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히로인들의 구원을 관뒀습니다-2화 (2/69)

EP.2 내가 세상을 저버릴지언정

“애초에 이건 아카데미에서 정해 준 파티인데, 니들이 어떻게…”

“추방당할 사람을 제외한 파티원 전원의 동의가 있다면 가능해요.”

에스더가 말한다.

아, 그러면 더 말이 안 되는데?

설마 여기 전원이 내 추방에 찬성했다고?

나는 허망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성녀나 저 엘프 궁수년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레오 저 새끼는 내 추방을 주도한 놈이겠고.

그러니, 처음은 펠리체였다.

“펠리체, 진심이냐?”

나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가문을 혐오하는 그녀였지만.

설마 그것 때문에 나를 파티에서 추방시키기까지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리 묻는 나에게, 펠리체가 대답한다.

“그렇다. 고민했었지만, 오늘 그대의 모습을 보니 잘 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군.”

나는 다음으로 베로니카에게 시선을 돌렸다.

“뭐, 뭘 쳐다봐! 너 같은 거랑은, 당연히 같이 있기 싫은 거 아니겠어?”

말은 저렇게 짜증나게 해도, 이전에는 나름 티격태격거리며 나쁘지는 않은 사이를 유지했었는데.

전부 내 착각이었나 보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이네를 쳐다보았다.

우리 파티의 도적인 그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소한 너는 그러면 안 된다.

그리 생각하며, 그녀를 바라봤건만.

“죄송해요…”

그녀는 그리 중얼거릴 뿐이었다.

“하! 그러면 이제 전부 된 거죠? 당신은 추방이에요, 루이 발렌슈타인.”

그리 선언하는 성녀였다.

그래.

처음에는 그녀들을 기필코 구원해 주겠다고 마음을 먹은 나였다.

그렇다 해도, 이런 박대에는 그 누구라도 지칠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계속 느껴지던 회의감.

그녀들이 나와 레오를 대하는 데에 있어서의 차별은, 몇 번이고 전부 때려치우고 싶게 만들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는 참아가며 미련하게 노력하던 나였는데.

이렇게 되니, 차라리 고맙다.

내가 미련 없게 포기할 수 있게 만들어줘서 말이다.

아니, 이건 진심이다.

비록 내가 결심한 것이 있었지만.

심지어 나를 내쫓겠다는 그녀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매달리기까지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 말이다.

진짜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이제는 스토리대로 흘러가며 그녀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이 기대될 정도였다.

원작 게임과 달리, 이곳의 주인공은 너희를 구원해 줄 것 같지 않으니 말이다.

그럴 인성도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다.

참, 말실수를 했군.

이곳의 주인공은 나다.

원작의 주인공이자 그녀들을 구원해 줄 레오 엡실트는 여기서는 그저 버러지 엑스트라일 뿐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나는 나름의 소회를 풀며, 그들을 둘러보았다.

처음은 너겠구나, 펠리체 안스베르크.

나의 말대로 가고일 때가 그녀의 영지를 습격하고.

원작의 스토리대로 일이 흘러간다면 펠리체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원래라면, 그걸 생각했을 때 내 가슴이 아팠겠지만.

그녀를 위해 노력한 나더러 사과하라고 그녀가 말한 순간.

나는 너무 실망했다.

뭐, 그래도 마지막 경고 정도는 해줘도 되겠지.

“너희, 내가 지금까지 너희를 위해서 뭘 했는지 알면서 나를 추방하겠다는 거냐?”

몇몇은 찔리는 표정을 짓는 것도 같지만, 잘 모르겠다.

그 와중에 레오 엡실트가 말한다.

“웃기는 소리 하는군. 지금까지 마물들은 전부 내가 처리했건만.”

재밌는 관점이다.

애초에 대부분의 마물을 처치한 것은 나였다.

놈은 적당한 마물을 파티의 여자들이 다 잡아 놓으면, 그 무지막지한 마나로 거기에 막타나 치고 있었지.

근데 아마 놈은 진심으로 저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네가 없더라도, 우리끼리라도 충분하거든? 하는 것도 없는 주제에!”

베로니카가 외친다.

최소한 ‘레오가 있으니까’가 아니라 우리끼리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녀는 레오의 실력을 대충 알고 있는 듯하다.

하긴, 머리가 있으면 그 정도는 알겠지.

몇몇 빡대가리년들은 그럴 머리도 없어 레오의 마나에 환호하는 것 같지만.

“뭐, 알겠다. 앞으로 후회하지나 마라.”

“웃기고 있네!”

글쎄, 그건 과연 어떨까.

이건 그들이 겪을 스토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 내가 없으면 파티가 제대로 굴러갈지나 모르겠다.

그래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이네에게는 끝까지 미련이 남았지만.

그녀는 내가 발을 돌리는 그 순간까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진짜, 실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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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상처는 포션으로 처치할 수 있었다.

우리 가문이 가난하다지만, 그래도 포션 정도는 준비할 수 있다.

어차피 나머지 상처들은 아카데미 양호실에서 치료받을 수 있으니, 몸 상태를 아카데미까지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만 만들면 된다.

나는 지급받은 말을 타고 아카데미로 돌아갔다.

여전히 온 몸은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빨리 양호실에 가서 치료를 받고.

기숙사로 돌아가서 피와 흙먼지를 씻어내고.

