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310화 (310/365)

310화. 도달한 진실

[모나켈 광산 폭발 사건]

[사후 일지]

사망자 252명.

생존자 1명.

비인도적 사업 방식으로 위 사건을 촉발한 기업 모나켈은 사건 직후 핵심 인물 전원이 실종되어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

해당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는 추후 유발될 수 있는 위험을 고려하여 레프리길이 임시 보호함.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제리워드 은행과 추가적 공조 진행.

제리워드 은행 산하, ‘제리워드 복지원’에 사고의 생존자를 인도.

딱 봐도 알 수 있다.

구린내가 진동한다는 것을.

거기다 제리워드 은행 산하에 기관이 있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야.

내가 보기에 이 사건 일지는 이렇게 읽힌다.

어쩌다 보니 제리워드랑 친해졌네?

그래서 모종의 거래를 통해 생존자를 건네줬어!

그 증거로 티히트라 내 비대할 만큼 확대된 레프리길이 있다.

물론 수많은 비약을 거쳐 내놓은 결론이지만,

나는 언제나 그랬듯 내 촉을 믿는다.

레프리길.

그래도 지금까지 자부심을 느끼며 몸담아왔던 곳이었는데.

고블린이라는 무결한 중립, 그 이상을 방패 삼아 안에선 제법 더러운 일을 하고 있었군.

나조차 깜빡 속아버렸다.

누구일까?

일단 고블린 판사들을 방패로 삼을 수 있을 정도면 최소 그들의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어야만 하겠지.

지금 세워지고 있는 이 티히트라 지부의 장이거나,

그보다 더 위에 있는 국장.

아니면…,

레프리길의 꼭대기에 있는 수장일 지도.

그저 생각을 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려 온다.

티히트라의 지부장이라면 건드려볼 만도 한데 그 위부터는 내가 감당할 수 없어.

그렇다고 베나즈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도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시기가 너무 좋지 않아.

베나즈 가문은 지금 본편이라 할 수 있는 2차 원정에 대한 대대적인 준비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야.

그런 상황에서 레프리길에 대한 간섭과 조사를 위시한 보고를 올린다면,

그 자체로 여러 가지가 꼬여버린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제리워드를 놓치게 되겠지.

레프리길이란 꼬리를 남긴 채 쫓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달아나 관찰자 시점에서 여유롭게 상황을 관망할 것이다.

더욱 근원적인,

누구도 발을 뺄 수 없는 핵심적인 한방이 필요해.

그러기 위해선 좀 더 다가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 유령 같은 복지원에 대해 더 파봐야겠지.

수많은 의문 가운데 해결된 건 아직 하나도 없다.

제리워드는 왜 생존자를 인계받길 원했을까?

아니, 그것보다 더 냉철한 시선으로 다뤄볼까?

왜,

제리워드는 고작 베일 한 장 들추면 나오는 곳에 이러한 정보를 배치해 두었을까?

추가적인 자료를 품에 안은 채,

막 몸을 돌려 빠져나오려는 찰나.

“론.”

자료실 문 앞에 한 남자가 길을 가로막고 서 있다.

“퍼시슨…?”

그는 냉소적인 얼굴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곳은 경비원이 올 수 없는 곳인데.”

내 물음에 퍼시슨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즉답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퍼시슨, 휴가 중인 내가 그렇게 아니꼽다면 당장 휴가를 반납해주겠어.”

“그렇게는 안 돼. 개정된 규칙에는 휴가를 반납할 수 없다는 조항도 들어가 있거든.”

“지랄, 자네가 들어도 어처구니없는 규칙이잖나?”

퍼시슨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엄연한 규칙이 되어버렸지.”

뭐랄까.

퍼시슨의 저 단호한 모습은 조금 오싹하게 느껴질 정도다.

아니면 저것이 그의 본래 모습일 지도.

나는 끝까지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그래, 알겠어. 순순히 나가줄게.”

천천히,

퍼시슨을 향해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세 걸음을 옮겼을 때쯤.

퍼시슨은 조용히 품에서,

철컥─

작고 화려한 머스킷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퍼시슨?”

“론, 이해해줬으면 좋겠군. 티히트라 지부에서 규칙 미 준수자는 즉결 처형이다.”

“개소리!”

나는 퍼시슨에게 있는 힘껏 윽박질렀다.

그러자 그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두 걸음 뒤로 빠르게 물러섰다.

“티히트라 지부의 규칙은 누가 정했지? 승인은 누가 했고?”

“일개 탐정인 자네가 알아서 어쩌게?”

“그래야 일개 경비원 따위가 발휘하려는 즉결 처형권을 이해하게 될 테니까.”

