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307화 (307/365)

307화. 세 개의 변칙 (2)

작은 탁상.

그 주위에 다섯이 둘러앉아 있다.

귀 큰 자 둘에 난쟁이 둘,

그리고 인간 하나.

탁상은 다섯 모두가 둘러앉아 쓰기에는 참으로 볼품없고 비좁았지만,

그것과 어울리지 않게 그들 얼굴 면면엔 대단한 크기의 권위가 묻어 있었다.

그런 다섯 가운데,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단안경을 낀 난쟁이가 주위에 둘러앉은 자들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난쟁이 왼편에 앉아 있던 귀 큰 여인이 새침한 표정으로 찻잔을 집으며 말했다.

“생각할 게 있나요?”

찌푸려진 눈썹,

입가에 잡힌 신경질적인 주름.

덕분에 가뜩이나 솟아 있던 두 광대가 아예 뾰족해 보일 정도다.

그렇게 짜증을 부리며 자신의 할 말을 마친 여인은 이내 입속이 더러워진 양 바삐 찻물을 머금었다.

이윽고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중년의 인간 남성이 껄렁한 표정으로 단안경의 난쟁이에게 재차 물었다.

“그 안건이 언제 들어왔다고요?”

그의 질문에 난쟁이는 뭉툭한 손으로 흐트러진 단안경을 고쳐 쓰며 즉답했다.

“어…, 하나 둘…, 수개월 전…? 아무튼 그 정도 일 겁니다.”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것 치곤 별로 아는 게 없어 보이는 난쟁이의 반응을,

중년 남성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식은 미소를 지었다.

탁상 위에 툭 던져진 주제가 무엇이기에 이리도 무시하는 듯한 분위기가 흐르나 싶었지만.

곧 그의 오른편에 앉아 있던 난쟁이 여인이 두꺼운 입술을 열어 가벼워진 분위기를 물리쳤다.

“까도 알아야 깔 수 있는 거 아니오?”

그러자 셋의 눈초리가 난쟁이 여인에게 비수처럼 콕콕 박힌다.

하지만 그녀는 별 대수롭지 않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할 뿐이었다.

날 선 발언에 제대로 베였는지 난쟁이는 쓰고 있던 단안경을 벗어 탁자 위에 올려놓곤 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콧등 위에 맺힌 땀을 닦아야 했다.

이 일련의 동작 가운데,

난쟁이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느낌은 하나도 느낄 수 없었다.

배웠고 또 그것을 적극적으로 써먹기로 작심한 듯, 정형화된 교양적 행동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행동을 묵묵히 지켜보던 난쟁이 여인은 작게 탄식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에 껄렁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던 중년 남자는 난쟁이 여인에게 따지듯 물었다.

“왜 그렇게 날이 서 있는 거요, 레베카?”

그 말에 레베카라 불린 난쟁이 여인은 기다렸다는 듯 답한다.

“왜냐하면, 바나스가 학회의 장이기 때문이지요? 내 반응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갈레오?”

따지듯 묻는 레베카의 말에,

중년의 인간 남성 갈레오는 특유의 껄렁한 언행을 이용해 껄끄러운 능청을 피웠다.

“그가 학회의 장이니 우리가 더욱 나서서 참작해 줘야지요. 그쪽은 항상 바쁜 동네니까.”

그 능청에 레베카는 질린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재차 입을 열려 했지만,

지금까지 쭉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귀 큰 남자가 불쑥 그 틈을 비집고 한마디를 쏟았다.

“핑계도 정도가 있지, 무려 ‘오른손’과 관련된 일이잖소.”

그의 참견에 직전까지 가벼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던 갈레오는 대뜸 매서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제아무리 같잖은 안건이라고 해도 거기에 ‘오른손’이란 단어가 들어갔으니 우리 모두 호들갑이라도 떨어야 한다 이 말인가, 호킨스?”

“해서, 갈레오. 그 안건이 같잖은 안건은 맞고?”

“우리가 같잖게 느낀다면.”

“미안하지만 자네가 말하는 우리 속에 나는 없는 것 같군.”

금방이라도 불꽃이 일 것만 같은 상황.

그 상황 가운데서 식은땀을 비 오듯 쏟아내던 바나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모두 제 잘못입니다. 근래에 ‘왼손’급 기술자들의 논문 분량이 늘어나는 바람에 제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바나스의 말에 레베카는 곧장 콧방귀부터 뀌었다.

“말을 들어보니 그들 논문도 좀 더 오랜 경력을 가진 왼손 급들이 처리한다던데.”

“레베카, 그래도 엄연히 학회장은 납니다. 그들 선에서 결제가 이뤄진다 한들 최종 승인을 하는 것은 나예요.”

