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화. 의외성
“어때, 론. 이제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좀 말할 수 있겠어?”
내 앞,
그루터기에 걸터앉은 벨리타인이 묻는다.
“모르겠어.”
그런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어야만 했다.
뭔가를 떠올리려 마음먹은 순간 눈으로 보이는 모든 세상이 뿌옇게 변해버린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떠올리려 했다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이 그대로 흩어져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나는 아직 수술 중인 건가…?”
내 물음에 벨리타인은 무미건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의 내겐 시간이라는 개념은 모호한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그러니까 벨리타인이 말한 이 꿈속에서 내가 얼마큼 있었는지.
설령 그녀의 입으로 직접 들어도 헤아릴 자신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체감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그 감각이 아예 사라져버렸다고 하는 게 맞을 거다.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수술은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해, 그리고 그 오랜 시간을 통해 고작 가능성 정도만을 엿볼 수 있지.”
“수술 성공 확률이 희박하다는 말이야?”
벨리타인은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긍정했다.
“응, 생각해봐. 머리에 구멍이 뚫린 사람을 되살릴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아?”
“벨리타인, 저번에 분명 기업 바슈는 꿈을 이용한 치료 기술로는 으뜸이라고 했잖아?!”
내 말에 그녀가 반색하며 즉답했다.
“잘 기억하고 있네, 그래서 그다음은?”
“어…, 그 바슈 내에서도 제일인 3번 치료단이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는 거?”
“잘하고 있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벨리타인은 턱을 괸 채 내게 말했다.
“뭐든 좋으니 기억이라는 걸 열거하는 거, 꿈 치료에 있어선 가장 필요한 거야.”
“이 꿈속의 나에게? 아니면 저 바깥 머리에 구멍 뚫린 날 수술하고 있는 치료단에게?”
“둘 다.”
“그럼…, 내게서 기억을 유발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거야?”
그러니까 수술 성공 확률이 희박하다는 그 말 말이야.
내게서 드러난 절박함에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떤 대답을 원해?”
“내가 원하는 거.”
“론, 당신이 원하는 게 뭔데?”
“마치 지우개로 지운 듯한 그 공백의 기억을 되찾고 눈을 뜨는 거 말이야.”
“그렇게 될 거야, 지금 그 절박함이 끝까지 이어진다면.”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장담하기엔 꿈은 참으로 변덕스럽지.”
“그리고 난 탐정이고.”
내 말에 벨리타인이 풋! 하고 웃었다.
“자신만만한걸? 탐정 양반.”
“지금 이곳이 내 꿈속 세상이라고 했지? 난 어렸을 때부터 탐정이 되기를 꿈꾸며 살았어. 이런 내 열망으로 건설된 세상이 날 배신할 리 없잖아.”
“좋네, 낙천적인 거.”
대화가 끝나고 찾아온 짧은 침묵.
시간적 체감이 없음에도 무료함은 지독할 정도로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본격적으로 벨리타인에게 말을 걸었다.
“다른 질문 없어?”
“의욕적이네.”
“기억의 열거는 꿈 치료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거라면서.”
나는 눈알을 굴리며 이 몽롱한 세상 속에서 얻은 한줄기 통찰을 혀끝으로 내놓았다.
“벨리타인, 당신이 수술의 집도의잖아. 그렇지?”
이런 내 통찰에 벨리타인은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제법이네.”
“추론하는 것, 탐정의 기본 소양이지. 꿈 치료라는 것 말이야, 지금 생각해보니까 단순한 외과적 의료 행위랑은 거리가 먼 것 같거든.”
“그래 맞아, 환자의 꿈속에 의료인 하나를 삽입해 기억을 유발하게 하는 게 꿈 치료에 있어 가장 결정적 작업이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치료하는 건데?”
호기심을 내비치며 묻자 그녀는 괘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었다.
“바슈에서만 생산하는 아주 특수한 약이 있어, 환자의 의식이 채 날아가기 전 규격화 된 꿈에 격리해놓는.”
“대체 무슨 약이 그런 일까지 해내는 거지?”
