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화. 안개 속에서 (3)
“괜찮으십니까?”
누구지?
처음 보는 남자다.
눈을 뜨자마자 마주친 그 남자는 내 얼굴 곳곳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 이마에 손을 짚고는 눈앞에 손가락 두 개를 세워 보인다.
“몇 개인지 보입니까?”
“두… 개.”
“좋습니다.”
저 남자, 손이 차갑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 눈 한쪽이 감겨 있는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시야가 반쯤 잘려나간 기분이야.
답답한 마음에 감겨 있는 듯한 눈을 뜨려 노력했지만, 생소한 감각만이 머릿속을 돌아다닐 뿐 그대로였다.
“환자분, 지금부터 제작한 안대를 착용하실 건데 불편하시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환자?
안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황한 나머지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사이 남자는 검은 안대를 가져와 반쯤 가려진 시야 위에 덧씌우기 시작했다.
그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뭐 하는 거야!”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남자의 손을 뿌리쳤다.
“여기 좀 도와줘!”
그러자 남자가 황급히 주위에 소리쳤고, 그 부름이 달려 나온 남성 두 명이 순식간에 내 손을 잡아챘다.
몸부림쳐봤자 의미가 없겠다 싶어 얼른 포기하고 몸에 힘을 풀자 내 손을 붙잡은 두 남자 역시 순순히 놓아주었다.
적어도 이곳에 어떤 강제력 같은 것은 없어 보인다.
“환자분의 심정 이해가 갑니다, 저희가 어떻게 해도 환자분을 이해시켜드릴 순 없겠지만, 적어도 그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충분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점잖은 남자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남자는 다시 손에 쥐고 있던 안대를 내게 씌웠다.
* * *
시간이 좀 지나자 남자는 내게 자유롭게 걸어도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등골을 타고 올라온 찌릿함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지독한 두통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복도를 거닐었다.
먼지 한 톨 없는 흰색 복도.
그 위를 거니는 나와 같은 복장의 두 발 걷는 자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혼 일부분이 뜯겨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게,
이곳에서 마주친 그들은 최소 신체적 결손을 겪은 중상자들뿐이었다.
보통의 병동이 아니다.
어느 기업이나 조합의 특수 병동.
나는 이곳에 왜 왔는가.
기억을 되짚어 보려고 하면 또다시 등골을 타고 온 짜릿함이 머릿속을 진창으로 만들어 놓는다.
복도 끝에서 화장실을 마주했다.
양식을 보아하니 서쪽 땅의 감성으로 지어진 것 같은데, 이것만으론 병동의 소속을 알 순 없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거울을 한 번도 보지 못했지.
아,
나는 누구였지?
내가 어떻게 생겼더라?
이런…, 씨발.
서둘러 화장실 안으로 들어선다.
아직 두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한참을 비틀거리던 나는 겨우 벽에 설치된 거울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후….”
격앙된 가슴을 억누르기 위해 한숨을 내뱉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거울에 비친 나와 마주했다.
그리고 내 얼굴을 확인한 순간 기본적인 기억들이 머릿속에 흘러들어왔다.
“… 허억!”
직후 물리적으로 머리가 팽창하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아찔한 느낌에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듯 주저앉아야 했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내 이름.
나는 론,
론 에브리타스.
* * *
“론, 반가워요.”
익숙한 얼굴을 가진 여인이다.
아니, 나는 이 여인을 알고 있다.
그리고 방금 이름까지도 기억해냈다.
“시트리에?”
내 말에 시트리에는 놀라운 표정을 짓더니 그 건조한 얼굴로 썩 생기 넘치는 미소를 그렸다.
“아직 머릿속에 뒤죽박죽일 텐데 절 기억해내다니, 대단하네요. 과연 레프리길의 탐정답다고나 할까.”
“도대체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내 물음에 그녀는 쥐고 있던 깃펜을 한참 만지작거리다가 어렵게 운을 뗐다.
“사고가 있었어요.”
“사고?”
“어떤 사건을 맡았는진 모르겠지만 론, 당신은 절벽 근처에서 실족해 추락했어요.”