퍼시슨의 물러난 두 걸음만큼,

확보한 기세를 이어가야 한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더욱 퍼시슨을 향해 다가갔다.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퍼시슨.”

“뭐… 뭐가!”

태연하게 몰아붙이는 내 모습에,

다행히도 퍼시슨은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나 주었다.

“그러니까, 그 ‘화약’은 어디서 났지?”

일개 경비원이 화약을 머금은 머스킷을 들고 있다?

레프리길의 본사 경비원들조차 에스톡 한 자루와 소드 브레이커 한 자루를 들고 있는 마당에?

지금 화약의 현 시세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퍼시슨, 잠시 면면을 스쳤던 동료로서 묻는 게 아니야. 탐정으로서 네게 묻는 거다.”

“가… 강화된 규칙에 따라 경비원들에게 지급된 무기다.”

그의 표정과 계속해서 반복되는 한 단어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에게 지금 믿을 것은 그 잘난 규칙뿐이라는 걸.

그렇담 허풍을 떨어보자.

“퍼시슨,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진 않았는데…,”

정말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하자, 그는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신경질적으로 되물었다.

“뭐, 뭘 말이지?!”

“나도 새로운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거든.”

“개소리!”

“그런 반응일 수밖에 없는 거 이해해, 내가 말하는 새로운 규칙은 탐정에게만 적용되는 것이거든.”

“무… 뭐?”

퍼시슨이 총을 든 손을 살짝 내렸다.

“괜찮아, 너는 너대로 새로운 규칙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잖아? 그냥 규칙이 개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자고.”

좀 더 여유로운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간다.

그럴수록 그는 총을 더욱 아래로 내리며 마른 입술을 바삐 적셨다.

그렇게 상황이 소강으로 접어들려는 그 순간.

나는 퍼시슨의 표정에서 일어난 아주 미묘한 변화를 포착했다.

그리고 그 표정은 일찍이 거짓말임을 알고 있었다는 회심이 섞여 있었다.

이제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을 다해 뛰었다.

탕 ─ !

동시에 뒤에서 치달아온 굉음이 내 귀 뒤를 때린다.

그러나 빗나갔다.

퍼시슨은 아마도 방금 인생 처음으로 총을 쏴봤을 것이다.

이내 나는 창문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 그 시점에 맞추어 다시 한번,

탕 ─ !

굉음이 내 고막을 때렸다.

박살 난 창문을 관통해 그대로 바닥에 착지한 나는, 반사적으로 뜨거워진 옆구리를 감싸 쥐어야 했다.

옆구리를 감싸 쥔 손엔 금세 진득하고 비릿한 그러면서 붉은 것이 묻기 시작했다.

* * *

“헉… 헉…!”

시간이 흐를수록 내뱉는 숨이 점점 무겁고 거칠어졌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깊은 숲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멈출 수 없다.

되돌아가 구호를 바라는 짓은 저들의 손아귀에 스스로 들어가는 꼴이다.

이곳에서 리케니엔으로 가려면 티히트라를 거쳐야만 해.

다른 길을 선택한다 한들 하나같이 맹수의 아가리처럼 무사를 장담하기 힘든 길뿐이다.

그러니,

“후읍… 후읍….”

서둘러 작은 그루터기에 걸터앉은 나는 품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유리병 안에 담긴 것은 8월의 햇살.

그다음 상의를 들쳐 환부를 드러낸 나는 지독한 고통을 안겨준 상처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총알이 박히진 않았다.

갈빗대 사이를 스치듯 관통했어.

서둘러 유리병 뚜껑을 따고, 그 위에 오목한 유리알을 껴 넣은 나는 환부에 비추듯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곧,

지지직 ─

상처로부터 타는 피 냄새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으… 으으윽!”

한 점 집중된 여름의 햇살이 이리도 아픈 것이었나.

대충 상처를 갈무리한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이상하다.

그래, 이상한 게 너무나도 많아.

피 묻은 서류들을 조합해본 결과, 오리무중으로 점철되어 있을 줄 알았던 복지원의 위치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왜?

도대체 왜?

혹시 몰라 레프리길이 들어놓은 보험일까?

그런데 그런 중요한 보험을 왜 그런 곳에 배치해 두었지?

나는 지금 철저한 의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얇은 베일 하나만 걷으면, 그 너머로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그렇게 서류에 적혀있는 데로, 의도적으로 심어져 퍼즐 역할을 하는 나무들을 풀어간 나는.

어디인지도 모를 깊은 숲 한가운데,

이질적인 모습으로 덩그러니 세워진 하얀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늘은 어두워진 지 한참이었지만,

눈앞의 건물은 외벽에 햇살을 펴 바른 건지 대낮처럼 훤했다.

