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353화 (353/365)

353화. 독선과 우리

용의 시대에서나 빈번히 들을 수 있었던 포성이 연이어 울려 퍼진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화약으로 인해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 소리는 지금 환상적이고도 가혹한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퍽!

방금 또 목격하는 것만으로 불합리한 청각적 폭력을 겪게 될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 충격의 잔여 파장이 채 진정되기도 전에,

쾅!

다시 한번 연달아 묵직한 충격이 터져 나온다.

아이베리아,

그 중심.

중심 가운데서도 대대적으로 일어선 깃발들을 단단히 지지하는 기사라는 두 존재.

그들의 무기가 쉼없이 다시금 교차하면,

쾅 ─ !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폭발한다.

자신의 몸만 한 검을 휘두르는 베르긴과,

그에 맞서 물러섬 없이 끝에 바위를 맞물린 듯한 메이스를 휘두르는 이투.

그들이 이뤄낸 합은 이제 수십을 넘어서고 있다.

“음!”

이투가 짧은 기합과 함께 재차 메이스를 아래로 휘둘러 쳤다.

그럼 베르긴은 짤막한 숨소리를 내며 중검을 아래에서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퍽!

지끈거리며 비산하는 불똥.

그들 움직임에 의해 일어난 주위 모래 먼지가 춤을 추며 파장의 결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 사이에서 이번엔 베르긴이 먼저 휘두름을 시작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아니 그 중간에서 갑자기 직각을 그리며 우측으로 쏠리는 검격.

그리고 그 검격에 비로소 이투 쪽에서 유의미한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크윽…!”

이투의 짧은 신음이 묵직한 그레이트 헬름을 뚫고 나온다.

동시에 중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의 몸이 우측으로 쏠렸다.

아직 메이스와 검이 서로 맞물려 있다는 걸 알고 있던 베르긴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흡!”

상체 전반을 돌려 검을 더욱 오른쪽으로 휘둘렀다.

쩍!

마치 패대기치듯 휘두른 베르긴의 검에 의해 이투는 그대로 빨려 들어가 바닥에 처박혔다.

“쿠헉!”

짧은 신음을 내뱉은 이투,

그 신음과 같이 섞여나온 것인지 그레이트 헬름의 눈구멍 속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베르긴은 즉시 검을 역수로 잡아 이투의 투구를 향해 내리찍었지만,

이미 이투가 몸을 굴려 피한 뒤였다.

그 무거운 난쟁이제 갑옷과 무기를 둘렀음에도 날렵한 탄성을 자랑하며 일어난 그는,

“흐하! 과연 오르테는 오르테인가!”

오히려 감탄을 내뱉었다.

그러나 베르긴은 묵묵히 자세를 고쳐잡은 채 더욱 흉흉한 살벌함을 내비칠 뿐이다.

“그래그래, 그래야지!”

비릿한 피맛을 머금고 있어서였을까.

더욱 흥분한 기세를 보인 이투는 여기저기 찌그러진 메이스를 고쳐 잡은 뒤,

“그렛타! 나의 진원지여!”

그 무기에 붙여준 이름인 양 친숙한 외침과 함께 두 손으로 가득 잡은 메이스를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었다.

이에 뭔지 모를 위기감을 느낀 베르긴이 급히 뒤로 물러섰지만,

그것은.

9년, 레마크세

단순히 물러서는 것만으론.

[굳은 땅이 지어낸 유연한 미소]

벗어날 수 없는 힘이었다.

콰앙 ──── !

땅 위에 그대로 내리 찍힌 메이스.

그 중심을 기점으로 사방에 일어난 출렁임과 균열은 베르긴이 서 있는 곳을 넘어서 기어이 한창 난전을 벌이고 있는 병사들까지 뒤흔들었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괴력의 현상에 베르긴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베르긴을 향해,

출렁이는 땅 가운데 우직하게 튀어나온 이투.

“흐하핫!”

호쾌한 웃음을 터트린 그가 베르긴의 옆구리에 메이스를 꽂아 넣는다.

쿵!

아니 막았다.