그대로 침대에 지친 몸을 뉘이고 싶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어차피 위험한 상처는 해결했고.

먼저 할 일이 있었다.

레오 엡실트, 그리고 그녀들이 돌아오기 전에 말이다.

이걸 위해서 일부러 아카데미까지 바로 달려온 것이었다.

내가 우선 할 일은, 두 장의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하나는 내가 제출해야 하는 문서.

나머지 하나는, 혹시 그게 퇴짜맞을 때를 대비한 것.

그 다음으로, 나는 목에 건 목걸이를 벗었다.

천천히 확인했지만, 부서진 곳도 없고 멀쩡했다.

목걸이에 묻은 피만 제외하면 말이다.

이 목걸이의 정체는 영상 녹화 아티팩트였다.

아카데미 생도들이 과제를 하러 나갈 때마다, 확인을 위해서 장착하는 것.

이것 역시 제출 대상이었다.

파티원들이 전부 하나씩 차고 있었지만, 내 목걸이에 담긴 내용은 조금 특별하다.

그야, 나는 남들처럼 둥지를 확인한 시점에서 과제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

그 시점에서 녹화를 끝마친 것이 아닌, 가고일이 도망치는 부분까지 전부 녹화했다.

물론 추방 어쩌고 하는 부분은 굳이 녹화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두 개의 종이와 내 목걸이를 품 안에 넣고서.

나는 아카데미의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주변에서 나를 보는,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은 시선이 느껴진다.

아마 내 몸에 묻은 피나 흙먼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빙의하게 된 이 몸의 가문, 발렌슈타인이라는 이름 때문이겠지.

뭐, 이제는 저런 시선에도 익숙했다.

그렇게 원치 않던 주목을 받으며 내가 마침내 도착한 곳은, 아카데미의 학생회실이었다.

똑똑.

노크를 하자, 곧 들어오라는 소리가 안에서 들려온다.

나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안에 있던 학생회 인원들이 나를 보고서는 표정을 약간 찡그린다.

내 꼴을 보고서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나라는 사람을 보고서 그러는 것이겠지.

아니, 정정하겠다.

나라는 사람은 문제가 없다.

너무나도 성실하고 착한 인간이다.

문제는 내 가문이지.

학생회 인원들 중 유일하게 나를 보고서 얼굴을 찡그리지 않은 사람.

그러나, 추측이긴 하지만 아마 나를 제일 싫어할 사람.

이 헬론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이자, 루치아 제국의 황녀.

칼리아 슈펠츠를 향해 나는 나아갔다.

“그래, 무슨 일인가?”

“임무 완료했습니다.”

그리 말하며, 나는 우선 목걸이를 그녀의 책상 위에 놓았다.

목걸이에 묻은 피가 참 눈에 띈다.

그녀가 목걸이를, 그리고 내 꼬라지를 보더니 묻는다.

“파티원들은 어딨고 혼자서 그런 꼴로 온 것이지?”

“또 제출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놈들이 나를 파티에서 추방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매달리며 다시 한번만 생각해 달라고 빌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추방을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도 없다.

나는, 놈들이 나를 추방하기 전에 내 발로 나갈 것이다.

내가 추방당한다면 꼭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반대로 내가 파티에서 탈퇴한다면 파티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뭐, 자존심의 문제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아카데미까지 달려온 나였으나.

오는 동안에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회장에게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그걸 받아 든 그녀의 표정이, 점점 이상하게 변한다.

그럴 수밖에.

내가 건넨 종이는, 파티 추방 신청서였다.

추방되는 사람은 레오 엡실트, 아이네, 베로니카 엘트윈, 에스더 칼트, 엘린 니디아, 그리고 펠리체 안스베르크.

추방에 동의한 사람은 루이 발렌슈타인.

조조가 말했다.

내가 세상을 저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겠다고.

그렇다면 나는 내가 파티를 저버릴지언정, 파티가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겠다.

회장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이게 뭐지?”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아무래도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나는 말을 조금 덧붙였다.

“누가 추방당할 사람을 제외한 파티원 전원의 동의가 있다면 가능하다길래… 맞습니까?”

“아니, 일단은 그런데…”

“추방당할 사람은 저를 제외한 전부. 동의하는 사람은 나머지 파티원 모두.”

그 모두가 나 하나여서 그렇지.

내 기적의 논리를 들은 회장이 이마를 짚는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나머지 하나의 종이를 건넸다.

“뭐, 방금 건 농담 비슷한 거였고…”

사실은 반쯤 진심이었지만.

“여기 파티 탈퇴서입니다.”

두 번째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가 내게 말한다.

“…그래, 가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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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뭡니까, 저 녀석은?”

학생회 중 누군가가 불만에 찬 목소리로 내뱉는다.

황녀는 재밌다는 표정으로 루이가 건넨 종이를 집었다.

아무래도, 곧 그와 대화를 한번 해야겠다.

그녀는 근처에 있던 학생회 인원에게 종이를 건넸다.

“이거, 처리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리 대답한 여학생은, 곧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 회장님? 종이를 잘못 주신 것 같은…”

회장이 건넨 종이는 파티 탈퇴서가 아니라, 파티 추방 신청서였으니까.

그녀의 의문에, 황녀는 고개를 젓는다.

“잘못 준 거 아니다.”

물론 이런 일이 허용되지는 않으나.

뭐 어쩔 것인가?

자신은 황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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