛에 미쳤고, 하필이면 미친 시점 주위의 환경이 기업 키르즈의 구역이었던 거야.

해서 자연스럽게 식욕이 가장 강력한 매개로 작용한 거지.

키르즈는 그런 식욕을 매개로 태어날 괴물에겐 마르지 않는 샘물이자 극상의 환경이 되었겠고…,

그렇담 키르즈의 환경은 식욕의 무한한 확장을 일으키는 ‘전이’로서 작용했겠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저 모습이 증폭을 통해 다다른 식욕의 모습일 것이다.

모든 것이 다 가설일 뿐이지만.

내 주관으로나마 놈에 대해 제법 그럴싸한 청사진을 그렸으니 이제 이를 토대로,

놈을 설계하리라.

검집에 단단히 맞물려 있던 새비안을 뽑아 들었다.

두들기기 전, 하늘의 별이었던 그것은 메트로폴리아의 새벽 한 조각을 훔쳐 머금은 채 진득이 반짝였다.

그저 검집에서 뽑아 드는 것뿐인데도,

날에 닿아 갈라지는 바람결의 감촉이 손목을 통해 절절히 전해진다.

위 일련의 행동들은 지금 하늘에 있는 별들의 속삭임만큼이나 은밀한 것이었지만.

키르즈의 식욕은 일변한 찰나의 기류를 놓치지 않은 듯 처박았던 고개를 번쩍 들어 기민한 반응을 보였다.

꺽, 꺽, 끅.

거북하고 역겨운 트림,

그에 맞춰 꿈틀거리는 쩍쩍 갈라진 살덩이.

그리고,

드러난 얼굴 부분.

거대한 입, 그 위 콧구멍으로 보이는 두 개의 구멍만이 덩그러니 뚫려 있는 그것은.

킁, 큭, 컥킁킁 컥.

주위 바람마저 포식할 기세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놈이 코로 빨아들이는 바람의 기류가 살갗을 통해 느껴질 정도였다.

이윽고,

키르즈의 식욕은 그 콧구멍으로 날 정확히 지목했다.

마치 검은 두 눈으로 날 바라는 것처럼.

직후.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숨소리조차 내지 않던 살덩이는 멍하니 벌린 입술을 한 차례 움찔거리더니…,

“윽!”

순간 놈이 남긴 잔상에 시선이 빼앗길 뻔했다.

그 정도로 재빠른 놈의 움직임에 맞춰 겨우 비튼 상체 위로, 거대한 살덩이가 탄알처럼 스쳐 지나갔다.

쾅!

그 자체의 육중함으로 이루어진 담백한 공격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을 보였음에도,

살덩이는 들이박은 그 모양새 그대로 다시 내 쪽을 향해 튕겨 왔다.

그 움직임에 맞춰 몸을 사선으로 튼 나는 그대로 새비안을 치켜들어,

놈이 발휘한 추진력을 이용해 그대로 스쳤다.

쾅!

다시 한바탕 탄환처럼 바닥에 처박힌 살덩이는,

크헉, 헉, 거걱.

고통에 몸부림치듯 자지러지며 바닥을 굴렀다.

새비안에 의해 베어진 부분에선 역겨운 감색 액체가 울컥거리며 튀어나왔지만,

거대한 입은 접시를 핥듯 자신의 몸에서 흘러내린 내용물을 꾸역꾸역 삼키기 시작했다.

정말 식욕이라는 게 어느 살아있는 개체로 나타난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흘러내린 자신의 내용물을 모두 섭취한 살덩이는 다시 내게 순수한 맹목을 쏟았다.

새비안에 베인 부분은,

어느새 아물었는지 갈라진 살결처럼 희미한 흉터로 봉합되어 있었다.

베는 것만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면,

양단하면 될 뿐이야.

몸속,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0의 바람결 하나를 뽑아 검에 실었다.

푸르스름한 빛으로 달아오른 새비안은 담긴 바람결에 공명하듯 매섭게 진동했고,

그렇게 나는 다시 달려든 살덩이를 향해 거대한 초승달을 그렸다.

팍!

매서운 바람,

그 충격파가 검 끝에서부터 둥글게 퍼져 사방을 때린다.

살덩이는…,

허헙, 저적, 쩝, 으극.

멀쩡하다.

되려 뭔갈 바삐 먹고 있는 듯 내 앞에서 되새김질하고 있다.

꾸우욱 꺽.

급한 듯 씹고 있던 것을 황급히 삼킨 살덩이는 콧구멍의 방향을 내 쪽으로 하곤,

이어 거대한 입꼬리를 씩 올렸다.

덕분에 확인했다.

식을 부리는 욕망의 범위가,

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새비안으로 내비친 0의 파편까지 삼킬 줄이야…!

키르즈의 식욕은 곧바로 거대한 입을 쩍 벌렸다.

종기처럼 축 처져있는 목젖이 다 보일 정도로.

그리고 그렇게 벌린 입에서,

방금 내가 내민 것과 똑같은.

그러나 정형되지 않은 순수하고 무식한 풍압이 폭발하듯 튀어나왔다.

* * *

연달아 터져 나오는 폭음,

그에 이끌리듯 제이가 서둘러 달려갔지만.

동시에 폭발하듯 뛰쳐나온 풍압에 한바탕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큭…!”

한참 뒤에 있던 론과 시트리에는 아예 날아갈 뻔했지만 벨리타인이 그들을 낚아챘다.

이 바람은,

디안 베나즈의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디안에 의해 정형되지 않은 바람이었다.