이투의 공격이 닿기 직전, 베르긴은 자신의 검을 땅에 박아 넣어 그 뒤에 몸 전반을 숨긴 것이다.

하지만 공격이 가로막혔음에도 이투는 그저 웃을 뿐이다.

앞서 말했듯,

그가 들고 있는 메이스가 곧 진원지이기 때문이니까.

“커헉…!”

메이스로부터 터져 나온, 완력의 범주를 넘어선 파장에 베르긴이 좀전의 이투처럼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이 진원지를 감당해야 할 것은 대지가 아니라 오르테, 자네다!”

바닥에 처박힌 베르긴을 메이스로 겨눈 이투의 외침에 맞춰,

뒤쪽 난전에서 크게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 이투 군이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이투를 따르는 저들에게 방금의 진동은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으니까.

이어 그는 쓰러진 베르긴을 내려다보며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고개를 까딱거리며,

메이스를 허공에 빙빙 돌리던 그가 뒤이어 입을 연다.

“일어나라, 오르테.”

호승심에 흠뻑 젖은 듯한 그 도발에,

베르긴은 묵묵히 그 어떤 신음조차 내지 않은 채 금방 몸을 추슬러 일어섰다.

그리곤 중검을 고쳐 잡고 다시 자세를 잡는다.

그런 그의 피 맺히고 찌그러진 투구 속에선 밤하늘의 오롯한 별처럼 생긴 안광이 번뜩이며 튀어나왔다.

“오, 과연 오르테의 피라 이건가. 전장이 지속될 수록 바람에 미친 광견이 되어간다지?”

다른 평범한 이가 마주했다면 오줌을 지렸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더한 호승심을 드러낸 이투가 메이스를 고쳐 잡은 채 성큼성큼 다가갔다.

하지만 베르긴은 다가오는 이투의 걸음에 맞춰 물러섰다.

그 물러섬을 지켜본 이투는 비웃음을 쏟았다.

“이 정도 매에 꼬리를 내리는 광견이라니!”

그리고 이투의 그 비웃음이 끝남과 동시에 검을 치켜세운 베르긴이 입을 열었다.

“나는 베르긴이다, 그리고 기사. 너와 나는 지금 결투를 하고 있는 게 아니야.”

이윽고 무지막지한 크기의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한 베르긴.

“진형을 갖춰라!”

그의 외침에 직전까지 난전에 휘둘리고만 있을 줄 알았던 베르긴 군이 그를 중심으로 속속들이 집결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꾸려진 일자 대형을 등지게 된 베르긴은 검 끝으로 이투를 가리키며 일갈했다.

“우린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거다.”

주춤.

기세 좋게 앞으로 나아가던 이투의 발걸음이 멈췄다.

본능적으로 한쪽 발을 뒤로 뺀 이투 앞으로,

베르긴이 막 집결한 병사에게 명령한다.

“일 점 돌파다!”

아 ─── !

폭포처럼 우수수 쏟아지는 함성.

그리고 손수 점이 되어 가장 먼저 나아가는 베르긴, 그가 주춤거리는 이투의 어깨 위에 중검을 처박는다.

“크으윽…!”

진원지는 결국 맞물린 대지의 합의가 끝나면 사라질 뿐이다.

이투라는 진원지가 베르긴이란 대지에 뒤덮이는 순간이었다.

베르긴 군은 곧 난전을 유도하던 이투 군의 일 점을 돌파했다.

그 일 점의 정면에 서 있었던 이투는 베르긴의 공격을 받고 그 반동으로 옆으로 튕겨 나갔다.

* * *

딸랑딸랑.

종이 달린 신호 줄이 안개 속에서 파르르 떨려온다.

그것을 보고 있던 군 외곽, 말을 탄 정찰병은 같이 다니던 동료에게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이투 군 쪽에서 무슨 일이 생겼나 본데?”

“바로 보고…,”

이상하다.

답을 하던 병사가 중간부터 말을 하지 않고 입만 움직이고 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라고 말을 내뱉으려던 병사는 입을 열기 무섭게 소름 끼치는 묘한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두 귀가 급격히 먹먹해졌기 때문이다.

