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헬론 아카데미의 글러먹은 용사
‘설마 농담 조금 했다고 불이익을 주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약간의 걱정을 하며, 나는 학생회실에서 나왔다.
다음으로 할 일은, 약간의 고민이 필요했다.
이제 히로인들의 구원이니 뭐니, 신경 쓰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나의 노력을 배신으로 갚은 펠리체 안스베르크에게는 크게 실망을 했지만.
나는 우리 파티원들이 아닌, 다른 여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 그녀는 죄가 없으니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
나는 양호실에 들리기에 앞서 우선 기숙사로 돌아갔다.
이 무슨 동선의 낭비냐 할 수 있겠지만,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한다.
나는 양피지와 깃펜을 꺼내고서는 편지를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음.
내용이 약간 난잡한 것 같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다시 기숙사 밖으로 나가, 아카데미 내의 우체국에 들렀다.
처음에는 판타지 세계에서 무슨 우체국이냐 했지만, 뭐 게임의 설정이 그런 걸 어떡하겠냐.
거기에서 나는 내 피 같은 돈을 주고, 제일 빠른 급행으로 편지를 부쳤다.
전서구를 이용할지, 사람이 직접 움직일지 사소한 궁금증이 들었다.
다음으로는 양호실에 가서, 약간의 타박과 함께 치료를 받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와서는, 마침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힘든 하루였다.
아직 저녁이 되려면 한참은 멀었지만 말이다.
역시 판타지 치고는 수상할 정도로 현대적인 욕실에서 몸을 씻고.
나는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몸이 편해지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자연스레 오늘 있었던 일이 내 머릿속에 마구 떠올랐고.
허탈감, 좌절감, 배신감 등등.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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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론 아카데미의 용사’
원래의 대한민국에서 내가 즐기던 게임의 이름이었다.
동시에, 게임을 클리어하자마자 빛이 번쩍이더니 내가 끌려들어온 게임의 이름이었고.
내용은 간단했다.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까지 모험을 하거나, 과제를 완수하는 등 퀘스트를 깨고.
수업을 듣거나 아카데미 곳곳에 숨어있는 기연을 획득하고.
같은 아카데미 생도들을 동료로 만들어서.
졸업과 함께 나타나는 마왕을 처치하면 되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의 주인공이자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레오 엡실트.
엡실트 공작가의 후계자이자, 성검을 사용할 수 있는 용사 후보였다.
아니, 애초에 빙의를 시켜줄 거면 주인공에 빙의시켜줘야 하는 거 아닌가?
처음에는 그런 소소한 불만도 있었다.
아니, 그런 불만은 아직도 유효하지만.
설정 상, 이 헬론 아카데미는 1학년 때부터 생도들을 나눠 파티를 지정해준다.
동시에, 외부의 의뢰를 적당히 선별하여 과제라는 이름으로 파티에 제공하고.
실전을 통해 생도들의 실력과 경험을 키우겠다는 취지였으나.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그냥 아카데미 생도라는 뛰어난 인력을 놀리기 싫어 그러는 것 같았다.
내가 현재 속해 있는 파티의 구성원들은, 전부 게임에서 플레이어에게 기본적으로 배정되는 파티원이었다.
한 파티의 인원은 7명.
어쩌다 이런 어중간한 인원이 나오게 됐느냐, 내 추측을 이야기해보자면.
우선은 파티의 핵심인 용사, 주인공.
거기에 히로인으로 늘 등장하는 도적, 마법사, 성녀, 궁수, 기사.
어찌 보면 참 정석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용사를 제외한 나머지가 전부 여자인 것까지.
그러나 제작사에서는 이런 하렘 파티만으로는 스토리가 허전하다고 느낀 것인지.
파티 내에 빌런 캐릭터를 하나 추가하였다.
그게 바로 나, 루이 발렌슈타인.
이것이 바로 어중간한 7명 파티의 탄생 이유라고 나는 추측했다.
아까 게임의 컨텐츠 중에 아카데미의 생도들을 동료로 만드는 부분이 있다고 했었는데.
그게 바로 이 파티원들이었다.
스토리 상, 아카데미를 졸업하기 전까지 이 5명의 히로인들에게는 각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난다.
게임이 요구하는 것은 구원 서사.
플레이어가 이들을 구원하면, 그녀들은 플레이어의 진정한 동료가 되어 마왕에 맞서 싸운다.
반면에 플레이어가 실패하면, 이들은 자연스럽게 스토리에서 탈락하고.
처음 이 게임에 빙의한 것을 깨닫고 나서, 내가 제일 궁금한 것은 레오 엡실트였다.
이 게임을 거의 폐인처럼 즐기던 내게 있어서 다른 캐릭터들은 익숙했지만.
레오 엡실트는 플레이어블 캐릭터였기에 과연 이 세계에서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으니.
그리고, 내가 그를 몇 번 보고서 힘들게 내린 결론.
‘이 자식은 글러먹었다.’
성격은 개차반에, 실력도 없으면서 타고난 힘만 가지고 오만하다.
심지어 공작가의 후계자였기에 그걸 제지할 사람도 없었다.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 훤히 예상이 가는 부분.