“실족…? 추락…?”
“그 과정에서 나뭇가지가 당신의 왼쪽 눈을 관통했고요…, 보다시피요.”
웅웅 ─
머릿속이 때아닌 이명으로 가득 차오른다.
그리고 그 이명의 진동이 통증으로 변하려는 조짐이 보이자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려 그것을 억누르려 노력했다.
그건 꽤 잘 통해서,
───
이명은 금세 줄어들었다.
“일단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어요, 치료도 성공적으로 끝났고요. 하지만 몇몇 기억들이 손실되었어요.”
그녀의 말에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다시 들릴 것만 같은 이명, 그리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머릿속 때문에.
아니 이럴 때가 아니다.
지금에 집중해.
그녀에게 집중해.
미간을 잔뜩 찌푸려 안의 지끈거리는 것들을 억누른 뒤 나는 선명히 기억나는 부분들을 먼저 짚어내기로 했다.
“이곳은 리케니엔입니까?”
내 물음에 시트리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리케니엔.”
“리케니엔에 벌써 이런 특수 병동을 세운 겁니까?”
“난쟁이들의 기술력을 생각하면 놀랍지도 않은 일이죠.”
맞는 말이지.
초대형 기계로 산까지 운반하는 종족들인데.
“론,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그건 시트리에 당신이 내게 일러주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으레 환자에게 하는 그런 말 말입니다.”
내 말에 그녀는 식은 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해봤자 그대로 안 할 거잖아요, 당신?”
맞는 말이야.
“다만 걱정되는 건 직전에 당신이 맡았던 사건이에요, 몸조심하라 이 말이에요. 괜히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겠답시고 무리할 것 같으니까.”
구구절절 맞는 말이군.
“시트리에, 지금 내 머릿속은 완전히 뒤엉켜 엉망이 됐어요. 바로 이 부분이 나를 가장 위험하게 만들고 있죠. 그러니 이것을 푸는 것이야말로 나를 가장 안전하게 만드는 거예요.”
내 말에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있다가.
끝내 진심 어린 말을 내뱉었다.
“그래요, 부디 몸조심해요.”
나를 이렇게 걱정해줄 정도였었나?
당신과 나 사이가 그 정도였어?
“참, 론.”
막 약봉지를 건네던 그녀가 급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지금 리케니엔, 아니 베나즈령 전체에 걸쳐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아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건네받은 약봉지를 손에 쥔 채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밖으로 나가보면 알 거예요.”
“그럼 시트리에, 가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채 밖으로 나서기 직전,
나는 다시 뒤돌아 그녀에게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시트리에, 고맙습니다. 절 살려주셔서.”
그녀는 방금 봤던 것 가운데 가장 순백에 가까운 미소를 지으며 날 배웅해주었다.
그렇게 병동 바깥으로 향하는 정문을 너머에 발을 내디딘 순간,
나는 그녀가 말했던 그 상황이 어떤 것인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뿌연 안개.
리케니엔 전역에 짙게 깔린 그것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치밀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인챈트라는 어마어마한 힘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지한 나조차 알 수 있다.
이 안개는 탑에서 행하는 기상 조립 따위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란 걸.
기사,
재해를 가진 기사로 인해 피어난 안개.
이 베나즈령에 안개가 엄습했다는 이유는 다르게 말하면, 그 재해에 가까운 기사가 침범했다는 뜻이 아닌가.
이곳 상황도 지금의 내 상황과 똑같구나.
앞에 펼쳐진 안개는 내 머릿속 상황과 똑같아.
하지만,
베나즈 가문은 이 안개 속에서 끝내 답을 찾아낼 것이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탐정이다.
발 앞에 한 줌의 모래가 놓여 있다고 해서 그곳이 사막이라 속단하지 않을 것이고,
알록달록한 오아시스를 마주했다고 그곳을 숲이라 판단 내리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보고 겪고,
끝내 확인할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 비로소.
숲인지 사막인지 판단 내리는 것이 나의 직업이고 내가 할 일이다.