“용의 시대 이후에 더 놀랄 일이 남아있었나? 간단하게 생각해, 절단된 손가락을 봉합하기 전까지 차가운 데다가 보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니까.”
“다만 그게 의식이라는 무형적인 부분이라는 거지?”
“그렇지.”
“그럼 외상은 어떻게 해결하지? 머리에 구멍이 났다면서?”
“꿈에 격리한 환자의 의식으로부터 기억을 끄집어내는 거야, 그럼 그 기억이 환부를 봉합하거나 메꿀 수 있는 매질로 생성이 되거든.”
나도 모르게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말만 들어보면 마치 실을 뽑는 누에고치 따위가 떠오르는데?.”
“찰떡같은 비유네.”
“그럼 벨리타인, 내 기억이 머리에 난 구멍을 메꿔준다면 어서 빨리 질문을 해 봐.”
“탐정 양반, 추론을 좀 더 보태지 그랬어? 과도한 기억은 환부 내 불필요한 협착을 만들어낼 수 있기에 속도 조절이 필요해.”
“쉽게 말해봐.”
“성장기에 일어난 복합골절처럼, 환부가 전혀 예상치 못한 모양새로 메꿔질 수 있다는 소리야, 예컨대 수술을 다 마쳤는데 머릿속에 거대한 혹이 자리잡히거나…, 더 쉽게 말하면 병신이 될 수도 있다고.”
병신이라,
단박에 이해했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녀는 작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슬슬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 볼까?”
얼마나 시간이 더 흘렀을까.
사실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그녀가 좀 전에 이어 바로 입을 연 것인지 아니면 한참 뒤에서야 말을 하는 것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상태였으니까.
“기본적인 것?”
“론, 옛날이야기를 좀 해 봐.”
“옛날이야기?”
“그래.”
좋아, 그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 * *
서쪽 군도 가운데 미드리스라는 섬이 있어.
그곳이 내 고향이야.
가난한 마을이었지.
마을의 유일한 수입원은 해변에 처박힌 조개나 소라 따위 속에서 캔 바닷소리였어.
그 외 해산물은 미드리스의 영주가 독점하고 있어서 캐는 걸 걸렸다간 손목이 잘렸거든.
어렸을 땐 대체 누가 바닷소리를 사갈까 궁금했었는데,
도시 놈들의 심신을 달래주기 위한 용도로 소비됐다는 걸 알게 됐을 당시엔 이해하기가 힘들더군.
어쨌든 나중엔 지붕 조각에서 빗소리를, 다 탄 숯에선 모닥불 소리를 캐다가 팔기까지 했어.
당연하지만 가난한 마을에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다섯 살 때부터 해변에 박힌 소라를 캐고 다녀야만 했지.
그런데 나의 어머니께서는 내 평생 바닷소리를 들으며 살길 원치 않으셨어.
그래서 꾸역꾸역 모은 돈으로 내게 책을 사주셨어.
알다시피 군도에선 책이 금값이야, 얇은 동화 한 권 사는 데에도 손이 떨릴 정도로.
어머니 덕분에 난 바닷소리 말고도 종이 위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었지만,
내가 받아들인 활자의 무게만큼이나 어머니가 짊어지신 짐도 무거워졌지.
어느덧 머리가 클 만큼 커졌을 때쯤,
어머니는 결국 짊어진 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셨어.
과로로 쓰러지셨지.
영원할 줄만 알았던 대들보가 그렇게나 힘없이 무너진 것을 보았을 때.
비로소 나는 대들보가 아닌 여리고 상처 입은 어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어.
당신은 그저 당신이었던 거야.
자신이라는 세상 속에 자식이 착각하며 뛰놀 수 있도록, 그렇게 여린 몸으로 상처를 감내해 왔던 거야.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고 묻느냐면.
이 부분이 내 삶에 있어서 아주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거든.
난 결심했어.
해서 야망을 부풀렸지.
당신이 군말 없이 더 희생할 걸 알았기에 내릴 수 있었던, 끝까지 이기적이었던 결심으로서.
나는 악착같이 달렸어.