용사 후보로 선택되는 것은, 그런 그의 성격을 훨씬 악화시켰다.
후보라고는 하지만,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 용사 후보는 자연스럽게 용사가 되는 법이었으니.
자신이 강하다고 믿고 있기에 훈련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저번에는 마나도 근력도 훨씬 아래인 나에게 흠씬 처맞았었지.
나는 깨달았다.
저 새끼가 주인공인 이상, 마왕의 토벌은 고사하고 일단 히로인들부터 전부 탈락하겠구나.
이 게임에 나오는 5명의 히로인들.
그녀들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이었다.
나는 결심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주인공이 되어 그녀들을 구원해주겠다고.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마왕을 처치하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그런데 오늘.
그녀들은 내가 이 세계에 오고 나서 한 가장 중요한 결심을 좌절시켰다.
“씨발, 알아서들 하라지…”
나는 중얼거렸다.
나도 이제는 너희들을 신경 안 쓰고, 혼자서 잘 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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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없으니까 살 것 같아요!”
성녀가 말한다.
그 남자란, 당연하지만 루이 발렌슈타인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하, 진작에 내쫓을 걸 그랬어!”
레오가 웃으며 말한다.
물론, 진심이었다.
용사인 자신과, 자신을 보좌할 다섯 명의 여자들.
꼭 전설에 나오는 용사 파티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가?
심지어 아카데미에서 배정해 준 파티의 번호조차 1번이었다.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 돌아가는 느낌.
그런 자신의 파티에서 유일하게 거슬리던 것이 루이 발렌슈타인이었지만.
오늘 마침내 그 놈을 내쫓을 수 있었다.
“이제 그 짐덩이 놈도 내쫓았으니까, 우리 파티도 더 성장할 수 있겠어. 어려운 과제도 받고 말이야.”
레오가 차기 용사에 걸맞은 과제를 고를 때마다, 그 겁쟁이 놈은 사사건건 반대를 했었다.
이제 놈이 없으니 아무런 문제도 없다.
당장 어려운 과제들을 손쉽게 해결하고, 높은 점수와 포상금을 받을 생각을 하는 레오였다.
“안 그래?”
그는 그렇게 물으며 베로니카를 바라보았다.
“어, 어… 그렇지.”
이상하게 베로니카의 대답이 약간 떨떠름한 것 같았으나.
그는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등한 인간이 하나 줄어드니까 조금 살 것 같네요.”
엘린이 말한다.
“야, 엘프. 지금 나보고 하등하다고 한 거냐?”
레오가 발끈해서는 그렇게 물어본다.
그러자 엘린은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젓는다.
“그럴 리가요. 레오, 당신은 다른 인간들과는 달리 특별하니까…”
“하하, 그렇지! 이 몸이 특별하긴 하지!”
단순한 레오는 그녀의 말에 크게 웃는다.
물론 속으로는 질색을 하는 엘린이었으나.
‘제가 왜 저딴 인간이랑…’
지금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펠리체와 아이네, 둘이었다.
특히 펠리체는 아까 루이가 한 말 때문이었는지, 계속해서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레오가 그녀에게 말한다.
“펠리체, 놈의 말은 신경 쓸 필요 없어. 그야, 그딴 놈이 말하는 건 전부 헛소리일 게 뻔하잖아?”
아니, 잘 모르겠다.
펠리체가 느끼기에, 루이가 하는 말은 결국 늘 옳았으니까.
“반역자 놈이 할 소리야 뻔하지. 아까도 결국 자기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입은 걸 인정하기 싫어서 변명이나 한 거야.”
그러나 그 말에는, 펠리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는 결국 반역자 가문.
그런 남자가 하는 말을 믿을 수는 없다.
절대 우리 가문을 생각해서 한 일이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레오는 도적, 아이네를 바라본다.
펠리체와는 조금 다른 이유로 말이 없는 듯한 그녀.
설마,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것인가?
그는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생각해 보면, 저 년은 묘하게 루이 놈과 붙어 다녔던 것 같기도 하다.
그가 아이네를 부른다.
“어이, 평민!”
“예? 예!”
얼빠진 대답을 하는 그녀.
“식사나 준비해라.”
“예? 그치만, 오늘 당번은…”
“시끄러! 그런 잡일은 너 같은 평민이 해야지. 안 그래?”
아이네를 제외하고서는 전부 평민이 아닌 귀족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앞으로 이런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 알겠냐?”
“…네.”
고개를 숙이는 아이네.
애초에 당번이니 뭐니, 이것도 존나 마음에 안 들었었다.
루이 놈이 하도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람에, 차기 용사인 자신이 밥이나 하지 않았었나?
다시 생각해도 굴욕이었다.
놈의 말 따위 듣고 싶지 않았지만, 하필이면 놈과의 대결에서 져버린 것이 문제였다.
아, 물론 자신은 루이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레오였다.
애초에 루이 놈은 자신의 공격을 쥐새끼처럼 피해 다니기나 했었고.
딱 한 번만이라도 공격을 정통으로 맞는다면 쓰러질 놈 아닌가?
어차피 조만간 다시 대련을 할 예정이었었다.
지금까지 미뤄온 것은, 절대 그에게 두들겨 맞았던 공포 때문은 아니었다.