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운명의 노래-355화 (355/365)

355화. 곰 사냥 (2)

어느 원정대의 유명한 사냥꾼이 이런 말을 했다지.

‘곰은 두 발 걷는 자를 찢어’

베실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테티르를 보며 그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사람이 맞나?

언제 어디서나 최고 속력을 유발하는 바람을 저렇게 태연히 등지고 나아갈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테티르를 따르는 기병들조차 버거움에 주춤거리는 와중, 오직 그만이 최선의 선두를 유지한 채 돌격을 감행하고 있다.

그런 그를 마주한 베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끓어오르는 호승심을 느끼고 있었다.

아군과 적을 떠나서,

그 역시 기사였기에.

부딪쳐보고 싶다,

저 남자에게!

“아아!”

베실이 거나한 함성을 지르며 워 해머를 치켜들자 그 뒤를 따르던 병사들이 감화되어 열렬한 함성을 내질렀다.

그렇게 베실의 기병과 테티르의 기병이 정면으로,

퍼벅 ───── !

퍽 ──── !

충돌했다.

말과 말이 맞부딪혀 꺾이고, 병과 병이 맞물려 찌그러진다.

부러짐과 단말마로 이뤄진 이중창이 불규칙적으로 터져 나오는 그 상황 가운데,

유일하게 온전한 두 존재 사이에서 찬란한 불꽃이 일었다.

쾅 ───── !

맞물린 워 해머와 메이스.

그리고 그것을 중심에 둔 채 열렬한 눈빛을 주고받는 두 기사.

“이름이 뭐냐!”

감탄하며 묻는 테티르에게 베실은 워 해머를 잡은 손에 바짝 힘을 준 채 답했다.

“베실 라모, 엠프리오의 기사다.”

“베실 라모, 내 기억하지!”

그 말을 끝으로 테티르는 메이스를 크게 휘둘러 맞물려 있던 워 해머를 내쳤다.

이에 베실은 말머리가 휘청거릴 정도의 반동을 겪어야 했다.

“제법이군.”

“막지 못하면 지는 것이니까.”

“그러니 계속해서 막아 보아라, 이제 시작이니까!”

바람이 분다.

그리고 그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나뭇잎처럼 가볍게 치달은 테티르가 이내 전속으로 베실에게 달려든다.

허겁지겁 워 해머를 휘둘러 마주 오는 테티르의 공격에 응수했지만,

꽝 ───── !

“으극…!”

단지 무기와 무기의 대면만으로도 베실은 이를 갈아야만 했다.

그러나 끝내 물러서진 않았다.

그게 바로 베실이라는 기사가 어쩐 존재인지를 증명하는 부분이었으리라.

아니, 거기에 그치지 않고 베실은 역으로 맞물린 테티르의 메이스를 쳐낸 뒤 공격을 감행했다.

위에서 아래로,

수직을 그리며 떨어진 베실의 공격을 테티르는 메이스를 가로 세워 막았으나.

쿵 ──── !

그 묵직함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곤 얼른 양손을 보태 메이스를 지지해야 했다.

“제법…!”

짤막한 감상과 함께 메이스를 틀어 베실의 워 해머를 흘려낸 테티르가 곧바로 그의 옆구리를 노리고 휘두른다.

쾅 ──── !

막았다.

그러나 베실은 갑자기 휘청거리는 자신의 시야에 당황스러움을 느껴야 했다.

그 묵직한 반동에 타고 있던 말이 옆으로 질질 밀려났기 때문이다.

푸르릉!

격한 숨을 토해내던 말은 잠시 후 고개를 축 내민 채 비틀거렸다.

베실의 말은 명마다.

테티르가 주는 그 반동을 겪고도 그저 버거움으로 그친 것이 그 반증이다.

녀석의 목을 몇 번 두들긴 베실은 조용히 안장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테티르 역시,

“좋아.”

안장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들 주위엔 맞부딪힌 양측 진영 간의 난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테티르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베실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꽤 정교한 덫이구나, 베실 경. 자네 덫에 내가 아주 제대로 걸렸어.”

그러자 베실이 쓴 아멧 헬름의 안면 가리개를 열어 씁쓸한 모양새를 한 얼굴을 드러내었다.

