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파티에서 추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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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망스런 눈으로 앞의 가고일을 올려다보았다.
기연이고 퀘스트고 전부 독식하며 만들어낸 최강의 공격이었건만.
놈은 아직 죽지 않았다.
아니, 사실 뒤의 저 빌어먹을 년들이 최소한 제 역할만 했더라면 죽일 수 있었겠지.
찔린 배에서 피를 내뿜으며, 놈이 거대한 날개를 편다.
“키에에에엑!”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도망을 치려는 놈.
아, 안되는데.
이미 내 몸은 만신창이다.
나는 소리쳤다.
“놈을 잡아! 지금 죽여야 돼!”
그러나, 뒤에서 들려온 것은 나를 욕하는 소리였다.
“조용히 하세요! 지금 당신 때문에 레오가 다친 거 안 보이나요?”
성녀, 에스더가 소리친다.
잔뜩 다친 나는 무시한 채로, 그녀는 현재 레오라 불린 남자를 치료하는 중이었다.
나에 비하면 거의 생채기라 할 수 있는 그의 상처를 말이다.
그래, 저 둘은 무시하는 편이 속이 편하다.
그러나 문제는, 나머지들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
“빨리 공격하라고!”
내가 처절하게 소리쳤다.
그 말에 대답하는 것은 우리 파티의 마법사, 베로니카 엘트윈.
“내가 왜? 어차피 가고일은 피부 때문에 마법도 잘 안 먹히는데.”
“배에 상처 있잖아! 거길 때리라고!”
“싫어. 마나 많이 쓰면 머리가 아프다고. 이 내가 굳이 그렇게까지 희생할 필요는 없잖아?”
붉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오만하게 말하는 그녀.
나는 하마터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뻔했다.
혈압이 오르니까, 상처에서 피가 더 많이 흘러나오는 느낌이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도적, 아이네는 어차피 지금은 쓸모가 없다.
파티의 궁수이자 유일한 엘프인 엘린 니디아에게 시선을 돌리지만.
그녀는 내게 싸늘하게 말한다.
“정말이지, 인간의 욕심은 추악하군요. 여기서 굳이 가고일을 건드리다니 말입니다.”
내게 그렇게 쏘아붙인 그녀는 레오에게 향한다.
방금까지 인간 어쩌고 했으면서, 정작 같은 인간인 레오에게는 괜찮냐며 걱정하는 그녀.
정말이지 욕이 나오는 모습이었다.
“이 개 같은 년아, 저거 쏘라고!”
“다, 당신 방금 뭐라고 했나요! 감히 엘프…”
그녀가 뭐라 떠드는 소리는 무시하고.
나는 하늘을 보았다.
여전히 끔찍한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가고일은 이미 하늘 저 멀리로 날아간 상황이었다.
나는 절망감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결국, 실패했다.
온 몸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그때, 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위로나 격려 따위가 아니라, 나를 힐난하는 목소리가.
“루이 발렌슈타인, 뭘 잘했다고 언성을 높이는가. 지금 레오를 봐라.”
그리 말하는 것은 파티의 여기사, 펠리체 안스베르크였다.
그녀가 금발을 휘날리며 우리 파티의 마지막 인원, 레오 엡실트를 가리킨다.
레오 엡실트.
엡실트 공작가의 후계자.
차기 용사 후보 중 하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게임의 주인공.
펠리체가 내게 말한다.
“그대가 욕심을 부려 토벌 대상도 아니었던 가고일을 공격한 탓에, 지금 그가 다쳤다.”
뭐?
애초에 저 병신이 다친 건 자기가 약한 탓이다.
용사니 뭐니, 타고난 재능만 믿고서는 제대로 수련조차 하지 않는 놈.
그 덕에 마나나 성력, 근력 같은 정도야 나보다도 훨씬 강하지만.
전투조차 그녀들이 전부 해결해주는 덕에, 놈의 실제 전투 실력은 형편없다.
그녀들이 몬스터를 상대하는 동안, 놈이 하는 일은 그 무지막지한 마나를 천천히 불러일으켜 그냥 찍어누르는 것.
거기에는 아무런 노력도 필요하지 않고, 그저 타고난 마나의 양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런 그였기에,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가고일의 공격은 피하거나 막지도 못했다.
근데 이걸 나를 탓한다고?
아니, 사실상 혼자서 가고일의 공격을 받아내던 내가 저 새끼까지 지켰어야 한다는 말인가?
근데 놀랍게도, 그녀들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것 같다.
마법사인 베로니카가 외친다.
“애초에 네가 제대로 공격을 막았으면 레오가 다치지 않았을 거 아냐? 차라리 네가 맞았어야지! 하마터면 나까지 휘말릴 뻔했잖아!”
“와, 씨발…”
나는 한탄했다.
펠리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가고일을 발견했으면 그대로 물러나서 지원을 요청해야지. 평판을 바꾸기 위해서인지, 포상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대 때문에 우리 모두가 위험에 처할 뻔했다.”
“딱 봐도 돈 때문이겠지. 쟤네 집안, 거지잖아?”
옆에서 베로니카가 비아냥거린다.
“이래서 인간들이란…”
또다시 인간을 욕하는 엘린.