“아, 들리셨습니까? 그냥 혼잣말한 건데.”

처음으로 바나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바나스는 곧 레베카의 눈치를 살피며 구겼던 얼굴을 펴야만 했다.

“자…, 그래서 이번 오른손 등급의 의회에서 다룰 안건은 몇 개월 전에 올라온 ‘등급 신청서’입니다.”

다시 주변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연 바나스는 곧장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를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그렇게 바나스를 주체로 한 의회가 드디어 진행되려나 싶었지만,

“신청된 등급은 ‘오른손’입니다, 그리고 보다시피…,”

끝내 한마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참지 못한 귀 큰 여인이 쏘아붙였다.

“바나스, 혀가 갑자기 떫어지기라도 한 겁니까? 좀 시원스럽게 말 못 해요?”

“실례했습니다, 마델롱.”

꾸벅 인사를 한 난쟁이는 다시 서류에 집중했다.

사실 서류에 시선을 몇 초만 쏟았어도 이번 의회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나스를 제외한 넷은 서류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바나스의 입을 통해 듣기를 원할 뿐.

이윽고 바나스는 마른 침을 삼키며 몇 글자 없는 서류의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미상의 기술자 쪽 일방적인 발언이지만, 해당 물건은 예전에 소실되었던 오른손 등급의 무기를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한창 바나스를 변호해주던 갈레오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소리친다.

“이런, 바나스. 혹시 병신이시오?”

이는 아는 것이 없는 와중에도 바나스를 변호해줬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 * *

용의 시대 이후,

새로운 야금술의 정립을 위해 결성된 모임.

‘장인 협회’

각지, 각자의 이해를 내놓을 만큼 훌륭한 야금술 장인들이 기술적 진보를 위해 만든 집단지성.

그 집단지성으로 이뤄낸 것은 용의 시대 이후에 새긴 역사 전부라 해도 될 정도다.

본디 첫 시작점은 숭고한 업적을 이룬 자들이 마땅히 주축이 되어 협회를 이끌어 갔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협회의 주축은 고착화가 진행되었고,

그것은 이내 암묵적인 협의가 되어 협회 내 규칙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 장인 협회의 학회장 바나스가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바나스 켈

그는 그의 아버지 욘나스 켈의 후광을 톡톡히 받은 인물이었다.

욘나스 켈은 장인 협회 내에서도 전설적인 대장장이이자,

현시점에서 다섯 자루에 불과한 오른손 등급의 무기 중 두 자루를 만들어낸 자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아무런 능력도 없는 바나스가 지금의 장인 협회 학회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욘나스가 위대했다는 뜻이리라.

이런 장인 협회 내엔 직책을 위시한 서열이 존재한다.

그중 정점의 자리는 ‘오른손’

왜 오른손인가 하는 말들은 많았지만 그런 의문이 무색하게도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맨 처음 장인 협회의 깃발을 만들 때, 깃발을 그리던 이가 오른손을 그려 넣었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로 시작된 것이니까.

하지만 기원이 단순할 뿐 협회 내 오른손의 위상과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들만이 협회 내 모든 결정을 내릴 수 있으니까.

그 오른손 바로 밑엔 ‘왼손’이 있다.

장인 협회 내 실질적인 기술적 소양이 집중되어있는 직책이기도 한데,

누구도 함부로 말하진 않지만.

툭 까놓고 말하면 지금 오른손에 앉아 있는 자들보다 실력이 뛰어난 자들도 있을 정도다.

다만 왼손은 오른손에 의해 파벌화가 되어 있었고, 그 덕에 왼손의 결실은 곧 오른손의 결실이라는 희대의 공식이 협회 내에 성립된 지 오래다.

하여 왼손 내부적으로 어떤 성찰이나 성토가 나올 리 있겠는가?

그러나 무기에 욕심이 많은 아이베리아의 몇 기사들,

남만의 용병과 서해의 해적들은 이미 협회와 관련된 물건들이라면 왼손에서 나온 것들을 더 좋게 친지 오래다.

애초에 그 잘난 오른손들은 행정 놀음을 하느라 물건을 안 만든 지 꽤 되었고,

그나마 협회 내 공산품에 개입하는 것이라곤 왼손들의 작품에 ‘인정’ 한마디를 거들어 값을 부풀리는 것뿐.

그러다 보니,

협회 내 최고 등급인 ‘오른손’에 해당하는 무기는 오래전부터 다섯 자루로 고정되어 있다.

영원한 겨울이 담긴 할버드, 벨라 가르시.

바다의 심장이 이식된 참수도, 레에테.

북서의 온난을 품은 계절 절단기, 엑스.

순간이란 이름의 벼락이 심긴 도, 켈라몬트.

판과 판 그리고 검과 검, 아몬 – 키몬.