“식겁했소, 그 덫으로도 감당 못 할 사냥감인 줄 알았으니까.”

까슬한 갈색 수염, 이마 위로 눅진하게 늘어 붙은 금발 머리.

베실은 누구나 호감을 느낄 만큼 매력적인 용모를 갖고 있었다.

그런 그의 인중 위에는 갓 흘린 피가 배어 있었는데,

드러난 얼굴 위로 현장의 기류를 느끼던 베실은 인중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에 건틀릿을 낀 손으로 주위를 훔쳤다.

“사냥감이 아니라 덫이 피를 보다니, 이 무슨 역설이오?”

건틀릿에 묻은 피를 보며 푸념에 가까운 탄식을 내뱉던 그는 다시 임전의 태세를 갖추기 위해 안면 가리개를 내렸다.

“곧 원군이 올 테지?”

그런 그를 향해 테티르는 비수를 꽂듯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에 베실은 워 해머를 고쳐 잡은 채 천천히 테티르를 향해 나아가며 답했다.

“사냥감이 덫에 걸린 걸 알았으니 마땅히 사냥꾼이 나타나지 않겠소.”

그렇게 투지를 불사른 베실이 워 해머를 크게 휘두르며 들이닥치자,

테티르는 바람에 등 떠밀린 팔로 있는 힘껏 메이스를 후려쳤다.

팍 ───── !

그 짧은 휘두름 만으로 일대 공기가 하얀 비명을 지른다.

이 무지막지한 공격을 정통으로 맞이한 베실은 그대로 까무러쳐 뒤로 넘어갈 뻔했지만,

“크흐…!”

투구 속 끓는 한숨을 내쉬며 근성으로 버텨내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테티르는 투구 속에서 어느 위상의 변화를 느꼈다.

그의 수염이 갑자기 바짝 곤두섰기 때문이다.

이것은…,

“때아닌 이른 한기로군. 내 후미를 얼어붙게 만든 것이 바로 이것이었나.”

“한기로 그치겠소? 내 생각에 곧 눈보라가 될 것 같은데.”

베실의 도발에 테티르가 호탕하게 웃었다.

“되겠는가? 내 바람에 그 한기로?”

그 말을 끝으로 둘은 다시금 무기를 휘둘러 부딪혔다.

한쪽의 괴력에 의해 반대쪽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찔함이 계속해서 펼쳐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균형은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었고.

그 균형이 거듭될수록 테티르의 마음속에선,

초조함이 빠르게 싹트기 시작했다.

* * *

일 점 돌파를 통해 난전을 유도한 상댈 한 차례 격파한 것까진 좋았다.

그래, 거기까진 완벽했다.

그러나 지금.

베르긴은 긴장과 초조함으로 아랫입술을 씹어야만 했다.

재정비를 마치고 진형을 갖춘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시도 빠짐없이 최고의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그들에겐 이 침묵의 순간마저도 철저하게 갉아 먹히는 시간이었다.

이런 그들이 최고의 긴장을 강요받는 이유는,

역시나 주위에 깔린 안개 때문이었다.

돌파를 통해 적들의 유도를 부순 것은 확실했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흩어진 적들의 향방을 이 안개 속에서 놓쳐버린 것이다.

그나마 위안거리로 삼을 만한 건,

적군을 지휘하는 기사 이투에게 베르긴이 직접적인 유효타를 먹였다는 것뿐.

그마저도 난쟁이제 갑주로 무장한 그의 두꺼운 방호력을 완벽히 꿰뚫진 못했다.

공격이 통했을 때 손목을 통해 느껴졌던 그 느낌,

그 느낌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던 베르긴이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인챈트가 깃든 무기 특성상 세 종족 간의 이해가 맞물려야지만 완성할 수 있는 거기에,

그간 촉박한 시간상 급한 대로 조합에서 만들어낸 중검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도 분명 결정적인 이유에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베르긴은 그저 자신의 수련이 부족했음을 탓했다.

자신이 좀 더 날카로웠으면 됐으리라, 그리 생각하며 아쉬움을 쓴맛으로 삼킨 베르긴은 다시금 선봉에서 병사들을 아우르며 결의를 다졌다.