그런 주제에 사실 욕하는 대상은 나 하나였지만 말이다.
성녀는 이쪽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이 용사에게 딱 붙어있다.
유일하게 도적인 아이네만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사과해라.”
모두를 대표해서, 펠리체 안스베르크가 내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나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났고.
애초에 내가 저 가고일을 잡으려던 게 누구 때문인데.
이건 전부, 네 구원을 위해서였단 말이다!
“싫어.”
“그래, 우선은 레오에게… 뭐?”
“너 병신이냐? 머리에 총 맞았냐? 지원을 요청하러 가면 가고일은 도망칠 게 뻔하잖아.”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펠리체가, 이내 표정을 굳힌다.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 우리는 아직 아카데미 생도. 어차피 과제의 내용은 정체불명의 둥지를 조사하는 것이었고, 거기서 굳이 가고일을 토벌할 이유는…”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기본적인 내용까지 설명해야 하다니, 이 년은 역시 뇌가 근육으로 가득 찬 모양이다.
“우리가 건든 게 가고일 둥지였잖냐. 그렇게 난장판을 만들어놓고, 거기서 우리가 사라지면?”
내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놈이 다른 가고일들을 데리고 근처의 마을을 습격할 게 뻔하지 않냐?”
가고일, 모험가들에게는 작은 드래곤이라고까지 불리는 몬스터.
놈들의 둥지를 건드는 것은 여간 큰일이 아니다.
가고일 하나 정도라면 까다롭기는 해도, 최소한 처치는 가능하다.
그러나 놈들이 무서운 점은, 놈들이 행동에 나설 때에는 무조건 단체로 몰려다닌다는 것이다.
꼭 까마귀 떼처럼 말이다.
그러나, 뒤에서 베로니카가 말한다.
“그게 어때서? 나나 레오가 다치는 것보다야, 그런 천한 인간들이 좀 피해를 보는 게 낫지.”
엘프 궁수, 엘린도 덧붙인다.
“하등한 인간들 몇 죽는 것보다야, 레오가 안전한 게 더 중요하지.”
나는 성녀의 쪽을 보았다.
성녀라는 인간이 과연 저런 말을 할까 싶었는데, 그녀는 여전히 레오에게 붙어 ‘괜찮아요? 흑흑…’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나마 펠리체는 내 말에 그런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멍청한 년.
“그러면, 여기서 가장 가까운 영지가 어디냐? 니네 안스베르크 영지잖아.”
그렇다.
내가 굳이 이 과제를 선택하고, 굳이 과제 내용도 아니었던 가고일을 잡으려 한 이유.
그건 잔뜩 성난 가고일 때가 펠리체의 영지를 습격하는 것이, 그녀 스토리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실패했다.
내 잘못이 아니라, 저 빌어먹을 레오 새끼와 우리 파티원들 때문에 말이다.
심지어 내가 이 개고생을 하면서까지 구해주려 한 펠리체가 나더러 사과하라는 것을 듣고서.
머리 끝까지 화가 나던 나는, 이제는 그냥 허탈해져 버렸다.
전부 때려치고 싶어졌다.
“피, 핑계 대지 말아라. 네가 말한 것은 전부 추측…”
“그래, 그렇게 생각하시던지.”
말을 더듬는 펠리체에게 나는 말했다.
“씨발,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했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나의 말을 들은 것인지.
펠리체가 내게 버럭한다.
“웃기지 마라! 너는 너의 욕심 때문에…”
“그만, 펠리체. 굳이 저런 반역자한테 열 내지 마.”
듣기조차 역겨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게 바락바락 화를 내던 펠리체는 그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잠깐만요, 레오. 아직…”
성녀가 옆에서 달라붙어 그에게 그리 말하지만.
그는 천천히 내게 다가온다.
“루이 발렌슈타인,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미리 말할 걸 그랬군.”
“뭔 헛소리야, 개새끼야.”
내가 바로 욕을 박자, 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고귀하신 공작가 자제에게 그런 욕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그는 굳이 내게 뭐라 하지 않고, 대신 옆의 성녀에게 눈빛을 보낸다.
겁쟁이 자식, 저번에 털린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나 보네.
물론 패배 직후에는 내게 쥐새끼처럼 빠져나간다니, 어쩌니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레오의 눈빛을 받은 성녀 에스더 칼트가 나와 그의 사이를 가로막는다.
도대체 뭘 하려는 것일까.
또, 방금 그가 말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내가 궁금해하던 와중, 에스더가 입을 열었다.
“루이 발렌슈타인, 정식으로 통보할게요. 당신은 우리 파티에서 추방이에요.”
“…뭐?”
방금, 뭐라고 했지?
“추방? 니들이 나를?”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러나 그녀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너무나도 어이없는 말에, 그걸 이해하는 데에조차도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아하하하하!”
사람이 너무 화가 나면, 웃음이 나온다.
나조차도 오늘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파티원들이 나를 미친 놈처럼 쳐다보지만.
한참을 웃고 난 뒤.
갑자기 시작되었을 때처럼, 나는 또 순식간에 웃음을 멈췄다.
나는 어느 때보다도 싸늘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몇몇 파티원들이 움찔한다.
나는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