다시,
잃어버린 기억 속 사건에 접근해 보자.
그리고 차근차근 해체해 보자.
나는 짙은 안개 속을 향해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 * *
대공 엠프리오를 지지하는 네 개의 기둥.
그 가운데 하나인 남자이자 기사, 그리고 난쟁이.
이투 가르크.
그는 오십의 기병과 함께 막 베나즈령에 발을 들였다.
사전 고지 없이 타 영지에 발을 들이는 것은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위험한 행위다.
그리고 이투는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지금,
선전포고와 동시에 베나즈령을 훑어보기 위해 과감한 행동을 취한 것이다.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베나즈령 전체에 깔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안개 덕분이다.
새조차 아무것도 보지 못할 이 안개 속에서 두 발 걷는 자들이 이투와 그의 기병을 포착할 리는 없다.
경계해야 할 것은 오직 태풍의 눈 하나뿐이다.
그리고 그 태풍의 눈의 영역은 이미 엠프리오를 통해 자세히 전달받았다.
해서 이투는 막 켄타나를 지나치기 무섭게 고삐를 잡아 이동을 멈추었다.
그러자 곧 그의 종자로 보이는 병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 너머부터가 진정 태풍의 눈의 영역이란 말입니까?”
경이로움과 의아함, 두려움과 의심을 담은 그의 말에 이투 역시 마른 입술을 바삐 적셔야만 했다.
이투 역시 0이란 것은 글과 말로만 접해 봤을 뿐 실제로 겪은 적도,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지금 엠프리오가 일러준 대략적인 태풍의 눈의 영역을 직접 확인한 그는,
적어도 0이 가지고 있는 위압에 대해선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대공께서 말씀하시길 그렇다는군…, 그야말로 재해 중의 재해로구먼.”
말을 마치기 무섭게 침을 뱉은 이투는 지금까지 지나쳐온 거점의 거리를 상기하며,
자신의 침투 및 개척 계획을 대강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략적인 청사진이 그의 머릿속에 맺힐 무렵.
“이투 경! 저 멀리 누군가 옵니다!”
병사 하나가 놀란 얼굴로 전방을 가리키며 외쳤다.
이 안개를 꿰뚫고 우리를 간파했단 말인가?
이투는 즉시 안장에 채워져 있던 거대한 망치 자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 때에 맞추어 전방에선,
두두 ───
이십, 아니 삼십쯤 되는 발굽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내 이투의 눈앞에 윤곽을 드러낸 기마대.
그 선두엔 칠흑의 갑주를 걸친 기사가 있다.
“이름과 소속을 밝혀라.”
투구 속 젊은 남자의 말에 이투는 고개를 기울였다.
“대공 엠프리오의 네 기둥이자 기사 이투 가르크다.”
이투는 물러섬 없이 당당히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밝혔다, 그 이유는 이로서 상대방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어 잿빛 갑주를 걸친 기사가 답했다.
“베나즈의 스텔라스, 베르긴이다. 지금 그대가 하는 행위가 나중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누구보다 당신이 더 잘 알겠지.”
스텔라스라,
그 베나즈의 다섯 기사 중 하나라 이 말이로군.
안개 속에서 이 정도 간파를 해낸 것을 보아하니 가진 인챈트는 틀림없이 재림형.
본인 스스로가 예민한 재해가 되어 약간의 기류 변화까지 감지해낸 거겠지.
속으로 베르긴에 대해 순식간에 파고든 이투는 주위를 한바탕 둘러보며 말했다.
“구태여 그렇게 물을 필요가 있는가, 이 안개를 보고도?”
이투의 말에 베르긴은 그의 의사를 알겠다는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에 다시 마주치겠군.”
이어지는 베르긴의 말에 호승심을 느낀 이투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분출했다.
“기대하고 있겠다, 베르긴 경.”
직후 베르긴은 기병들과 함께 말머리를 돌려 리케니엔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고 있던 이투 역시,
한껏 미소를 머금은 채 말머리를 돌려 휘하 병사들에게 명했다.
“돌아가자,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