“양옆, 전후의 동료를 보아라! 본인을 지켜줄, 그리고 본인이 지켜야 할 그들의 얼굴을 보아라!”

긴장으로 인한 심력 소모로 인해 슬슬 간과하기 시작한,

그 믿음이라는 묶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 베르긴의 이 결의는 다 타가는 성냥이나 다름없던 병사들에게 최후의 번쩍임을 남겨주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베르긴은 다시 자루에 손을 얹었다.

그저 일대에 바람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육체에 엄청난 부담을 주지만,

이 안개 속에서 적들의 동태를 살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베르긴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게 펼친 바람의 장막은,

평온하다.

일전의 전투를 통해 베르긴이 가지고 있는 인챈트가 바람임을 적들이 간파했다던가,

아니면 완전히 멀리 물러나야지만 느낄 수 있는 이 평온함은.

베르긴에겐 되려 혼란을 야기시켰다.

전자라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적들에 대비해 긴장이란 촛불을 얹은 양초 신세가 되어야 하고,

후자라고 한들 그것이 적들의 노림수일 수도 있다는 걸 상정한다면 보다 치밀한 연계로 들이닥칠 것이 뻔했기에,

더욱 골치 아프다.

베르긴의 우측, 전열을 맡은 백부장이 창백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경, 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물러난 것입니까?”

두 뺨에 피 얼룩을 묻힌 채 묻는 그의 목소리엔 약간의 기대가 묻어 있었으나,

베르긴은 그에 대고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계속 진형을 유지한다.”

백부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본인의 자리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만을 바라보고 있던 병사들에게 큰 목소리로 몰아붙였다.

베르긴은 애써 그들에게서 시선을 뗀 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너머를 바라보며 표정으로 답답함을 드러내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체적인 전황은 어디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이 상황에서 다른 누군가는 격전을 치르고 있을까, 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하는.

끝없는 고민과 걱정을 하면서.

* * *

엠프리오의 네 기둥 중 하나.

기사 케린 맥힐.

불그스름한 머릿결을 가진 그녀가 안개 속에서 안광을 드러낸 채 사냥감을 지켜보는 여우처럼,

두 눈을 번뜩이고 있다.

사실 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

이미 스텔라스에와 관련해 수많은 정보를 구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 스텔라스 가운데 비교적 작고 여린 빛을 내뿜는 별을 발견했으니,

그것이 바로 베르긴 오르테였다.

과거 쌓은 그 어떤 명성도 없이, 견습을 건너뛰고 갑작스레 기사의 자리에 오른 자.

그러나 오르테라는 그 거대한 이름을 짊어졌기에 마땅히 그에 따른 재능이 있을 거라 짐작되는 기사.

엠프리오는 바로 그 부분을 후벼 파기로 했다.

케린은 엠프리오가 설계한 안개 속에서의 작전대로 선발대인 좌측 이투 군이 움직일 때까지 우측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문제가 하나 생겼다.

한참 전부터 외곽 경계 및 후발대 합류의 역할을 맡은 기사 이란 벨카 쪽이 연락은커녕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란…, 당신은 진짜…!”

해서 케린은 혼잣말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마이스터의 가르침을 받은 이란은 앞서 늘 그래왔듯 자신만의 고집으로 독자적 행동을 취하고 있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투정으로 그치는 것은,

그런 독자적 행동을 밥 먹듯이 했음에도 늘 성과를 거둔 것이 또 이란이란 기사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외곽에서 스텔라스의 다른 기사와 전투 중일지도 모를 일이고.

하여 그녀는 본연의 작전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결심이 떨어지기 무섭게,

교배종 거미의 실로 만든 특수한 신호 줄로부터 방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네 기둥, 그 군에 각각 연결되어있는 이 특수한 실은 웬만한 위상 변화에도 손상 걱정이 없는 엠프리오의 세력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걸출한 물건이었다.

이윽고 실의 중계를 도맡은 정찰병이 케린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이투 경이 군의 재정비를 마쳤다고 합니다.”

“좋아, 그럼 출발하자.”

선봉의 이투가 한바탕 뒤흔든 베르긴 측을,

이번엔 양방에서 동시에 협공한다.

별빛을 거둘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최고의 성과라 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0을 소모 시키는 것.

케린은 군을 이끌고 안개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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