제이는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보았다.

너머에 펼쳐진 광경을.

동시에 그의 두 눈에 신기루가 나타났다.

“키르즈의 식욕…?”

그것은 그조차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제리드의 기록물에서도 볼 수 없었던, 지금의 메트로폴리아에 의해 완성된 것처럼 보이는 존재.

하지만 제이는 그 역겨운 살덩이를 보자마자 제일 먼저 경이를 느꼈다.

무너졌음에도,

기업은 태동하고 있구나라는 걸 실감했으니까.

그러나 금세 정신을 환기한 제이는 서둘러 검을 뽑아 들었다.

온몸에 냉철을 묻혀가며 접근하던 그때.

키르즈의 식욕과 수많은 교차점을 나누던 디안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공…?”

그 눈빛을 읽은 제이는 작게 되묻듯 중얼거려야만 했다.

하지만 곧 디안의 의중을 파악한 제이는 짧게 고개를 끄덕인 채 슬슬 뒷걸음질 쳤다.

* * *

놈은 내가 쏘아 올린 바람 한 줄기를 섭취하고,

그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소화했다.

강렬한 흡입과 사출을 자유자재로 토해내며, 마치 중력을 조작하는 듯한 놈의 공격은 충분히 위력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놈이 섭취한 힘의 총량을 벗어나진 못했다.

그래서 보다 더 강한 바람을 실어 휘두르면 놈은 기다렸다는 듯이 게걸스럽게 입을 벌려 섭취했다.

급기야 위 과정이 단순하게 반복되어서,

마치 짐승에게 먹이를 주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물론 일대는 가면 갈수록 걸레짝이 되어갔지만 말이다.

그리고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 힘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해서 나는 놈이 소화한 총량 그 이상의 힘을 담아 반복해 휘둘렀다.

그리고 위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어갈 때쯤.

꾹 쿠헉, 어거걱.

살덩이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더니 걸쭉한 침을 흘리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서 벌어진 일.

그대로 양손으로 검을 고쳐 잡은 채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그렇게 키르즈의 식욕은 한바탕 온몸을 격하게 꿈틀거리다가 바닥에 고꾸라져버렸다.

거억, 거억, 거억.

섭취한 모든 것을 게워내듯 역겨운 것들을 토해내던 그것은 금세 홀쭉해졌다.

끝내,

놈의 욕지거리가 멈췄을 때쯤.

비쩍 마른 입술 사이로 매끈한 팔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마치 허물을 벗은 곤충처럼,

입술 사이로 반대쪽 팔이 불쑥 튀어나왔고.

이내 튀어나온 양팔을 이용해 거대한 입을 억지로 벌리더니 메마르기 짝이 없는 상체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 존재가,

눈에 담기기 무섭게 떠오른 신기루는.

[키르즈의 식욕 – 화신]

[측정 위험도 100]

[해당 재앙을 마주친 회사는 파산을 각오하십시오]

어디서 빌려온 계측을 통해 경고를 알리기 급급했다.

막 고치를 뚫고 나와 날개를 말리는 나비처럼.

한바탕 축축한 몸을 펼쳐 가만히 있던 그것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고는 팔을 들어 손가락을 날 가리켰다.

동시에 내 몸속 어딘가에서부터 끓어오르기 시작한 본능.

그것은 위협을 경고하는 것이었다.

해서 놈의 선상에서 벗어난 움직임을 취하자 그 즉시 손가락 끝에서 청명한 은빛 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쿠구구──── !

은빛은 스친 선상에 선명한 폭발 줄기를 남기며 거대한 준동을 낳았다.

키득, 키득.

웃음, 아니면 거친 숨소리.

이내 그것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 손바닥 모아 내 쪽으로 내밀자,

곧.

손바닥에 달과 같은 은빛의 구체가 맺혔다.

그리고 그 구체를 시발점으로 거행되는,

막강한 인력.

마법?

아니, 발휘되는 힘의 방식을 보면 인챈트에 가깝다.

저것의 발단이 되었을 존재가 생전에 보유했던 인챈트인가?

모르겠다.

저 존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어.

그래서 이제,

구태여 노력해 이해할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다다른 결론은,

내게 남아있던 아주 작은 망설임조차 없애버렸다.

그에 대한 결과는.

주저 없는 힘의 해방.

[0]

말 그대로 품고 있던 인챈트를 개방함과 동시에,

구멍 뚫린 메트로폴리아 상공 한쪽에 맺힌 태풍의 눈.

그 시선으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압도적인 기압이.

깔려있던 인력을 우습게 짓누르고 휘발시킨다.

기. 기긱 끽?

그것은 기압에 짓눌려 그대로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태풍의 한 폭을 실은 검을 내리쳤다.

* * *

제이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저 하늘에 맺힌 태풍의 눈,

그 거대한 눈은 자신을 포함한 파견대 전원에게 아주 따스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덕분에 지금도 쏟아져 내리고 있을 기압으로부터 무사했지만,

잠시 후.

───────── !

고막의 진동 범위를 넘어선,

이명으로 가득한 묵음과 동시에.

메트로폴리아의 미로 위로 한바탕 거대한 장벽이 세워졌다.

그것은 대략 수 분간 공중을 체류하다 겨우 진정되어 쏟아져 내렸고,

그 묵시록적인 광경을 지켜보던 제이는 뒤늦게 벽의 시작점을 향해 달려갔다.

이윽고 제이는,

반쯤 휘발된 어느 존재 머리맡에 서 있는 디안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그의 손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작은 팔찌가 들린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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