하나같이 백색 모루,

높은 숲.

인간의 공학 찬가로부터 탄생한 불후의 명작.

해당 무기와 결합 된 인챈트를 통해 그 이름이 완성된 전설적 무구들.

지금의 오른손은 그 꿈과 같은 무구들의 명성에 들러붙은 채 위상적 이득만을 얻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지금,

어느 이름 모를 기술자가 이미 죽어 사라진 오른손 등급의 무기를 부활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과거,

통찰의 안구를 머금은 성검, ‘에르에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그 기사왕의 검이.

* * *

“정말 밖으로 나설 거야?”

찍찍거리며 묻는다.

“이번엔 달라, 널 지켜줄 검이 없거든.”

경박한 목소리엔 무거운 걱정이 담겨있다.

“심지어 세상은 너의 피를 용인하지 않아.”

계속해서 덧대어져 가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꿋꿋이 오른팔을 다 가릴 기다란 장갑을 낀다.

그러면서 테리아 루스,

그녀는 두 눈을 반짝이며 스케비의 앞선 물음에 대한 답을 담담히 꺼냈다.

“나설 거야.”

기다란 장갑의 손가락 부분까지 꽉 낀 그녀는,

“과거 오른손이었던 아르테서스의 마지막 검이 지금은 내 오른팔에 맺혀 있으니까.”

이내 햇살 같은 찬란한 금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스케비에게 말했다.

“그렇기에, 그럼으로써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됐으니까.”

스케비는,

한참 코를 움찔거리다가 물었다.

“그렇게 해서 네가 얻는 게 뭔데?”

오른팔에 꽉 끼워진 검은 장갑을 이리저리 돌려 보던 테리아는 스케비의 그 물음에 싱그러운 웃음과 함께 즉답했다.

“나.”

이윽고 리넨 셔츠 위로 자락이 긴 코트를 걸친 그녀는,

“그리고 어쩌면, 우리.”

당당히 바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만찬을 마치고 집무실로 들어가면,

미리 바돈이 가져다 놓은 것으로 보이는 간식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세라가 만든 비스킷 위에 얹어진,

조합이 만든 뭉근한 초콜릿.

그리고 그 위에 뿌려진 기업산 꿀 시럽.

건실함 위,

그것을 지지해주는 달콤함은 분명 없어선 안 될 요소이지.

하지만 무턱대고 받아들인다면 어느 순간,

건실함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은 무뎌지게 될 것이고 그 위를 뒤덮은 달콤함마저도 씁쓸하게 느껴질 거다.

“하.”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와버렸다.

정신 차려라, 디안.

고작 간식이잖아.

집게손가락으로 비스킷 하나를 집어 한입에 쏙 집어넣었다.

…,

맛있다.

자리에 앉아 버겁게 쌓인 서류를 헤치고,

서랍에 보관해 두었던 낡은 팔찌를 꺼냈다.

메트로폴리아, 미로에서 마주친 괴물에게서 얻은 그것은 내 예상대로라면…,

인챈트.

그러나 과연 가능할까?

맥레인은 내게 말했었지.

복수의 인챈트는 그 몸이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그런데 맥레인을 통하였기에 비로소 내가 가진 검술이 완성된 것처럼.

이 팔찌에 내재 된 인챈트가 되려 마그나베노스의 제어에 도움이 된다면?

아니면 마그나베노스의 제어 하에 이 팔찌 속 감추어진 재해가 온전히 갈무리 된다면?

묘하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은 채,

바로 옆 책장에 꽂혀 있던 용의 시대를 꺼내 펼쳤다.

이어 봉인을 뜯을 때 쓰는 단검을 들어,

엄지를 살짝 벤 나는.

빛바랜 보석 부분에 그 엄지를 가져다 댔다.

엄지에서 울컥 쏟아진 핏물은 팔찌의 굴곡을 타고 흘렀고,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작위적이고 묘한 기분.

베어진 엄지를 향해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무겁고 차가운 감각.

어느새 추위에 떨기 시작한 전신.

그리고 얼마 안 가 뚝 그친 추위.

본능적으로 팔찌에서 엄지를 땐 나는, 조용히 펼쳐진 용의 시대를 살폈다.

한 장,

한 장.

넘겨보지만 빛나는 글자는 없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다음 장을 넘겼을 때.

[1]

한 글자가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다.

서둘러 다음 글자들을 눈에 담아 머릿속에 나열시킨 나는, 곧 팔찌에 담긴 재해의 실체를 마주할 수 있었다.

[17년, 루아니르]

[세상을 향해 열 걸음 더. –달-]

그것은 이 세상을 향해 기울였던 달의 관심.

그 관심으로 말미암아 끌어 당겨졌던 세상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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