남들이 눈꺼풀로 잠을 씹을 때,
나는 눈꺼풀로 책을 씹고 또 씹었지.
그렇게 넓게 헤아릴 수 있는 이치를 손에 넣은 결과,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이더군.
“그래서 탐정이 된 건가?”
응,
책을 통해 얻어낸 재주가 바로 그쪽의 영역이었으니까.
“어머니가 좋아하셨겠네.”
그래, 분명 좋아하셨을 거야.
“…, 유감이야.”
* * *
전보다 내가 보는 세상이 좀 더 또렷해진 느낌이다.
거기다 무감각했던 시간적 체감 역시 슬슬 느껴지기 시작했다.
벨리타인은 허공을 바라보며 한참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다가 전보다 더 온화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수술 과정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어.”
“좋은 건가?”
“아주 좋은 거야,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대답해 줄 수 있지.”
“다행이네.”
이윽고 벨리타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들어, 론.”
“뭔데?”
그녀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일관한 채 덤덤히 말을 이었다.
“곧, 베일이 감춰져 있던 너의 직전 기억이 떠오르게 될 거야. 그리고 그걸 내게 말하는 그 순간 수술은 끝이 나겠지.”
“그런데 왜 그렇게 비장하게 말하는 거야?”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왜냐면 직전의 기억이 꿈 치료의 마감재이기 때문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 결정적인 기억, 그 기억의 망각으로서 꿈 치료는 끝이 나게 돼. 그게 꿈 치료의 유일한 부작용이지.”
머릿속에 거대한 실타래 하나가 생긴 느낌이다.
나도 모르게 있는 힘껏 미간을 찌그러트렸다.
“너는? 나를 통해 직전의 기억을 듣게 될 너는 알고 있을 거잖아?”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넌 그것조차 잊은 채 눈을 뜨게 되겠지.”
“벨리타인, 대체 무슨 속셈이지?”
“속셈이라, 그냥 내가 원하는 걸 네가 가지고 있었을 뿐이야.”
“머리에 구멍이 뚫린 날 치료해준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어?”
“…, 그래.”
순간 치밀어오는 욱함에 못 이겨,
나는 그녀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녀는 내게 힘없이 딸려오는 그 순간에도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덤덤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잊은 그 직전의 결정적 기억.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달아오른 가슴을 식혀 차분함을 겨우 되찾았다.
“그렇다면 한 가지만 물어보자, 어차피 이것조차 다 잊게 될 테니 대답해 줄 수 있겠지.”
그녀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억을 통해 얻으려는…, 아니, 아니지. 도달하고자 하는 게 뭐지?”
내 물음에,
그녀는 식은 웃음과 함께 즉답했다.
“본연의 목적, 그리고 그 목적의 좌절.”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나는 잡았던 그녀의 멱살을 풀 수밖에 없었다.
내 직전의 기억을 통해,
본연의 목적과 그 목적의 좌절을 얻길 강구 할 것이라면.
결국엔 내가 가지게 될 목적의식과 같은 결이란 뜻이다.
“벨리타인…, 넌 대체 내 직전의 기억 속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 거지…?”
그녀는 이번에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날카롭게 다듬어진 인형처럼 머금은 냉소만을 내비칠 뿐.
곧이어 이번엔 그녀가 내 멱살을 잡아끈 채,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이제 말할 시간이야, 론. 너의 기억을.”
그 속삭임을 들음과 동시에,
채워지기 시작한 머릿속 공백.
이윽고 모든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듯, 모든 기억을 되찾은 나는 벨리타인을 바라보며 수많은 궁금증을 느껴야만 했다.
“말해, 론. 네 상처를 봉합할 마지막 바늘을.”
아니, 됐다.
기억을 잃어도, 그 기억을 가진 채 그녀가 내게서 등을 돌린다고 하여도.
알아낼 것이다.
도달할 것이다.
끝내 진실을 얻을 것이다.
나는,
탐정이니까.
이제 나는 그녀에게 직전의 기억을 하나하나 또렷이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그 전달이 끝나갈 때쯤.
꿈속 세상은 더없이 흐리멍덩해지다가 이내 완전히 뿌옇게 흩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