본인의 말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란히 있던 상대 병사 역시 이변을 눈치챘는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입을 열어 뭔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스스로 진정을 한 뒤,

그 병사는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그것을 본 병사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입 모양을 보라 이거구나.

해서 미간을 오므린 채 병사의 입 모양에 한창 집중하던 찰나.

열렬히 입 모양을 만들던 병사의 눈이 갑자기 뒤집어진다.

흰자위를 드러낸 채 축 처진 병사의 입에선 곧이어 붉은 피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입 모양을 주시하고 있던 병사입장에선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으리라.

그렇게 축 처진 병사의 상체가 기울어지더니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쏟아진 병사 너머,

모습을 드러낸 잿빛 갑옷의 기사.

그가 피 묻은 창을 거둔 채 살아남은 병사를 노려보고 있다.

그래봤자 눈빛은 알 수 없다, 병사의 눈엔 그림자로 범벅된 듯한 투구만이 보였을 뿐이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병사는 더욱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뭔가를 말해야겠다 싶어,

병사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들리진 않는다.

본인에게도.

하지만 보는 이들은 알 수 있다.

그가 처절하게 입 모양을 바꿔가며 전달하고자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살려주세요.’

기사는 투구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병사는 직전까지 처절하게 움직이던 입을 멈췄다.

그리고 그 순간, 기사의 손으로부터 총알처럼 튀어 나간 창대가 병사의 목을 꿰뚫었다.

목뼈를 말끔하게 박살 내버린 일격이었기에,

병사는 어안이벙벙한 표정 그 상태로 스르르 스러졌다.

기사 가버트 로셀란.

그는 거둔 창대를 휘둘러 묻은 피를 한바탕 튀겨낸 뒤 말머리를 돌렸다.

그의 뒤에는 천에 가까운 군이 질서정연하게 진형을 갖춘 채였다.

가버트는 조용히 손을 올렸다.

켄타나의 병사들에겐 가버트의 그 손이 곧 전쟁의 언어였다.

검지를 치켜세운 가버트는 잠시 후 주먹을 꽉 쥐고 흔들어 보였다.

그 뜻은,

‘철저히 고립시킨다.’

그렇게 만들어진 침묵 위에서,

그들은 안개 속으로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 * *

펼쳐놓은 안개,

그 속에서 벌어진 일들을 어렴풋이 감각으로서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바람에 휘날리는 거대한 커튼을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아서,

어느 부분이 가장 흔들리고 있다, 또는 어느 부분이 가장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걸 단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엠프리오 다르가.

그녀는 한참 동안 눈을 감은 채 한쪽 눈썹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이투 쪽의 안개가 굉장히 요동치고 있다.

그와 반대로 다른 곳에선 기분 나쁠 정도로 정적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

전투 초기,

아직은 서로를 탐색하기 바쁜 시기다.

이투는 호승심으로 움직이는 자였기에 곧장 전투에 돌입했을 테지.

그렇다면 얼마 안 가 양측에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어떻게든 전달될 것이고,

그때 비로소 정적을 유지하고 있던 다음 수들이 착수될 것이다.

그 시점에 생겨난 공백 사이에 자신들의 말을 끼워 넣기만 한다면.

비로소 이 전역에 깔린 안개의 진면목이 드러날 거다.

천천히 눈을 뜬 엠프리오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녀의 미간이 한껏 찌그러졌다.

뭔가 묵직한 덩어리가 안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이동 중에 있다.

거센 바람에 가운데가 부풀어 오른 커튼처럼,

그 기세가 심상치가 않다.

아니,

엠프리오는 그 기세가 누구의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테티르.”

이미 예상했던 바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건틀릿을 낀 손을 들어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그 수신호를 지켜보고 있던 그녀의 뒤쪽,

대기 중이던 2천의 병사들 곳곳에 배치된 부장들이 같은 수신호를 그려 전달에 전달을 거듭하자.

잠시 후,

척 ─ 척 ─

군대는 기계 같은 제식을 펼치며 이동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움직임은,

사전에 정해놓은 작전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 작전의 이름은,

곰 사냥.

‘테티르 죽이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