천천히 그곳을 향해 다가가자.

청년 하나가 막 저택 밖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얼굴은 내게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모나켈, 그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

그런 그의 뒤로, 보다 키가 큰 남자 하나가 따라 나왔다.

그는,

제이.

제이 팔기어.

대번에 내 기척을 느꼈는지, 그는 조용히 내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쏟았다.

어차피 숨어봤자 의미가 없으니.

나는 조용히 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제이는 태연한 얼굴로 천천히 내 쪽을 향해 걸어왔다.

“론.”

“… 제이.”

“걸을 수 있겠나?”

“조금은.”

제이는 그대로 몸을 돌려 따라오라는 듯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의 뒤를 따랐다.

“결국엔 여기까지 왔군.”

직후 이어지는 제이의 물음에 나는 실소를 터트렸다.

“오도록 한 것은 아니고?”

이에 제이는 식은 웃음을 지으며 살짝 뒤를 돌아 내 몰골을 살폈다.

“아니, 아니지. 여기까지 온 건 엄연히 자네의 선택이었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네가 탐정이었기에 도달한 운명이지.”

“운명이라…,”

각설하고,

“레프리길에 개입한 건 자네였나, 사건 일지의 의도적인 배치마저도?”

“론, 제리워드는 아주 거대해. 그리고 그 거대함을 이룰 만큼 구성원 역시 많지.”

“무엇을 위해?”

내 근원적 물음에 제이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더욱 빠른 걸음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의 뒤를 힘겹게 따라붙던 나는,

어느 순간.

머리에 스친 하나의 깨달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느낌과 동시에, 제리워드라는 이름에 대한 막대한 두려움을 느껴야만 했다.

“파견대부터 시작된 건가?”

“뭐가 말인가?”

“무엇인지 모를 그쪽의 목표에 위협이 될지도 모를 요소를 걸러내기 위한 작업 말이야.”

“그런가? 자네의 생각이라면 맞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자네가 그 꼴이겠는가.”

“제이, 제이 팔기어. 대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얻으려 하는 게 무엇이란 말이냐.”

이윽고 어느 절벽 끄트머리에 도달한 제이가 조용히 몸을 돌려 나와 마주 섰다.

“론, 나는 그저 하수인일 뿐이야.”

“그렇겠지…, 깁슨… 제리드…,”

내 말에,

갑자기 제이는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나 웃겼는지 재차 박장대소를 하던 그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내 내게 말했다.

“아, 그렇지. 깁슨 제리드.”

그만을 위한 수석 경호원이라기엔,

그 이름을 담는 제이의 모습에 위화감이 가득하다.

“그로 인해 이 모든 일이 안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겠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제리드에게도 필요했거든, 이상이라는 든든한 방패가.”

순간 묵직한 무언가에 머리를 맞은 것 마냥.

머릿속이 핑핑 돌았다.

“그게… 대… 체…?”

“두 발 걷는 자들의 이상은 지극히 편향주의적이야. 그래서 다수가 상상하는 정론 적 이상은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어. 왜 그 대단한 기업가들의 수장이 가진 것 말고도 더 큰 것을 쥐려고 하는가? 살짝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건실한 이상이 건설될 텐데?”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런 내게 제이는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결국엔 두 발 걷는 자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제리드 가문은 정론 적 이상을 만들기로 했어.”

“만… 들어…?”

“이미 자네는 보지 않았나? 어느 기업의 보안을 위해 움직이던 이성 쪼가리들을 말이야.”

두 다리가 벌벌 떨렸다.

덕분에 자연스레 그로부터 뒷걸음질 쳐졌다.

“론, 깁슨 제리드는 제리드 가문이 만들어낸 이상이야. 방패고, 허울이지. 거창한 것을 다 떼어내면…,”

“인형인 건가.”

“그래.”

철컥 ─

말을 끝내기 무섭게,

제이가 품에서 작은 머스킷 한 자루를 꺼냈다.

“론, 너는 네가 도달할 수 있는 운명적 한계를 마주쳤을 뿐이야. 나도 언젠간 너와 같이 운명적 한계를 받아들일 순간이 오겠지.”

“이제 궁금해지는걸, 제이. 너의, 네가 가진 순수한 목적 아니 이상은 무엇인지.”

“글쎄, 나도 모르겠군.”

제이는 나를 절벽 쪽으로 유도했다.

그 뒤 무릎 뒤를 차 날 무릎 꿇리게 한 그는,

“아마도 제리드가 만들려는 ‘운명’이 완성된 순간에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뜬구름 잡는 소리와 함께,

탕 ── !

- 3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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